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화신]]> <![CDATA[Gilstory - Challenge for the Unlimited Possibilities! > 손화신]]> 손화신]]> 손화신 http://gil-story.com 제공, All rights reserved.]]> Fri, 27 Nov 2020 06:24:30 Fri, 27 Nov 2020 06:24:30 <![CDATA[생각에 급브레이크 걸고 완전히 휴식 하겠습니다]]>
생각에 급브레이크 걸고 완전히 휴식 하겠습니다
글 : 손화신 (작가)
어른을 한 마디로 정의해보라면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생각이 많은 사람들. 조금만 더 길게 정의해보라 한다면? 그럼 이렇게 말해야지. 생각이 많아서 스스로를 괴롭히는 멍청이들.
고백하자면, 그 멍청이 대열에서도 저기 저 앞쪽에 선 자가 바로 나다. 나는 내가 만든 생각에 짓눌려 자신을 괴롭히는 인간 군상의 완벽한 표본이었다. 이런저런 수많은 생각을 하는 것보다 천만 배 더 고통스러운 건 하나의 생각을 반복해서 하는 것이었다.
사소하고 별 거 아닌 생각이라도 그걸 계속 되풀이하다보면 시커멓고 깊은 구덩이 하나가 만들어지고, 그 구덩이에 결국 내가 빠지는 건 자명한 수순이었다.
늪에서 나오는 방법은 하나였다. 아예 스위치를 꺼버릴 것. 생각이란 녀석을 창밖으로 가차 없이 집어던져야 했다. 어떠한 생각을 ‘안 하려고’ 애쓰는 게 답인 줄 알고 그렇게 노력했더니 ‘그 생각을 하지 말자’란 문장에서 ‘그 생각’이란 글자가 점점 더 진해지며 커졌다. 거대해져서 나를 완전히 덮쳐버렸다.
그 생각을 ‘안 하려고’ 하지 말고, 다른 생각을 ‘하려고’ 해야 한다. 포인트는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이다. 전환. 스위치 온, 스위치 오프. 그럴 때 망각의 은총이 내게 소리 없이 내려 앉아 ‘그 생각’을 씻겨내려 줬다. 그럼 난 다시 평온의 길 위로 진입할 수 있었다.
주기적으로 생각에 브레이크를 걸고, 완전히 머리를 비워줄 필요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_2016년 8월부터 길스토리 크리에이터 멤버로 활동 중이다. 6년째 문화예술 전문 기자로 일하고 있으며, <나를 지키는 말 88>의 저자이기도 하다. 2019년 9월 1일, ‘제6회 카카오 브런치북’ 대상에 빛나는 두 번째 책 <아이라는 근사한 태도로>(웨일북)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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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 12 Nov 2020 18:13:07
<![CDATA[오늘 돌릴 팽이를 절대 내일로 미룰 수 없습니다]]>
오늘 돌릴 팽이를 절대 내일로 미룰 수 없습니다
글 : 손화신 (작가)
6살 꼬마에게 "2020년은 너에게 어떤 해였니?"라고 묻지 않는다. 이것이 어딘가 이상한 질문이란 걸 직관으로 알고 있어서가 아닐까. 대신 아이에겐 이렇게 묻는다.
"오늘 하루 어땠니?"
어른들의 하루는 아침과 점심과 저녁과 밤으로 이루어져 있고 숫자로 말하자면 24시간이지만, 어린이들의 하루는 좀 다르다. 어린이는 시침이 아니라 분침 위에서 살아간다. 2시간을 사는 게 아니라 120개의 1분을 산다. 그들에겐 매 순간이 매 순간일 뿐이어서 지금 이 순간이 다음 순간을 위한 발판이 되는 일도, 지금 순간이 이전 순간이 낳은 결과가 되는 일도 없다. 그러므로 어린이는 현존하는 자이고, 그렇기 때문에 강자이다.
"나는 저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치들과는 달라요. … 나는 그저 하루하루 살아나갈 뿐이오."
- 가수 프랭크 시나트라
'My Way'를 부른 가수로 잘 알려진 프랭크 시나트라가 한 말이다. 말 많고 탈 많은 삶을 살았던 사람이지만 긴 호흡으로 부르는 그의 노래들만큼은, 그리고 저 한 마디만큼은 깊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그를 만나본 적은 없지만 저 한 마디 말로 유추할 수 있는 건 그가 어린이 같은 사람이었을 거란 사실이다. 그날 먹을 생크림 케이크를 내일을 위해 아껴두는 타입의 사람은 절대 아니었겠지.
아이들은 오늘 돌릴 팽이를 내일로 미루지 않는다. 그건 미룰 수 있는 게 아니다. '하루'는 오늘의 것이지 내일의 것이 아니니까. 오늘 내 것이어야 할 행복과 기쁨을 언젠가의 날들 속에 저장해두는 건 아이들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완성된 인생은 없지만, '하루'는 언제나 완성이다.
* 손화신 작가의 에세이 <아이라는 근사한 태도로>에 실린 글입니다.

 

_2016년 8월부터 길스토리 크리에이터 멤버로 활동 중이다. 6년째 문화예술 전문 기자로 일하고 있으며, <나를 지키는 말 88>의 저자이기도 하다. 2019년 9월 1일, ‘제6회 카카오 브런치북’ 대상에 빛나는 두 번째 책 <아이라는 근사한 태도로>(웨일북)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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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 13 Oct 2020 14:26:10
<![CDATA[선배 말고 이름을 부르겠습니다]]>
선배 말고 이름을 부르겠습니다
글 : 손화신 (작가)
어른이 되면서 개인을 개인으로 보는 법을 잊어간다. 휴대폰에 번호를 저장할 때 상대의 이름만으로 저장한 지가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난다. 이름 앞에는 그가 속한 회사명을 적고 이름 뒤에는 그가 그곳에서 맡고 있는 직책을 적는다. 안어른 컴퍼니 손화신 대리. 이렇게 길고 꽉 차게 적어야 안심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다. 이름만 적어서는 그 사람을 기억할 자신이 없다. 일로 만난 사람이라 그럴 수밖에 없다지만, 한 사람을 그의 이름 석 자 고유명사로써 대하는 게 아니라 역할의 이름으로써 대한다는 게 씁쓸하다. 내가 관계 맺고 대화하는 내 앞의 이 존재는 회사인가, 사람인가.
일을 하면서 가끔 관계자 미팅을 할 때가 있다. 안어른 컴퍼니의 언론홍보팀 직원을 만나서 점심식사를 한다고 했을 때 일단은 개인적인 소재로 대화의 문을 연다. 이 음식이 입에 잘 맞으신지, 댁은 어느 쪽이신지, 출퇴근하기 멀진 않으신지.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업무와 관련된 이야기로 넘어가지만 아주 가끔은 개인적인 대화만 하다가 끝나는 미팅도 있다. 물론 이야기가 잘 통하는 경우에 한해서다. 그럴 때 그 직원이 안어른 컴퍼니의 대리인이 아니라 이름 석 자를 가진 사람으로 보인다.
왠지 기분 좋은 만남은 늘 이런 식이었다. 만날 땐 비즈니스로 만났지만 이야기하면서 서서히 인간적으로 연결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 실제로 대리님-기자님 하던 사이에서 언니-동생 하게 된 경우도 있다. 스쳐가는 사람이 아니라 오래 갈 사람을 얻은 것이다.
예전에 한 여배우를 인터뷰했을 때 그가 한 말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아직도 기억한다.
"저는 지금 이 순간도 '대화'를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영화 홍보 차 마련된 인터뷰긴 하지만 어찌됐건 이 순간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거잖아요. 비즈니스처럼 딱딱하게 이야기한다면 그건 너무 삭막한 것 같아요."
벌써 꽤 시간이 지났지만 내게 후회로 남아있는 일 하나가 있다. 기자일을 막 시작했을 때 나보다 3개월쯤 먼저 입사한 선배가 있었는데 나이는 나보다 4살쯤 어렸다. 그 선배가 집에 가는 지하철 플랫폼에서 내게 "나이도 제가 어리고 연차도 별로 차이가 안 나니까 그냥 편하게 불러 달라, 선배라고 부르지 말고 이름을 불러 달라, 나도 언니라고 부르겠다"고 제안했는데, 글쎄 그때 내가 뭐라고 답했는지 아는가. "어떻게 그렇게 하느냐, 그럴 수 없다"고 답했다. 바보 같은!
갓 입사한 나는 필요 이상으로 군기가 잡혀있었다. 그때 내 눈에 그 사람은 오직 선배였다. 더 안타까운 건 그 사람과 진심으로 친해지고 싶었고 그 사람이 좋았다는 점이다. 결말은 말 안 해도 아시리라. 우린 친해지지 못했다. 내가 그를 역할로만 보는 바람에.
사람을 잃는 여러 가지 방법 중에 가장 손쉬운 방법이었다.
* 손화신 작가의 에세이 <아이라는 근사한 태도로>에 실린 글입니다.

_2016년 8월부터 길스토리 크리에이터 멤버로 활동 중이다. 6년째 문화예술 전문 기자로 일하고 있으며, <나를 지키는 말 88>의 저자이기도 하다. 2019년 9월 1일, ‘제6회 카카오 브런치북’ 대상에 빛나는 두 번째 책 <아이라는 근사한 태도로>(웨일북)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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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 7 Sep 2020 13:32:09
<![CDATA[한 번도 분 적 없는 트럼펫을 불겠습니다]]>
한 번도 분 적 없는 트럼펫을 불겠습니다
글 : 손화신 (작가)
미국의 어느 재즈바. 무대 위에서 트럼펫을 불던 남자는 자신의 연주를 집중해서 듣던 한 테이블의 꼬마에게 다가가 물었다. "너 트럼펫 불 줄 아니?" 질문에 꼬마가 대답했다.
"글쎄요. 한 번도 불어본 적이 없어서 제가 불 줄 아는지 못 부는지 저도 모르겠어요."
그 꼬마가 바로 미국의 재즈 트럼펫 연주자이자 가수 루이 암스트롱이야, 하고 누군가 내게 말해줬다. 실화인지 아닌지 찾아보려고 인터넷을 뒤졌지만 찾을 수 없어서 그냥 나는 꼬마 루이 암스트롱을 상상하면서 머릿속에 이 이야기를 담아두고 있었다.
아이의 대답이 당돌하다. 트럼펫을 불어본 적 없다면 보통 사람은 "못 분다"고 답하겠지만 꼬마는 "모른다"고 답했다. 자신 안에 잠재된 가능성을 스스로 존중하는 태도처럼 보인다. 이 꼬마는 언젠가는 트럼펫을 불 것이다. 그때 자기가 그것을 못 분다는 것을 확인할 것이고, 언젠가는 잘 불 수 있을 거라는 예감 또한 그날 함께 얻게 될 것이다. 꼬마는 결국 세계적으로 유명한 트럼펫 연주자가 될 것이다.
안 해봤다고 못하는 건 아니다. 한 번도 안 써봤어도 시를 쓸 수 있고, 한 번도 축구공을 본 적 없어도 슛을 넣을 수 있다. 시도해봐야 아는 거니까. 내 안에 어떤 재능이 있는지 나도 모르니까.
어린이라고 해서 모두 루이 암스트롱처럼 시도에 열려있는 건 아닐 테다. 시도했지만 실패한 경험이 쌓이고 그것이 부끄럽고 자존심 상하는 기억으로 남는다면 도전을 두려워하게 된다. 그건 어른도 마찬가지다. 아니, 살아온 날만큼 더 많은 실패를 쌓아온 어른들은 두려움이 더 클 것이다. 하지만 뭐든 시도해보는 게 아예 안 하는 것보다 낫다는 깨달음을, 이 역시 경험으로써 쌓아왔기에 우린 도전에 기꺼이 몸을 던진다. 어린이처럼 천진한 도전이 아니어도 좋다. 뭐라도 시도할 때 삶이 지루하지 않고 에너지가 생기는 걸 나 또한 체험으로 알고 있고, 그래서 뭐든 시도해보고 싶은 마음이다.
나는 기술을 배우고 싶다. 지금까지 시도를 많이 하고 살았지만 그것이 대부분 공부와 관련된 것이었다. 컴퓨터 자격증이나 한자 자격증, 한국사 자격증 같은 걸 땄을 때 성취감을 느끼긴 했지만 그것은 관념적인 것이어서 몸으로 느끼는 기술의 맛을 얻을 수는 없었다. 이제는 눈에 보이는 성취를 더 많이 하고 싶다. 일상에서 쓸 일이 별로 없고 까먹는 것들 말고 기능적인 무언가를 배워보고 싶다.
보다 체험적이고 육체적인 시도들이 내게 성취감과 자신감을 줬다. 가령 운전을 처음 배울 때, 핸들감각이 하루가 다르게 생겨나고 브레이크를 부드럽게 밟을 수 있게 됐을 때 내 안에서 생기는 엔도르핀이 삶에 활력을 줬다. 기타나 피아노 같은 악기를 배울 때도 비슷한 기분을 느꼈다. 매일 비슷하고 지루한 삶에 짜릿한 균열이 생겨 그 틈으로 에너지가 나오는 느낌. 그 기분을 한 번 만 더 경험할 수 있다면!
"너라는 위대함을 믿어."
집에 가는 길에 문득 고개를 돌렸는데 정류장에 저 문구가 있었다. 나이키 광고였는데, '너의' 위대함이 아니라 '너라는' 위대함이란 표현이 인상적이었다. 어쩌면 나의 위대함은 내 일부가 아니라 나 자체일지도 모르겠다. 한 번도 트럼펫을 불어본 적 없어도 어쩌면 내가 트럼펫을 불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믿는 것. 그 믿음이 나의 위대함을 인정하는 일 아닐까. 누군가 내게 “너는 그것을 절대 못할 것”이라고 말해도 이제 그런 말 따위 무시하는 아이처럼 되기를.
어느 날 내가 굴삭기나 지게차를 몰고 나타나도, 경비행기를 타고 하늘에서 내려와도 놀라지 마시기를. 나 역시 당신이 하는 시도와 그 시도의 성공과 실패까지, 그 모든 것을 응원할 테니.
* 손화신 작가의 에세이 <아이라는 근사한 태도로>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_2016년 8월부터 길스토리 크리에이터 멤버로 활동 중이다. 6년째 문화예술 전문 기자로 일하고 있으며, <나를 지키는 말 88>의 저자이기도 하다. 2019년 9월 1일, ‘제6회 카카오 브런치북’ 대상에 빛나는 두 번째 책 <아이라는 근사한 태도로>(웨일북)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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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 7 Aug 2020 14:23:03
<![CDATA[지금 내가 원하는 건 한우가 아니라 떡볶이입니다 ]]>
지금 내가 원하는 건 한우가 아니라 떡볶이입니다
글 : 손화신 (작가)
아이들은 무언가를 고를 때 어른보다 머리를 덜 굴린다. A와 B 중에 지금 당장 자기가 원하는 것을 직선적으로 고를 줄 안다. 떡볶이에 빠져 있는 아이에게 접시 두 개를 내밀며 “너 떡볶이 먹을래, 아니면 횡성한우 먹을래?” 묻는다면 아이는 당장 떡볶이가 담긴 접시를 집어들 것이다.
나였다면? 입만 아프게 할 질문은 하지 말아줬으면 한다. 나였다면, “전 지금 떡볶이가 무척 당기지만, 그러나 저는 바보가 아니잖아요?” 하며 횡성한우를 집어 들었을 것이다.
어른이 된 나는 재기의 달인이다. 지금 당장 무언가를 원한다고 해도 이리저리 재보고 계산하고, 미래까지 당겨 와서 이리저리 예측해본다. 그리고는 지금은 그다지 원하지 않지만, 상식적으로 가치 있다고 생각되는 걸 고른다. 누가 봐도 당연한 선택을, 또한 나에게 조금이라도 더 큰 이익이 되는 선택을 해야만 현명한 것처럼 생각됐다. 그렇게 나는 내 마음을 무시했다. 머리는 공손히 떠받들면서 말이다.
얼마 전에도 이런 헛된 욕심 때문에 그날의 선물을 놓친 적이 있다. 카페에 간 나는 적립쿠폰을 쓰기 위해 가장 비싼 음료를 주문했다. 그건 상식적으로 당연했다. 쿠폰으로 비싼 음료를 시키는 건 욕심까지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난 좀 찔린다. 왜냐하면 그때 나는 커피를 마시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적립쿠폰으로 커피를 마시는 만행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쿠폰 유효기간은 그날이 마지막이었고, 나는 결국 별로 당기지도 않는 비싼 음료를 시켜 마셨다. 나는 ‘당장 느낄 수 있는’ 지금의 행복을 포기하고 ‘생각해봤을 때’ 더 좋아 보이는 상식적 행복을 선택했던 것이다.
욕심 버리기, 이건 너무 어려워서 난 못할 것 같다. 적립쿠폰으로 아메리카노를 시킬 만큼 욕심 없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적립쿠폰으로 아메리카노를 시킬 만큼 돈에 연연하지 않는 부자가 되는 게 훨씬 빠른 길처럼 보이니까 말이다. 떡볶이가 먹고 싶을 때 떡볶이를 선택하고, 커피가 마시고 싶을 때 커피를 선택하는 건 나에겐 쉽지 않은 일이다.
* 이 글은 손화신 작가의 에세이 <아이라는 근사한 태도로>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_2016년 8월부터 길스토리 크리에이터 멤버로 활동 중이다. 6년째 문화예술 전문 기자로 일하고 있으며, <나를 지키는 말 88>의 저자이기도 하다. 2019년 9월 1일, ‘제6회 카카오 브런치북’ 대상에 빛나는 두 번째 책 <아이라는 근사한 태도로>(웨일북)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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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 15 Jul 2020 14:06:21
<![CDATA[세상의 숫자를 없애는 방법을 알려 드립니다]]>
세상의 숫자를 없애는 방법을 알려 드립니다
글 : 손화신 (작가)
“10살에 봤던 25살은 아저씨였고, 20살에 봤던 25살은 어른이었고, 25살에 느낀 25살은 아직 어리네.”
- 트위터 닉네임 ‘팩트폭행범’(Fact_missile)
위의 말에 나는 넘치게 공간한 나머지 내적 박수를 쳐댔다. 10살 때 봤던 25살은 아저씨인 정도가 아니라, 공경해야 할 어르신이었다. 그런데 지금 바라보는 25살은? 글쎄... 앙증맞은 꼬꼬마 혹은 볼을 꼬집어주고 싶은 귀염둥이? 내가 초등학생 때 그토록 존경과 감사를 담아 썼던 ‘군인 아저씨께 보내는 편지’는 알고 보니 20대 초반의 볼을 꼬집어주고 싶은 청년들에게 전달됐던 것이다!
뒤늦게 그걸 알고서 내가 받은 충격이란... 20대 푸르른 나이에, 아저씨라는 단어가 행마다 총총히 등장하는 편지를 받게 한 점, 이 자리를 빌려서 사죄드린다. 죄송했습니다, 오... 오... 오빠들. 자신이 아직 어른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는 건, 오빠들이나 저나 아마도 다르지 않았겠지요.
“중세학자들은 시간이란 우리들의 착각이고, 인과 관계 속에서 연속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여겨지는 시간의 경과는 우리의 감각기관의 산물에 지나지 않으며 사물의 진정한 존재는 영원한 현재라고 설명했다.”
- 토마스 만, <마의 산> 중
예전엔 나의 한 평생이 참 긴 것처럼 여겨졌다. 이제 막 생의 출발선을 떠나온 것 같았다. 그런데 요즘은 내 인생이 꽤나 내달렸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오래 달리기인 줄 알고 뛰었는데 100미터 달리기였단 걸 알았을 때 느끼는 당혹감이란! 우리네 인생이 90세 까지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의외로 길지 않은 시간이란 생각이 들 때면 발을 동동 구르게 된다.
억울해할수록 나는 지나가는 시간을 아쉬워하고 또 의식하게 됐다. 분하게도, 시간을 의식한다는 게 바로 내가 어리지 않다는 증거였다. 이것이 가장 뼈아픈 타격이었다. 가는 시간을 아쉽게 여겨서 아껴 쓰려고 하기 때문에 시간은 더 짧아지는 거다.
시간에 매번 끌려 다니기만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시간의 멱살을 끌고 리드하는 기분을 한 번쯤은 제대로 느껴보고 싶다. 그럴 수 있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시간을 없앨 것.
시간을 없앤다는 말은 즉 무아지경에 빠진다는 뜻이다. 내가 사라지는 경지에 이를 때 우린 영원을 체험한다. 그럴 때 시간은 무한대로 확장되어 아예 사라져버린다. 어딘가에 몰입할 때 오는 진공의 상태를 얼마나 자주 경험하는가를, 시간을 ‘잘’ 썼는지 아닌지 평가하는 잣대로 쓰고 싶다.
무아지경의 시간은 잴 수 없는 시간이다. 춤을 추면서 5분 동안 무아지경에 빠질 예정일 순 없다. 자연스럽게 빠져들어 자연스럽게 지속되는 시간. 그렇듯 시간 너머에 있는 그 시간은 우리가 ‘시간 아까워!’ 하고 그것을 의식하는 순간 깨져버리기에 그저 진공관에서 빠져나오지 말고 그 안에 머물 일이다.
“어느 모로 보나 시간낭비 짓을 하고 있는데도 당신이 웃고 있다면 그렇다면 그건 더 이상 시간낭비가 아닙니다.”
- 파울로 코엘료, <마법의 순간> 중

 

_2016년 8월부터 길스토리 크리에이터 멤버로 활동 중이다. 6년째 문화예술 전문 기자로 일하고 있으며, <나를 지키는 말 88>의 저자이기도 하다. 2019년 9월 1일, ‘제6회 카카오 브런치북’ 대상에 빛나는 두 번째 책 <아이라는 근사한 태도로>(웨일북)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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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 11 Jun 2020 15:02:51
<![CDATA[백 번 놀랐지만 천 번은 더 놀랄 예정입니다]]>
백 번 놀랐지만 천 번은 더 놀랄 예정입니다
글 : 손화신 (작가)
"무릇 위대한 환상가와 위대한 시인은 사물을 이런 식으로 보지 않던가! 매사를 처음 대하는 것처럼! 매일 아침 그들은 눈앞에 펼쳐지는 새로운 세계를 본다. 아니, 보는 게 아니라 창조한다."
-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중
아이들이 보는 세상은 매사가 처음이라서 경탄할 것들 천지다. 모르는 걸 하나씩 묻고 알아가면서 그들은 자라난다. 하지만 아는 게 많아지면서 질문은 점점 적어진다. 열 살 아이는 확실히 네 살 때보다 조금 질문하고, 덜 감탄한다. 그렇게 무덤덤해져가다 스무 살이 될 것이다. 스무 살이 되면 아이는 이제 너무 많은 것을 알게 되어 경탄의 세계에서 저 멀리 변두리까지 밀려나버린다.
"그대 만일 날마다 일어나는 삶의 기적들을 가슴속에 경이로움으로 간직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고통도 기쁨처럼 경이롭게 바라볼 것을."
- 칼릴 지브란, <예언자> 중 ‘고통에 대하여’
백번을 놀랐다고 해도 더 놀랄 게 있는 게 내가 사는 이 세상이니! 매사를 처음 보는 것처럼 대한다면 나의 날들은 경이로운 것이 되리라!
* 손화신 작가의 에세이 <아이라는 근사한 태도로>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_2016년 8월부터 길스토리 크리에이터 멤버로 활동 중이다. 6년째 문화예술 전문 기자로 일하고 있으며, <나를 지키는 말 88>의 저자이기도 하다. 2019년 9월 1일, ‘제6회 카카오 브런치북’ 대상에 빛나는 두 번째 책 <아이라는 근사한 태도로>(웨일북)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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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 15 May 2020 18:27:26
<![CDATA[버스에 올라타면 나는 승객이 됩니다]]>
버스에 올라타면 나는 승객이 됩니다
글 : 손화신 (작가)
어린이는 '가질 수 있는 것'을 매일 가지고 그것에 기뻐할 줄 아는 존재다. 어린이는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존재다. 미래에 무언가가 되길 희망하기보다는 오늘 무언가가 되는 사람인 것이다.
버스에 올라타면 어린이는 승객이 '된다'. 빵집에 들어가면 어린이는 빵 고르는 사람이 '된다'. 미용실에 가면 어린이는 머리카락 잘리는 사람이 '된다'. 놀이터에 가면 미끄럼틀 타는 사람이 '되고', 동물원에 가면 기린과 인사 나누는 사람이 '된다'.
그들은 매 순간 주체다. 어린이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에 주체적 인간이 아니라는 말은 어른들의 헛소리다. 어른은 미래에 무엇이 되길 꿈꾸지만 어린이는 지금 이 순간 모든 것이 된다. 의사가 되고 싶고, 배우가 되고 싶고, CEO가 되고 싶은데 아직 그것들이 안 돼서 되어야만 하는 어른들 사이에서 그들은 이미 모든 것을 가진 인간으로서 충만한 하루를 보낸다.
버스에 올라타 지루한 얼굴로 앉은 어른들 속에서 어린이는 승객으로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고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누린다. 그들에겐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만 중요한 게 아니다. 손잡이를 잡아보려고 애쓰고 벨을 먼저 누르려고 앞자리 또래와 경쟁하고 버스의 덜컹거림에 꺄르르 비명을 지르고 교통카드 찍히는 소리를 따라하기도 하며 차창 밖으로 보이는 가게와 강아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오늘 하루 아이의 마음으로 살아본 나는 커피 마시는 사람이 되었고, 음악 듣는 사람이 되었으며, 심지어 글 쓰는 사람이 되었다. 완벽해! 내가 바란 것들이 다 이루어진 오늘이 특별하지 않은 날이라고, 평범한 날들 중 하나일 뿐이라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 이 글은 손화신 작가의 에세이 <아이라는 근사한 태도로>에 실린 글입니다.

_2016년 8월부터 길스토리 크리에이터 멤버로 활동 중이다. 6년째 문화예술 전문 기자로 일하고 있으며, <나를 지키는 말 88>의 저자이기도 하다. 2019년 9월 1일, ‘제6회 카카오 브런치북’ 대상에 빛나는 두 번째 책 <아이라는 근사한 태도로>(웨일북)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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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 16 Apr 2020 14:23:41
<![CDATA[돌멩이를 주웠는데 소중한 것이라 드릴 수 없습니다]]>
돌멩이를 주웠는데 소중한 것이라 드릴 수 없습니다
글·사진 : 손화신 (작가)
길에서 쓰레기를 주워오는 어린이를 본 적 있는지? 아니면, 당신이 그런 어린이였는지? 철학자 발터 벤야민은, 어린이는 자신만의 가치기준으로 사물을 모으고 그것들을 자신만의 규칙으로 연결한다고 말했다.
어른들이 부러워하는 어린이의 창의성이란 이렇듯 우리가 쓰레기라 부르는 것들을 주워와 창조적으로 연결하고 독창적으로 편집함으로써 탄생하는 것이다.
요즘 SNS를 기웃거리다보면 '예쁜 쓰레기'라는 단어가 종종 보인다. 어린이가 길거리의 그 예쁜 쓰레기에 마음을 빼앗길 때(물론 그들에게는 쓰레기가 아니다) 그 물건은 아이를 애타게 부른다.
"친구야, 나를 데려가! 난 너의 둘도 없는 친구가 될 거야. 나를 네 방의 후드라이언 인형 옆으로 데려다주겠니? 나랑 같이 놀자."
- 예쁜 쓰레기
그러면 아이는 그것을 주머니에 소중하게 넣으며 그 외침에 응답한다. 어린이는 이런 식으로 세상의 존재들과 소통하고 그것들을 사랑한다. 남들에게는 버려 마땅한 물건일지라도 아이에게는 잘 때까지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제일가는 보물이 된다.
그들이 어른보다 쉽게 행복해지는 비밀이 여기에 있는 것 아닐까? '나에게' 소중한 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주체적이고 개별적인 태도. 어린왕자가 자신의 장미 한 송이를 보살피는 일처럼 서로에게 길들여진 나만의 것이 있어서 그것을 보살핀다는 것. 어른들도 그런 식으로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 손화신 작가의 <아이라는 근사한 태도로>에 실린 글입니다.

_2016년 8월부터 길스토리 크리에이터 멤버로 활동 중이다. 6년째 문화예술 전문 기자로 일하고 있으며, <나를 지키는 말 88>의 저자이기도 하다. 2019년 9월 1일, ‘제6회 카카오 브런치북’ 대상에 빛나는 두 번째 책 <아이라는 근사한 태도로>(웨일북)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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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 16 Mar 2020 15:03:12
<![CDATA[나는 용감하니까 내가 다 구해주겠습니다]]>
나는 용감하니까 내가 다 구해주겠습니다
글 : 손화신 (작가)
"인생을 가치 있게 살고자 원한다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 톨스토이
어린이는 자아와 타자의 경계를 특별히 나누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용사라도 된 듯 친구를 돕고 구하는 데 자신의 몸을 사리는 법이 없다. 비록 가상의 칼싸움이지만. 그러다가 크면서 점점 자신과 타인, 자신과 세계를 경계 짓기 시작하고 경쟁에 내몰리면서 더욱 타자를 타자로써 구별 짓는다.
어른들은 '내 사람들'에겐 헌신적이지만 남에게는 매정하게 굴 때가 있고, 어릴 때는 그러지 않았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다.
필요한 날에 나는 깊은 곳의 용기를 끌어올려 그 용기를 타인을 위해 쓸 수 있을까. 나는 타인이라는 지옥 혹은 파라다이스 속에서 어린이처럼 무모할 수 있을까. 타인으로부터 멀어지고 고립되면서까지 이기적으로 구는 나를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나는 타인이 참 어렵다. 너무 좋기도 하고 너무 두렵기도 하고 너무 모르겠기도 하다. 그래서 누군가를 돕는 것도, 도움을 받는 것도 여전히 불편하다. 솔직히 그렇다.
어린이는 약하지만 용감하고 어른은 강하지만 용감하지 않다. 바라는 것은 다만, 약하더라도 용감한 자로 살아가려는 의지와, 누군가를 도우면서 머릿속을 비울 수 있는 단순함인 것이다.
- 에세이 <아이라는 근사한 태도로>에 실린 글입니다.

_2016년 8월부터 길스토리 크리에이터 멤버로 활동 중이다. 6년째 문화예술 전문 기자로 일하고 있으며, <나를 지키는 말 88>의 저자이기도 하다. 2019년 9월 1일, ‘제6회 카카오 브런치북’ 대상에 빛나는 두 번째 책 <아이라는 근사한 태도로>(웨일북)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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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 10 Feb 2020 13:34:24
<![CDATA[행운이 비처럼 쏟아져도 피하지 않겠습니다]]>
행운이 비처럼 쏟아져도 피하지 않겠습니다
글 : 손화신 (작가)
어린이는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편안하게 받을 줄 안다. 자신이 그것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이걸 받으면 갚아야하는 건 아닌지 생각하지 않는다. 그 당연함이 어린이로 하여금 무언가를 계속 받게 하고 그들의 삶을 마르지 않게 한다. 누군가가 선물을 주면 “아닙니다. 넣어두세요” 하고 거절하는 어린이를 본 적 있으신지. 누군가 칭찬을 하면 “아이고~ 과찬이십니다” 하며 겸손을 연기하는 아이를 본 적 있으신지.
이 우주는 화수분처럼 무한한 곳이라는 믿음은,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 마인드와 반대점에 있다. 받은 만큼 돌려주지 않아도 되고, 받은 것 이상으로 돌려줘도 된다. 아이가 엄마에게 받은 만큼 돌려주지 않아도 엄마는 계속 주고 또 주는 것처럼 우주가 내게 그런 존재라고 생각하면 좀 더 살만해지는 것 같다.
기브 앤 테이크의 방정식으로 득실을 샘하는 나의 버릇이, 내게 쏟아져 내리는 은총을 얼마나 많이 튕겨냈을까. 나 같은 멍청이는 또 없을 테지. 쏟아지는 폭포수 아래 그저 대범하게 서 있기만 하면 되는 것을, 은총의 물방울을 콩알 세듯 하나씩 세면서 받았던 건 아니었을지. 현실화되지 못한 감사할 일들이, 나의 운명 한 구석에 퇴물처럼 처박혀 있는 건 아닌지.
남한테 피해주면 안 된다는 생각과 신세지면 안 된다는 생각이, 돌아보면 그다지 어른스럽고 성숙한 생각은 아닌 듯싶다. 최대한 빚지지 않고 살아가려는 어른들 심리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거기엔 배려보다는 배척이 더 크게 자리하고 있다. 나도 너한테 피해 안 줄 테니까 너도 내게 피해주지 말라는 암묵적인 요구가 깃들어 있는 것이다.
세상은 내 생각처럼 그렇게 빡빡한 전당포가 아닌지도 모른다. 세상은 내게 행운을 부어줄 때 섬세한 요리사처럼 계량컵을 꺼내들지 않는다. 엄마 품에 안겨 외출한 아기가 모르는 사람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듯 내게 다가오는 모르는 호의들을 모두 받아도 괜찮은 일이다.
“그리고 그대들 받는 이들이여, 물론 그대들 모두는 받는 이들이지만, 얼마나 감사해야 할까를 생각하지 말라. 그것이야말로 그대들 자신에게나, 주는 이에게나 굴레를 씌우는 일.
그보다는 주는 이와 함께 그의 선물을 날개 삼아 날아오르라.
자신이 진 빚을 지나치게 염려함은 아낌없이 주는 대지를 어머니로 삼고 신을 아버지로 삼은 그의 자비를 의심하는 일이므로.”-칼릴 지브란 (‘예언자’ 중 ‘주는 일에 대하여’)
- 손화신 작가의 에세이 <아이라는 근사한 태도로>에 실린 글입니다.

_2016년 8월부터 길스토리 크리에이터 멤버로 활동 중이다. 6년째 문화예술 전문 기자로 일하고 있으며, <나를 지키는 말 88>의 저자이기도 하다. 2019년 9월 1일, ‘제6회 카카오 브런치북’ 대상에 빛나는 두 번째 책 <아이라는 근사한 태도로>(웨일북)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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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 17 Jan 2020 14:42:51
<![CDATA[우리 각자 목적이 되어 햇빛을 쬐러 갑시다]]>
우리 각자 목적이 되어 햇빛을 쬐러 갑시다
글 : 손화신 (작가)
햇빛이 기가 막히는 날에는 식물처럼 광합성을 하고 싶다. 건물 안에 갇혀 있는 날이면 커피가 당기듯 햇빛이 당긴다. 좀비처럼 퀭한 눈으로 컴퓨터 앞에 있다가도 밖에 나가 가르마 사이로 햇빛을 좀 쬐어주면 축축하던 기분이 보송보송해진다. 그러면 다시 건물 안에 갇히러(?) 가는 발걸음마저 가벼워지는 것이다.
회사원들의 점심시간은 햇볕이 가장 좋은 시간과 맞물린다. 마치 대학교 중간고사 기간과 벚꽃 만개일이 1일의 오차도 없이 맞물리는 것처럼. 점심시간 1시간은 만원 식당에서 빨리 먹기 대결하듯 밥을 먹고 커피를 홀짝이기에 턱없이 짧다. 햇볕 좋은 날이면 어쩐 일인지 시간은 더 쏜살같아서 오전 내내 노동으로 땀 맺힌 정수리를 다 말리지도 못한 채 응달로 돌아가야만 한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안달하던 그 많던 초등학생들이, 고등학생 혹은 대학생이 돼서 “어른 되기 싫다”고 말할 때,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에게 설문지를 돌리면 과연 최다득표는 어떤 항목에 돌아갈까. 아마 다음과 같은 항목이 아닐까 싶다.
‘얽매이는 게 점점 더 많아짐’
가기 싫어도 직장에 가야하고, 하기 싫어도 야근을 해야 하는 것. 쉬고 싶고 놀고 싶을 때도 마음대로 즐기지 못하는 것. ‘해야 할 일’에 ‘하고 싶은 일’이 늘 자리를 양보해야 하는 것. 이런 억압들을 받아들이고 익숙해진다는 게 어른이 되는 일처럼 보여서, 그래서 그들은 어른이 되기 싫은 거다.
오늘 학교에 안 가면 안 될까 하는, 엄마의 ‘등짝 스매싱’을 부르는 말을 지치지도 않고 매일 아침 하는 어린이는 그렇게 아침마다 어른이 되는 훈련을 하고 있다. 그런 아이에게 진심을 담아, 힘이 되어줄 한 마디를 하고 싶다. 아이야! 너무 힘들어하지 마렴. 지금의 고통은 아무 것도 아냐. 어른이 되면 너는 백배 더 얽매이고 백배 더 힘들어질 거야. 그러니 힘내, 파이팅! :)
“타인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라.”
- 칸트
인간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라는 말은 이 시대에 점점 무색해져간다. 그것은 타인을 종이 아닌 자유인으로서 대하라는 말이지만 산업화된 사회의 노동자는 부품화, 수단화될 수밖에 없다. 한 개인이 조직을 위한 구성원으로서의 정체성을 굳혀갈수록 그는 목적으로서의 인간에서 점점 멀어진다.
요즘 서점가에선 퇴사를 주제로 한 책들이 인기를 끌고, 직장인을 위한 퇴사 학교도 생기고 있는데 이는 수단으로서의 인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부품들의 몸부림처럼 보인다. 인간은 누구든 억압이 아닌 자유의 태양 아래서 살고 싶어 하니까.
“정신이 더 이상 주인이나 신으로 섬기려고 하지 않는 거대한 용의 이름은 무엇인가? 거대한 용은 ‘너는 해야 한다’를 뜻한다. 하지만 사자의 정신은 ‘나는 하려고 한다’라고 말한다.”
-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
‘나부터 행복해야한다’는 불변의 진리를 가장 잘 지키는 사람은 어린이들이다. 아이들은 자신의 행복을 타인에게 양도하지 않으며 내일에 양도하지도 않는다. 지금 행복할 것. 내가 먼저 행복할 것. ‘너는 무엇을 해야 한다’의 의무에 쫓기기보다는 ‘나는 무엇을 하려고 한다’는 자유를 우선으로 받들 것. 이것은 어린이 나라의 칙령이다. 아이들이 수단이 되지 않고 목적의 인간으로서 남는 비법이다.
- 손화신 작가의 에세이 <아이라는 근사한 태도로>에 담긴 글입니다.

 

_2016년 8월부터 길스토리 크리에이터 멤버로 활동 중이다. 6년째 문화예술 전문 기자로 일하고 있으며, <나를 지키는 말 88>의 저자이기도 하다. 2019년 9월 1일, ‘제6회 카카오 브런치북’ 대상에 빛나는 두 번째 책 <아이라는 근사한 태도로>(웨일북)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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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 17 Dec 2019 14:35:22
<![CDATA[내가 당신을 울릴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내가 당신을 울릴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글 : 손화신 (작가)
"라파엘로처럼 그리는 데는 4년이 걸렸지만, 어린아이처럼 그리는 데는 평생이 걸렸다."
- 파블로 피카소
피카소의 저 한마디가 예술의 본질을 얼마나 부족함 없이 담고 있는지, 무언가를 창작해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것 같다. 그림 그리는 일을 왜 기술이라고 하지 않고 예술이라고 하는지도. 나는 화가나 음악가 같은 예술가는 아니지만 글을 창작하는 동안 '어린아이처럼' 쓰는 것에 대한 갈망이 커져감을 느낀다.
"글을 참 잘 쓰시네요."
이 말이 어찌나 듣기 좋던지. 그런 때가 있었다. 글에 있어서만큼은 누구보다 탁월해지고 싶었고, 그래서 어떻게 하면 잘 쓸 수 있을지 고민하며 문장을 쌓아갔다. 그걸 누가 알아봐주고 글 참 잘 쓴다고 칭찬하면 종일 충만한 기분에 젖었다. 나의 재능과 노력을 인정받은 것 같아서.
지금은 욕심이 커질 대로 커져버려서 더 이상 글 잘 쓴다는 소리가 기쁘지 않다. 이것은 재수 없게 들릴 것을 감수하고서 하는 고백이다. 이제는 글쓰기 기술과 능력으로 사랑받기보단 그냥 내가 사랑받고 싶다. '글'과 함께 '글쓴이'로서도 사랑받고 싶어진 것 같다. 어쩌면 글쓰기에 대한 욕심이 커진 게 아니라 반대로 욕심이 완전히 없어져 버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글에 내가 더 많이 담기게 쓰는 것. 글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나를 보여주는 것. 남들의 시선과 뒤섞인 무언가가 아니라 단지 내 눈으로 내가 바라보는 세상을 담아내는 것.
예전에는 글 자체가 목적이었다면 이제 글이란 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나란 사람을 표현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처럼 여겨진다. 만약 내게 작곡 능력이 있었다면 글 대신 노래를 만들었을 거고 그림에 소질을 타고났다면 그림으로 나를 표현했을 거다. 꼭 글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사람들에게서 "글 좋네"로 끝나는 평가가 아니라 "이 글을 쓴 사람이 궁금해", "이 글을 쓴 사람이 좋아", "이 사람의 다른 글도 보고 싶어"란 말을 듣고 싶다.
글 속에 나를 최대한 수수하게 담아내는 것. 화장을 지우고 아이처럼 되는 것. 요즘 원하는 건 이런 거다. 솔직하고 본능적으로, 자의식도 뽐냄도 없이 느끼고 생각한 걸 표현하는 어린이를 닮고 싶다. 내 글이 어떤 쓸모를 가질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지를 너무 고민하고 싶지 않다. 이 글이 어떤 비난을 받지는 않을지 걱정하기보다는 이 글이 너무 전형적이거나 관습적인 끈에 얽매여있지 않는지를 염려하고 싶다. 검열 없이 무언가를 표현할 수 있는 용기를 갖기를.
의식의 표면에 떠 있는 것들이 아니라 그 아래의 것들로 쓰는 것, 이것이 어린이의 창작방식이다. 어떤 그림의 예술성을 평가할 때 그것이 일정한 공식에 들어맞는가는 기준이 될 수 없다. 기존의 표현방식을 답습하지 않고 얼마나 자신만의 자유로운 방식으로 그린 것인가가 기준이 될 것이다. 영혼의 세계, 태초의 세계가 엿보이는 작품. 어떤 눈치도 보지 않고, 이성과 논리의 세계 너머에서 만들어진 작품은 어린이 같은 순수한 에너지를 품고 있다.
나는 누군가를 울리고 싶다. 이게 내가 글을 쓰려는 이유다. 아이처럼 쓴다면 그런 짠한 글을 쓸 수 있을까.
- 손화신 작가의 에세이 <아이라는 근사한 태도로>에 담긴 글입니다.

_2016년 8월부터 길스토리 크리에이터 멤버로 활동 중이다. 6년째 문화예술 전문 기자로 일하고 있으며, <나를 지키는 말 88>의 저자이기도 하다. 2019년 9월 1일, ‘제6회 카카오 브런치북’ 대상에 빛나는 두 번째 책 <아이라는 근사한 태도로>(웨일북)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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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 14 Nov 2019 17:25:31
<![CDATA[저는 왼쪽 계단으로 올라가겠습니다]]>
저는 왼쪽 계단으로 올라가겠습니다
글 : 손화신 (작가)
오늘 아침에도 갈림길에서 잠시 고민했다. 왼쪽으로 올라갈까, 오른쪽으로 올라갈까. 나는 5호선 광화문역에서 내려 회사로 출근한다. 아침에 지하철에서 내리면 올라가는 계단이 양 갈래로 나있고 어느 쪽으로 올라가도 벽면을 채운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 속 구절을 만날 수 있다. 다만 오른쪽과 왼쪽의 문구가 다르다.
오른쪽 계단 벽: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에 우물이 숨어 있기 때문이야."
왼쪽 계단 벽: "어른들은 누구나 처음엔 어린이였다. 그러나 그것을 기억하는 어른은 별로 없다."
초반에는 오른쪽 계단으로 자주 올라갔다. 올라가면서 '그래, 내 맘 속엔 우물이 있으니까' 이렇게 속삭이며 나는, 내 삶은 지금 사막처럼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오글거려도 조금만 더 참아줬으면 한다. 아직 왼쪽 이야기가 남았다.
요즘은 거의 왼쪽 계단으로 올라간다. 처음엔 오른쪽 문구만큼 와 닿지 않았는데 볼수록 나를 건드리는 느낌이다. 한때 나는 어른이란 점점 '완성'에 가까워지는 존재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지금은 내가 어린이가 아닌 것에 열등감마저 갖고 있다. 무엇 하나를 해도 내 현재 처지를 의식하고 주변의 눈치를 보고 재미있는 제안을 받아도 그것이 내 시간을 유익하게 만들어줄지 아닐지 따져본다. 지금 이 순간 너무 즐거워도 늘 1분 후를 생각한다.
아무리 찾아봐도 어린이만큼 완전한 존재는 없는 것 같다.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인간정신의 세 단계 변화로 낙타, 사자, 어린이를 비유한 게 이런 의도였을 거다. 어린이가 최고다. 니체가 옳았다. 어른이 될수록 구겨져가고 제대로 살고 있단 느낌에서 점점 멀어지는 나는 어린이처럼 현재에만 머물고 싶고 자유롭고 싶고 나 자신이 되고 싶을 뿐이다.
"어른들은 누구나 처음에 어린이였다"는 왼쪽 계단의 문구를 볼수록 그래서, 마음이 밝아진다. 조금 오래되긴 했지만 나도 한때는 완벽한 존재였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자신감이 생긴다. 자꾸 오글거리게 해서 미안하지만, 생텍쥐페리의 저 문구를 볼 때마다 나는 이런 다짐을 한다.
"기억하자. 내가 어린이였다는 것을 오늘도 기억하자."
어쩌면 내가 기억해내기만 한다면 다시 어린이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생의 감각으로 충만했던 완성된 존재, 어린이. 모든 게 새로움이었던 어린 시절엔 작은 빗방울 하나도 '큰 사건'이었다. 그렇게 큰 사건들에 하나하나 감탄하다 보면 내 하루는 가득하게 찼다. 어른이 되어 하루가 눈 깜짝할 새 흘러버렸다고, 한 해가 벌써 다 가버렸다고 툴툴대는 건 내가 매 순간 빛나는 것들을 허술하게 흘려보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말하는데, 나 이제 어른 안 할 거다.
유치하고, 세상 무서운 거 모르고, 내 멋대로 사는 어린이가 될 거다. 인정받지 못해도, 돈으로 돌아오지 않아도 나 하고 싶은 거 하고 마음 가는 대로 살 거다. 하루하루씩만 살 거다. 세상이 내게 강요하는 이상한 것들일랑 상한 우유 뱉듯이 뱉어버릴 거다. 지금 눈물 흘리고 있어도 누가 맛있는 거 주면 10초 후엔 세상 행복하게 웃어버릴 테다.
"어린아이는 순진무구함이며 망각이며, 새로운 시작이며, 하나의 놀이이며, 스스로 굴러가는 바퀴이며, 최초의 움직임이며, 하나의 신성한 긍정이다. 그렇다. 창조의 놀이를 위해서는, 나의 형제여, 신성한 긍정이 필요한 것이다. 이제 정신은 자신의 의지를 원하고, 세계를 잃어버리는 자는 스스로 자신의 세계를 획득하는 것이다."
- 니체(Nietzsche),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
* 이 글은 손화신 작가의 에세이 <아이라는 근사한 태도로>의 프롤로그입니다.

 

_2016년 8월부터 길스토리 크리에이터 멤버로 활동 중이다. 6년째 문화예술 전문 기자로 일하고 있으며, <나를 지키는 말 88>의 저자이기도 하다. 2019년 9월 1일, ‘제6회 카카오 브런치북’ 대상에 빛나는 두 번째 책 <아이라는 근사한 태도로>(웨일북)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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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 10 Oct 2019 18:41:16
<![CDATA[길스토리 크리에이터 3년, 그 시간이 내게 준 것]]>
길스토리 크리에이터 3년, 그 시간이 내게 준 것
글 : 손화신 (작가)
나는 내 시간과 재능이 모두 돈으로 환원된다는 것을 안다. 때문에 그것들을 아무에게나 쓰지 못한다. 신생아 모자 뜨기 캠페인을 발견하고서 ‘나도 동참해 봐야지’ 생각하다가도 그 시간에 할 수 있는 ‘돈 되는 일’을 해내느라 모자 뜨기는 뒤로 밀리고 만다. 매일이 이런 식이다.
돈 따위는 찢어 버려도 아무렇지 않을 마음.
어른이 듣기에 전혀 말이 안 되는 그런 마음을 간직하고 있는 건 어린이뿐이다. 아직 돈의 노예가 되기 전의 순수한 종족. 그들은 돈이 안 되는 일만 골라 한다. 좋아하는 일만 하고, 아끼는 물건에 온통 마음을 주며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다. 그렇다면 역으로, 어린이처럼 돈은 개나 줘 버려도 되는 마음으로 무언가를 할 때 어른들은 노예 상태에서 해방될 수 있지 않을까? 이를테면 재능 기부 같은 것 말이다.
나는 기부니 봉사니 그런 거 모르고 살다가, 몇 해 전에 배우 김남길이 만든 문화 예술 NGO ‘길스토리’와 인연이 닿아 그때부터 나눔에 조금씩 관심이 생겼다.
길스토리에 글을 기고하면서부터, 재능 기부나마 이렇게 하고 있으니 내 삶이 조금은 덜 비루한 것처럼 여겨졌다. 내가 돈만 벌면서 사는 사람은 아니구나, 돈이 되는 일만 하는 돈의 노예는 아니구나, 하는 일말의 안도감과 자부심.
그건 내가 조건 없이도 남에게 내 사랑을 내어줄 수 있는 넉넉한 인간이 됐다는 ‘K 마크’ 같았다. 제대로 기부하는 사람들이 들으면 아주 콧방귀를 뀌고도 남을 일이지만, 그럼에도 나는 좋은 의도로 그런 간단한 기고라도 시작한 내가 기특하다.
‘돈 안 되는 일’을 하나쯤 하는 것. 이것이 휴머니즘을 회복하는 방법이 아닌가 싶다.
- 이 글은 손화신 작가의 신간 <아이라는 근사한 태도로>에 실린 글입니다.

_2016년 8월부터 길스토리 크리에이터 멤버로 활동 중이다. 6년째 문화예술 전문 기자로 일하고 있으며, <나를 지키는 말 88>의 저자이기도 하다. 2019년 9월 1일, ‘제6회 카카오 브런치북’ 대상에 빛나는 두 번째 책 <아이라는 근사한 태도로>(웨일북)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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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 11 Sep 2019 14:04:47
<![CDATA[나답게 걷는 바다]]>
나답게 걷는 바다
글 : 손화신 (작가)
"넌 좀 재미없게 사는 것 같아."
누가 봐도 다이내믹한 삶을 사는 친구가 말했다.
나는 그날 잠자리에 들며 나의 재미없는 삶에 대해 생각해봤다.
뾰족한 수 없이 친구의 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누가 봐도 단순하고 재미없는 삶을 살고 있다.
나는 화려한 곳에 가는 것보다 바다를 걷는 게 더 재미있고, 블록버스터 영화보다는 지루한 영화가 더 재미있는 그런 사람이다.
하지만 문득 그런 생각도 들었다. 나만 아는 재미들을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한 채 이대로 살고 싶다는 생각.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무엇이 있다는 것. 그것은 내가 나답게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내가 생각하는 재미있는 삶이란 남들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는 삶이다.
"너는 그게 대체 왜 재미있어?"

_손화신은 에세이 <나를 지키는 말 88>의 저자다. 스피치 모임을 10년 동안 진행해오며, 진정한 말은 침묵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대로 된 한 마디’를 하기 위해 말의 뿌리인 침묵 안에서 우리가 무엇을 키워나가야 하는지를 이야기한다. 현직 음악담당 기자이며, 길스토리 프로보노이자 카카오 브런치 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글 쓰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 브런치 주소: brunch.co.kr/@ihearyo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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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 13 Aug 2019 20:38:15
<![CDATA[고목나무 그리고 소통]]>
고목나무 그리고 소통
글 : 손화신 (작가)
“아무도 없는 깊은 산속에 거대한 고목나무가 쓰러졌다면 과연 소리가 났는가, 나지 않았는가?”
선가에서 내려오는 오래된 화두라고 한다. 듣는 이가 없는 공간에 울려 퍼진 소리는 소리라고 할 수 있을까, 할 수 없을까.
그렇다면 말은 어떠한가. 아무도 듣는 사람이 없는 당신의 말은 말일까, 말이 아닐까. 당신이 내 이름을 불러줄 때 비로소 꽃이 되듯, 당신이 내 말을 들어줘야 비로소 말이 되는 건 아닐까. 이 답 없는 화두를, 오늘 가만히 생각해본다.

 

_손화신은 에세이 <나를 지키는 말 88>의 저자다. 스피치 모임을 10년 동안 진행해오며, 진정한 말은 침묵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대로 된 한 마디’를 하기 위해 말의 뿌리인 침묵 안에서 우리가 무엇을 키워나가야 하는지를 이야기한다. 현직 음악담당 기자이며, 길스토리 프로보노이자 카카오 브런치 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글 쓰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 브런치 주소: brunch.co.kr/@ihearyo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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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 9 Jul 2019 16:13:06
<![CDATA[도(道)는 웃음 속에 있다]]>
도(道)는 웃음 속에 있다
글 : 손화신 (작가)
“웃지 않으면 도(道)라고 할 수 없다. 진리는 사람을 웃게 하면서 생각하도록 하는 것이다. 사람을 웃게 하는 것일수록 진리를 담고 있고 도에 가깝다.” - 노자
스피치 동호회에 30대 초반의 대학원생 연사님이 있다. 그는 평소에 철학적인 사유를 즐긴다. 통찰력 있는 콘텐츠는 좋은데 문제는 너무 진지하고 재미없게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교수님의 따분한 강의 같달까. 반면에 비슷한 또래의 여행광 연사님은 말하는 것마다 웃음 폭탄이다. 청중을 계속 키득거리게 만드는데 이상하게 다 듣고 나면 수첩을 꺼내게 만든다. 그의 여행에서 배울 점을 수첩에 적게 되는 것이다. 그는 틀에 박히는 걸 질색하는 스타일이라 진지하게 이야기하진 않지만 그럼에도 이야기 안에 메시지를 잘 담아낸다.
한번은 스피치 주제로 ‘젊음’이 제시됐다. 대학원생 연사님은 “젊음이란 어느 특정한 기간을 말하는 게 아니라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고 발표했다. 공감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더 공감이 갔던 건 여행광 연사님의 이야기였다. 그는 멋진 말 하나 않고, 조금은 실없게 웃기고 들어갔다.
“젊어서 몸 챙긴다고 술 절제해, 좋은 직장 구한다고 여행 미뤄, 돈 아낀다고 외모 안 꾸며, 서로 호감이 있으면서도 결혼 상대자로 조건 안 맞는다고 사랑 안 해. 이 모든 짓들은 ‘돌아이’나 하는 짓입니다! 젊음이 얼마나 눈부신 때인지, 얼마나 보석 같은 시절인지 지나 봐야 정신을 차리지! 마음껏 젊은 날들을 즐기고, 누리고, 사랑하고, 웃고, 놀아야 해요. 저처럼 맨날 술도 퍼마시고요.”
투박하고 촌스러운 발표였지만 웃음이 풉 하고 터져 나왔다. 동시에, 젊음의 눈부신 빛이 파도처럼 내 눈앞에 밀려왔다. 그의 말은 진리와 웃음이 한데 버무려져 있었다.
모두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청중이 웃는다는 건 그들의 감성까지도 움직였다는 말이다. 머리로 하는 이해를 넘어서 마음속의 감정까지 움직여야 진리도 마음에 더 깊이 와 닿는 것 아닐까. 무언가를 배우기 위한 최상의 방법은 먼저 ‘느끼는’ 것이다. 웃음이든 눈물이든 뜨거운 감정을 통해 흡수하는 그것이야말로 진리의 실체다. 웃음은 진지함을 이긴다.

_손화신은 에세이 <나를 지키는 말 88>의 저자다. 스피치 모임을 10년 동안 진행해오며, 진정한 말은 침묵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대로 된 한 마디’를 하기 위해 말의 뿌리인 침묵 안에서 우리가 무엇을 키워나가야 하는지를 이야기한다. 현직 음악담당 기자이며, 길스토리 프로보노이자 카카오 브런치 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글 쓰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 브런치 주소: brunch.co.kr/@ihearyo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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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 18 Jun 2019 16:51:23
<![CDATA[거절의 기술]]>
거절의 기술
글 : 손화신 (작가)
언젠가 할리우드 스타 톰 크루즈의 인터뷰를 본 적 있다. 어떤 질문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리포터의 질문에 톰 크루즈는 진중하고 밝은 미소로 ‘그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을 게요’라고 말했다. 리포터 역시 아무렇지 않게 오케이 하고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그때 내가 느낀 건 문화차이였을까? '아... 모든 질문에 다 대답을 할 필요는 없는 거구나' 조금 웃기긴 하지만 내게는 꽤 진지한 깨달음이었다.
나만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는 것을 예의 없는 행동으로 여기는 것 같다. 하지만 질문이라고 다 좋은 질문은 아니기에 모든 질문에 다 대답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대답을 하고 나서 스스로 상처받을 질문이라면, 대답을 하고 나서 괜한 오해를 사거나 곤경에 빠질 수 있는 질문이라면 아예 대답을 안 하는 편이 현명하겠다.
질문을 피하는 일과 거절을 하는 일은 미안한 일이 아니라 정당한 일이다. 다만 너무 직접적이면 상대에게 상처를 줄 수 있고, 그렇다고 너무 베베 꼬아서 대답하면 의사전달이 제대로 안 될 수도 있으므로 지혜를 필요로 한다. 상대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하면서 나를 보호하는 거절의 지혜는 바로 '위트'를 더하는 것이다. 너무 진지하기만 하면 의사 전달은 확실히 되겠지만 부탁을 한 상대를 무안하게 할 수도 있다. 기분 좋은 위트를 섞어 거절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예의 바르게 전달해야 한다.
스피치동호회에 가끔 통기타를 들고 와서 노래를 부르는 남성연사님이 있다. 어느 날은 한 여성 연사님이 노래 한 곡을 불러달라고 요청하자 그는 “아, 다음에 꼭 불러드릴게요! 너무 아름다우신 분이 요청하니까 떨려서 오늘은 안 되겠는걸요!”하고 거절했다. 있는 그대로 “악보를 안 가지고 와서요”라고 대답할 수도 있지만, 그는 상대방의 미모를 칭찬하며 위트 있게 대응함으로써 상대가 섭섭하지 않도록 배려했다. 그 연사님을 보며 거절이 때로는 전화위복처럼 긍정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단 걸 알게 됐다. 거절이란 꼭 피하고 싶은 곤란한 일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분위기를 유쾌하게 만들 수도 있고 관계를 더욱 진실하게 만들 수도 있다. 위트라는 지혜를 가미한다면 말이다.

_손화신은 에세이 <나를 지키는 말 88>의 저자다. 스피치 모임을 10년 동안 진행해오며, 진정한 말은 침묵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대로 된 한 마디’를 하기 위해 말의 뿌리인 침묵 안에서 우리가 무엇을 키워나가야 하는지를 이야기한다. 현직 음악담당 기자이며, 길스토리 프로보노이자 카카오 브런치 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글 쓰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 브런치 주소: brunch.co.kr/@ihearyo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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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 14 May 2019 14:24:44
<![CDATA[편견 없는 경청]]>
편견 없는 경청
글 : 손화신 (작가)
경청이란 누군가에게 내 마음의 도화지 한 장 내어주는 일. 정갈하고 순수한 하얀 도화지 한 장 그의 손에 쥐어주는 일.
경청의 사전적 의미는 ‘귀를 기울여 들음’이다. 사전은 언제나 2% 부족해서 귀를 기울여 들어도 제대로 들을 수 없었던 우리의 경험을 설명해주지 못한다. 진정한 경청은 귀 기울여 '편견 없이' 듣는 것이다.
제대로 그림을 그리려면 도화지의 바탕이 하얗고 깨끗해야 하듯, 상대방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기 위해서는 내 마음이 편견 없이 하얘야 한다. 편견 없이 듣고 나서 그 후에 비판을 하는 건 좋지만, 이미 자신의 잣대와 틀을 부여잡은 채 상대의 말이 끝나길 기다렸다는 듯 던지는 비판은 비겁하다. 상대가 빨강, 노랑, 파랑물감을 써가며 형형색색 그림을 그리도록 가만히 기다려주고 지켜봐주는 게 '듣는 일'이다.
사기 이사열전에 이런 구절이 등장한다.
태산불양토양泰山不讓土壤 하해불택세류河海不擇細流.
(태산은 한 줌의 흙도 마다하지 않고, 강과 바다는 작은 물줄기도 가리지 않는다)
경청의 자세도 이와 같아야 한다. 귀를 기울이고 있지만 내가 듣기 싫은 말이 들려오면 마음의 셔터를 내려 버리는 것은 제대로 들어주는 게 아니다. 이미 완성된 내 그림으로 가득 찬 도화지를 상대에게 내놓으면서 그 위에 그림을 그리라고 하는 건 예의가 아니지 않나. 비록 상대의 생각이 내 생각과 반대되더라도 한 줌의 흙도 마다하지 않는 태산의 자세로 듣는 일은, 어렵지만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가.
이런 사람의 마음은 명화로 가득한 미술관처럼 귀한 그림들로 차곡차곡 채워져 있다. 그림 위에 또 다른 그림이 그려진 그런 뒤죽박죽 삼류 그림과는 비교할 수 없는 온전한 명작들이 각각의 품격을 간직한 채 축적돼 있다.
남에게 들어서 얻은 재산은 후에 내가 말할 때의 밑천이다.
- 손화신 에세이 <나를 지키는 말 88>에 실린 글입니다.

_손화신은 에세이 <나를 지키는 말 88>의 저자다. 스피치 모임을 10년 동안 진행해오며, 진정한 말은 침묵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대로 된 한 마디’를 하기 위해 말의 뿌리인 침묵 안에서 우리가 무엇을 키워나가야 하는지를 이야기한다. 현직 음악담당 기자이며, 길스토리 프로보노이자 카카오 브런치 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글 쓰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 브런치 주소: brunch.co.kr/@ihearyo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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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 5 Apr 2019 17:18:11
<![CDATA[부정적 감정 통제하기]]>
부정적 감정 통제하기
글 : 손화신 (작가)
“인디언들에겐 용기가 공격적인 자기 과시가 아니라 완벽한 자기 절제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진정한 용기를 가진 자는 어떤 두려움과 분노, 욕망, 고통에도 자신을 내 주는 법이 없다는 것. 모든 상황에서 자기 자신의 주인이라는 것.” - <인디언의 영혼> 中
미국에는 ‘소셜 스킬(social skill)’이라는 학습 과정이 있다고 한다. 학생들이 스스로를 관찰하고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며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도록 사회적 지능을 훈련하는 과정이다.
소셜 스킬을 학습한 아이들은 자신이 왜 화가 났는지, 왜 상처를 받았는지를 스스로 이해함으로써 자신의 감정을 더 잘 다스릴 수 있게 된다. 분노, 우울감, 공포 같은 부정적 감정을 자신의 통제력으로 다스리고 다른 사람에게 전이하지 않도록 한다. 때문에 원만한 대인관계를 유지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고 다스리는 감성지능 EQ(emotional quotient)은 소셜 스킬과 관련이 깊다. 저서 으로 EQ의 개념을 대중화시킨 심리학자 다니엘 골먼(Daniel Goleman)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EQ를 과대평가하여 감정을 통제하는 능력을 기르려는 노력을 소홀히 한다고 지적했다.
내가 참석한 한 모임에서 자신의 IQ(지능지수), EQ(감성지수), SQ(사회성지수)에 대해 평가하는 시간을 가진 적 있다. 당시 15명의 참석인원 중 13명이 자신은 다른 지능보다 감성지능 EQ가 가장 높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인간이기에 늘 여러 감정을 느끼고 흔들리는 자신을 바라보며 '나는 감성적이야', '나는 EQ가 높아' 하고 과대평가한 사람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감성지수란 것은 단지 감성이 풍부한 것과는 다른 문제다. 스스로의 감정을 자각하고 통제하며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는 능력이 EQ의 핵심이다.
감정을 통제하는 것은 단지 감정을 억누르고 참음으로써 타인에게 전이되는 걸 막는 게 아니다. 자신의 감정을 과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다스리는 일이다. 소셜 스킬을 학습하듯 감성지능도 노력으로 키울 수 있다. 부정적 감정이 일어날 때 본인의 의지로 절제 가능한 사람을 우리는 성숙한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 아닐까.

 

_손화신은 에세이 <나를 지키는 말 88>의 저자다. 스피치 모임을 10년 동안 진행해오며, 진정한 말은 침묵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대로 된 한 마디’를 하기 위해 말의 뿌리인 침묵 안에서 우리가 무엇을 키워나가야 하는지를 이야기한다. 현직 음악담당 기자이며, 길스토리 프로보노이자 카카오 브런치 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글 쓰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 브런치 주소: brunch.co.kr/@ihearyo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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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 11 Mar 2019 16:34:28
<![CDATA[인디언처럼 말하기]]>
인디언처럼 말하기
글 : 손화신 (작가)
머리보다는 가슴에서 나오는 말을 하는 이들이 있었으니 인디언들이다. 인디언의 연설은 단순하지만 본질을 꿰뚫는 힘이 있었다. 그들은 말에 대한 성스러운 믿음을 지녔다.
“말은 변하지 않는 별들과 같고, 사람의 심장에서 나오는 것이며, 세상을 창조한 위대한 영은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듣고 영원히 잊지 않는다.”
그들은 이렇게 믿었다. 한마디를 내뱉을 때도 껍데기뿐인 말을 피하고 영혼이 담긴 말을 하려 노력했다. 그들의 말은 밤하늘의 별들처럼 영롱하게 듣는 이의 영혼을 건드린다. 언제나 본질을 응시하며 살았기 때문에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본질을 꿰뚫는 것은 당연했다.
그들은 늘 어머니 대지 그리고 하늘과 숲, 작은 동물들과 소통하며 깨어있는 정신으로 자연(본질)과 교감했다. 또한 침묵 속에서 자기 자신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
현대인들의 마음은 너무도 바쁘게 움직인다. 좋은 집, 멋진 옷, SNS의 이름 모를 팔로워 같은 하위가치에 마음을 분산시킨다. 본질을 놓치고 살고 있단 사실 조차 모른 채 살아간다. 때문에 현대인의 말은 백화점 진열장에 놓인 상품처럼 화려하지만 울림이 없는 경우가 많다. 자연으로부터 얻은 신성함, 사람의 가슴에 곧장 가 박히는 힘이 없다.
우리는 계산하는 습관에 길들여져 있다. 시간, 노동력, 기술 등 대부분의 가치가 돈이라는 획일적 가치로 환산되다 보니 머리를 굴리고 손익을 따져보기 바쁘다. 심지어 말을 할 때도 이런 버릇이 나오는 것 같다. ‘이렇게 말하면 내가 비굴해 보이는 것 아닐까?’, ‘이렇게 말하면 내가 좀 있어 보이려나?’ 끊임없는 계산속에서 우리는 곧바로 진심을 표현하는 법을 잊고 산다.
인디언은 빙빙 돌려 말하는 백인들에게 “가슴에 오는 햇빛처럼 직설적으로 말하라”고 요구했다. 인디언들은 영혼이 담긴 말을 할 줄 알았다. 그것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일까.

 

_손화신은 에세이 <나를 지키는 말 88>의 저자다. 스피치 모임을 10년 동안 진행해오며, 진정한 말은 침묵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대로 된 한 마디’를 하기 위해 말의 뿌리인 침묵 안에서 우리가 무엇을 키워나가야 하는지를 이야기한다. 현직 음악담당 기자이며, 길스토리 프로보노이자 카카오 브런치 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글 쓰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 브런치 주소: brunch.co.kr/@ihearyo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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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 12 Feb 2019 14:50:10
<![CDATA[뜻을 담다]]>
뜻을 담다
글 : 손화신 (작가)
매일 글을 쓰다 보면 무언가 중요한 걸 잊은 느낌에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너는 글을 잘 쓰려고 이 글을 쓰는 거니? 잘 쓴다는 건 뭐지? 아름다운 문체와 기교에 정신이 팔려 있는 건 아니겠지?'
연암 박지원은 “글이란 내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유려하고 폼 나는 글을 쓰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내 생각을 오해 없이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글을 써야한다는 거다. 치장에 신경 쓰지 말고 말하고자 하는 바를 확실하게 글 속에 담아내야 한다는 말과도 같다.
작가가 자신의 뜻을 문장으로 잘 담아내려는 일처럼, 말하는 이도 달변을 하려고 애쓰기보다는 본인의 뜻을 한 마디 한 마디에 잘 담아내려고 애쓴다. 자신의 말맛에 취해 멋있는 말, 폼 나는 말을 하느라 정작 뜻에는 신경을 쓰지 못한다면 무언가 잘못된 일일 것이다.
말로써, 글로써 자신을 표현하는 것. 그렇게 표현된 말과 글을 나누며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공감하는 것, 이것이 성장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_손화신은 에세이 <나를 지키는 말 88>의 저자다. 스피치 모임을 10년 동안 진행해오며, 진정한 말은 침묵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대로 된 한 마디’를 하기 위해 말의 뿌리인 침묵 안에서 우리가 무엇을 키워나가야 하는지를 이야기한다. 현직 음악담당 기자이며, 길스토리 프로보노이자 카카오 브런치 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글 쓰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 브런치 주소: brunch.co.kr/@ihearyo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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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 10 Jan 2019 15:49:41
<![CDATA[사소함의 힘]]>
사소함의 힘
글 : 손화신 (작가)
스피치 동호회에 오래 참석하면서 발견한 게 있다. 사람들은 멍석이 깔리면 평소보다 멋진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것. 그래서 연단에 나가면 평소에는 잘 하지 않는 거창한 이야기를 꺼내놓고, 막상 거기에 자신의 진심을 담아내지 못해 스스로 수습이 힘든 상태에 이른다. 그러나 멍석은 특별한 게 아니다. 일상적이고 시시콜콜한 이야기, 아주 사소한 이야기들을 멍석 위에서 해도 된다. 아니, 오히려 사소하면 사소할수록, 개인적이면 개인적일수록 그 이야기는 사람들을 감동시킨다.
언젠가 '사랑'이라는 주제로 스피치를 한 적이 있었다. 대부분의 연사님들은 연단에 서서 사랑에 대한 정의를 꺼내 놨다. '사랑이란 서로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 '사랑은 상대를 위해서 내가 양보하겠단 마음이 있어야 가능한 일.' 연륜에서 묻어나는 사랑에 대한 성찰들이었다. 그런데 한 사람만은 달랐다. 사랑 한 번 안 해봤을 것 같은 솜털이 보송보송한 고등학생이었다. 남학생은 사랑을 설명하지 않았다. 설명하지 않고도 사랑에 대한 가장 따뜻한 스피치를 했다. 아주 사소하고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로.
“제가 중학교 2학년 때요, 좋아했던 여자애가 있었거든요. 학원에서 딱 처음에 봤는데 한눈에 뿅 해가지고요, 친해지려고 막 장난도 치고 그랬어요. 매일 그 친구 옆 자리에 앉으려고 교실에 들어갈 때까지 몰래 기다렸다가 따라 들어가서 옆 자리에 앉았어요. 1, 2년 그렇게 친하게 지냈는데... 그런데 고백은 못했어요. 용기가 안나가지고요. 언젠가 정말 멋있게 고백하려고 마음만 먹고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그 여자애가 호주로 이민을 간다는 거예요. 저는 장난치는 줄 알았어요. 믿고 싶지가 않았거든요. 그래서 '야, 뻥치고 있네~' 하면서 속으로 '설마. 아닐 거야. 장난일 거야'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정말 가버렸더라고요. 저는 그날 밤 혼자서 다음날 새벽까지 포도주스 1병을 마셨어요. 미성년자라 술은 못 마시니까요. 아직도 그 친구가 보고 싶고 꼭 다시 만나서 고백하고 싶어요.”
박수가 뜨겁게 터졌다. 남학생은 사랑이란 단어 한번 꺼내지 않았지만, 멋진 표현 하나 쓰지 않았지만 누구보다 진심이 담긴 호응을 얻었다. 특별할 줄 몰랐던 것. 꾸미지 못했던 것. 어른들에겐 모두 '결점'이라 불렸던 이런 단점들로 남학생은 가장 진솔하고 따뜻한 사랑 이야기를 들려줬다. 말매무새가 깔끔하진 않았지만 그런 어눌한 말투마저 첫사랑의 풋풋함처럼 다정했다.
남학생을 보고 한 가지를 깨달았다. 발표는 '잘' 하거나 '멋있게' 하는 게 아니라 '진솔하게' 하는 것이란 걸. 사람들은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는 가르침보다, '이건 이렇다, 저건 저렇다'의 정의내림보다, '나는 그랬다'라는 말에 그저 '나도 그래'하고 공감하길 원한다는 것을. 사소한 이야기, 개인적인 이야기에는 공감의 힘이 깃들어있다.

_손화신은 에세이 <나를 지키는 말 88>의 저자다. 스피치 모임을 10년 동안 진행해오며, 진정한 말은 침묵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대로 된 한 마디’를 하기 위해 말의 뿌리인 침묵 안에서 우리가 무엇을 키워나가야 하는지를 이야기한다. 현직 음악담당 기자이며, 길스토리 프로보노이자 카카오 브런치 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글 쓰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 브런치 주소: brunch.co.kr/@ihearyo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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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 7 Dec 2018 14:27:23
<![CDATA[결심의 재발견]]>
결심의 재발견
글·사진 : 손화신 (작가)
“지옥으로 가는 길은 좋은 결심으로 덮여 있다.”
- 외국속담
인도의 사상가 지두 크리슈나무르티는 말했다.
“결심이라는 것은 안 하기로 결심한 그것을 강화시키기 때문에 좋지 않습니다. 결심은 억제, 폭력, 갈등입니다.”
보통 결심이란, 실행에 앞서 추진력을 불어넣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나는 크리슈나무르티의 생각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결심은 내면에 작용-반작용을 일으키는 모순 덩어리다. 하지 않으려고 하면 더 하게 된다.
차동엽 신부는 저서 <무지개 원리>를 통해 심리학적 논리에 근거한 이에 대한 해결책을 내놓았다. '하지 않겠다'란 부정문 형태의 결심이 아닌 다음처럼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3P' 공식인데, 긍정적(positive)-현재형(present)-개인적(personal)인 문장으로 문구를 만들면 된다. “더 이상 담배를 피우지 않겠다”는 결심의 말 대신 “나는 금연가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마치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말이다.
결심은 '하지 않겠다'든 '하겠다'든 둘 다 부정적 결과를 품는다. 독일의 안젤름 그륀 신부는 그의 책 <머물지 말고 흘러라>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좋은 결심으로 덮여 있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몇 번씩이나 무언가를 계획하지만 실행하지 못한다면, 그건 바로 지옥을 준비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결심을 해도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그러자 분노가 치밀었지요. 스스로를 책망하고, 자신을 거부했습니다. 내면의 분열은 이렇게 커져갔습니다. 결국 나는 이 분열을 극복할 수 없는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이때 나는 신에게 의지했습니다. 비로소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었지요. 당신도 내면의 분열을 막으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성취도는 더욱 작아지지 않던가요?”
그의 말이 옳다. 우리가 결심을 하고 그 결심한 바를 100% 실행해낸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겠다. 하지만 인간이란 나약한 존재고 결심이란 놈은 언제나 나약한 인간들 앞에 덫을 놓는다. 잘 해보자고 한 결심이 내면의 분열을 불러와 마음을 가시밭으로 바꿔놓는다. 바로 실행하는 것. 이것이 최선이다.
행동하는 힘이 추진력이지 결심하는 힘이 추진력은 아니다. 당신이 만약 '하루에 한 페이지씩 글쓰기' 계획을 세웠다면 '하루에 한 장씩 글을 쓰겠어!'라고 반복해 결심하지 말고 다음 날 해가 떴을 때 조용히 컴퓨터 전원을 켜라. 그리고 써라. 이것이 내적 분열에서 스스로를 구할 유일한 방법이다.
한 걸음을 내딛는 것, 그것만이 진짜다.

_손화신은 에세이 <나를 지키는 말 88>의 저자다. 스피치 모임을 10년 동안 진행해오며, 진정한 말은 침묵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대로 된 한 마디’를 하기 위해 말의 뿌리인 침묵 안에서 우리가 무엇을 키워나가야 하는지를 이야기한다. 현직 음악담당 기자이며, 길스토리 프로보노이자 카카오 브런치 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글 쓰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 브런치 주소: brunch.co.kr/@ihearyo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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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 12 Nov 2018 13:47:15
<![CDATA[Flow 몰입, 자유에 이르는 방법]]>
Flow 몰입, 자유에 이르는 방법
글·사진 : 손화신 (작가)
몰입이란 흐름을 타는 일이다. 저명한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박사는 이라는 저서를 통해 몰입의 원리를 설명했다. 제목을 눈여겨보면 Flow라는 원제가 몰입이라고 번역돼 있다.
몰입은 산만하게 흩어져 있던 의식이 어느 순간 서로 조화를 이루는 경험으로 ‘삼매경’이라고 표현되기도 하는 하나의 거대한 흐름이다.
'몰입'하면 영화 <빌리 엘리어트>의 빌리가 떠오른다. 발레리노를 꿈꾸는 소년 빌리가 로열 발레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시험을 치르는 대목이다. 심사위원이 빌리에게 물었다.
“빌리, 네가 춤을 출 때 어떤 기분이니?”
빌리는 한참을 벙어리처럼 가만히 있다가 대답한다.
“모르겠어요... 그냥 기분이 좋아요. 조금은 어색하기도 하지만 한 번 시작하면 모든 걸 잊게 되고 그리고... 사라져 버려요. 사라져버리는 것 같아요. 내 몸 전체가 변하는 기분이죠. 마치 몸에 불이라도 붙은 기분이에요. 전 그저 하늘을 나는 한 마리의 새가 되죠. 마치 전기처럼... 네! 전기처럼요!”
빌리가 춤을 출 때 느낀다는 모든 것이 사라지는 기분, 그것이 몰입이다. 세상도 사라지고 나도 사라지고 오직 춤만 남는 황홀경. 빌리는 춤을 추면서 깊은 몰입의 자유를 느꼈다. 몰입하면 인간은 하늘을 나는 한 마리 새처럼, 전기처럼 짜릿한 자유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_손화신은 에세이 <나를 지키는 말 88>의 저자다. 스피치 모임을 10년 동안 진행해오며, 진정한 말은 침묵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대로 된 한 마디’를 하기 위해 말의 뿌리인 침묵 안에서 우리가 무엇을 키워나가야 하는지를 이야기한다. 현직 음악담당 기자이며, 길스토리 프로보노이자 카카오 브런치 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글 쓰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 브런치 주소: brunch.co.kr/@ihearyo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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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 4 Oct 2018 18:59:26
<![CDATA[그림자의 말]]>
그림자의 말
글·사진 : 손화신 (작가)
그림자를 바라본다
땅 위로 납작하게 누운 나의 내면의 모습
 
나의 마음을 경청해본다
무의식의 늪 가장 질척한 곳 위로 납작하게 누운 그 목소리

 

_손화신은 에세이 <나를 지키는 말 88>의 저자다. 스피치 모임을 10년 동안 진행해오며, 진정한 말은 침묵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대로 된 한 마디’를 하기 위해 말의 뿌리인 침묵 안에서 우리가 무엇을 키워나가야 하는지를 이야기한다. 현직 음악담당 기자이며, 길스토리 프로보노이자 카카오 브런치 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글 쓰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 브런치 주소: brunch.co.kr/@ihearyo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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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 7 Sep 2018 17:59:58
<![CDATA[기성관념을 버리다]]>
기성관념을 버리다
글 : 손화신 (작가)
나는 버섯을 좋아한다. 어느 날은 버섯을 먹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정말 버섯을 좋아하는 걸까? 아니면 버섯이 몸에 좋다는 말을 들은 순간부터 버섯이 좋아지기 시작한 걸까? 나는 커피를 좋아한다. 어느 날은 커피를 마시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정말 커피를 좋아하는 걸까? 아니면 커피를 들고 다니는 거리의 사람들이 멋있어 보여서 그때부터 커피가 맛있게 느껴진 걸까?
이런 가정을 해본다. 만약 버섯이 몸에 좋지 않다고 듣고 자랐어도 과연 나는 순수한 마음으로 불량식품 즐기듯 버섯을 즐겼을까? 또 만약에 커피를 마시는 일이 십전대보탕을 즐기는 일처럼 올드하게 여겨지는 문화에서 살고 있다면 나는 지금처럼 꿋꿋이 매일 커피를 마셨을까? 그러므로 다시 내게 묻는다. 나는 정말로 버섯을 좋아하고, 커피를 좋아하는 걸까?
나는 태초의 인간이 아니다. 나는 이미 만들어져 있는 사회 속에서 태어났다. 나를 둘러싼 세상은 기성품이다. 나의 생각과 취향, 행동양식은 나를 둘러싼 기성사회로부터 끊임없이 영향을 받고 있다. 즉, 기성관념이 매일 내게 주입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기성복을 입는 것에 익숙해져 있듯이 이미 형성돼 있는 사회의 관념을 받아들이는 데 익숙해져 있다. 오래된 생각과 모두의 생각이라면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또 그게 내 생각이라고 착각하고 살기도 했다. (기성관념의 사전적 의미는 '이미 굳어져 버린 생각'이지만, 이 글에서는 '사회에서 이미 확고하게 형성돼 있는 생각'이란 뜻으로 사용하기로 한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기성관념에 대한 의심이 싹트기 시작했다. 기성복이 아닌 나만의 맞춤복을 만들어 입고 싶어진 것이다. '사회 속의 나' 말고 '태초의 나'를 발견하고 싶은 욕구가 생겨났다. 내가 진짜 버섯을 좋아하고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인지 하나하나 재확인하고 싶어진 거다. 그렇게 온전한 나 자신으로 거듭나려 했을 때, 내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기성복을 벗어던지는 일이었다. 그리고 손이 많이 가더라도 한 땀 한 땀 내 손으로 직접 입을 옷을 만들어야 했다. 기성관념에 무조건 순응하는 대신 스스로 생각하고 의심하는 작업은 그렇게 시작됐다.
세상의 상식, 권위자의 말들, 오래된 철학, 존경하는 선생님의 가르침들. 아무리 이것들이 당연하게 느껴지더라도 나의 힘으로 다시 생각해보기 전에는 진짜 내 생각이 아닌 것이다. 세상으로부터 주입되는 생각들은 스스로의 검수 작업을 거쳐야만 진짜 내 생각이 된다. 예를 들어, 독서가 이롭다는 건 상식에 가까운 기성관념이다. 하지만 책을 읽는 게 왜 좋은지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보지 않았다면 독서의 이로움에 대한 내 생각은 단지 모래성일 뿐이다. 그건 내가 받아들인 기성관념에 지나지 않는다. 맞춤복이 아니라 기성복을 입은 셈이다. '책은 이롭다'라는 '내 생각'을 갖기 위해서는, '책은 이롭다'라는 '기성관념'부터 버려야 한다. 기성관념을 버리고 생각의 홀로서기를 시작하면 그때부터 내 인생의 독서는 질적으로 다른 차원에 들어서게 된다. 진정으로 나를 성장시키는 독서가 시작되는 것이다.

_손화신은 에세이 <나를 지키는 말 88>의 저자다. 스피치 모임을 10년 동안 진행해오며, 진정한 말은 침묵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대로 된 한 마디’를 하기 위해 말의 뿌리인 침묵 안에서 우리가 무엇을 키워나가야 하는지를 이야기한다. 현직 음악담당 기자이며, 길스토리 프로보노이자 카카오 브런치 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글 쓰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 브런치 주소: brunch.co.kr/@ihearyo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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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 7 Aug 2018 09:42:05
<![CDATA[스몰토크]]>
스몰토크
글 : 손화신 (작가)
미국의 한 회사에서 인턴생활을 했던 친구가 내게 스몰토크(small talk)에 대해 알려준 적이 있다. 미국인들의 문화라고 할 수 있는 스몰토크란 날씨, TV 드라마, 스포츠처럼 일상적인 대화를 가볍게 나누는 걸 말한다. 물론 우리나라 사람들도 대화의 본론에 들어가기 앞서 아이스브레이킹(Ice breaking)을 위해 소소한 이야기를 나눈다. 하지만 미국 사람들은 차원이 다르게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한단다. 가령 "제임스, 오늘 뭐 타고 왔어?" 라는 주제로 10분을 이야기하고 "제임스, 오늘 네가 신은 양말 색깔 예쁘다"로 20분을 이야기하는 식이란다.
내 친구는 그런 시시콜콜한 대화에 극심한 피로를 느꼈다고 털어놨다. 그렇게 사교성이 좋던 친구가 오죽하면 스몰토크에 휘말리지 않으려고 사람들을 피해 다녔을까. 말 다했다. 친구는 특히 이런 점이 싫었단다. "오늘 비가 올까?"라고 물어보기에 성심성의껏 기상 예측안을 내놓으려는데 막상 대답은 듣지도 않고 그냥 휙 가버린단다. 질문만 던지고선 말이다. 처음에는 내가 뭘 잘못했나 했는데 그런 것도 아니었다. 애초에 대답은 원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대답이 궁금하지도 않으면서 왜 저렇게 껍데기 같은 말들을 늘어놓는 건지 이해되지 않았다. 말의 공해처럼 느껴졌다. 미국 사람들은 대화할 때 잠깐이라도 침묵이 흐르는 걸 못 견뎌 하나보다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친구가 정신없이 일을 하고 있는데 처음 보는 사람이 자신에게 또 스몰토크를 걸어오더란다. "제임스, 오늘 경기에서 클리블랜드가 이길까?" 내 친구는 "글쎄, 잘 모르겠어요" 하고 성의 없이 답했다. 그러자 상대는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엘에이 다저스가 이길 것 같아. 왜냐하면 말이야..." 하면서 또 혼자 막 떠들었다. 그는 연이어 새로운 쓸데없는 질문들을 던졌고 친구의 반응이 미지근하자 떠들다가 가더란다.
그가 가자 친구는 옆에 앉은 동료에게 물었다. "저 사람 누군지 알아?" 그러자 친구가 대답했다. "우리 회사 사장이잖아. 몰랐어?"
친구는 그때 비로소 미국인들이 왜 그토록 스몰토크에 열심인지 깨달았다고 한다. 마주칠 때마다 소소한 이야기를 던지면서 마음의 거리를 자연스럽게 좁히려는 의도란 걸 직감한 것이다. 사장과 인턴이라는 권위의 벽을 넘어 인간 대 인간으로서 시시콜콜한 ‘사는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가까워지려는 배려이기도 했다. 친구는 그날 사장과의 대화 이후 스몰토크의 가치를 납득했고, 스몰토크의 맛에 제대로 빠졌다. 그 후 스몰토크 덕분에 미국인 친구를 많이 사귈 수 있었다며 친구는 흐뭇하게 자랑하기도 했다.
스몰토크는 말 그대로 잡담이다. "날씨가 참 좋지요?" 하면 "날씨가 좋아서 주말에 어디라도 가야할까 봐요" 하고 맞장구치는 일상의 대화다. 하지만 이런 부담 없이 가벼운 소재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에 두 사람은 인간 대 인간으로서 가까워질 수 있다. 무뚝뚝하게 서로를 모르는 척 하지 않고 엘리베이터에서, 화장실에서, 복사기 앞에서 만날 때마다 스몰토크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존재를 '아는 척' 하는 것은 무엇보다 타인을 향한 ‘존중’인 것이다.

_손화신은 에세이 <나를 지키는 말 88>의 저자다. 스피치 모임을 10년 동안 진행해오며, 진정한 말은 침묵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대로 된 한 마디’를 하기 위해 말의 뿌리인 침묵 안에서 우리가 무엇을 키워나가야 하는지를 이야기한다. 현직 음악담당 기자이며, 길스토리 프로보노이자 카카오 브런치 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글 쓰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 브런치 주소: brunch.co.kr/@ihearyo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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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 11 Jul 2018 12:23:10
<![CDATA[칭찬의 자급자족]]>
칭찬의 자급자족
글 : 손화신 (작가)
당신이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당신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 로마 철학자 세네카
나야 말로 내가 의지 할 곳이다. 나를 제쳐놓고 내가 의지할 곳은 없다. 착실한 나의 힘보다 더 나은 것은 없다.
- 법구경
퀴즈 하나. 인간이 산업화를 거치면서 잃어버린 것은? 퀴즈 둘. 간디가 물레를 돌렸던 이유는? 퀴즈 셋. 당신이 가끔 이유 없이 불안한 이유는?
정답을 한 단어로 말하자면 바로 '자급자족'이다. 과거 인간은 수렵과 농경으로 자신이 먹을 음식과 입을 옷을 자급자족했다. 하지만 산업화가 전개되며 그 능력을 상실했고 기계의 부품으로 전락했다. 노동력을 활용해 돈을 벌고 번 돈을 음식으로 다시 바꿔야 배를 채울 수 있게 되면서 우리는 일자리를 잃는 것만으로도 삶이 와르르 무너질 수 있는 나약한 존재가 됐다. 그럼 간디가 밤낮으로 물레를 돌렸던 이유는? 그건 간디가 실 짜는 게 취미여서가 아니라 자급자족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상징적 행위였다. 자급자족이 곧 인간 존엄의 회복이니까. 끝으로 당신의 이유 없는 불안, 그것은 스스로를 다독이는 칭찬의 자급자족이 부족해서다.
자급자족한다는 것은 강하다는 뜻이다. 진정한 '어른'이란 스스로를 보살 필 줄 아는 사람, 감정의 영역까지도 자급자족할 줄 아는 사람이다. 우리에겐 아빠가 필요하고 엄마가 필요하고 친구가 필요하고 선생님도 필요하지만 이들이 곁에 있어주지 못할 때도 많다. 그럴 때 스스로에게 아빠, 엄마, 친구, 선생님이 되어 필요한 위로들을 자급자족한다면 흔들리지 않는 내면을 가질 수 있다. 미국의 사상가 겸 시인인 랄프 왈도 에머슨은 이것을 '도구상자'라고 표현했다. 자신의 내면에 모든 게 고루 갖춰진 도구상자가 구비돼 있어야 하며 필요할 때 즉각 도구를 꺼내어 스스로를 돌봐야 한다는 것이다.
도구상자에서 '칭찬'은 필수 항목이다. 칭찬을 내부에서 자체 공급하지 못하고 외부 조달에만 의존한다면 그 마음엔 안정감이 생기기 힘들다. 우리는 누군가가 물을 주지 않으면 홀로 시들어버리는 온실 속의 꽃이 되어선 안 된다. 내가 나를 칭찬해줘야 한다.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칭찬은 탄산음료와 같아서 마시면 시원하고 짜릿하지만 마실수록 갈증을 일으킨다. 그러니 칭찬도 잘 '견뎌내야' 하는 것이다. “슬픔을 견디듯 기쁨도 잘 견디게 해주소서”라는 기도문처럼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결국 양날의 검이기에 경계할 필요가 있다. 내가 무언가 멋진 일을 했을 때 누군가가 칭찬해주지 않으면 섭섭하고 심지어 울적해지는 것. 이런 감정을 경계해야 한다. 남의 칭찬을 무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스스로 하는 칭찬을 더 기쁘게 느끼는 일. 이것은 언젠가 내게 저평가와 비난의 때가 오더라도 똑같은 무덤덤함으로 견딜 수 있게 해준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란 말을 좋아한다. 열심히 노력하면 좋은 일이 생긴다는 뜻으로 많이 해석되지만, 나는 이 말이 ‘자기 스스로를 귀히 여겨야 하늘도 그 사람을 귀히 여겨 대접해준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스스로 돕는 자는 인생의 주도권을 자신이 쥐고 있다. 반면 남으로부터 칭찬받길 기다리는 사람은 인생의 주도권을 그 사람 손에 넘긴 것과 다름없다.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보다 내가 나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 그런 사람을 보면 괜히 믿음이 간다.
* 손화신 작가의 에세이 <나를 지키는 말 88>에 실린 글입니다.

_손화신은 에세이 <나를 지키는 말 88>의 저자다. 스피치 모임을 10년 동안 진행해오며, 진정한 말은 침묵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대로 된 한 마디’를 하기 위해 말의 뿌리인 침묵 안에서 우리가 무엇을 키워나가야 하는지를 이야기한다. 현직 음악담당 기자이며, 길스토리 프로보노이자 카카오 브런치 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글 쓰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 브런치 주소: brunch.co.kr/@ihearyo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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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 6 Jun 2018 12:1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