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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한양도성
      역사와 문화, 미래의 가치를 품고 있는 서울 한양도성에서
      우리의 가치를 경험할 수 있는 길을 찾고, 그 길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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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양도성 오디오 가이드 2_낙산 구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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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양도성 오디오 가이드 2_낙산 구간

    < 한양도성, 더불어 사는 세상 >
    * 코스 : 낙산 공원 – 흥인지문 –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 광희문 - 장충체육관


    시간의 무게를 견딘 것들이 있습니다. 오래되어서 형태를 알아볼 수는 없지만, 남겨진 흔적에서 존재의 무게를 느낄 수 있습니다. 거기엔 오랜 침묵으로 깊어진 이야기가 스며 있습니다. 이어지고 끊어진 길 한양도성은 모두에게 열린 길이며 침묵의 길입니다. 과거의 길이 이어져 오늘 내 삶으로 들어온 길입니다. 하늘과 땅 그 사이에 서 있는 사람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늘 지나치는 평범한 길이 침묵을 깨고 말을 시작한다면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요.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이 걸어가며 쏟아낸 삶의 희로애락이 아닐까요. 저는 지금부터 한양도성의 길을 안내하고자 합니다. 지하철 혜화역 2번 출구에서 시작해 동대입구역 5번 출구에서 끝나는 길입니다. 탄생과 소멸이 공존하는 도시 한복판을 가로질러 가볼까 합니다.

    사적 제10호인 한양도성은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조선시대 성곽으로 태조가 서울로 도성을 옮기면서 건립한 것입니다. 한양도성 순성길은 서울의 낙산, 남산, 인왕산, 백악산을 잇고 흥인지문, 숭례문, 돈의문, 숙정문을 잇는 총 18.6km의 길입니다. 그럼 지금부터 한양도성 순성길을 걷겠습니다.

    지하철 4호선 혜화역 2번 출구로 나와 마로니에 공원으로 들어섭니다. 아르코예술극장과 아르코미술관 사잇길로 걸어오다가 막다른 길목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틉니다. 첫 번째 왼쪽 언덕길이 낙산공원으로 향하는 곳입니다. 낙산은 낙타의 등을 닮아 완만한 능선을 가졌습니다. 이곳은 이화동 벽화 마을이 시작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낙산 공원에 도착하면 전시관 오른편 계단으로 올라갑니다. 낙산공원 놀이 광장에 도착해서 잠시 숨을 고릅니다. 마치 산 정상에 오른 기분이 들 겁니다. 언덕길을 오르지 않고 낙산공원에서부터 걷고 싶다면 동대문역 3번 출구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낙산 종점에서 내리면 바로 이곳에 도착합니다.

    공용화장실쪽인 ‘낙산 성곽 서길’로 방향을 잡습니다. 오른쪽 샛길은 이화 벽화마을로 가는 길이니 성벽이 난 왼쪽 길로 걸어갑니다. 성벽 근처에 서면 도시가 한눈에 보입니다. 고층 빌딩과 건물로 빽빽한 풍경을 바라보면 시끄럽고 복잡한 현실에서 한발 떨어진 시선을 갖게 됩니다. 내 삶에서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간직해야 할지 돌아보게 합니다. 이 사색의 시간은 길을 걷는 내내 누릴 수 있는 또 다른 만남입니다.

    다시 길을 나섭니다. 걷다 보면 암문을 만나게 되는데 ‘한양도성 외부 순성길’ 푯말이 암문 가까이에 있습니다. 작은 암문을 통과해서 성의 외벽을 따라 걷습니다. 돌과 돌이 정교하게 쌓인 성벽은 옛 선인들의 장인정신과 더불어 인내의 시간을 생각하게 합니다. 뿌리 깊어 보이는 나무 덕분에 이 성곽길은 숨겨진 안뜰처럼 고요하고 아늑하게 다가옵니다. 이 길은 봄, 여름, 가을, 겨울마다 자연이 순환하면서 채워지고 비워집니다. 오래 머물고 싶은 곳이지만 곧 시끄러운 도심 한복판으로 들어서게 됩니다.

    버스가 오가는 복잡한 도로변에 흥인지문이 있습니다. 흥인지문은 옛날 한양의 주요 도로를 잇는 출입문입니다. 흥인지문에서 청계천 방향으로 걸어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로 향합니다. 성벽이 끊어진 거리를 두발로 걸어보는 건 우리가 잃어버렸던 민족의 정서를 찾는 과정인지도 모릅니다. 사라진 길은 스스로 숨은 게 아니니까요. 청계천이 흐르는 오간수교를 건너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A 알림터로 가봅니다. 알림터 아래 성벽의 일부가 담장처럼 둘려진 이간수문이 있습니다. 오래전 이곳으로 청계천 물길이 흘러갔을 것입니다. 과거의 모습을 상상해보면 내가 서 있는 장소의 의미가 확장되어 다가옵니다.

    이곳을 빠져나와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살림터로 걸어갑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 가로지르면 살림터 5번 입구로 나오게 됩니다. 서울 메트로 빌딩 앞에 있는 횡단보도를 건너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2번 출구로 걸어갑니다. 한양 공업 고등학교 사거리까지 올라가면 광희문이 있습니다. 찬란하게 빛나는 뜻을 가진 광희문은 당시 각종 역병과 재해로 죽은 사람을 나르던 시구문이었습니다. 사연 많은 성문 안으로 들어가 천장을 바라보면 거대한 두 마리 용이 하늘을 휘감은 그림을 볼 수 있습니다.

    광희문에서 성의 외벽을 끼고 직진합니다. 광희문 교회를 지날 때쯤 다시 성벽이 끊깁니다. 그리고 장충동 주택단지로 이어집니다. 이때는 한양도성 목멱산 표지판을 보고 걸어가야 길을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장충단로8길로 들어서서 첫 번째 왼쪽 골목으로 방향을 틉니다. 이때도 한양도성 목멱산 표지판을 살펴보고 걸어야 합니다. 자연도 성벽도 사라진 길은 오늘을 사는 사람들의 집으로 가득합니다.

    이야기는 만남과 헤어짐의 수많은 반복으로 이루어집니다. 사람들과 얽힌 애환이 담긴 내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가 있다는 건 ‘위로’입니다. 그러기에 걸어서 이웃에게 갈 수 있는 ‘사람이 사는 마을’이 반갑게 느껴집니다.

    주택단지를 벗어나면 큰 도로와 만납니다. 길 건너 오른 편에는 장충체육관이 보이고 왼편에는 다산동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가 보입니다. 다산동 마을로 들어서면 옥수수 알 같은 자잘한 돌들로 이루어진 성벽을 볼 수 있습니다. 시멘트 벽이 아닌 돌과 돌이 만나 어우러진 성벽은 사람의 온정이 느껴집니다. 무겁고 단단한 돌을 비슷한 크기로 쌓아 올리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쉽게 쌓아 올린 성벽이 아니기에 시간의 무게와 더불어 옛사람들의 노동이 귀하게 다가옵니다. 그리고 성벽을 보존하지 못한 아쉬움이 듭니다.

    성벽을 따라 걷다 보면 공영주차장이 나옵니다. 성벽을 끼고 계단을 오르면 풀과 흙냄새로 가득한 숲 속과 만납니다. 도시에 이런 숲이 있었나 싶을 만큼 반가운 길입니다. 자연 속에서 마음껏 호흡하며 걷다 보면 어느새 성벽은 끊어집니다. 그리고 도보 정면에 ‘서울 한양도성 순성 길‘ 안내판이 있습니다. 나무들로 빽빽한 숲은 여기까지 잘 걸어왔다고 주는 마지막 선물 같습니다. 숲길이 끝나면 국립극장으로 이어지는 ‘반얀트리 호텔’이 나옵니다. 호텔 정문 좌측 인도를 따라 걷다 보면 ‘남소문 터 비석’이 있습니다. 터만 남은 장소를 잠시 상상으로 그려봅니다. 이제 장충체육관 쪽으로 내려가면 동대입구역 5번 출구에 도착합니다. 낙산공원에서 시작한 여정이 이제 끝났습니다.

    낯선 길은 처음 가보는 길입니다. 새로운 길은 아직 가보지 못한 길이기도 하지만, 마음과 생각에 따라서 매번 새롭게 걸을 수 있는 길이기도 합니다. 함께 걸어온 이 길이 늘 새로운 길이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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