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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션에 대한 글을 쓰는 패션칼럼니스트입니다
    Eunjung Kim
    Fashion Columnist
    김은정 / 상세보기
    내게 행복은... (2013-09-09)
    추천수 118
    조회수   1,992
    내게 행복은...
    사진·글 : 김은정 (패션 칼럼니스트)

    한국을 떠난 지 6년이 넘었다. 떠나기 전 일은 내게 가족 다음으로 애지중지하는 행복이었다.
    좋아하는 일을 잘 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일은 나 자신을 중요한 사람으로 스스로 여기도록 만들었고 나는 그것이 최고의 행복인 줄 알았다. 패션 에디터들을 매일같이 만나면서 새로운 매력으로 가득한 계절의 신제품과 호흡하는 특성을 지닌 직업을 뒤로 한다는 생각은 기필코 해 본 적이 없었다. 오래도록 그렇게, 앉아 있는 자리에 머무를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런데 느닷없이 대사(大事)가 벌어졌다. 남편이 중국으로 발령이 나게 되어 가족 모두가 중국의 남부 도시 선전으로 둥지를 옮겨야만 했다. 고백하자면 중국은 내 안에 자리를 못 잡은 나라였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은 마오쩌둥의 공산국가라는 부정적인 개념으로 인식돼 있던 터라 호감을 갖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어쩌랴. 그 어떤 다른 선택을 할 수가 없다는 다짐을 하게 되면서 13억이 숨 쉬는 땅을 향해 나는 몸을 틀 수밖에 없었다.
    남편에게 중국은 더 없는 기회를 제공하는 희망의 시장이었으니 그의 가슴에 찬물을 끼얹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 나는 내심 “괜찮다”를 외치며 긍정적으로 사고하기 시작했다. 아이를 국제학교로 보낼 수 있다는 것, 홍콩을 이웃으로 둔다는 것(선전은 홍콩 바로 옆에 위치해 있다), 제2외국어로 부각되는 중국어를 배울 수 있다는 것, 책을 싫증 날 만큼 읽을 수 있다는 것, 좀 더 넓은 집에서 살 수 있다는 것, 사춘기에 접어 들 아이 곁에 있을 수 있다는 것 등등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득이 적지 않았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세계의 이목을 잡아 당기는 중국에 가는 것이 우리 세 식구의 미래에 힘이 된다는 것이었다. 또 다른 행복을 안겨줄 가능성이 점쳐지자 미련 없이 ‘떠남’을 선택했다.
    2013년, 현 시점에서 말할 수 있는 사실은 놓쳐 버릴 것만 같던 행복은 그 어디로도 가지 않았다는 점이다. 행사장에 들어서자마자 샴페인 잔을 집는 일도, 일년에 비즈니스 석을 타고 파리에 두 번 이상 가는 일도, 은행계좌에 다달이 급여가 입금되는 일도, 창조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과 빈번하게 명함을 주고받는 일도, 유명한 디자이너를 인터뷰할 일도 없지만 이상하게 행복하다.
    차 한 잔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엄마들이고 출장이 사라지는 바람에 단번에 적립되는 마일리지도 척박하고 월급이 없으니 내 돈 내 마음 가는 대로 쓰지도 못하는 낯선 상황으로 변했지만 새로운 행복은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뒷맛을 남긴다. 예전 누군가와 약속해서 만나면 일이 이유와 빌미가 되어 대화는 자연스럽게 일 중심으로 흘러가곤 했다. 대화를 이어나가는 데 별다른 고민을 할 필요를 못 느꼈다. 내게 힘들었던 것은 주부들과의 대화였다. 공통 분모를 모색하는 데 안간힘을 다하는 신경세포의 무게를 견디기가 어려웠다. 아이와 음식, 시댁에 관한 이야기로 온 시간을 보내는 대화의 패턴에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엄마 개인에 대해 듣고 싶은 마음이 컸다. 이를 위해서는 상대방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마주한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고 노력하는 자세로 임하니 보다 폭 넓은 만남을 향유할 수 있게 되었다. 패션이 늘 중심을 차지하지 않아도 재미가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 새로운 행복은 어색하기 짝이 없는 집안 일에서도 길어 올릴 수 있었다. 매달 감당해야 하는 잡지 마감과 연이은 미팅을 대비한 프레젠테이션 준비로 청소와 빨래, 음식은 가사 도우미 아주머니의 몫이었던 나머지 나의 살림 점수는 빵점이었다. 중국식 요리를 접하면서 담백한 채소 볶음을 한 접시 후다닥 대령하는 노하우와 집안 어딘가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 모든 수를 동원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뚝심도 생겼다. 뿐만 아니라 세탁기와 갖가지 세제, 걸레와 친해지니 떳떳함까지 누리게 되었다. 또한 삶을 영위하는 공간을 꾸미는 즐거움도 알게 되었다. 허나 그 무엇보다 값진 선물은 사춘기를 겪을 참에 놓인 아들의 곁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손맛이 담긴 간식을 준비하고 학교에서 돌아오면 “아들 왔어?”를 외치는 엄마에 대한 기억을 아이가 간직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잘 하는 일을 뒤로 하고 아이 뒷바라지 하며 사는 삶이 어떠냐는 뭇 사람들의 질문에 나는 이렇게 말한다. 이 또한 굉장한 직업이라고. 집이 숨을 쉬게끔 동분서주하는 지금의 내 모습이 좋다.
    눈에 잡힐 때마다 전원 스위치에 묻은 때를 지우고 때 되면 침대 시트를 갈고 싱크대의 파이프에서 물이 새면 수리공을 불러서 고치고 옷 사이사이 건습제로 영양을 공급하고 햇살이 찬란한 날에 부리나케 세탁기를 돌려 빨래를 널고 식탁에 새 옷을 입혀주고 쇠고기 무국을 끓여 입맛 도는 냄새를 피우고 질 좋다는 프랑스 면으로 만든 쿠션 커버로 작은 거실을 모양 나게 하고 각종 고지서들에게 제 자리를 마련해주고 TV 광고에서 본 신제품으로 바닥을 닦아보고 반반하게 마른 티셔츠들에게 웃음을 한 줌 퍼주고.
    “행복하세요?”
    누군가 이렇게 물어온다면 나의 고개는 망설임 없이 끄덕여진다. 담담한 하루하루에 그저 감사하고 그리운 지인들을 다시 볼 설렘에 마음은 더없이 부유해진다.
    그리고 나직이 되뇐다. ‘떠남’의 길을 잘 선택했다고. 이국에서의 삶은 내게 열린 사고와 배려를 가르치고 있으니 말이다.

     

    _김은정은 이화여대 불어불문학과와 프랑스 파리 에스모드 스타일리즘 학과를 졸업했다. 파리에서 일하다 패션잡지 「엘르」가 국내에 들어온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패션 에디터로의 열망을 안고 한국에 돌아왔다. 패션 라이센스 잡지 엘르(ELLE KOREA), 마리 끌레르(Marie Claire KOREA)에서 패션&뷰티 디렉터, 마담 휘가로(madam figaro KOREA)에서 편집장을 역임했다. 이후 샤넬 코리아(CHANEL KOREA)에서 홍보부장으로 근무했다. 현재는 싱가포르에 거주하며 패션에 관한 글을 한국의 패션잡지에 기고하며 패션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며 패션과의 끈을 단 한순간도 놓지 않고 살고 있다. 저서로는 [Leaving Living Loving](2009), [옷 이야기](2011)가 있다. ⓒPhoto by Jin Soo Lee
    English
    Happiness to me…
    Written & Photo by Eunjeung Kim (Fashion columnist)
    Translated by Sua Serena Min
    It has been six years since I left Korea. Before leaving, my work meant my happiness, second to my family. I was glad I was good at something I like to do. My work made me feel special about myself and I believed this to be the most genuine happiness. It never crossed my mind to leave this remarkable job where I get to meet fashion editors and encounter the charming new products every season. I was certain that I would stay in my place for a long time.
    Then, something huge happened. My whole family had to move to Shenzhen, a southern city of China, due to my husband’s work. To be honest, China had no place in my heart. It was only natural for me to feel this way about China based on the negative images portrayed by the general community. But I had to no choice so we headed to the country of 1.3 billion people.
    To my husband, China was a market of promise. I didn’t want to be the one to throw a wet blanket on his dreams. I kept telling myself, “It’ll be alright.” In fact, I thought of lots of positive aspects. I will be able to send my child to an international school, live near Hong Kong, learn Chinese, read lots of books, live in a larger house, and spend more time with my teenage son. After much consideration, I realized that going to China was the right decision for our family. I was persuaded by the idea of new happiness I can seek there.
    What I can say at this point is that the happiness I thought I would miss did not go anywhere. I no longer pick up fancy champagne glasses at fabulous events, or ride business class to Paris twice a year, or receive my paycheck monthly, or meet creative people on daily basis, or conduct an interview with a famous designer. But oddly enough, I was happy.
    Now, the people I usually meet are just regular moms. My flight mileage points are stagnant. I have no salary and so I tend to spend less money than I used to. But this new kind of happiness leaves a special aftertaste. When I used to work, meeting people was so easy because we usually had a topic to discuss and our conversations flowed very naturally.
    It was the conversations with the moms I had trouble at first. I felt my nerves getting exhausted from trying to find some common grounds with these women. That was because I was not used to talking about kids, food, and in-laws for all day long. I was more interested in the moms themselves. It was important to show them my interest. I approached everyone with an attentive attitude and I was able to share friendship with a wide range of people. I was having a great time even without talking about fashion.
    Another place I found my new happiness is in the house. When I had to deal with monthly deadlines and numerous presentations, cleaning, laundry, and cooking were entirely my housekeeper’s responsibility. Now, I can easily make a fried vegetable dish in a heartbeat and I know how to manage every little function in my house. Moreover, getting close to house chores even brought me a sense of confidence. I felt the pleasure of decorating our place of living. But the most valuable gift was being close to my teenage son. I can make his snack with my own hands and give him the memory of his mom greeting him as he returns home from school.
    People often tend to ask me how it feels to leave something I was good at to support my family. I tell them that this is also a great job. I like myself running around the house busy.
    I clean the dust off the power buttons, change the bed sheets regularly, call the plumber when our faucet is leaking, keep our clothes neat, do the laundry on a bright sunny day, cook delicious soup for the family, decorate the living room with French cotton cushions, organize the bills, mop the floors with the new cleaning product I saw on TV commercial, and iron the shirts.
    “Are you happy?”
    If someone asks me, I nod my head without hesitation. I am grateful for each day and feel blessed by the anticipation of meeting my loved ones.
    And I tell myself that it was a good thing I left. My life in this foreign country taught me to open my mind and to be considerate.
    _Eunjeung Kim majored in French Literature at Ewha Womans University and Stylism at ESMOD PARIS. After working in Paris for several years, she returned to Korea as a fashion editor of ELLE Magazine. She has worked as a fashion and beauty director for ELLE KOREA and Marie Claire KOREA, followed by Madam Figaro KOREA as the chief editor. Later she has worked for Chanel KOREA as a PR director. She is currently residing in Singapore, and by writing fashion columns for Korean fashion magazines. she stays close to the fashion world every moment. Her publications include Leaving Living Loving (2009) and Story of Clothes (2011) ⓒPhoto by Jin Soo Lee
    日本語
    私にとって幸福とは…
    文・写真 : キム・ウンジョン(ファッション・コラムニスト)
    Translated by Kong Sung-eun
    韓国を離れて6年が過ぎた。出発前、仕事は私にとって家族の次に珍重した幸せだった。
    好きなことが出来て幸せだった。仕事は自分自身を重要な人として自ら思うように作り上げ、私はそれが最高の幸福であると思っていた。ファッションエディター達を毎日のように会いながら、新たな魅力に満ちた季節の新商品と息を合わせる特性を持った仕事を後回しにするという事は考えたこともなかった。
    末永く、そのように、座っていた場所に留まるだろうと確信していた。
    ところが、突然大事が起きた。夫が中国に転勤が決まり、家族全員が中国の南部都市深圳に引っ越さ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告白すると中国は私の中でまだ落ち着かない国であった。それもそのはず、中国の多少否定的なイメージが強かったため、好感を持つ事が容易ではなかった。しかし、どうすることも出来ない。その他の選択は出来ないと確信するようになり、13億が呼吸する土地に向かって私は方向を変え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
    夫にとって中国はまたとない機会を提供する希望の市場だったため、彼の期待に水をさすような事は出来ず、私は内心“大丈夫”を叫びながら積極的に考えるようになった。子供をインターナショナルスクールに通わせる事が出来る事、香港をお隣に置けること(深圳は香港のすぐ隣に位置している)、第2外国語として注目されている中国語を学ぶことが出来る事、本をうんざりするほど読めること、もう少し広い家に住むことが出来る事、思春期に入る子供のそばにいることが出来る事など、いざ箱を開けると得なことが少なくなかった。悩んだ末に下した結論は、世界の人目を引く中国に行くことが私の三人家族の将来に力になるということだった。もう一つの幸せを抱かせる可能性が予想されると未練なく、「去ること」を選択した。
    2013年、現時点で言えることは逃してしまいそうだった幸せは何処にも行かなかったということだ。ショーに入り、シャンパングラスを手にとることも、毎年、ビジネス席に乗ってパリに2回以上行くことも、銀行口座に毎月の給与が入金されることも、創造的な仕事をする人たちと頻繁に名刺を交わすことも、有名なデザイナーをインタビューすることもないが、不思議なことに幸せである。
    お茶をする人々はほとんどママさんたちで、出張がなくなり一気に貯まるマイルも減り、給料もないので私のお金も自由に使うことも出来ない見慣れない状況に変わりましたが、新しい幸せは、以前に経験したことのない後味を残す。以前は誰かと約束をして会うと仕事が理由と口実になり会話は自然と仕事中心に流れたりした。会話を続けるのに何の心配をする必要性を感じなかった。
    私にとってもっとも難しかったのは主婦たちとの会話だった。共通点を模索するため全力を尽くし、神経細胞の重さに耐えるのが難しかった。子供と食事、嫁ぎ先の話で時間を過ごす会話のパターンに慣れていなかったからだ。それよりもママさん個人について聞きたい気持ちが大きかった。そのためには相手に対して関心を表明することが大事であると考えた。向き合った相手がどんな人なのか、知ろうと努力する姿勢で臨んだら、より幅広い出会いを享受す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なった。ファッションがいつも中心を占めていなくても楽しみがあった。
    一方で、新しい幸福は厄介極まりない家事からもあげることが出来る。毎月、やらなければならない雑誌の締切りと続くミーティングを備えたプレゼンテーションの準備で、炊事洗濯は家事お手伝いさんの仕事であったため、私の家事の点数は0点だった。中国料理に接してから淡白な野菜の炒め物を一皿サッと出せるノウハウと家の中の機能がちゃんと動作しない場合は、すべてを動員してでも問題を解決する根気もできた。それだけではなく、洗濯機や色んな洗剤、雑巾と親しくなると堂々しくなった。また、生活を営む空間を飾る楽しみも知った。だけど、何よりも大事な贈り物は思春期に置かれた息子のそばを見守ることが出来るということだ。手作りの味が詰まったおやつを準備して学校から帰ってくると“息子、来たの?”と迎える母の記憶を子供が大事に思ってくれたらと願うばかりだ。
    得意なことを後に回し、子供の世話をしながら生きる人生はどうか?という質問をする人たちの質問に私はこう答える。これもまた素晴らしい職業だと。家が息をするように東奔西走する今の私の姿が好きだ。
    目に付く度に、電源のスイッチについた汚れを取り、時になるとシートを引き換え、シンクのパイプから水が漏れると修理を呼んで修理し、服の間に乾湿剤で栄養を供給し、日差しが輝かしい日には急いで洗濯機を回して洗濯物を干して、テーブルの上に新しい服を着せてあげ、大根の牛肉スープを作り、よだれが出そうな匂い、質の良いフランス製のコットンで作ったクッションカバーで小さなリビングをコーディネートし、各種の請求書たちに定位置を設け、コマーシャルで見た新製品で床を磨いてみる、程よく乾いたTシャツたちに一握りの笑いを与える。
    “幸せですか?”
    誰かがこのように聞くならば、私は迷わずに頷くだろう。淡々とした日々にただ感謝して、懐かしい知人たちに再び会えるというトキメキの気持ちはこの上なく豊かになる。
    そしてぼそりと繰り返し言う。“去る”の道をよく選択したと。異国での生活は私にオープンな思考と配慮を教えているからだ。
    _キム・ウンジョンは梨花女子大学の仏語仏文学科とフランスのパリ・エスモードでスタイリズム学科を卒業した。パリで働き、ファッション雑誌「ELLE」が国内に入ってくるというニュースを聞き、ファッション・エディターの願望を抱いて韓国に戻る。ファッションライセンス雑誌「ELLE KOREA」、「Marie Claire KOREA」でファッション&ビューティーディレクター、「madam figaro KOREA」で編集長を務めた。以降、「CHANEL KOREA」で広報部長を務めた。現在はシンガポールに居住し、ファッションに関する記事を韓国のファッション雑誌に寄稿し、ファッション・コラムニストとして活動し、ファッションの紐を一瞬も話さずに生きている。著書としては「Leaving Living Loving」(2009)、「服の話」(2011)がある。 ⓒPhoto by Jin Soo Lee
    中國語
    對我而言幸福是…
    文章・照片: Kim Eun-jeung (時尚·專欄作家)
    Translated by WenYing, Li
    離開韓國6年了。出發前、工作對我來說是僅次於家族珍貴的幸福。
    可以做自己喜歡的事真的很幸福。 工作是作為對於自己很重要的人親自精心製作出自己想要的樣子、我曾認為那就是最好的幸福。就像每天一樣地一邊見著時尚編輯們、一邊要擁有與充滿著新的魅力的季節的新商品配合呼吸的特性、不曾想過要將工作延遲。
    確定了應該會長久的、像那樣、停留在坐著的地方吧!
    然而、突然發生了大事。 丈夫的工作確定被調動到中國、家族全員必須搬到中國南部的城市深圳。 坦白說在我的心裡中國還是不安定的國家。那也是當然的、對於中國有些否定的印象較強烈、要有好感並不是容易的事。可是、也不能怎麼樣。變的確定沒有其他的選擇、朝向13億人呼吸的土地我必須改變方向。
    因為對丈夫來說中國是提供無比的機會的希望的市場、不能在他的期待中澆冷水、所以我內心一邊呼喊著"沒問題"一邊變得積極地思考。 能讓孩子上國際學校、旁邊就是香港(深圳位在香港的旁邊)、第2外語可以學習受到重視的中文、能看書看到膩、能住在再稍微寬廣一點的房子、能待在進入青春期的孩子身邊、當必須打開箱子時好處並不多。 煩惱的結果作出的結論是、去引世人注目的中國將來能成為我們家族三個人的力量。覺得可能擁有另一個幸福沒有依戀地、選擇了「離開」。
    2013年,在這一刻可以說的是差點放棄的幸福就是哪裡都沒去。參加時裝秀、手持香檳杯、每年搭乘商務艙2次以上去巴黎、銀行戶頭每個月的薪資入帳、與創作者的人們頻繁地交換名片、都沒有採訪有名的設計師、不過、很不可思議的是很幸福。
    一起喝茶的人幾乎都是媽媽們、因為沒有出差了所累積的里程數也減少了很多、也因為沒有收入所以不能自由的使用我的錢變成了看不習慣的狀況、不過、新的幸福是、留下了以前所沒有經歷過的事。 以前與人約見面工作成為了理由與藉口、對話野自然的以工作為中心。 沒有感到過必須擔心持續地對話。對我來說最難的就是與主婦們的對話了。 為了摸索共同點竭盡全力、要承受神經細胞的重量好難。 因為不習慣將時間用在與孩子吃飯、婆家的話題的對話模式上。比起那個比較想聽關於媽媽們個人的事。為此我認為表明關心對方很重要。 無論面對的對方是怎麼樣的人、面臨了努力了解的態度、變得能夠享受更廣泛的相遇。時尚即使沒站在中心也有樂趣。
    另一方面、新的幸福從麻煩至極的家務也能取得。 因為每個月、必須做的雜誌截稿與接著準備會議上的發表、而煮飯洗衣是傭人的工作的關係、我的家務的分數是0分。 接觸了中國料理之後能快速的炒出一盤淡白色蔬菜的訣竅和家中的功能不做動作的情況、就算全家總動員也有解決問題的耐性了。不僅僅只有那樣還有、與洗衣機和各式各樣的清潔劑、抹布變得親近並且變得理所當然的。還有、也了解了參與生活裝飾空間的樂趣。可是、比什麼都重要的禮物是能在身旁關注著正值青春期的兒子。 準備都是手工味道的點心、從學校回來時”兒子、來了嗎?"迎接著孩子的母親的記憶只希望孩子能感到很重要。
    將擅長的事情往後延、一邊照料孩子一邊活著的人生是怎麼樣的?對於問這樣問題的人們我是這樣回答的。這也是很好的職業。就像家在呼吸一樣地我喜歡東奔西走現在的我的姿態。
    只要眼睛看到了、把電源開關上的汙垢擦乾淨、有時候交換坐墊、水槽的管水漏水時請人來修理、衣服之間用乾濕劑提供營養、陽光耀眼的日子趕快用洗衣機洗完衣服後晾乾、給桌子上面穿上新的衣服、製作蘿蔔牛肉湯、口水快流出來的味道、 用材質好的法國製的棉製作靠墊的套子裝飾小客廳、設置各種的帳單們的位置、在廣告上看到新產品試著刷地板、適當地對乾燥的T恤們給予少數的笑容。
    “幸福嗎?”
    不管是誰如果這樣問的話、我會毫不猶豫的點頭。 對於平淡的日子只有感謝、能再次遇見懷念的熟人們這樣心跳的心情變得無比地豐富。
    然後又小聲的重複說。選擇了"離開"的道路做的很好。因為在異國的生活教會我開放的思考與關懷。
    _Kim Eun-jeung畢業於梨花女子大學法語法國文學科與在法國的巴黎•ESMOD造型學科。在巴黎工作、聽說時尚雜誌「ELLE」進入國內這個新聞、抱著時尚•編輯的願望返回韓國。在時尚進出口許可證雜誌「ELLE KOREA」、「Marie Claire KOREA」擔任時尚&美容導演、在「madam figaro KOREA」擔任主編。 之後、在「CHANEL KOREA」擔任宣傳部長。 現在居住在新加坡、將有關時尚的報道投稿韓國的時尚雜誌、作為時尚•專欄作家活躍、活在沒有一刻不談論時尚中。 著作有「Leaving Living Loving」(2009)、「衣服的話」(2011)。 ⓒPhoto by Jin Soo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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