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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가영의 LES ESSAI
    제대로 읽고 쓸 수 있으며, 명확하게 말하고, 섬세하게 들을 수 있기를 원합니다
    Gayoung Lee
    Writer
    이가영 / 상세보기
    0, 1, 2, 3……‘3’ (2016-03-08)
    추천수 117
    조회수   1,124
    0, 1, 2, 3……‘3’
    글 : 이가영 (작가)
    3이란 아라비아 숫자. 오랫동안 쌓이고 굳어져 그 자체의 특징이 된 이야기들은 접어두고서라도, 내게는 이 숫자가 새 학기를 떠올리게 한다. 달력을 넘기면 새해와 함께, 잠시 한눈판 사이 시작되던 신학기. 새로운 종의 탄생처럼 새 교실, 새 반, 새 담임 쌤, 새로운 친구들을 마주했다. 모든지 익숙한 듯 하나 지형이 전혀 달랐던 그 어색하고,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앞서던 시간.
    매 해 그 첫날에는 너무나 짧은 틈 사이 안에 모든 것이 결정됐다. 휴식종이 땡 하고 치면 보통 서너 명이 모인 팀에 자신이 끼어 있지 못하고, 아직도 새 흐름에 적응 중이라는 듯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주위를 살피고만 있다면, 특히 수줍음이 많은 아이라면 그 해 벗 농사는 반타작도 힘들었다. 그러면 어떤 악몽이 기다리고 있었다. 벌 받으려 사는 게 아닐 텐데도, 점심시간에는 무슨 천고의 죄인처럼 온 몸을 어디 가눌 줄을 모르고 축 쳐져서, 끝없는 이야기처럼 꼬리에 꼬리를 문 줄을 지나, 황량한 식판을 어기적 받아들고, 이 닭장에서 유일한 안식처라 공인된 시간을 묵묵히 버티는 일. 그러다 한 달간 그 모습이 계속 되기라도 한다면, 자연히 그 반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만다.
    사실 어떤 종류의 학생일지라도 그 잔인한 달에는 그 괴담을 신경 쓸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나만 가지고 있는 불안 증세인 줄 알았지만, 서너 번의 개학식을 경험한 뒤로는 그 공포가 나만의 광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너무나 선명하게 보였으니까. 그 한 달 내 세포가 분열하듯 여러 수다 팀이 해체되고 다시 모였다 재분열을 하는 과정에 스며든 공기에 짙게 배어 있던 그 진한 안도감 말이다. 그 깊은 한숨 같은 편안함. 한 공간에 삼삼오오 모여서 서로가 맞장구칠 수 있는, 이 평범한 모습 안에 기꺼이 섞여서 참 다행이라고.
    " 얄미운 변명 "
    이렇게 이 숫자에는 설익은 시작과 태동의 이미지, 계절적으로도 겨울 내 웅크리고 있던 파릇한 생명들이 다시 움트는 순간의 향취를 느끼게 한다. 특히 거의 본능적으로 꽃을 떠올리게 만들며, 버스커-버스커의 벚꽃 연금이라고까지 불리는 당장 꽃길로 나가 걸어 볼 것을 종용하는 가사가 콧노래를 부르게 한다.
    아니, 그래서? 이렇게 계속 ‘생각난다’고 계속 연상하다가는 광란의 마인드맵이 될 것 같지만 또 어쩌겠나? 애초에 숫자로 시작했으니 그 숫자의 이미지들을 풀 수밖에 없다.
    사실 얄미운 변명이다. 기꺼이 독자가 되어주신 분들을 앞에 앉혀두고 의식의 흐름식으로 연상하기를 이어가는 게으름을 부렸다. 이 숫자를 통해 진짜 말하고 싶은 이야기를 찾을 때까지, 순전히 우연에 기대 그나마 이야기로서 풀 수 있을 자신이 조금이라도 사랑한 주제를 찾을 때까지는. 그런데 사실 정말 어려운 일이긴 하다. 사랑했던 모든 주제들은 대부분 일상 속에 평범함을 가장한 채로 잘도 숨어 있어서 여간해서는 찾기 쉽지가 않다. 그저 끝말잇기를 영혼 없이 계속 읊거나, 프로이트 박사의 영혼께 그런 색다르게 심리학적으로 생각하기의 노하우를 배워오지 않는 이상 다 어디서 들어 본 말이고, 다 어디서 누군가에게 들었던 걸 잊고 따라하는 말인 것만 같다. 그러다 공포감까지 밀려오는데, 결국 내가 나여서 했던 말은 진실로 하나도 손톱만큼도 없다는 사실, 그 어찌할 수 없는 무기력함. 그래서 말보다 더 정밀하고 간결하게 자신을 내보여야하는 쓰기란 행동은 공포와 상당한 압박감을 줄 수밖에 없는 일인 것 같다.
    하지만 말하기도 그렇다. 자신에 대해 성의 없는 자기 소개서식으로 말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의 말하기는 글쓰기와 똑같은 강도의 공포를 준다. 그런데 거기에 소리 내서 타인의 주장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아니면 이미 오랜 시간동안 굳건한 고전의 지위로서 자신의 말을 관철하려는 대상과 텍스트에게 설익은 질문을 던진다는 건, 그것도 오직 자기 내면에서 구체적으로 끌어올린 좋은 물음을 가진다는 건 기존의 학제에서는 이루기 힘든 이상향이지 않나싶다. 국가는 마땅히 모든 아이들이 그런 교육을 받도록 노력해야 하거나, 최소한 시도조차 할 생각이라도 했어야 하지만 그 해 수능 문제가 잡음 없이 출제되도록 하는 것 외에는 그 오랜 세월 사유할 엄두조차 하지 않았던 것 같아 분한 생각이 든다. 그러다 결국 국가가 의무 교육으로 해준 게 무언데 혼자 발끈하며 삐죽였던 교복을 입고 있던 그 때. 그런 피해 의식 같은 것이 계절 탓으로 그 당시와 조금도 다름없이 같은 강도로 부채질 해지던 춘분을 넘어선 어떤 날, 그 애니메이션이 재개봉을 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그 영화가 개봉하던 시기 즈음부터 극장을 너무 자주 갔던 것 같다. 모아 둔 영화표에 찍힌 날짜를 기점 전후로 어렴풋이 그 시기 크고 작은 일화가 생각나는 걸 보면, 아마 그때 이후로 영화라는 장르에 영입된 것인데, 그런 먼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을 스크린으로 다시 볼 수 있다니! 그것만으로도 하나의 큰 사건이었다. 그리고 다시 마주한 그 잃어버린 것들의 나라…….
    " 그 잃어버린 것들의 나라 "
    낯선 곳으로 이사 가던 소녀, 품 안에 헤어진 친구들이 전학 기념으로 준 꽃과 선물 보따리를 무심하게 안고 뒷좌석에서 창밖을 내다본다. 마치 이 고요한 시간은 앞으로 닥칠 요란한 모험을 경고하는 듯, 지나치게 평온하다. 그 맑은 수채화 톤의 장면들이 넘어 가면서 전개되는 환상과 꿈의 이미지들.
    어느 순간 소녀는 낯선 요괴의 세계에서 길을 잃게 되고, 자신의 손이 어느 순간 해파리냉채 같이 투명해지는 걸 느낀다. 홀로 담벼락에 숨어서 투명해진 손끝을 비벼보며 울먹이던 때, 구원처럼 나타난 한 소년. 그는 난데없이 그 이마에 손을 얹고서 입 한번 뻥긋하지 않고 앞으로 소녀가 사라지지 않으려면 해야 할 일을 보여 준다. 여전히 이름도 모르는 이 낯선 자를 믿어야 할지는 모르지만, 더 이상 어찌할 수 없기에 덥석 그 손을 잡는다. 순간 정확하고도 빠르게 바람이 달려 나가 듯 이끌려 간 그 곳. 많은 요괴들을 단골로 가진 거대 여관.
    잠시 인간의 냄새를 풍기지 않는 마법을 걸었는데, 저 다리를 넘어 뒤뜰로 가기 전까지 손님과 일꾼들이 눈치체지 못하게 한 숨도 내쉬어서는 안 된다. 드디어 그 입구로 들어서는 다리를 지나는 바로 그 순간, 있는 힘껏 소녀가 숨을 참는다. 마침 여관 직원인 개구리가 가던 길을 멈추고 소년에게 인사를 건넨다. 그런데 문득 소름끼치게 멈춰 서더니, 이내 고개를 갸우뚱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고는 금세 코를 벌렁거리더니 얄밉게도 꽥꽥거린다.
    “닝겐이다! 닝겐이야!”
    그 촐싹이던 개구리 앞다리를 잡아다 먼 개울가에 던져 버리고 싶었다. 그토록 간절히 그 순 무언가를 원했던 적이 있었나, 스스로 의아해 할 만큼, 넋을 놓고 있었다.
    인간은 결코 출입할 수 없는 금단의 구역, 그들만의 세계에 침범한 소녀. 한 언덕을 넘으면 다시 다른 오르내림을 경험하게 하는 장면들 속에서 그 몇 주 전, 템플 스테이를 핑계로 집 주위에 원래는 있는지도 몰랐던 오랜 고찰에서의 대화를 떠올리게 했다. 스님이 말씀마다 강조해마지 않으셨으나, 듣고 있던 당시에는 너무 진부한 이야기라고, 시큰둥해했던 단어 하나.
    ‘止觀(지관). 지금 이 순간, 여기서 집중하는 일.’
    생각해 보니 정말 그렇다. 일생의 대부분 몸과 마음을 따로 분리된 채 부유하며 살기 쉬운데, 예술만은 흔들리는 시간에 길을 잃고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지 않게 영혼을 붙잡아두는 마법을 부린다. 모든 종류의 예술에는 그런 미지의 세계에서부터 풍겨오는 향취가 있다.
    그 향에는 서사가 있고, 이야기가 담겨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좀 유별나게 특이한 느낌을 가진 개별의 순간들이 존재한다. 지극히 개인적일 수밖에 없는 경험, 평면으로 보이던 익숙한 대상이 언젠가 우연한 기회를 틈타서 지금까지 담아온 기억으로부터 무작위로 선별해 만드는 새로운 이야기. 그런 이야기가 가진 질감은 평소 익숙한 분야를 통해 오던 감동의 결들과는 뭔가 다르다. 평소에 관심을 두지 않던 분야에서 온 것이라면, 더더욱 특별하다. 자신이 사랑하는 영역에서 자연스럽게 스며있던 아름다움을 매번 피하고 보던 엉뚱한 곳에서 발견하다니! 그 기이한 공감의 순간이 오기 전, 상상할 수 있었던 그 어떤 진폭보다 넓고 깊은 아름다움을 본다. 마치 갑자기 내게 공감각 능력이 생겨, 세상의 온갖 빛과 소리, 공기 같은 무형의 것들에서조차 색을 보고 맛을 느끼고 생생히 시각화 시킬 수 있을 것처럼.
    바로 그런 예술을, 이런 특별함을 ‘인터뷰’란 형식으로 경험할 수 있을 거라 생각도 못해봤다. 그저 엄청난 우연이, 심한 독서 편식을 비집고 들어와 어느 매체서도 흔하게 접하는 그저 그런 인터뷰란 편견을 엎고 그 책의 표지를 넘기까지 순전한 우연이 필요했다.
    " 앎의 욕구는 삶에 대한 사랑 "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어떤 권태로운 날, 가끔 그 내용은 보지도 않고 제목이나 표지로 구매를 결정하는 커버 도벽 탓에 몇 달 전 사둔 신간을 발견했다. 얼마나 무신경했으면 이제 곧 버릴 폐지처럼 종이의 천적인 물기 어린 베란다에 버려두었을까. 처음엔 그런 미안한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 그러다 첫 장에서부터 사람을 사로잡는 섬세함, 옮긴이와 저자의 사려 깊은 서문에 헤어 나올 수 없다가, 쉼 없이 오고가는 대화들의 블랙홀 속으로 빨려들어 간다. 오고가는 대화가 질문과 차분한 대답들이 그토록 재미난 것이었다니. 그리고 그 첫 챕터를 장식하는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하는 과학 전문 칼럼니스트 슈테판 클라인과, 화학자이자 시인이기도 한 호프만 박사.
    저자가 물었다.
    그럼, 정말 분자가 예술과 똑같은 형식으로 아름다울까요?
    물론, 감성과 지성 사이 비중이 다르긴 하겠죠. 하지만 서로 상호 보완적 관계라 할까요?
    아름답다는 건 결국 지성과 대상 사이에서 오는 긴장감이에요. 물론, 최초의 촉발은 늘 감각적 끌림에서 오겠지만.
    결국 제가 예술에서도 과학에서도 발견한 건. 양쪽 다 인류의 정신이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샘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에 용기를 준다는 거예요. 그 풍요로움에 대한 생각을 그래서 가능한 자주 접하기 위해 아름다운 것들을 쫒아 다닙니다. 동시에 삶에 대한 신뢰를 굳게 붙들기 위해 구체적으로 노력하죠. 그래서 저는 온갖 지역, 시리아,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등에서 온 풋내기 화학자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제일 좋습니다. 하루 9시간씩 화학결합을 알아내려 고군분투한 뒤에 다 같이 차려 먹는 저녁은 정말 굉장하죠. 사실 분자는 이 시간들을 위한 핑계에요.
    그리고 그와 헤어질 때즈음 저자가 가장 궁금했던 질문 하나.
    오랜 세월, 자신이 맞는 지도 알 수 없는 그 지난한 실험들을 계속 할 수 있었던 그 끈기의 근원에 대해서…….
    앎의 욕구는 자연에 대한 사랑, 따라서 삶에 대한 사랑의 한 형태에요. 사람은 앎에서 싹트며, 앎이 확실해질수록 그 사랑은 더욱 깊어지죠. 그러니 무언가를 제대로 이해하면 우리는 그것을 소중히 여길 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 대상을 정확히 관찰함을 통해 우리는 자신을 변화시키고 성장하게 하죠.
    자신이 평생 연구해 온 분야에 대해 이토록 시적으로 말할 수 있다는 건 분명 특별한 일이다. 호프만 박사 외에도 자신의 영역에서 큰 족적을 남긴 열 세 명의 과학자들의 인터뷰는 하나같이 독특하고 아름답다. 그런데 그들 중에 처음부터 학자가 되겠다고 결심한 사람은 드물다. 다들 우연의 지도에 이끌려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자신의 운명을 바꿨다. 심지어 소설을 쓰기 위해 원주민의 생활을 조사하다 인류학자가 된 세라 허디 박사와 자신의 말대로 행복한 의사였다가 학회에서 본, 그리스 신화 속 이카루스 그림을 보고 신경학자가 된 한나 모니어 박사도 있다. (그녀는 자신의 전공인 분자 생명학이 아닌, 프루스트의 소설 속 ‘질투’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미 인터뷰에 가감 없이 드러나는 그네들의 삶 속 선택들은 그 어떤 드라마보다 박진감 넘친다. 이렇게 평범해 보이는 삶 속에 교묘하게 숨겨진 선택의 다리들을 되짚어 보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강렬한 통증 같은 감각을 준다. 그러니 우연이 더 현실적일 수 있는 삶에서, 인생을 계획할 수 있는 건 세상 물정 모르는 희망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멋진 게 아닐까?
    그렇게 순전히 우연으로 생명을 허용한 우주에 대해, 그 세계의 시작과 끝 앞에서 우리는 모두 별이 남긴 먼지일지도 모른다.
    삶이란,
    그토록 아득한 밤하늘에 촘촘히 박힌 시간과 기억의 별,
    그 너머로 흩어진 먼지 같은 걸…….

    # 3월 추천 영화_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The Spiriting Away Of Sen And Chihiro, 2001)"

    #3월 추천 도서_ "우리는 모두 별이 남긴 먼지입니다 (슈테판 클라인)"

    #3월 추천 다큐_ EBS EDIF 국제 다큐 영화제 선정작 ‘홀로코스트의 아이들 (children of the holocaust, 2014)"

     

    _이가영은 끊임없이 오랜 시간 동안 소설 쓰기를 하는 작가다. 제대로 읽고 쓸 수 있으며, 명확하게 말하고, 섬세하게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그녀는 소설로 등단을 하겠다는 꿈을 갖고 있는 "글을 쓰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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