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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의 따뜻한 말 한 마디에 세상은 흐드러지게 피어나고
    Hwashin Son
    Writer
    손화신 / 상세보기
    세상의 숫자를 없애는 방법을 알려 드립니다
    추천수 144
    조회수   1,950
    세상의 숫자를 없애는 방법을 알려 드립니다
    글 : 손화신 (작가)

    “10살에 봤던 25살은 아저씨였고, 20살에 봤던 25살은 어른이었고, 25살에 느낀 25살은 아직 어리네.”
    - 트위터 닉네임 ‘팩트폭행범’(Fact_missile)
    위의 말에 나는 넘치게 공간한 나머지 내적 박수를 쳐댔다. 10살 때 봤던 25살은 아저씨인 정도가 아니라, 공경해야 할 어르신이었다. 그런데 지금 바라보는 25살은? 글쎄... 앙증맞은 꼬꼬마 혹은 볼을 꼬집어주고 싶은 귀염둥이? 내가 초등학생 때 그토록 존경과 감사를 담아 썼던 ‘군인 아저씨께 보내는 편지’는 알고 보니 20대 초반의 볼을 꼬집어주고 싶은 청년들에게 전달됐던 것이다!
    뒤늦게 그걸 알고서 내가 받은 충격이란... 20대 푸르른 나이에, 아저씨라는 단어가 행마다 총총히 등장하는 편지를 받게 한 점, 이 자리를 빌려서 사죄드린다. 죄송했습니다, 오... 오... 오빠들. 자신이 아직 어른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는 건, 오빠들이나 저나 아마도 다르지 않았겠지요.
    “중세학자들은 시간이란 우리들의 착각이고, 인과 관계 속에서 연속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여겨지는 시간의 경과는 우리의 감각기관의 산물에 지나지 않으며 사물의 진정한 존재는 영원한 현재라고 설명했다.”
    - 토마스 만, <마의 산> 중
    예전엔 나의 한 평생이 참 긴 것처럼 여겨졌다. 이제 막 생의 출발선을 떠나온 것 같았다. 그런데 요즘은 내 인생이 꽤나 내달렸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오래 달리기인 줄 알고 뛰었는데 100미터 달리기였단 걸 알았을 때 느끼는 당혹감이란! 우리네 인생이 90세 까지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의외로 길지 않은 시간이란 생각이 들 때면 발을 동동 구르게 된다.
    억울해할수록 나는 지나가는 시간을 아쉬워하고 또 의식하게 됐다. 분하게도, 시간을 의식한다는 게 바로 내가 어리지 않다는 증거였다. 이것이 가장 뼈아픈 타격이었다. 가는 시간을 아쉽게 여겨서 아껴 쓰려고 하기 때문에 시간은 더 짧아지는 거다.
    시간에 매번 끌려 다니기만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시간의 멱살을 끌고 리드하는 기분을 한 번쯤은 제대로 느껴보고 싶다. 그럴 수 있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시간을 없앨 것.
    시간을 없앤다는 말은 즉 무아지경에 빠진다는 뜻이다. 내가 사라지는 경지에 이를 때 우린 영원을 체험한다. 그럴 때 시간은 무한대로 확장되어 아예 사라져버린다. 어딘가에 몰입할 때 오는 진공의 상태를 얼마나 자주 경험하는가를, 시간을 ‘잘’ 썼는지 아닌지 평가하는 잣대로 쓰고 싶다.
    무아지경의 시간은 잴 수 없는 시간이다. 춤을 추면서 5분 동안 무아지경에 빠질 예정일 순 없다. 자연스럽게 빠져들어 자연스럽게 지속되는 시간. 그렇듯 시간 너머에 있는 그 시간은 우리가 ‘시간 아까워!’ 하고 그것을 의식하는 순간 깨져버리기에 그저 진공관에서 빠져나오지 말고 그 안에 머물 일이다.
    “어느 모로 보나 시간낭비 짓을 하고 있는데도 당신이 웃고 있다면 그렇다면 그건 더 이상 시간낭비가 아닙니다.”
    - 파울로 코엘료, <마법의 순간> 중

     

    _2016년 8월부터 길스토리 크리에이터 멤버로 활동 중이다. 6년째 문화예술 전문 기자로 일하고 있으며, <나를 지키는 말 88>의 저자이기도 하다. 2019년 9월 1일, ‘제6회 카카오 브런치북’ 대상에 빛나는 두 번째 책 <아이라는 근사한 태도로>(웨일북)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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