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도성]]> <![CDATA[Gilstory - Challenge for the Unlimited Possibilities! > 한양도성]]> 한양도성]]> 한양도성 http://gil-story.com 제공, All rights reserved.]]> Mon, 24 Feb 2020 16:36:33 Mon, 24 Feb 2020 16:36:33 <![CDATA[한양도성 오디오 가이드 1_성북 구간]]>
한양도성 오디오 가이드 1_성북 구간

숨 쉬듯 천천히, 그렇게 길을 걷던 때가 언제인가요?

매일 다람쥐 쳇바퀴 돌듯 그렇게 걷고 있는 아스팔트 길 위에서는
나만의 가치를 차분하게 느낄 수 있는 길을 찾기가 점점 더 힘이 듭니다.

그래서인지 언젠가부터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나는 길,
들여다 볼수록 새로워지는 길,
나도 모르게 느리게 걷는 길에 자꾸 눈이 갑니다.

몇 백 년 전 지어진 집에 여전히 사람이 살고 있고,
건물과 건물 사이 남겨진 옛 길의 흔적까지 남아있는 곳.

성돌 틈으로 뚫고 나온 나무 뿌리와
여장 위로 솟은 수북한 이끼들,
그리고 그 곁에 옹기종기 모인 오색 지붕의 마을들.

우리가 잊고 살아왔던 그 시간들을 찾아서,
이곳, 한양도성을 걸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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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 6번 출구.
3번 마을버스를 타고 북정마을 꼭대기에서 내립니다.

엄마 품처럼 평안한 북정마을을 돌아보시다가 고개를 들어 보면
파도가 굽이치듯 내려가는 한양도성, 백악구간을 발견하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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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의 출발점,
북정마을을 시작으로 한양도성을 벗삼아
성곽아래, 장수마을까지 걸어가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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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정마을 노인정에서 골목길을 따라 올라가면
와룡공원에서 성곽 밖으로 이어진 계단을 따라 걸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한양도성은 안과 밖의 모습이 참 다른 풍경입니다

땅 밑으로 묻혀있는 듯 땅에 닿은 성벽의 안쪽 길,
그곳을 걸으며 성 밖을 내다보면
칸칸이 다른 풍경을 보며 걸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밑단부터 더 높게 드러나 있는 성벽의 바깥쪽 길,
그 길에선 성돌을 짚어가며 마을과 숲길을 끼고 걸을 수 있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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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성 밖의 성벽을 따라 내려오다 보면
작은 정자가 있는 성북동 쉼터에 도착합니다.

여기서부터는 한양도성이 유실된 구간을 지나게 될 텐데요,
끊어진 성벽을 끼고 그대로 걸어 내려오면 차도가 나오고,
거기서 '혜화문'이라는 이정표가 보이는 골목 길로 들어섭니다.

민가와 건물 벽에 군데군데 남아있는 한양도성의 모습들이
다시 시작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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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신고등학교, 그 높은 시멘트 담벼락 밑 둥에
올망졸망한 돌들이 남아 있는 것을 발견했나요?

그래도 끊어진 듯 이어지는 이 길을 따라가다 보면,
그 끝에는 혜화문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혜화문의 원래 이름은 '홍화문' 이었는데요,

창경궁이 건립되고 나서는 그 정문과 이름이 겹쳐서
'은혜를 베풀어 교화 한다'라는 뜻의 혜화문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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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제 혜화문에서 나와 낙산구간으로 이어지는 장수마을로 가볼까요?

차도를 건너
한양도성 낙산구간 안내판이 서있는 계단으로 올라가 봅니다.

여기서부터는 성의 외벽,
한양 도성의 몸체라 할 수 있는 체성을 더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원래 한양도성을 처음 축조할 때
산지는 석성으로 쌓고,
평지는 토성으로 쌓았다고 합니다.

그러다 세종 이후, 시기별로 보수를 하면서 돌의 모양이 달라진 거죠.

자연석을 그대로 사용한 게 태조 때였고,
완두콩 알맹이처럼 옹기종기 모인 거무스름한 돌은 세종 때,
석공이 영혼을 끌어 모아 다듬은 듯 네모 반듯한 것이 숙종 때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 돌들은 다 누가 쌓았을까요?

태조 5년, 궁궐과 종묘사직을 건축한 이후에
전국의 수십만 명이 넘는 백성을 동원해서 쌓았다고 합니다.

돌은 오로지 정과 끌 같은 소도구를 이용해
사람 손으로 직접 깎았다고 하는데요...
성돌 하나하나를 다듬어냈을 백성들의 마음을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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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여러 대를 거쳐 만들어진 성벽을 살피며 걷다 보면,
장수마을이라고 쓰여진 돌판을 만나게 됩니다.

이 돌판을 옆으로 두고, 장수마을을 지붕처럼 둘러싸고 있는 성곽을 따라
계속 올라가 보면 성 안으로 들어가는 암문에 도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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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문은
비밀리에 군사를 이동하거나
물자를 조달하기 위해 만든 문이라고 합니다.
평소에는 큰 돌로 입구를 막았다가 전쟁 중에만 사용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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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성 밖을 걷는 중이니, 성 안으로 들어가는 대신
'동네목수의 작은 카페'가 있는 장수마을 골목길로 내려가 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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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마을은 함께 모여서 와글와글했던
옛 골목길의 향수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성곽마을입니다.

이 마을에는 평상이 놓여있는 6개의 골목이 있습니다.
이 평상에서 마을 회의도 하고
가파른 언덕을 오르다 힘들면 누구든 쉬어갈 수 있다고 합니다.

마을을 둘러싸고 꿋꿋이 솟아있는 한양도성의 굳건함 덕분인지...
장수마을에서는 삶의 고단함보다는
정답고 따뜻한 미래를 기대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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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장수마을의 할머니 쉼터가 보입니다.
잠시 앉았다 갈까요? 다리도 좀 풀고, 물도 좀 마시고요.

바람이 불면 눈도 한번 감아보세요.
이런 바람 길은 평소에 만나기 쉽지 않습니다.

어쩌면 북악산 자락을 따라 내려온 산의 기운이
한양도성을 타고 내려오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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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 동안 이곳을 거쳐 갔던 수많은 사람들을 상상해 봅니다.

과거 시험 한번 보겠다고 굽이굽이 이어진 문경새재 건너오던 선비들,
이 다리에서 저 다리로 물건을 팔며 서신도 전해주던 봇짐꾼들,
어떤 볼일들로 성 안과 밖으로 오가던 백성들,
그 모든 여객들이 지친 몸을 안고
저 멀리 보이는 성벽 하나로 안도했을 그 모든 순간들을 말입니다.

그 시간이 품은 이야기들이 한양도성을 따라 흐르고 흘러서
지금 바로 여기 이 순간까지 우리에게 이어져 왔음을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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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언제나 그랬습니다.
길이 아닌 곳도 사람들이 드나들면서 길이 되었고,
아무도 찾지 않으면 그 길은 사라졌습니다.

한양도성의 길도 우리가 오래오래 걸어야 사라지지 않고
우리 곁에 남아 있지 않을까요?

수많은 이야기들을 담아내며 변함없이 서울을 지키고 있는 한양도성,
지금도 우리 곁에서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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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 7 Nov 2017 14:00:45
<![CDATA[한양도성 오디오 가이드 2_낙산 구간]]>
한양도성 오디오 가이드 2_낙산 구간

< 한양도성, 더불어 사는 세상 >
* 코스 : 낙산 공원 – 흥인지문 –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 광희문 - 장충체육관


시간의 무게를 견딘 것들이 있습니다. 오래되어서 형태를 알아볼 수는 없지만, 남겨진 흔적에서 존재의 무게를 느낄 수 있습니다. 거기엔 오랜 침묵으로 깊어진 이야기가 스며 있습니다. 이어지고 끊어진 길 한양도성은 모두에게 열린 길이며 침묵의 길입니다. 과거의 길이 이어져 오늘 내 삶으로 들어온 길입니다. 하늘과 땅 그 사이에 서 있는 사람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늘 지나치는 평범한 길이 침묵을 깨고 말을 시작한다면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요.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이 걸어가며 쏟아낸 삶의 희로애락이 아닐까요. 저는 지금부터 한양도성의 길을 안내하고자 합니다. 지하철 혜화역 2번 출구에서 시작해 동대입구역 5번 출구에서 끝나는 길입니다. 탄생과 소멸이 공존하는 도시 한복판을 가로질러 가볼까 합니다.

사적 제10호인 한양도성은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조선시대 성곽으로 태조가 서울로 도성을 옮기면서 건립한 것입니다. 한양도성 순성길은 서울의 낙산, 남산, 인왕산, 백악산을 잇고 흥인지문, 숭례문, 돈의문, 숙정문을 잇는 총 18.6km의 길입니다. 그럼 지금부터 한양도성 순성길을 걷겠습니다.

지하철 4호선 혜화역 2번 출구로 나와 마로니에 공원으로 들어섭니다. 아르코예술극장과 아르코미술관 사잇길로 걸어오다가 막다른 길목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틉니다. 첫 번째 왼쪽 언덕길이 낙산공원으로 향하는 곳입니다. 낙산은 낙타의 등을 닮아 완만한 능선을 가졌습니다. 이곳은 이화동 벽화 마을이 시작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낙산 공원에 도착하면 전시관 오른편 계단으로 올라갑니다. 낙산공원 놀이 광장에 도착해서 잠시 숨을 고릅니다. 마치 산 정상에 오른 기분이 들 겁니다. 언덕길을 오르지 않고 낙산공원에서부터 걷고 싶다면 동대문역 3번 출구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낙산 종점에서 내리면 바로 이곳에 도착합니다.

공용화장실쪽인 ‘낙산 성곽 서길’로 방향을 잡습니다. 오른쪽 샛길은 이화 벽화마을로 가는 길이니 성벽이 난 왼쪽 길로 걸어갑니다. 성벽 근처에 서면 도시가 한눈에 보입니다. 고층 빌딩과 건물로 빽빽한 풍경을 바라보면 시끄럽고 복잡한 현실에서 한발 떨어진 시선을 갖게 됩니다. 내 삶에서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간직해야 할지 돌아보게 합니다. 이 사색의 시간은 길을 걷는 내내 누릴 수 있는 또 다른 만남입니다.

다시 길을 나섭니다. 걷다 보면 암문을 만나게 되는데 ‘한양도성 외부 순성길’ 푯말이 암문 가까이에 있습니다. 작은 암문을 통과해서 성의 외벽을 따라 걷습니다. 돌과 돌이 정교하게 쌓인 성벽은 옛 선인들의 장인정신과 더불어 인내의 시간을 생각하게 합니다. 뿌리 깊어 보이는 나무 덕분에 이 성곽길은 숨겨진 안뜰처럼 고요하고 아늑하게 다가옵니다. 이 길은 봄, 여름, 가을, 겨울마다 자연이 순환하면서 채워지고 비워집니다. 오래 머물고 싶은 곳이지만 곧 시끄러운 도심 한복판으로 들어서게 됩니다.

버스가 오가는 복잡한 도로변에 흥인지문이 있습니다. 흥인지문은 옛날 한양의 주요 도로를 잇는 출입문입니다. 흥인지문에서 청계천 방향으로 걸어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로 향합니다. 성벽이 끊어진 거리를 두발로 걸어보는 건 우리가 잃어버렸던 민족의 정서를 찾는 과정인지도 모릅니다. 사라진 길은 스스로 숨은 게 아니니까요. 청계천이 흐르는 오간수교를 건너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A 알림터로 가봅니다. 알림터 아래 성벽의 일부가 담장처럼 둘려진 이간수문이 있습니다. 오래전 이곳으로 청계천 물길이 흘러갔을 것입니다. 과거의 모습을 상상해보면 내가 서 있는 장소의 의미가 확장되어 다가옵니다.

이곳을 빠져나와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살림터로 걸어갑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 가로지르면 살림터 5번 입구로 나오게 됩니다. 서울 메트로 빌딩 앞에 있는 횡단보도를 건너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2번 출구로 걸어갑니다. 한양 공업 고등학교 사거리까지 올라가면 광희문이 있습니다. 찬란하게 빛나는 뜻을 가진 광희문은 당시 각종 역병과 재해로 죽은 사람을 나르던 시구문이었습니다. 사연 많은 성문 안으로 들어가 천장을 바라보면 거대한 두 마리 용이 하늘을 휘감은 그림을 볼 수 있습니다.

광희문에서 성의 외벽을 끼고 직진합니다. 광희문 교회를 지날 때쯤 다시 성벽이 끊깁니다. 그리고 장충동 주택단지로 이어집니다. 이때는 한양도성 목멱산 표지판을 보고 걸어가야 길을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장충단로8길로 들어서서 첫 번째 왼쪽 골목으로 방향을 틉니다. 이때도 한양도성 목멱산 표지판을 살펴보고 걸어야 합니다. 자연도 성벽도 사라진 길은 오늘을 사는 사람들의 집으로 가득합니다.

이야기는 만남과 헤어짐의 수많은 반복으로 이루어집니다. 사람들과 얽힌 애환이 담긴 내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가 있다는 건 ‘위로’입니다. 그러기에 걸어서 이웃에게 갈 수 있는 ‘사람이 사는 마을’이 반갑게 느껴집니다.

주택단지를 벗어나면 큰 도로와 만납니다. 길 건너 오른 편에는 장충체육관이 보이고 왼편에는 다산동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가 보입니다. 다산동 마을로 들어서면 옥수수 알 같은 자잘한 돌들로 이루어진 성벽을 볼 수 있습니다. 시멘트 벽이 아닌 돌과 돌이 만나 어우러진 성벽은 사람의 온정이 느껴집니다. 무겁고 단단한 돌을 비슷한 크기로 쌓아 올리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쉽게 쌓아 올린 성벽이 아니기에 시간의 무게와 더불어 옛사람들의 노동이 귀하게 다가옵니다. 그리고 성벽을 보존하지 못한 아쉬움이 듭니다.

성벽을 따라 걷다 보면 공영주차장이 나옵니다. 성벽을 끼고 계단을 오르면 풀과 흙냄새로 가득한 숲 속과 만납니다. 도시에 이런 숲이 있었나 싶을 만큼 반가운 길입니다. 자연 속에서 마음껏 호흡하며 걷다 보면 어느새 성벽은 끊어집니다. 그리고 도보 정면에 ‘서울 한양도성 순성 길‘ 안내판이 있습니다. 나무들로 빽빽한 숲은 여기까지 잘 걸어왔다고 주는 마지막 선물 같습니다. 숲길이 끝나면 국립극장으로 이어지는 ‘반얀트리 호텔’이 나옵니다. 호텔 정문 좌측 인도를 따라 걷다 보면 ‘남소문 터 비석’이 있습니다. 터만 남은 장소를 잠시 상상으로 그려봅니다. 이제 장충체육관 쪽으로 내려가면 동대입구역 5번 출구에 도착합니다. 낙산공원에서 시작한 여정이 이제 끝났습니다.

낯선 길은 처음 가보는 길입니다. 새로운 길은 아직 가보지 못한 길이기도 하지만, 마음과 생각에 따라서 매번 새롭게 걸을 수 있는 길이기도 합니다. 함께 걸어온 이 길이 늘 새로운 길이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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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 7 Nov 2017 14:00:10
<![CDATA[한양도성 오디오 가이드 3_남산 구간]]>
한양도성 오디오 가이드 3_남산 구간

< 한양도성, 조선의 옛길을 걷다 >
* 코스 : 남산공원 – 목멱산(남산) 구간 - 숭례문


길을 걷는 건 순례이기도 합니다. 머물렀던 자리를 내어주면서 흘러갑니다. 새롭게 만나는 것에 감동하며 그것이 나에게 말을 걸도록 마음을 엽니다. 서서히 나 중심적인 삶에서 벗어나 타인에게로 시선을 확장합니다.

세월을 견디고 남아있거나 사라져버린 한양도성 성곽길을 걷는 건 인생을 사는 것과 비슷합니다. 알 것 같지만 알 수 없고, 보이는 것 같지만 보이지 않는 게 삶이니까요. 그래도 다행인 건 선배들이 남기고 떠난 발걸음의 흔적입니다. 우리가 오늘 한양도성 성곽길을 걸을 수 있는 건 이전에 이 길을 아끼며 걸었던 사람들 덕분입니다. 저도 이 길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한양도성 순성길을 안내하고자 합니다. 지하철 동대입구역 6번 출구에서 출발해서 서울역 3번 출구에서 끝나는 길입니다. 도심 속에 남아있는 조선의 길을 새롭게 발견하면서 걸어보면 어떨까요.

지하철 동대입구역 6번 출구로 나와 왼편에 있는 장충단 공원으로 들어섭니다. 공원 입구에 바로 ‘수표교’가 보입니다. 수표교는 조선시대 청계천을 가로질러 쌓은 돌다리인데 청계천 복개공사를 하면서 이곳으로 옮겨놓았습니다. 수표교를 건너면 남산으로 가는 버스정류장이 나옵니다. 국립극장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가도 되지만 옛 터가 남아있는 장충단 공원을 가로질러 국립극장까지 걸어가도 그리 멀지 않습니다.

국립극장 정문 앞에 도착하면 한양도성 순성길 표지판을 확인하고 남산공원 입구 방향으로 걷습니다. 남산 숲길은 높이 솟은 나무 사이로 산책로가 잘 닦여있습니다. 걷다 보면 발밑에 도로를 가로질러 서울 한양도성 순성길이라고 쓴 흰색 페인트 글씨가 보입니다. 왼편으로 고개를 돌리면 도로 아래 성벽이 있고, 오른 편으로 고개를 돌리면 산 위로 성벽이 이어집니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성벽이 끊어진 겁니다. 이제부터는 산 위로 이어진 나무계단을 밟고 올라갑니다.

옛 모습 그대로 보존이 잘 되어있는 성벽이 바로 이 길입니다. 성벽을 자세히 관찰하면 돌이 다른 모양으로 쌓인 부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태조, 세종, 숙종, 순조 때마다 성벽을 쌓는 방식이 달랐다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성벽은 돌이라는 자연과 돌을 깎아 쌓은 인간의 손길이 어우러진 구조물입니다. 자연이 빚은 돌로 새로운 걸 창조해낸 인간의 위대함을 성벽을 보면서 깨닫습니다.

가파른 길을 올라 전망대에 서서 지나온 길을 내려다보면 숨이 탁 트이는 정취를 만끽할 수 있습니다. 다시 한 길로 뻗은 숲길을 걷다 보면 곧 여러 갈래로 뚫린 아스팔트 길과 만납니다. 버스 정류장을 지나 남산타워 전망대 방향으로 걸음을 옮겨봅니다. 여기서부터는 성벽이 어깨 높이로 나란히 걸을 수 있습니다. 거대한 성벽이 아닌 오를 수 있는 담 같아 정겹게 느껴집니다.

남산 팔각정 뒤편으론 목면산 봉수대 터와 복원된 봉수대가 있습니다. 봉수는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로 급한 일을 전달했던 통신수단입니다. 순성길은 봉수대 왼편, 남산 도서관 방향으로 이어진 내리막길입니다. 이제 올라온 만큼 내려갑니다. 나무계단에 이어서 돌길이 나오는데 자세히 보면 구간마다 돌의 크기가 다릅니다. 시대마다 달랐던 성벽 축조기술을 바닥에 형상화한 듯 보입니다.

오래전 성벽은 도시 안과 밖의 경계를 정하고 외부의 침입을 막아주는 안전장치였습니다. 사람들은 성 안과 밖을 넘나들면서 떠도는 이야기를 전달했을 것입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 몸 안에 쌓이는 건 이야기입니다. 사람이 산다는 건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이 땅에 남기는 게 아닐까요. 어떤 이야기를 남길까 생각하다보면 어떻게 내 삶을 살아갈지를 고민하게 됩니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걷다 보면 짧지만 존경스러운 이야기를 남기고 떠난 안중근 의사 동상과 만나게 됩니다.

안중근 기념관을 그냥 지나치지 말고 동상 오른 편에 있는 기념관으로 들어가 더 많은 그의 이야기와 만나보는 건 어떨까요. 기념관을 나오면 김구 선생님을 기리는 ‘백범 광장’으로 발길을 옮깁니다. 바닥을 보면 성벽은 사라졌지만 그 흔적을 남긴 돌이 길을 안내합니다. 멀리 김구 선생님의 동상도 보이고 끊어졌던 성벽도 보입니다. 복원된 성벽이 반갑기도 하지만 돌에 시간이 깃들지 않아 아쉽기도 합니다. 복원보다 보존의 소중함을 알게 해주는 시간입니다. 이 성벽을 따라 내려오면 힐튼 호텔이 보이는 도심과 만나게 됩니다. 오른 편으로 길을 잡고 걷다가 남산공원 입구 앞에서 횡단보도를 건넙니다. 그리고 다시 왼편 횡단보도를 건너 숭례문 방향으로 내려가다 보면 사라졌던 한양도성 성벽이 어깨 높이에서 낮게 이어집니다. 성벽이 숭례문으로 길을 안내합니다.

국보 제1호인 숭례문은 조선 태조 7년에 한양도성 남쪽 대문으로 세워졌습니다. 2008년에 훼손되었다가 2013년에 복구되었는데 이때 좌우 성곽도 함께 복원되었습니다. 때를 잘 맞추면 숭례문 앞에서 진행하는 파수꾼 교체 의식과 순라군 군례 의식을 볼 수 있습니다. 숭례문으로 가까이 가서 홍예문 천장에 다채롭게 그려진 두 마리의 용 그림도 확인해보면 좋습니다.

발길을 돌려 서울역방향으로 내려가다가 처음 만나는 신호등 앞에 서면 한양도성 순성길 표지판이 보입니다. 이전에 보이지 않았던 게 보이고 그것이 기쁘다면 인연이 깊어졌다는 신호입니다. 횡단보도를 건너 오른 편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남쪽 연못이었던 ‘남지 터’ 비석과 만납니다. 성 밖에 있었던 남지 터에 서서 숭례문을 바라봅니다. 오래전 사람들은 이 길을 어떤 마음으로 걸었을지 상상해보면서 도착지점인 서울역 3번 출구로 내려갑니다.

‘사람이 사는 마을’에서 벗어나 걸었던 길은 다시 마을로 이어집니다. 길은 언제나 다시 사람이 사는 곳으로 돌아오는지도 모릅니다. 순례의 여정을 마치고 새로운 마음으로 새 삶의 이야기를 이어가도록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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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 7 Nov 2017 13:59:17
<![CDATA[한양도성 오디오 가이드 4_성벽 유실 구간과 인왕산 구간]]>
한양도성 오디오 가이드 4_성벽 유실 구간과 인왕산 구간

< 한양도성, 잃어버린 길 그리고 잊힌 시간들 >
* 코스 : 남지 터 - 소덕문 터 - 정동길 - 돈의문 터 – 행촌동 성곽 마을 – 인왕산 구간


서로 다른 문명이 만나 충돌하다 보면 훼손되거나 사라집니다. 그러나 바람처럼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 곁에 존재하는 게 있습니다. 문명 또한 눈에서 사라지더라도 분명 존재하는 게 있는데 그것은 ‘정신’입니다. 한양도성 순성길은 역사 속에서 유실되고 훼손되었습니다. 하지만 사라진 성곽 주변의 흔적을 더듬어보면 그 시대의 정신이 여전히 살아서 숨 쉬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번에 걷는 길은 성벽 유실 구간과 인왕산 구간입니다. 지하철 서울역 3번 출구에서 시작해서 경복궁역 2번 출구에서 끝나는 길입니다. 성벽이 유실되었더라도 새로운 마음과 시선을 가지고 걷다 보면 잊지 말아야 할 것들과 만나게 됩니다. 지금부터 그 길을 안내하겠습니다.

서울역 3번 출구에서 직진하면 도로변 끝 오른쪽에 남쪽 연못이었던 ‘남지 터’ 비석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대한상공회의소 건물 방향으로 길을 건넙니다. 성벽에 있는 표지판에는 조선 태조 5년에 축성된 한양도성 옛 성벽을 2005년에 복원했다고 쓰여 있습니다. 건물 앞이라서 성벽을 낮은 담장처럼 복원한 것 같습니다. 이 성벽을 따라 ‘돈의문 터’ 방향으로 걸어갑니다.

길 끝에서 고가도로가 보이는 찻길과 만나는 오른편 길가에 ‘소덕문 터’ 비석이 있습니다. 소덕문은 서울의 서소문으로 태조 5년에 세웠다가 1941년에 일제가 철거한 문입니다. 그곳에서 길 건너편을 바라보면 평안교회가 보입니다. 중앙일보 건물 앞에서 횡단보도를 건너 평안교회와 경남은행 사잇길로 걸어갑니다. ‘한양도성 돈의문 터’ 표지판을 확인하고 걸어가면 오른 편에 배재빌딩이 보이고 바로 배재공원과 만납니다. 배재공원은 1885년 미국 선교사 아펜젤러가 최초로 서양문물을 소개한 신교육과 신 문화의 발상지인 배재학당 옛 터입니다. 공원을 가로질러 나와서 정동제일교회 앞까지 걸어갑니다.

정동제일교회는 배재학당 교장이었던 아펜젤러가 1885년 설립한 한국 최초 개신교 교회입니다. 이곳은 1918년 한국 최초로 파이프 오르간이 설치되었고 최초 서양식 결혼식도 열렸습니다. 일제강점기 때 독립운동을 했던 이화여고생 유관순의 장례식이 거행된 곳이기도 합니다. 정동제일교회 맞은편에는 정동극장이 있고 극장 바로 옆 골목으로 들어가면 덕수궁 중명전이 있습니다. 이곳은 1899년도에 지어진 황실 도서관입니다. 고종이 1904년 지금의 덕수궁인 경운궁 화재 이후 1907년 강제 퇴위 될 때까지 머물렀습니다. 1905년 을사늑약을 체결한 비운의 장소이기도 합니다.

정동 거리는 근대유산 1번지로 당시 최신식 교육기관과 외국 대사관, 언론기관이 자리하면서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졌던 외교와 문화의 중심지였습니다. 서로 다른 문명이 충돌하고 흡수되어 태어난 새로운 가치관은 사람들을 변화시켰고 새로운 문화가 형성되었습니다.

성벽이 사라진 이 거리에서 옛 성벽을 기억하는 게 있다면 500년 세월을 버텨낸 정동 회화나무가 아닐까 싶습니다. 정동 캐나다 대사관 앞에 있는 회화나무는 높이 17m, 지름 5.16m의 거목입니다. 2003년 캐나다 대사관을 신축할 때는 나무뿌리를 고려해서 건축 디자인을 변경했다고 합니다. 정동 거리는 역사와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을 배우는 길이기도 합니다.

정동 사거리에 다다르면 신호등 건너편에 목재로 벽을 세운 ‘돈의문 터’가 보입니다. 돈의문 터를 지나 언덕길을 오르면 강북삼성병원 주차장이 나오는데 그 입구에 ‘경교장’이 있습니다. 경교장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마지막 청사입니다. 1949년 백범 김구가 저격을 받아 서거할 때까지 3년 7개월을 머물렀던 곳입니다. 2005년 사적 제465호로 지정된 이곳은 건물 내부 모습이 복원되어 있습니다.

백범 김구가 쓴 ‘나의 소원’이라는 글은 늘 우리의 정신을 일깨웁니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부력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 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한양도성도 우리나라를 아름다운 나라로 만들어주는 문화유산입니다. 흔적을 더듬어가면서 우리가 잃어버린 정신이 없는지 찾아봐야 합니다.

경교장을 나와 왼쪽 길로 계속 올라갑니다. 서울시 복지 재단 건물을 끼고 오른 편에 한양도성 인왕산 정상 표지판이 있습니다. 표지판을 따라 걸어가면 월암근린공원이 나오고 공원을 가로지르면 ‘어니스트 베델 집터’ 표지판이 나옵니다. 영국인 베델은 1904년 조선에 와서 그해 7월에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하고 항일 언론활동을 지원했습니다.

공원을 나오면 좁은 주택단지 골목길이 이어집니다. 막다른 곳까지 오면 양 갈림길을 만나는데 오른쪽 길로 방향을 잡은 뒤 바로 왼쪽 길로 걸어갑니다. 길을 다 빠져나오면 인왕산으로 올라가는 사직 근린공원 힐링 숲 입구가 보입니다. 이곳은 행촌동 성곽 마을로 성곽의 내벽과 외벽을 다 볼 수 있는데 먼저 외벽을 따라 걸어보는 것도 좋습니다. 외벽을 따라 걷다가 암문이 나오면 문으로 들어가서 이제부턴 내벽을 따라 걸어야 인왕산으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양옆으로 성벽과 나무가 길게 늘어선 길을 걷다가 한양도성 탐방로 흙길로 발걸음을 내딛습니다. 오르막길이라 꽤 힘이 드니 단단히 마음을 먹어야 합니다. 성곽의 외벽을 끼고돌다가 인왕산 정상 방향으로 다시 길을 잡고 성벽 안으로 들어옵니다. 탐방로 주변으로 기차바위, 치마바위, 범바위 같은 자연이 만든 바위를 볼 수 있습니다. 비와 바람이 깎은 바위와 사람의 손길로 깎아 쌓아올린 성벽이 어우러진 산의 정취는 정상에서 더욱 상승합니다. 인왕산 정상에 올라 산 아래를 굽어보면 청와대와 경복궁, 광화문 일대는 물론 청운동 효자동의 낮은 주택까지 눈에 들어옵니다. 끝없이 아래로 뻗은 성곽도 사람의 손으로 일군 거대한 문명으로 장대한 풍경을 선사합니다.

이제 윤동주 문학관 방향으로 내려갑니다. 중간에 양 갈림길이 나오면 창의문으로 직진합니다. 중간에 나무 문으로 막힌 곳이 나오는데 야생동물의 성곽 출입을 막기 위한 것이니 문을 열고 들어가 다시 문을 닫으면 됩니다. 나무계단을 밟고 성곽의 외벽을 따라 내려갑니다. 성곽은 안보다 밖에서 볼 때 전체가 더 잘 보입니다. 그러고 보면 역사 또한 시간이 어느 정도 흘러가야 그때 일어났던 일들의 의미를 더 잘 헤아릴 수 있습니다. 나무계단이 끝나면 이제 성벽 안으로 들어와 걷습니다. 어느새 산에서 내려와 도로에 발을 딛게 됩니다. 길을 건너 표지판을 보고 창의문 방향으로 걷습니다. 곧 윤동주 문학관과 만납니다.

시인 윤동주는 짧은 인생을 보냈지만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민족시인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그의 시에는 일제강점기 시절의 아픔이 담겨있습니다. 윤동주가 쓴 시 ‘새로운 길’은 성곽길을 걸으면서 읊으면 더 깊이 있는 걸음으로 우리를 안내합니다.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비록 같은 길이라도 새로운 마음과 시선을 가지고 걷는다면 우리의 길은 늘 새로운 길일 것입니다. 윤동주 문학관을 나와 버스를 타고 지하철 경복궁역 2번 출구에서 내립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 오늘의 길을 정리하고 내일 걸어갈 길을 새롭게 꿈꾸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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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 7 Nov 2017 13:58:40
<![CDATA[한양도성 오디오 가이드 5_백악 구간]]>
한양도성 오디오 가이드 5_백악 구간

< 자연을 품은 성곽 도시, 한양도성 >
* 코스 : 윤동주 문학관 – 창의문 – 북악산 구간 – 숙정문 – 와룡공원 - 혜화문


한양도성 순성길 백악 구간은 마을과 산과 숲을 가로지르는 길입니다. 성벽 길은 안과 밖, 중심과 외곽을 바라보게 하고 어제와 오늘의 삶을 생각하게 합니다. 돌 하나가 어딘가에 그냥 놓여있다면 그것은 돌일 뿐입니다. 하지만 돌과 돌이 만나 쌓여간다면 그것은 단순한 돌이 아닌 튼튼한 성벽이 되고 역사가 됩니다. 성질은 변하지 않지만 이름이 바뀌고 역할이 달라집니다. 혼자가 아닌 ‘함께’ 이룬, 우리가 간직해야 할 문화유산입니다.

한양도성 순성길에는 흥인지문, 숭례문, 돈의문, 숙정문, 이렇게 사대문과 광희문, 소의문, 창의문, 혜화문 이렇게 사소문이 있습니다. 지하철 경복궁역 2번 출구에서 시작해서 한성대입구역 5번 출구에서 끝나는 이번 길은 숙정문과 창의문 혜화문을 볼 수 있는 구간입니다. 이제 마지막 순성길을 안내하겠습니다.

지하철 경복궁역 2번 출구에서 버스를 타고 윤동주 문학관에서 내립니다. 버스 정류장 바로 옆에는 최규식 경무관 동상이 있습니다. 이분은 1968년 북한 무장 공비 서른한 명이 청와대를 기습 공격했을 때 격렬한 총격전으로 순국했습니다. 백악 구간은 두 나라로 갈라진 민족의 아픈 상처가 담긴 곳이기도 합니다. 창의문 방향 표지판 근처에는 청계천 발원지라는 비석도 세워져있습니다. 자하문이라는 별칭으로 더 많이 불리는 창의문은 인왕산과 백악산 사이에 있는 문으로 사소문 중 유일하게 조선시대 지어진 문루가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창의문 문루에 서서 한양도성의 옛 모습을 상상해봅니다. 백악 구간은 군사보호구역이어서 신분증을 제시하고 출입증을 받아야 합니다. 개방시간도 정해져있어 3월부터 10월까지는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11월에서 2월까지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입니다.

북악산 출입증을 목에 걸고 길을 걷겠습니다. 두 사람이 손잡고 걸을 수 있을 정도의 폭으로 길게 뻗은 길은 돌계단과 나무계단이 놓여있습니다. 올라가느라 숨이 차오를 때쯤 돌고래 쉼터와 만납니다. 이곳에서 잠시 숨을 고르다가 길을 나섭니다. 낮게 깔린 성벽 위로 풍경을 바라보다가 성벽에 뚫린 작은 구멍 안으로 바라보면 풍경이 조금 색다르게 다가옵니다. 자연이 만든 창으로 세상을 보는 느낌입니다. 조금 힘겨울 때쯤 백악 쉼터와 만납니다. 멀리 보이는 인왕산 성곽길과 부암동 주택가를 바라보며 쉼을 누리다가 다시 길을 걷습니다. 북악산 정상인 백악마루에 도착하면 북악산의 옛 이름인 백악산 342m라고 쓰인 표지석이 있습니다. 자연이 빚어낸 우뚝 솟은 남정 바위도 볼 수 있습니다.

백악마루를 지나면 특이한 소나무를 하나 만나게 됩니다. 몸통에 빨간 표식이 찍힌 1•21사태 소나무입니다. 빨간 표식은 1968년 청와대를 습격했던 무장공비들과의 총격전에서 소나무가 맞은 열다섯 발 총탄 자국입니다. 치열했던 총격전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이제 청운대까지 힘내서 걸어가 봅니다. 청운대 주변에서 꼭 살펴보아야 할 것은 성벽 돌에 새겨진 이름입니다. 성벽을 축조할 때 공사 책임자의 직책과 이름이 돌에 새겨져있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책임을 다해 성벽을 축조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돌에 새겨진 이름을 보면서 우리도 자신의 이름을 걸고 오늘을 살고 있는지 생각해봅니다.

청운대를 지나면 이제부턴 성의 외벽을 따라 걸어야 합니다. 성 밖으로 빠져나와 나무계단으로 내려갑니다. 성의 외벽을 따라 걷다 보면 암문이 나옵니다. 암문으로 들어가서 백악 곡성 표지판을 따라 걷다 보면 백악 촛대바위와 만납니다. 그리고 한양도성 북쪽 대문인 숙정문에 다다릅니다. 현존하는 도성의 문 가운데 양쪽으로 성벽이 연결된 건 숙정문이 유일합니다. 숙정문은 2층 누각이 먼저 보이는데 추녀마루 위에 여러 모양의 형상이 늘어서 있는 모습은 잠시 걸음을 멈추게 합니다. 숙정문의 누각이 아름답게 보이는 건 드넓은 하늘이 배경이 되어주기 때문일 것입니다.

숙정문을 나오면 와룡공원 쪽으로 방향을 잡습니다. 이 길은 걷는 내내 솔잎 향이 심신을 풀어줍니다. 둘러보면 온통 소나무로 무성합니다. 소나무는 땅이 척박하더라도 잘 자랍니다. 하지만 자라는 속도가 늦어 다른 나무들과 경쟁력이 약합니다. 그래서 떼 지어 모여 살기를 좋아합니다. 이곳은 소나무의 성질에 맞게 주변에 소나무를 많이 심어 보호하고 있습니다. 소나무와 성벽이 주는 ‘함께’라는 의미를 곱씹어 보면서 이 길을 빠져나옵니다.

와룡공원 방향으로 걷다 보면 말바위가 나옵니다. 이곳 전망대는 서울시가 선정한 우수 조망 명소니까 잠시 머물면서 주변 풍경을 둘러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말바위 안내소에서 출입증을 반납하고 와룡공원으로 계속 향합니다. 이 길은 산길입니다. 성벽이 보이지 않는 길을 가야 하니 표지판을 계속 확인하면서 걸어야 합니다. 길 초입에서 ‘취병’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식물을 소재로 만든 친환경 울타리입니다. 일제강점기 때 사라진 이 아름다운 울타리는 창덕궁 후원에 복원되어있습니다. 길을 잃을지도 모르는 산길에서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면 금세 길동무가 될 수 있습니다. 길을 물어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게 고맙게 느껴지니까요.

숲길을 빠져나오면 다시 성벽을 만납니다. 이때 암문으로 나가지 말고 ‘한양도성 혜화문, 낙산’ 표지판 방향으로 성의 외벽을 따라 걷습니다. 이 길은 성벽과 민가가 아주 가깝습니다. 성벽 옆에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이곳은 북정마을입니다. 북정마을이 있는 성북동에는 만해 한용운 심우장과 상허 이태준 가옥, 성북동 최순우 가옥이 남아있습니다. 이런 옛집이 더 많이 남아있었다면 오래전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많이 우리 곁에 머물렀을 것입니다. 훼손된 만큼 사라진 옛이야기가 아쉽게 다가옵니다.

성벽을 따라 걷다가 찻길이 나오면 서울과학 고등학교 후문 맞은편 방향으로 길을 건너 혜화문 표지판을 보고 골목길로 들어섭니다. 이 길의 성벽은 옛 방식으로 세운 돌 위에 학교 담장이 시멘트로 세워져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떤 구간은 성벽이 그대로 보존되어있어 과거 유물과 현대 건물이 공존하는 골목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길을 계속 걸어 한양도성 북동쪽 문인 혜화문에 도달하면 한양도성을 다 걸어본 셈이 됩니다. 혜화문을 둘러보고 지하철 한성대입구역 방향으로 걸어가면 바로 5번 출구에 도착합니다.

시간의 희생이 있어야 만나게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의 땀과 희생이 담긴 성벽을 따라 걷지 않았다면 한양도성 순성길의 역사와 의미를 발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오늘의 길이 과거의 길과 이어졌다는 걸 더 깊게 깨닫지 못했을 것입니다. 내 존재도 의미 없이 그냥 던져진 게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될 테고요. 소중한 문화유산에 담긴 정신을 이어받아 오늘 내 삶의 이야기를 새롭게 꿈꾸고 일구어가면 어떨까요. 오늘도 내일도 걸어가야 할 여러분의 길이 순성 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함께 한양도성의 길을 걸어주어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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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 7 Nov 2017 13:57:24
<![CDATA[김남길과 함께 하는 한양도성 토크 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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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 6 Jul 2017 17:39:25
<![CDATA[#1. 김남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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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 6 Jan 2017 17:05:06
<![CDATA[#2. 강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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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 6 Jan 2017 16:57:09
<![CDATA[#3. 주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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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 6 Jan 2017 16:47:48
<![CDATA[#4. 김연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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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 6 Jan 2017 16:40:00
<![CDATA[#5. 장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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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 6 Jan 2017 16:32:18
<![CDATA[#6. 박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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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 6 Jan 2017 16:13:01
<![CDATA[#7. 김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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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 6 Jan 2017 16:00:47
<![CDATA[#8. 이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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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 6 Jan 2017 15:34:24
<![CDATA[#9. 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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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 6 Jan 2017 14:45:02
<![CDATA[#10. 김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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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 27 Dec 2016 21:14:49
<![CDATA[#11. Audio Guide full version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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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 27 Dec 2016 21:05:54
<![CDATA[Ep.01 김남길과 한양도성 길을 걸어요]]>

우리가 만드는 문화유산, 한양도성 1화

김남길과
한양도성 길을 걸어요

2016년 8월 16일 연재

안녕하세요? 김남길입니다. 여기가 어디인지 아시겠어요?
서울 한양도성입니다. 저는 얼마 전 영화 촬영이 끝나고 여행을 떠나는 대신 한양도성을 걷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태어나 한양도성을 곁에 두고 살고 있었지만 관심 있게 바라본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우연히 눈에 들어온 한양도성을 언제 한번 다시 찾아와야지 했었는데, 이제야 찾아와 걷고 있네요.

이 길을 걸으며 느끼고 생각했던 것들을 다른 사람들과 나눠보고 싶었습니다. 제가 걸었던 한양도성의 길과 그 길을 걸으며 궁금했던 것을 다시 찾아보고, 알아가게 된 과정들을 총 11회에 걸쳐 연재하려고 합니다. 그 과정에 여러분들도 함께 공감하고 경험하기를 바라며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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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길을 읽어주나요?

많은 분들이 물어봅니다. 왜 한양도성을 걷느냐고, 왜 길을 찾고 그 길을 읽어주는지 궁금해합니다. 저는 사람이 걸어온 길이 우리의 역사이고, 그 안에 담긴 이야기가 우리의 소중한 문화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길을 찾고 그 길을 걸으며 나의 이야기도 그 길에 더하게 된다면, 우리가 함께 더불어 살고 있음을 알게 되지 않을까요. 이렇게 길을 찾고 그 길을 읽어주는 과정을 통해 나를 바라볼 수 있었고, 일상의 작은 여유를 느낄 수 있었기에 이런 경험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길’은 우리의 역사, 인생, 감성, 사람, 삶... 이런 것들이 어우러져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발 디디고 있는 길은 삶의 기록과도 같은 것이니까요.

"
역사, 인생, 감성, 사람, 삶..

어떤 것 하나 소중하지 않고 기본적이지 않은 것이 없겠지요. 사람은 땅을 밟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본질적인 것을 포함해 우리가 살면서 어떤 가치가 중요한가를 알게 해주는 것이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린 아이들이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아도 길을 한참 뛰어가다가 멈춰 서서 땅을 보기도 하고 그 땅에 넘어져도 보면서 '아, 이제 시작이구나' 라고 느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노인 분들은 많은 길을 걸어오셨으니까 그 인생에 대한 역사만큼 뒤를 돌아볼 수도 있겠지요.

젊은 청년들은 지금 정신 없이 뛰고만 있는데 그 뛰는 것들이 내가 잘 뛰고 있는 건지, 내가 뛰고 있는 땅 그 발 아래는 도대체 어딘지.. 라는 것들에 대해서 길을 걸으며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디라고 한정 짓지 말고 그냥 누구나 위로를 받고 싶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 조금 더 생각하고 싶고.. 그럴 때 찾아가 걸을 수 있는 길, 그리고 그 길을 걷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찾아서 읽어주고 싶었습니다.

"
왜 한양도성을 걷나요?

작년에 길이야기 캠페인 '길을 읽어주는 남자, 성북' 편을 진행했던 때로 거슬러 올라가 봅니다. 어릴 적 좋아하던 '성북동 비둘기' 라는 시에 이끌려 찾아갔던 성북동 북정마을의 골목길과 그 길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느껴지는 무언가가 저를 위로하고 평안함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과거가 없으면 미래도 없다고 생각하는데, 현재는 너무 빨리만 나아가려고 합니다. 북정마을의 골목길은 이런 속도감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사실 이것이 우리의 현주소이고 우리가 사는 모습이다.” 라고 얘기해 주는 거 같았습니다.

어릴 때 뛰어 놀던 골목길도 생각났습니다. 골목길을 지나던 동네 사람들과 눈을 맞추며 웃을 수 있고 인사를 건넬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이런 것이 바로 ‘사람 사는 정’ 인가 싶었습니다. ‘삶의 속도에 등 떠밀려 상처 나고 아픈 마음이 느릿느릿 아물게 되는 곳’ 이라는 최성수 시인의 시처럼 말입니다.

특히 북정마을에는 마을을 품은 듯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서울성곽이 펼쳐져 있습니다. 깜깜한 밤에 성곽 위에서 바라본, 성곽 안과 밖의 다른 풍경이 제 마음에 울림을 주었습니다. 너무나 익숙해져 버린 주변에 대하여 호기심을 갖기란 쉽지 않은 법인데 그날은 유독 한양도성이 낯설게 보였고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그곳에 다시 찾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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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정마을에서부터
장수마을까지 성벽을 따라
길을 찾아 걸어 봤습니다

그런데 한양도성의 길을 걷기가 쉽지 않더군요. 대중교통으로 쉽게 찾아가서 걸을 수 있는 방법부터 찾아봐야 했습니다. 한양도성의 성벽을 따라 걷다 보면 성곽이 유실되어 가다가 끊기는 곳도 있어서 어디로 가야 할지 길을 헤맸던 적도 있습니다.

그래서 생각한 방법이 출발지와 도착지가 대중교통으로 쉽게 갈 수 있는 곳, 마을에서 마을로 연결되는 길을 찾아봤습니다. 제가 한양도성을 다시 만나게 된 곳, 성북동 북정마을에서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장수마을까지 걸어갔더니 딱 3km 정도였습니다.

아침 10시에 시작하니 12시쯤 도착하는 거리였습니다. 이 길을 찾기 위해 네다섯 번은 간 것 같은데 한 번은 한성대 입구역 6번 출구로 나와서 마을버스를 타고 가보고, 한 번은 북정마을 골목길로 걸어 올라갈 수 있는 길을 찾아가 보고, 또 한 번은 성북동 기사식당 근처에서 끊어진 성벽을 찾느라 헤맸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여러 길로 한양도성을 찾고 걷다 보니 이 길을 찾아와 걷는 것도 쉽지 않겠구나 생각이 들어서 저만의 한양도성 코스를 만들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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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찾아야 할
한양도성의 길은 15.6km

한양도성의 길이가 18.6km라고 하는데 아직은 북정마을에서 혜화문을 지나 장수마을까지 3km 정도밖에는 길을 읽어주지 못 했습니다. 지금부터 부지런히 한양도성의 길을 찾아서 나머지 15km의 길도 읽어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한양도성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사료도 찾아보고 책도 읽고 인터넷으로 검색도 하면서 학구열에 불타오르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꽤 재미가 있습니다. 어릴 때는 시험 준비를 하느라 역사 책을 봤다면, 요즘은 호기심에 흥미롭게 역사 책을 들춰보는 것 같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찾고 읽어줄 한양도성의 길 3km와 이제부터 찾아 나서는 15.6km를 프로젝트 연재를 통해서 여러분과 함께 걷고 싶습니다. 한양도성의 걷기 좋은 길을 찾고 그 길을 읽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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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 27 Dec 2016 20:54:20
<![CDATA[Ep.02 김남길이 읽어주는 한양도성 3km]]>

우리가 만드는 문화유산, 한양도성 2화

김남길이 읽어주는
한양도성 3km

2016년 8월 23일 연재

이날은 하늘이 점지해준 날인 듯 오래간만에 파란 하늘을 보며 성북동 북정마을에 도착했습니다. 꿋꿋이 마을 뒤로 병풍처럼 펼쳐진 한양도성을 바라보며 와룡공원까지 올라가 봅니다. 그리고 다시 천천히 성벽을 따라 걷기 시작합니다. 지나온 길 어디서든 그 모든 시선 곁에 넉넉하게 아랫마을을 굽어보고 있던 한양도성이 나를 반겨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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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현재의 공존

산의 능선을 따라 축조되어 성벽의 안쪽은 밑단의 일부가 땅에 묻혀 얕게 드러나 있는 반면, 바깥쪽은 성곽의 몸체라 할 수 있는 체성이 더 높게 드러나 있어 그 위용을 자랑합니다. 직접 보기 전에는 도성이 앞뒤로 똑같을 거라고 막연한 상상을 했는데 이렇게 하나하나를 꼭꼭 씹듯이 직접 이 길을 걸으니 단순히 안내 지도를 보며 길을 상상할 때와는 정말 다릅니다.
무엇보다 성벽 마디마다 뚫린 사각형의 총안이 보여주는 성 밖 풍경은 직접 걷지 않고서는 제대로 느낄 수 없을 것입니다. 액자 같은 구멍 사이로 뚫린 풍경이 미술관에서 작품을 보는 듯, 총안마다 보이는 모습은 제각각 다른 풍경입니다. 미래를 볼 수 있는 600년 전 과거의 사람이 2016년 우리 모습을 보고 있는 듯합니다. 총안 마다 바라보는 풍경이 모두 다르기에 하나하나 바라보며 걸어 보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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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길을 찾아서

내심 이 길이 끝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걷다 보면 서울과학고등학교에 도착합니다. 이 길은 다시 경신고등학교로 이어지는데, 이때부터는 혜화문까지 성곽이 유실된 구간입니다. 미리 지도에서 보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는 왔지만 그렇게 유려하게 이어지던 길이 중간에 끊어지니 많이 섭섭하네요.
그러다 발견한 전봇대 위에 붙어있는 '혜화문'이라고 적힌 작은 이정표 하나. 그런데 여기서부터는 더욱 난감한 상황과 마주합니다. 경신고등학교 시멘트 담벼락 밑으로 성곽인 듯 성곽 아닌 모습이 이어지고 있었던 거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성곽이냐며 이대로 길을 잘못 들었나? 저쪽 골목으로 가란 건가 하며 계속 돌아보고, 이 길이 맞나 주위를 두리번거리게 합니다.

길 자체는 성곽길이 아니라 그저 흔하디흔한 동네 골목길 같았죠. 그래도 앞으로 더 걸어가 보니, 아직 포기하지 말고 더 가보라는 응원처럼 성북동 도시 텃밭 뒤로 이어지는 한양도성이 보였습니다. 그래도 이쯤에서는 유실 구간이 끝나기를 목 빠지게 소망하던 때, 드디어 바다 길이 열리듯 시원하게 양옆으로 이어진 한양도성과 만났습니다.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혜화문도 보입니다.

"
혜화문, 봉황의 의미

한달음에 혜화문 앞으로 내려가 홍예 안의 천장을 봅니다. 오색 빛깔의 화려한 새 두 마리가 마주 보고 있는 그림인데, 봉황입니다. 서로 마주 보고 있는 한 쌍의 새의 모습이 무척 화려하더군요. 보통 성문의 홍예 안에는 용이 그려져 있던데, 이곳만 봉황인가? 봉황은 사이좋은 짝을 의미하기도 하니까, 이 주변에 열녀나 효자가 많아서 특별히 그려준 건가 하는 엉뚱한 상상도 해봅니다.

과거, 혜화문이 있는 삼선동 일대에 참새들이 많아 농부들의 피해가 극심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를 예방하는 차원에서 봉황을 그려 넣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하기야 봉황은 그냥 새가 아니라 영검한 새이니 참새들을 다스리란 뜻으로 그려 넣은 것일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정말 옛사람들은 무엇 하나 그냥 한 일이 없는 듯합니다. 그 모두에 나름의 의미가 있으니 한양도성 길을 걷는 맛이 더 깊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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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을 쌓은 사람들

혜화문 건너편으로 길을 건너 낙산 구간으로 올라가는 계단으로 끊어져 이어지는 한양도성을 찾아 올라가 봅니다. 성의 외벽을 따라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성돌을 짚으며 그리고 걸으며 오래전 이곳을 똑같이 걸었을 사람들을 생각해보게 됩니다. 그들은 어디서부터 어떤 경로로 산 넘고 물 건너 그 먼 한양까지 왔을까.

성돌 틈 사이를 뚫고 나무뿌리가 튀어나와 있는 모습을 보며 그 오랜 세월 동안 이렇게 서로 받쳐주며 단단히 버티고 있는 성돌들이 새삼 대견하기까지 합니다. 그러자 이 정다운 성을 쌓은 사람들은 누구일까 궁금해졌습니다.

특별한 기구도 없이 이 언덕으로 어떻게 돌을 끌고 왔을까, 이 모든 돌들을 정과 끌로 손수 손으로 깎았다는데 그 자체가 얼마나 고된 일이었을까? 실제로 공사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부상을 입거나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숭고한 영혼이 담겨 있을 듯한 이 길을 이토록 쉽게 가볍게 산책하는 게 왠지 숙연해지며 이 길을 정성스럽게 걸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렇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게 하는 한양도성을 걷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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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도 사라지지 않는 것

한양도성 3km 길의 도착지, 장수마을의 할머니 쉼터 벤치에 앉아 봅니다. 사방이 뚫린 바람길에 앉아서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생각해보니, 평소에 보이지 않던 사소한 것들이 보였습니다. 이 순간만큼은 세상의 모든 시간을 잠시 멈추고 나만의 시간 안에 머물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굳이 속도를 내지 않아도, 특별히 무얼 하지 않아도 뿌듯했던 미쁜 순성의 기억, 우리에게는 사라져도 사라지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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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 27 Dec 2016 20:38:18
<![CDATA[Ep.03 1천 원의 꿈 그리고 5만 명의 기적]]>

우리가 만드는 문화유산, 한양도성 3화

1천 원의 꿈
그리고 5만 명의 기적

2016년 8월 30일 연재

"어느 길 위에 서 있던 어느 길에서 만나든 우리 오래 함께 걸어갑시다."

"저도 몇 번 한양도성을 따라 걸어본 적이 있습니다. 중간중간 끊긴 것을 보며 잘 보존되지 못해 안타까웠는데 작은 정성이지만 꼭 그 길을 찾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반듯한 길, 구부러진 길, 팍팍한 길, 험한 길, 높은 길, 낮은 길, 깊은 길, 밝은 길, 어두운 길... 이제 한 발.. 오랜 시간 같이 걷고 싶습니다."

"어제보다 더 좋은 길을 기억하게 해줘서 고맙습니다."

"길은 어디든 통한다고 길을 통해서 역사를 바르게 알고 소통이 잘 되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길이 있어 걸을 수 있고 걸을 수 있기에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

"쉬엄쉬엄 걸으면서 느끼는 옛 경치와 그때를 알아갈 수 있다면 참 많이 행복한 미소가 번질 듯합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서 저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이 한양도성의 길을 걷고, 이야기를 듣고, 공유하는 그리고 다시 찾아가는 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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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 한 사람의 소중함

지난 2주간 '파티'에 여러분이 남겨주신 메시지를 읽으며 저는 꿈이 현실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사실 저도 처음에는 먹고살기도 바쁜 세상인데 문화유산이나 한양도성의 세계유산 등재에 누가 관심이나 가져줄까 싶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먼저 알아봐 주는 사람을 만나면 참 기쁩니다. 이 일에 함께 해주시는 여러분 덕분에 용기를 얻어 더 힘차게 나아가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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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만으로도 가치가 있는 것

저에게도 사는 게 참 어렵다는 생각을 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한양도성으로 향했습니다. 그곳에 올라 서울의 야경을 바라보는데... 한양도성이 제게 말을 건네는 것 같았습니다. ‘그저 내 옆에서 제 자리를 지키며 있어주는 것’,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 그리고 '묵묵히 나의 길을 걸어가는 것'... 이런 것들에 대한 소중함을 보여주고 있는 굳건한 한양도성이 저를 일으켜 세워주는 것만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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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모으고 싶습니다

이곳에 5만 명이 모이길 소망합니다. 후원금을 모으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사람이 모이는 펀딩이 되어 더 많은 사람이 함께 한양도성의 길을 걷고 그 의미를 찾아 한양도성의 지도와 오디오 가이드를 만들어 나누는 기쁨을 함께 누렸으면 좋겠습니다.

함께 만드는 문화유산, 한양도성을 위해 1천 원을 후원하는 5만 명의 사람을 모으는 것이 저의 꿈이자 길스토리의 목표입니다. 그래서 1천 원 후원에도 리워드를 제공하도록 했습니다. 스토리펀딩의 시스템상 후원 항목에 1천 원 후원이 '리워드 없음'으로 쓰여 있지만, 연재 1화를 보시면 마지막에 이런 문구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1천 원부터 통큰 후원까지 후원해 주신 모든 분들의 이름을 모아 후원자 명부를 제작하여 '서울 한양도성'을 공식적으로 기념할 수 있는 곳에 영구 보존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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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만 명의 우리 이름

모든 후원자분들의 이름이 적힌 명부는 한양도성 관계 기관과 협의하여 문화유산을 기념하는 공식적인 장소에서 보존될 것입니다. '우리가 만드는 문화유산, 한양도성'의 후원자 명부가 영구 보존되어 우리 미래세대가 보게 된다면, 과거의 세대가 남길 수 있는 또 하나의 유산이 될 거라 꿈을 꿉니다. 1천 원으로 나라의 문화유산을 나의 문화유산으로 만들 수 있는 기쁨을 5만 명, 아니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천 원이 만드는 기적을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5만 명의 이름이 적힌 후원자 명부가 만들어진다면 이것이 바로 기적이 아닐까요. 그래서 요즘 저는 주변 사람들에게 천 원으로 우리의 문화유산을 만들어 보자고 말하고 다닙니다. 여러분의 주변 분들에게도 천 원이면 이 일에 함께할 수 있다고 알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5만 명이 함께 만든 한양도성의 오디오 가이드와 지도가 5천만 전 국민에게 그리고 전 세계인들에게 전해진다면, 우리의 문화유산을 경험하게 하고 그 안에서 우리의 정서와 한국의 문화를 바로 알게 된다면... 제가 너무 거창한 이야기를 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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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땅 그리고 함께 만드는 길

한양도성 18.6km 중에 3km의 길을 걷고 그 길을 읽었습니다. 2시간 남짓한 기억은 슬며시 제 삶이 되었습니다. 이 든든한 한양도성은 우리가 태생적으로 지닌 시간의 무게를 간신히 견디는 것이 아니라, 기꺼이 살아가게 만들어 주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렇게 그 무언의 힘은 수 없이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다시 너와 나 사이의 길고 긴 대화를 또 다른 우리네 이야기로 만들어 한 세대와 시대를 이어줄 것입니다. 예전에도 그 이후로도 그랬듯이 말입니다.
저는 잊혀진 혹은 잊고 살아온, 그러나 결코 바뀌지 않는 가치를 기록하고 싶습니다. 이제 저는 장수마을에서 낙산공원을 지나 흥인지문을 향해 걸어갑니다. 어릴 적 동네 아이들과 부르던 놀이노래를 흥얼거리면서 말입니다. '동동 동대문을 열어라, 남남 남대문을 열어라~ 12시가 되면은 문을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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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 27 Dec 2016 20:25:07
<![CDATA[Ep.04 혜화문에서 흥인지문까지]]>

우리가 만드는 문화유산, 한양도성 4화

동동~동대문을 열어라~
혜화문에서 흥인지문까지 2.1km

2016년 9월 8일 연재

뜨거운 여름도 가고 걷기 좋은 가을이 왔으니 한양도성 순성을 다시 시작합니다. 산맥의 능선에서 능선으로 이어지던 성벽을, 그 사이사이 다리처럼 놓인 성문을, 다시 그 안으로 흘러 들어가던 그 모든 이야기들을 상상해보며 마음에 한양도성의 지도를 찬찬히 새겨봅니다.

막상 한양도성의 18.6km의 길을 모두 걸으며 찾아보겠다고 생각하니 엄두가 나지 않더군요. 그래서 나름대로 어디를 기준으로 어떻게 구간을 나눠 한양도성의 길을 찾아 걸어야 할지 여러 자료를 찾아 봤습니다. 그러다 매일신보 1916년 5월 11일 자에 실린 '순성장거' 광고를 보게 되었습니다.

“경성의 성벽은 오늘날 한양 유명 유적의 제일이로다! 위대한 고적이여! 우리 모두 봄볕 좋은 오는 7일 일요일 이 위대한 고적을 답사하고자 하노라.”


그때 사람들은 그날 순성장거를 잘 마쳤을까요? 실제로 답사에는 체력과 의지만큼이나 그날의 날씨가 중요한데, 안타깝게도 그날 계획은 비가 오는 바람에 취소되고 일주일 후로 연기됐다 합니다. 당대에는 축수하기 위해 순성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비가 오든지, 바람이 불든지, 꼭 하루 만에 마치지 않으면 효험이 없는 것이라 했다는군요.
그렇게 간절한 염원을 담은 순성 날짜만큼이나, 실제 행로를 어떻게 정해야 할까 고민이 많았습니다. 국보 1호인 흥인지문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돌까, 아니면 옛날 과거 시험 볼 당시, 고등문관 후보자가 길운을 빌며 순성했던 행로로 가볼까. 일전에 북정마을에서 시작해 장수마을까지 왔었으니 그렇게 시계방향으로 한양도성을 한 바퀴 도는 것으로 이번에는 흥인지문까지 걷는 길을 첫 행로로 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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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가장 많이
드나들던 길

직접 길을 걷는 데는 산을 기준으로 구간이 나누어져 있는 코스는 그리 용이한 방법은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길은 말 그래도 사람들이 자주 다니다 생긴 곳이니 실제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드나들던 한양도성의 문을 기준으로 행로를 짜보기로 했습니다. 그러면 그 과정에서 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찾아보고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무엇보다 이참에 여러 이름으로 헷갈리던 성문의 이름을 정확히 알아보고 싶기도 했습니다. 계속 부르고 되짚어가며 길을 찾다 보면 그 옛날 사람들에게 그토록 익숙했던 성문의 이름들을 하나하나 기억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 과정에서 짐작보다 더 깊고 넓은 우물 같던 한양도성의 이야기를 만났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성문은 단순한 출입문을 넘어 행정적으로는 도성의 안과 밖을 나누고, 국가의 시간을 도성의 문을 열고 닫음으로써 조절하는 조선의 통치수단 자체였으니까요. 그뿐인가요, 농업국가인 조선에서 가장 중대한 현안이었던 그 해 농사를 결정짓는 날씨도 성의 문을 여닫는 일로서 다스리고자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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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흉화복을 다스리던 성문

4소문 중 하나였던 혜화문은 북대문의 역할을 대신 했기 때문에 이름만 소문일 뿐 실질상으로는 대문의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일제강점기 때 단계적으로 파괴되었고, 1940년에는 혜화동과 돈암동 사이에 전차 선로를 놓으면서 홍예문마저 없어졌습니다.

지금의 혜화문은 1994년에 새롭게 복원한 성문입니다. 본래 동소문로 한복판에 성문이 있었는데, 복원 당시 이미 처음의 지형과는 많이 달라졌기 때문에 바로 옆 지금의 자리에 복원되었다고 합니다. 1939년 일제가 전차 노선 연장을 위해 혜화문을 헐 때, 전차의 통행을 위해 성문이 있던 지형의 높이를 낮췄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비록 본래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고 보기 힘든 새 문이지만 그래도 동소문로에 있던 혜화문이 흥인지문까지 이어지는 길을 상상하며 걸어가 봅니다.
흥인지문은 도성의 동쪽 정문으로 백성들이 인(仁)을 흥하게 하다는 의미를 가진 성문입니다. 흔히 동대문이라 불리는데 이는 조선시대 때도 그랬다고 합니다. 지금도 실록에는 한양도성의 정동(正東)은 흥인문이니 속칭 동대문이라 한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동대문이 있는 땅은 인왕산과 북악산에서 발원한 청계천이 빠져나가는 곳으로 도성에서 가장 낮은 지대입니다. 더군다나 옛날에는 이곳이 저습지이기도 해서 백성들이 도성을 쌓을 때 애를 먹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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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화문을 지나 흥인지문까지

초기 축성을 맡았던 경상도 안동과 성주 사람들은 기일 내에 공사를 마치지 못했다고 합니다. 완공일을 10일 앞두고 농번기를 맞아 공사 일을 남겨둔 채 고향으로 돌아가야 했죠. 그 후로는 같은 해, 2차 공사가 들어가고 나서야 성문을 완성했습니다. 하지만 연약한 지반 탓인지 이후에도 흥인지문 보수공사는 꾸준히 진행되어 왔다고 합니다. 이처럼 흥인지문은 그 지형의 태생적 한계 때문에 방어에도 불리했습니다. 실제로 이러한 취약점을 보완하기 위해서였는지 한양도성 성문 중에 유일하게 옹성에 싸여 있다고 합니다.
각자성석. 각자성석은 성곽 돌에 축성 관련 글자를 새겨 넣은 것을 말한다. 동대문성곽공원 초입에 성벽 정비 과정에서 발견된 각자성석들을 모아놓았다. 초기(태조,세종)의 각자성석에는 구간과 축성 담당 군현명을 주로 새긴 반면, 조선 중기 이후에는 감독관, 책임기술자 등의 이름과 직책을 명기하였다.
그렇게 한양의 동서남북 그곳이 어디든 통하는 4대문, 4소문과 함께하는 순성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겠습니다. 지난 여정에서 지나온 혜화문에서 시작해 흥인지문까지 길을 찾아 걸어봅니다. 이전에는 한성대 입구역에서 직접 혜화문을 거쳐 낙산 구간을 걸었지만, 이번에는 혜화역 3번 출구에서 마로니에 공원으로 난 골목길을 통해 낙산 공원 쪽으로 올라가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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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의 암문을 통해 지그재그로 성의 안과 밖을 걷는 재미

낙산 공원 주차장으로 난 계단을 오르면 곧장 공원으로 통하는데요, 여기서부터 장수마을이 있는 성 밖으로 통하는 암문이 나올 때까지 걸어갑니다. 암문으로 나가니 지난번 걸었던 산책로를 만나게 되네요. 이 지점에서는 성 안쪽으로 걸을까, 그냥 가던 길을 따라 계속 성 바깥쪽으로 걸을까 고민을 하게 되는데 역시 저는 성의 바깥쪽 길이 좋아 성밖으로 걸어나갑니다.
여기에서는 옛 것과 새것의 콜라보레이션을 보는 듯한 성돌과 성벽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성 밖에서 저만의 빛깔을 지진 성돌을 따라 조금 걷다 보면, 곧 '낙산 성곽공원'이란 글자가 세워진 표지판이 있는 지점이 나옵니다. 여기에서 성벽이 잠시 끊깁니다. 그리고 정면에 마을버스 정류장이 보일 겁니다. 그럼 그대로 직진하지 말고 정류장 위쪽으로 올라가 다시 성 안으로 들어갑니다.

계속 성 밖을 걷다 보면, 곧 성벽이 저 높이 떠서 멀어지는 걸 느낄 겁니다. 그러니 여기서부터는 그대로 성 안으로 들어가, 한양도성을 담장으로 가진 정겨운 마을 골목길을 걸어 봅니다. 고양이들이 총안에서 낮잠을 자고 있네요. 천천히 숨 쉬는 속도로 걸어가니 보이는 풍경입니다.
이내 이화동 벽화마을로 가는 양 갈래길이 나옵니다. 아침부터 외국인 관광객들로 동네가 북적입니다. 여기서 오른쪽 길로 내려가면 이화마을로 들어가게 되니 왼쪽 길로 직진을 해서 성벽을 따라 내려갑니다. '성터교회 가는 길'이란 작은 표지판이 붙은 두 번째 암문까지 좀 더 내려갑니다.

그렇게 암문을 통해 성 밖으로 나오면 유독 까치가 주위를 날아다니는 조용한 산책로가 나옵니다. 여기서부터는 흥인지문이 눈앞에 그 모습을 저절로 드러낼 때까지 여유 있게 걸으면 됩니다. 낙산 구간에 나 있는 두 번의 암문을 통해 지그재그로 성의 안과 밖을 걷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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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 곳곳에서 별처럼 반짝이는 온갖 이야기들

혜화문에서 흥인지문까지 2.1km, 한 시간 반 남짓한 시간을 걷는 동안에도 시골에서 본 밤하늘에 쏟아지는 별처럼 온갖 이야기들이 그 길 곳곳에 반짝입니다. 처음에는 한양도성을 알아보면 볼수록 이야기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와 당황스럽기까지 했습니다. 그래도 걸을 때마다 새로 알아가는 재미가 있으니 괜찮습니다.
이제는 그런 두려움보다 설레는 마음이 더 큽니다. 거대한 시간 저편에 숨어있던 18.627㎞의 순성놀이가 시작됐습니다. 동대문을 열고 지나왔으니 다음은 광희문을 지나 남대문을 향해 걸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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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 27 Dec 2016 20:12:05
<![CDATA[Ep.05 김남길과 함께 끊어진 순성 길을 찾아서]]>

우리가 만드는 문화유산, 한양도성 5화

김남길과 함께
끊어진 순성 길을 찾아서

2016년 9월 22일 연재

한양도성의 낙산 구간을 따라 내려와 드넓은 바다가 펼쳐지듯 시원하게 흥인지문이 눈앞에 보이는 사거리에 도착합니다. 울창한 숲 속에서 갑자기 도심 한가운데로 뚝 떨어진 것만 같은 이질감을 맛볼 수 있는 것도 서울의 매력인 것 같습니다.
오늘은 흥인지문을 지나 광희문까지 가보려고 합니다. 여기서부터는 유실된 한양도성의 흔적을 찾아서 순성 길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끊어진 한양도성를 마음으로 그리며 그 흔적이 남아있는 '오간수문'과 '이간수문'을 차례로 찾아 걷습니다. 그대로 광희문까지 연결하는 코스를 찾아보려고 합니다.
흥인지문을 뒤로하고 신평화패션타운을 바라보며 곧장 청계천 6가 사거리까지 걸어갑니다. 청계천을 건너가기 전, 시장 골목 앞에서 횡단보도를 건너갈 때 지나는 다리가 바로 '오간수교'입니다. 그곳에서 오간수문 터의 흔적을 볼 수 있습니다.

'오간수문'은 서에서 동으로 흐르는 청계천 물줄기가 도성 밖으로 빠질 수 있도록 동대문 성곽과 만나는 지점에 만든 다섯 개의 물길을 낸 수문입니다. 조선 초기 도성을 수축하면서 물길을 낼 때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후 청계천 복원 사업의 일환으로 '오간수교'가 복원이 되었다고 합니다.
여기에 흥미로운 야화가 하나 있습니다. 청계천 복원 당시에 오간수문 터에서 상평통보 600여 개 그러니까 엽전 600냥이 한꺼번에 묻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당시 쌀 한 가마니를 살 수 있는 큰돈이었답니다.

누가 숨겨둔 걸까요? 조선 명종 때 전옥서(죄수를 관장하던 관청)를 부수고 가족을 구한 임꺽정은 오간수문의 창살을 꺾은 뒤 도성을 빠져나갔다고 할 정도로 오간수문은 몰래 도성을 드나드는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던 통로였다니 혹시 수문으로 도주하던 도적이 흘리고 간 것일 수도...
자, 이제 오간수교를 건너 동대문 역사문화공원을 향해 걸어갑니다. 주위에 시장과 화려한 쇼핑몰 등이 이어져 있어 한눈팔기 좋은 유혹들이 가득하지만, 부디 곧장 '이간수문'으로 가시기를 바랍니다. 중간에 너무 멈췄다 가면 정말 다시 가기가 귀찮거든요. 그대로 그날 답사는 끝날 수도 있으니까요.
동대문 역사문화공원에는 끊겨있던 성벽의 일부가 보존되어 있습니다. 그 일부는 복원된 성벽인데 그 아래로 '이간수문'이 있습니다. '이간수문'은 두 개의 물길을 낸 수문입니다. 이 두 개의 문 중에 한쪽은 창살로 막혀 있고 나머지 한쪽은 열려 있네요. 열린 수문 안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옛사람들은 수문 위에 다시 벽을 쌓아 성곽을 이어 나갔다는데 그 때문인지 이간수문과 성곽은 서로 이어져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대로 성벽을 따라 올라가면 동대문 역사관을 만나게 됩니다. 동대문 역사관에는 지금은 사라진 한양도성 터에 대한 역사를 둘러볼 수 있습니다.
이제 증강현실 게임을 하듯 옛 한양도성의 길을 현재의 도로와 비교해가며 길을 내면서 찾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벽에 막히네요. 동대문 역사문화공원에서 광희문까지 성벽을 이어가려면 한양공업고등학교 건물 한가운데를 뚫고(?) 지나가라는 말인데 그렇게 갈 수는 없겠죠.

그렇다면 지하철 2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2번 출구 쪽으로 걸어가 바로 한양공업고등학교 앞 사거리로 가보겠습니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3번 출구로 나오면 건너편에 광희문이 있다고 들었으니 3번 출구를 찾아 걸어가 보겠습니다.

저기 광희문이 있네요. 그 앞 차도에는 끊어진 성벽을 이어주듯 '서울 한양도성'이라고 차도에 새겨진 길도 보일 겁니다.
광희문은 태조 5년 1396년에 도성을 축조할 때 동남쪽에 세워졌습니다. 사실 광희문만큼 사연이 쌓인 공간도 찾기 힘들 겁니다. '빛나는 빛의 문'이라는 명칭과는 달리 광희문은 도성 밖으로 시신(屍身)이 나가던 '시구문(屍軀門)'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도성 안에 무덤을 둘 수 없었기 때문에 죽은 모든 이들은 성 밖으로 내보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시구문 밖에는 화장터와 묘지도 많았다고 합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이 주변에서는 귀신에 대한 소문도 많이 떠돌았고, 심지어 어떤 지독한 병도 시구문이 겪은 고난을 이기지는 못할 거라고 생각해 시구문의 돌가루가 만병통치약으로 통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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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의 '끊김'은
서울의 확장

광희문은 다른 성문들과 비슷하게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는 동안 크게 훼손됐습니다. 현재의 광희문은 1975년에 복원된 것인데 원래 위치보다 남쪽으로 15미터 가량 떨어져 세워졌습니다. 도로 확장 때문에 제자리에서 벗어나 복원되었죠.

이처럼 한양도성의 '끊김'은 서울의 확장과 연관이 있습니다. 도심지가 확장될수록 성벽이 잘려나갔고 그 성벽 위로는 도로가 닦이고 집이 지어지기도 했습니다.
끊어짐이 대려 익숙해져 버린 것은 아닐까. 우리의 마음의 속에는 한양도성의 유려한 이어짐이 남아있기를 바라봅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이제 지나가다 섬처럼 홀로 도로 위에 떠있는 광희문과 한양도성의 성문들을 보게 된다면 마음껏 상상하고 궁금해 해주세요. 그러면 분명 다시 잃어버렸던 길이 펼쳐질 겁니다. 결국 서울은 순성하면 모두 이어지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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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 26 Dec 2016 19:14:54
<![CDATA[Ep.06 숨어있는 남소문 터를 찾아서]]>

우리가 만드는 문화유산, 한양도성 6화

김남길, 숨어있는
남소문 터를 찾아서

2016년 9월 29일 연재

광희문의 뒤편으로 성벽을 따라 골목길을 올라가면 이내 성벽이 끊기고 주택가가 나옵니다. 동호로 20길을 따라서 '한양도성 목멱산(남산) 지역' 표지판이 안내해 주는 길을 찾아 장충체육관 건너편까지 걸어갑니다.
길을 건너면 바로 민가로 들어가는 골목이 보입니다. 이제 자연스러운 도성 길이 시작됩니다. 그 소박한 성 외벽을 끼고 다산동 마을의 친근한 전경이 훤히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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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성벽이 둘러싼 다산동 마을

성의 안쪽으로는 신라호텔이 있는데, 예전에는 그 자리에 이토 히로부미의 영혼을 기리기 위해 만든 사찰 ‘박문사(博文寺)’ 가 있었다고 합니다. 성안 쪽으로 우뚝 솟아 있는 호텔 건물을 보고 있자니 성 외벽을 호텔 담벼락으로 오해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참에 성돌의 모양도 자세히 살펴봅니다, 옥수수 이빨 모양을 한 자잘한 돌들이 체성 밑바닥 큰 돌 위에 촘촘히 모여 있는 것이 마을의 풍경만큼 정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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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친구처럼
친근한 길

좀 더 걷다 보니 길 곳곳에 벤치도 있고 운동기구도 보입니다. 그렇게 동네 친구처럼 친근한 그 길 곁으로 보이는 마을 지붕과 작은 가게들도 둘러보다 보면 어느새 도성의 암문과 만납니다. 물론 산책길은 성의 안과 밖으로 모두에 놓여 있습니다. 하지만 그대로 성 밖으로 걷습니다. 그러다 공영 주차장이 보이면, 숲 속 한가운데로 들어갈 준비를 하세요.

친근한 마을 길에서 갑자기 숲길로 바뀌어 당황하실 수 있지만 바로 이런 게 순성길의 묘미가 아닐까요? 도성이야 본래 산 능선 위에 쌓았으니, 도성 길을 걷다 보면 어느 순간 숲 한가운데에 서 있을 수 있다는 게 예상되실 겁니다.
이제는 눈앞 정면으로 한양도성 길 안내 표지판이 있고, 그 옆으로 난 양 갈림길이 보입니다. 아쉽지만 이제부터는 유실 구간입니다. 그래도 또 한 번 도성 길은 이어질 겁니다. 이제는 보물 찾기 하듯 숨었다 다시 나타난 성벽을 발견할 때의 뿌듯함을 미리 상상하며 즐겁게 걷고자 합니다.

그럼 다시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기 전에 왼쪽 샛길에 자리한 성곽 마루에서 쉬었다 갑니다. 팔각정 아래 남산 소나무 숲이 훤히 내려다보이고, 앞으로 걸어갈 N서울타워가 우뚝 솟아 있는 모습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그렇게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땀도 닦고 물도 마시며 다시 걸을 준비를 합니다.
다시 순성을 시작하기 전, 갈림길 한가운데 있는 서울 한양도성 순성길 안내판을 확인합니다. 이번 답사에서 찾아야 할 남소문 터 위치를 보고, 국립극장으로 이어지는 반얀트리 호텔 쪽으로 걸어갑니다. 이렇게 호텔 맞은편 정문까지 가서 남소문 터를 찾아갈 겁니다.

이대로 오른쪽 산책로로 닦여있는 길로 걷습니다. 이 길은 사방에 나무들이 시원하게 뻗어 있어서 등산로를 걷고 있다는 느낌을 줍니다. 이제 곧 다시 도심 한가운데에 뚝 떨어지기 전에 고즈넉한 녹음이 주는 편안함을 마음껏 만끽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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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속 숨어있는
고즈넉한 녹음

어느새 발 밑에 깔려있던 숲길이 끊기고 시멘트 길과 만납니다. 잠시 발 밑을 한번 쳐다보세요. 그 옛날 성벽이 있던 자리가 도로 위에 흰색 페인트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이제 산책로가 끝나고, 반얀트리 호텔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이번 길은 생각하면 할수록 신기합니다. 이렇게 전혀 도성이 지나갈 것처럼 보이지 않는 공간에 버젓이 도성 길이 남아있었다니요. 이곳에 묵는다 해도 자세히 주위를 둘러보지 않았다면, 호텔 뒤쪽에 이런 길이 있다는 걸 모르고 지나쳤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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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소문 터는 어디에?

이제는 이 성벽과 이어졌을 '남소문'이 있던 자리를 찾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대체 이 대로의 어디에 남소문 터가 있는 걸까요? 다시 지도를 살펴보니, 확실히 남소문 터는 호텔 정문 앞으로 나 있는 장충단로에 있습니다. 그러니 호텔 정문 도보를 좌측으로 끼고 그대로 올라가 봅니다.

좁디 좁은 인도 옆을 세차게 지나는 차들에 혼이 빠지지만, 다행히 얼마 안 가 남소문 터를 알려주는 비석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중구’라는 문구가 쓰인 초록색 도로 표지판이 보이는 길목 즈음입니다.
남소문 터는 말대로 정말 그 어떤 흔적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남소문은 조선 건국과 함께 축조된 다른 성문들과 달리 세조 3년에 축조되었습니다. 조선 시대 한강 나루로 가려면 광희문을 통과해야만 했는데, 이 길이 다니기 불편해 별도의 소문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 성문이 바로 남소문입니다. 대체로 성문은 그 일대 언덕배기에 자리하기 때문에 지금의 장충고갯길에 자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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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바른 고개에 있는
남소문 터

장충고갯길. 지금의 중구 장충동에서 용산구 한남동으로 넘어가는 이 일대의 또 다른 이름은 ‘버티고개’였는데, 여기에는 지명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버티고개'를 ‘부어치’라고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부어치'라니? 무슨 물고기 이름 같기도 해서 이 주위에 그런 물고기가 많이 사는 계곡이라도 있었던 건가 상상할 수도 있지만 ‘부어’란 밝음을 의미하므로 밝은 고개, 즉 양지바른 고개란 뜻입니다.

그런데 그런 환한 이름에도 불구하고 남소문 일대에 도적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당시 이 고갯길이 유독 좁고 인적도 드물었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그래서 이 근방에는 순라꾼들이 야경을 돌면서 ‘번도!’라고 외치며 도둑을 쫓았다고 합니다. 그 이름이 백성들 사이에 퍼져 '번티 고개'로 불리다가, 그 발음이 변하여 '버티고개'가 되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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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그리고 한양도성 순성길

이제 남소문 터도 찾았으니 남산의 한양도성 순성길로 들어가 봅니다. '한양도성 순성길' 안내판을 따라 국립극장 옆으로 나있는 남산 공원길로 올라갑니다. 차로를 따라 조금 올라가면 머지않아 잃어버렸던 성곽이 보입니다. 점점 더 도성 가까이 다가가니, 도로를 내느라 중간에 양쪽 성벽이 서로 끊어진 채로 남아있습니다. 여기서 바로 우측에 성곽을 끼고 길이 나 있는 나무 계단으로 올라갑니다.
도성 길 초입 성벽에는 다듬어지지 않은 듯 거친 돌들이 땔감을 쌓아둔 것처럼 투박하게 올려져 있습니다. 그렇게 자연스러운 성돌의 맛을 곱씹어가며 걸어봅니다. 이 구간에서는 도성 길은 잠시도 멈추지 않고 하늘 끝까지 이어질 듯합니다. 숨을 몰아쉬고 땀을 흘리며 수고하는 대가가 아깝지 않습니다.

그렇게 성벽과 잡담을 나누듯 걷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도성과 나 자신 외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직 더 많은 길이 남았다는 게 또 싫지만은 않습니다. 아마 조선 시대 순성놀이 때의 풍광이 지금 이 모습과 가장 비슷했을 겁니다. 그때는 이런 정돈된 길이 아니라 말 그대로 숲길이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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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과 나만
존재하는 길

이렇게 아무리 이 좋은 길에서 이대로 머물러 있고 싶대도, 너무 오래 멈춰있으면 다시 올라갈 엄두가 안 날 것 같습니다. 다시 힘을 내서 계단을 오릅니다. 그런데 올라갈수록 초입과 달리 성벽의 돌들이 질서를 찾아가듯이 점점 더 정돈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끝나지 않고 하늘 위로 치솟을 것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더니 어느새 그 경사가 조금씩 잦아들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드디어 N서울타워로 가는 평평한 산책로가 나옵니다. 그렇게 숲길 한가운데 난 구불구불한 산책로를 가볍게 걸으면 곧 N서울타워에 도착합니다.
이번에는 남소문과 연결되었을 성벽을 따라 남산에 왔다가 전과는 또 다른 귀한 도성 길을 덤으로 얻었습니다. 도심 한가운데 있으면서도 본래 있던 숲 속, 그 자리에 온전히 끊어지는 곳 없이 그림처럼 보존된 이 길을 한 번이라도 걸어보면 차마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물론 그간 모든 도성 길이 저마다의 개성과 아름다움을 지녔지만 어쩔 수 없이 도로와 건물에 한데 섞여 그 맥이 끊기고 유실된 구간이 더 많았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남소문 터로부터 이어지는 남산 속 순성길은 더 특별합니다. 그곳에서는 그 옛길의 흔적뿐만이 아니라 그 당대의 공기가 박제된 것 같은 신비한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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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한가운데 온전히 있어준
고마운 한양도성의 길

숲 속 길에서 N서울타워로 나오는 길, 그간 줄곧 이어지던 나무 장막에 사이에 둘러싸여 있다가 다시 복작복작한 도시의 길로 돌아왔습니다. 줄곧 가는 길마다 등대처럼 우뚝 서 있던 남산 타워를 보니 새삼 이곳이 관광지였다는 걸 깨닫습니다. 수많은 버스가 정차해 있고 사람들이 정류장 앞으로 복작복작 모여 있습니다. 그렇게 다시 평범한 풍경 사이로 묻혀 들어가 슬며시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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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서울의 품속에서
어느 때보다 따듯하게 오래오래

그러고 보면 도성 길을 뒤로하고 돌아오는 길은 항상 주변의 모든 것들이 새로워진 것 같습니다. 하루 안에 도저히 다 갈 수도 없을, 앞으로도 정해진 시간 안에서는 도저히 갈 수 없을 그 모든 세계를 엿보고 온 것 같아 뿌듯한 마음, 그 모든 설렘들이 벅차오면 어느새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기분 좋은 피로가 몰려옵니다. 그러다 창에 머리를 기대 선잠이 듭니다. 깊은 서울의 품속에서 어느 때보다 따듯하게 오래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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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 26 Dec 2016 18:56:30
<![CDATA[Ep.07 남산 길 따라 숭례문까지 순성하는 길]]>

우리가 만드는 문화유산, 한양도성 7화

김남길, 남산 성곽길 따라
숭례문까지 순성하는 길

2016년 10월 6일 연재

언제나 사람들과 대기 중인 버스들로 복작복작한 남산의 N서울타워 버스정류장. 마음만은 산 정상에 오른 듯 기지개를 켜고 숨을 크게 들이마십니다. 남산의 신성한 정기가 사방의 나뭇가지를 타고 온몸으로 흘러드는 것 같습니다. 이제부터는 힘차게 남산 성곽길을 따라 도심 한가운데 남겨진 숭례문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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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절로 휘파람이 나오는 길

등대처럼 우뚝 솟은 N서울타워와 한양도성의 모습이 새삼 반갑습니다. 성곽 밖 구름다리처럼 놓인 철제 계단으로 올라가면 전망대와 공원이 나옵니다. 남산의 명소인 커플들의 자물쇠가 채워진 전망대 곁, 남산 팔각정으로 가봅니다.
예전 남산 팔각정 자리에는 지금의 인왕산 국사당이 있었다고 합니다. 국사당은 남산의 산신인 목면대왕을 모시는 제사를 지냈던 곳입니다. 바로 그 앞에 도성 안내 표지판이 친절히 놓여있네요. 길 안내 표지판 화살표가 남산 케이블카, 남산 봉수대를 나란히 가리킵니다. 그 방향 그대로 서너 걸음만 떼면 바로 봉수대 터와 복원된 봉수대가 보입니다.

봉수대는 긴급한 사태가 발생한 경우 그 사실을 가까운 관아와 해당 지역에 신속하게 알리는 전보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밤에는 불, 낮에는 연기를 이용했는데 평상시에는 하나, 적이 나타나면 둘, 경계에 접근하면 셋, 경계를 침범하면 넷 이렇게 그 위급함의 정도에 따라 불을 붙였다고 합니다.
이제는 봉수대 곁으로 난 성곽길을 걷습니다. 하늘 계단처럼 영원히 안 끊길 듯이 층층이 나 있는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서 이끼를 머금은 성곽의 여장과 함께 미니어처처럼 보이는 도시의 풍경을 구경합니다.

이곳은 그 아래 도시를 아늑하게 감싸 안은 여러 산맥의 풍광이 한눈에 담깁니다. 하늘과 산과 그 아래 도시. 각자 다른 세 가지 세계가 한 곳에 우연히 만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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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산과 그 아래 도시

사방으로 산새 소리와 풀벌레 소리로 가득합니다. 그 어느 때보다 게으름을 피우며 걷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토록 느릿느릿 흡사 달팽이가 나뭇잎 위를 기듯이 걷고 있으니, 행복이 본래 가진 속도감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느리고 고요해서 그 순간에는 손에 잡히기도, 눈에 보이기도 어려웠다는 걸 기억해봅니다. 지금 이대로 귓불을 스치는 솔바람과 산새소리가 그저 좋습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뚜렷하고 선명하게 느껴지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연히 산신이 사는 이곳에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땅 위에 세워진 도시를 다시 굽어보는 것이죠. 분명 깊은 산속을 걷는 줄 알았는데, 가만 보니 도시 한가운데 같습니다. 무언가 속은 느낌입니다. 세상에 이런 풍경이 다 있을까 감탄하면서도 산인지 도심인지 모를 이 묘한 풍경에 빠져들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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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야말로 남산 순성길의 매력

이대로 성벽을 끼고 다시 내려가는 계단 길에서도 이런 묘한 잔상은 계속됩니다. 왼편으로는 여전히 가는 길을 동행해주는 미쁜 성돌들과 그 옆으로는 다시 잎사귀 커튼에 살짝 가려진 도시의 풍경이 훤합니다.
아무리 보고 또 보아도 신기합니다. 한양도성을 끼고 있는 숲길 한가운데, 바로 그 곁으로 펼쳐진 도시 한복판의 도로 위 분주히 움직이는 차들이 보입니다. 가만히 그 이질적이면서도 조화로운 풍광을 보고 있자면, 작게 보이는 차들이 풀잎 사이를 비행하는 반딧불이처럼 보입니다.

그렇게 점점 더 산 아래로 내려가는 중입니다. 어느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계단 길이 산 밑 평지로 이어집니다. 마침 알맞게 화장실도 있고 벤치도 있으니 잠시 쉬었다 가는 것도 괜찮겠습니다.
이제는 완전히 산 아래로 내려왔습니다. 안중근 의사의 동상 앞으로 '서울 한양도성'이란 글씨가 바닥에 선명히 새겨져 있습니다. 예전에 성벽이 세워져 있던 자리입니다. 이참에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 들러보려고 합니다. 잠시 그가 살아낸 이야기 속에 머물러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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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간 자리에 머무르는 길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서 나와, 이제는 김구 선생님을 기리는 '백범 광장'을 지나갑니다. 끊겼던 성벽이 공원 한가운데로 복원되어 있습니다. 성곽을 곁에 끼고 정면으로 보이는 힐튼 호텔을 마주하고 내려오는 길. 이제 숭례문 가까이에 다 왔습니다.

완전히 도심 한가운데로 들어섭니다. 이대로 성곽을 등지고 인도를 내려오면 어느새 남산 공원 글자를 조형해놓은 안내판을 지나 퇴계로 6가 길이 보이는 신호등 앞에 섭니다.
이제는 성벽이 끊어져 다시 보기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길 건너편 인도 옆으로 한양도성의 여장이 낮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코앞에 보이는 숭례문까지 잠시라도 성곽을 끼고 걸어야겠습니다. 건널목을 건너 몇 걸음 떼자 빌딩 숲 한가운데 숭례문의 뒷모습이 보입니다. 원을 그리듯 동그란 성문 곁을 돌아서 숭례문 정문 앞으로 가봅니다.

높고 깊어진 가을 하늘을 머리에 이고 있는 듯 숭례문이 당당히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조선의 정문으로서 시간을 여닫고, 날씨에 관여했던 당시를 생각해 봅니다. 조선시대에는 가뭄이 들면 왕이 근신하고, 죄수들을 풀어주거나 숭례문, 흥인지문, 돈의문, 숙정문에서 제사를 지냈습니다.
특히 가뭄은 음양의 조화가 깨어진 데서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해석하여, 가뭄이 심하면 숭례문을 닫고, 숙정문을 열어 두었다고 합니다. 남쪽 숭례문에서는 양의 기운이 들어오고, 북쪽 숙정문에서 음의 기운이 들어온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남문의 양기를 막고, 북문의 음기를 들여 비가 오기를 빌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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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기운이 지나다니는 문

숭례문 근처에 ‘남지(南池)’라는 연못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참에 '남지 터'도 보고 가려고 합니다. 잊혀졌거나 사라진 무엇을 찾아내는 기쁨이 지금의 순성길의 묘미가 아닐까요.

사방이 빌딩이고 자동차가 지나가는 대로 한가운데 작은 비석만 남은 남지 터. 일단 지도를 보면 '대한상공회의소'로 올라가는 길 중간에, 숭례문이 맞은편으로 보이는 지점에 있는 것 같습니다.

일단 숭례문을 뒤로하고 정면에 난 도보 끝으로 서울역을 바라보며 버스정류장 쪽으로 내려갑니다. 첫 번째로 보이는 신호등을 건너, 대한상공회의소 방향으로 가봅니다. 맞은편으로는 숭례문이 지척에 보이니 이 근방 인도를 좌우로 자세히 살펴봐야겠군요.

비석이 있을만한 자리가 마땅히 없는데 바로 보이지 않네요. 혹시 한양도성 길을 이어주는 표식처럼 대로 한가운데 있는 건 아니겠죠? 차로에 비석을 두지는 않았을 텐데요... 아니 가만가만, 이게 남지 터 비석이 아닌가요? 드디어 찾았습니다!
성문 밖 연못, '남지'는 관악산의 강한 화기(火氣)에 노출되어 있는 경복궁을 보호하기 위해 나라에서 만든 연못이었기 때문에 조선시대 왕실의 과수원을 관리하고 궁중에 꽃과 과일을 공급하던 관청인 ‘장원서’에서 손수 관리했다고 합니다.

덧붙이자면 성문 밖에는 이곳 말고도 몇몇 연못이 있었는데, 서대문 북쪽에 '서지(西池)', 동대문 안쪽에 '동지(東池)'라는 연못도 있었습니다. 모두가 ‘남지’처럼 연꽃이 피는 연못이었습니다.

'남지 터' 비석 곁에 서서 잠시 숭례문을 바라봅니다. 옛날에는 성 밖에 늘어선 장터와 민가들, 성문을 오가는 사람들로 항시 북적였겠지만, 지금처럼 복잡하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숭례문 양옆으로 잘려버린 성벽으로 주위로, 다시 성문 앞뒤로 쉴 새 없이 차들이 지나갑니다.
이제는 사방이 평온한 숲 대신 하늘을 가릴 만큼 높다란 빌딩들이 마치 옹성처럼 숭례문을 포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밤낮으로 쉬지도 않고 숭례문 주위를 이명처럼 가득 채울 도시의 소리, 그 이전에는 꿈결에라도 상상하지 못 했을 새로운 종류의 소음들. 그 소란스러운 도심의 정가운데에 갇혀버린 숭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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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도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일까

지금 숭례문은 느긋한 듯 흥미로웠던 그 시절의 소리를 그리워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이 빌딩 숲에 익숙해지고 정이 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사방으로 뻥 뚫려 있던 당대의 하늘 길만은 유독 못 잊고 있을 것만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그 자리에 있어 줘서 고맙다고, 앞으로도 오래오래 또 바뀔 이곳의 풍경을 지켜봐 달라고 그렇게 숭례문에게 말을 건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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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 26 Dec 2016 18:40:50
<![CDATA[Ep.08 꼭꼭 숨어있는 한양도성을 찾아라]]>

우리가 만드는 문화유산, 한양도성 8화

김남길, 꼭꼭 숨어있는
한양도성을 찾아라

2016년 10월 13일 연재

지난 순성길에서 만났던 한양도성의 정문, 숭례문을 기억하시나요? 이번에는 숭례문 밖에 있던 연못 '남지' 표석 맞은편에 자리한 대한상공회의소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려 합니다. 그 건물의 낮은 담장이 한양도성의 성벽이거든요. 그렇게 다시 성곽 따라 길 따라 숨겨진 성문, '소의문'을 찾아갑니다.
대한상공회의소 건물 곁으로 온전하지 않지만, 성곽의 연결성을 보여주는 성벽이 보입니다. 여장도 총안도 없이 야트막하게 그야말로 담장을 쌓아놓았습니다. 문화재임을 알리는 표식이 붙어있지만, 한양도성임을 알리는 표식을 봤다고 해도 정말 성벽인지 실감이 안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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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인 듯
성벽 아닌 듯
성벽 있는 길

그나마 성벽 안에 박힌 성돌도 새것이 대부분이라 한양도성의 유구한 시간을 느끼기에는 부족합니다. 그렇게 길이 끝날 때 즈음, 맨 밑단에 드문드문 보이는 까무잡잡한 옛 돌 만이 이곳이 한양도성이었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그래서 도성을 온전히 복원해 놓았다기보다는 성벽이 지나가던 자리를 표시해주기 위한 성벽의 연결성을 표현한 조형물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한양도성의 흔적이 좀처럼 와 닿지 않아 실망스러움도 잠시, 어느새 이미 복원된 성벽은 끊겨 이미 저 먼발치에 있고 다시 평범한 빌딩 숲 한가운데 서 있습니다.

이제 이 길 그대로 조금만 올라가세요. 정면으로 보이는 도로 건너편으로 경남은행 건물이 보이면, 그 지점에서 잠시 멈춰 섭니다. 그리고 바로 오른쪽으로 길을 따라 돌아서면, 못 보고 지나쳐도 이상할 것 없는 곳에 ‘소덕문 터’라고 새겨진 표석이 있습니다.
'소의문'은 오늘날 서소문 고가도로의 시작점에 서 있었지만 1914년 일제가 철거하여 지금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지도에는 '소의문'이 아닌 '소의문 터'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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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덕문,
소의문,
서소문.

소의문은 1396년 도성과 함께 축조되어 처음 이름은 '소덕문'이었다고 합니다. 영조 때 문루를 개축하면서 소의문으로 이름이 바뀌었다는군요.
실록을 보면, 1394년 2월 12일 서소문의 옹성이 무너지려 하자 감역관을 옹진으로 귀양 보내고, 사흘 뒤에는 석장이었던 중을 효수하여 문에 걸어두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성문을 허술하게 만들었다고 중의 머리를 베어 문에 매단 역사 때문일까요? 그 뒤로도 소의문 밖은 죄수들의 사형 장소로 자주 이용돼 '서소문은 참수장'이란 말이 퍼졌다고 합니다. 이 얘기를 들으니 이 자리에 서 있기가 좀 으스스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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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길로 이어지는
한양도성 순성길

이제 대로변 한가운데 숨어 있던 소의문의 흔적도 찾았으니, 구한말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정동길로 이동합니다. 소의문 터 건너편의 SK 순화빌딩과 평안교회가 있는 골목길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이건 또 처음 알았군요. 평안교회 초입에 이 일대의 옛 지명을 알리는 표석이 있습니다. 그 옛날 이곳 순화동 일대에는 숙박시설이 많고 수레들이 많이 모여들었다 해서 '수렛골'이라 불렸다고 합니다. 인현왕후가 태어난 곳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수많은 시간을 품은 평안교회 골목 안으로 들어가면, 얼마 안 가 순성길 표지판이 보입니다. 한양도성 '돈의문 터' 850미터 앞. 그 뒤로는 '숭례문'이 1.1.km 남았음을 알려주는군요. 이대로 걷다 보면 막다른 길이 나와 당황할 수도 있으나 어김없이 순성 안내 표지판이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 안내문이 보이는 대로 곧바로 걸어서 들어갑니다. 그럼 작은 공원이 나오는데, 그곳이 배재공원입니다. 빌딩 숲 속에 숨어있는 한적한 쉼터에서 잠시 숨을 돌립니다.

그런데 가만 보니 배재학당 터를 알리는 표석이 있군요. '배재학당'이라고 하면 미국 선교사가 최초의 영어 교육기관으로 세운 학교라고는 알고 있었는데, 이곳에서 1895년에 독립협회가 태동하고 독립신문도 발간되었다는 건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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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장소에 동시에 존재한
또 다른 역사

하나의 역사적 장소가 또 다른 당대 사건들과 중첩된다는 사실이 흥미롭습니다. 하기야 지도도 지금의 지도와 옛 한양 지도를 겹쳐서 비교해 보며 길을 찾고 있으니까요. 앞으로 표석 하나를 보더라도 한 장소에 동시에 존재했던 또 다른 사건에도 눈여겨봐야겠습니다. 그 속에 또 새로운 이야기가 숨어있을지 모르니까요.

이제 공원 나무들 사이로 서울중앙지방법원 중부등기소가 보입니다. 그 옆으로는 서울 시립미술관도 있습니다. 이제는 안 보이면 섭섭할까 공원을 나오자마자 전봇대 위에 또 순성길 표지판이 붙어있습니다.
한양도성 돈의문 터 앞으로 700M, 좌회전을 하라네요. 그렇게 도보를 얼마 걷지 않아 러시아 대사관과 정동교회가 나옵니다. 여기서부터는 정동길이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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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문물의 중심지,
정동

'정동'이란 이름은 조선 시대 태조 이성계의 계비 신덕왕후의 능인 정릉이 지금의 정릉동으로 옮겨가기 전에 있었던 곳이라 해서 붙여졌다고 합니다.

그 후 19세기 후반 개화기를 맞아 서구 열강의 공사관이 당시의 대표적 무역항이었던 마포와 궁궐에서 가까운 정동에 들어서면서 서구식 교육기관과 종교 건물이 모여들어 근대 문물의 중심지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정동길을 중심으로 외국인들이 운영하는 상점이나 원서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책방도 생기기 시작했고, 특히 영사의 어린 자녀들도 머무는 경우가 있어 그 푸른 눈의 아이들도 이 근방의 조선 아이들과 함께 뛰어놀기도 했다고 합니다. 서로 다른 나라를 가졌지만, 함께 장난치고 놀았던 아이들을 상상하며 이화여고를 곁에 두고 걷습니다.

당시 이 일대에 배재학당처럼 선교사들이 세운 서양 학교들이 많았는데, 이화여고의 전신인 이화학당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유관순 열사도 이곳의 학생이었는데, 이곳 유관순 기념관 안 박물관에는 유관순 열사가 공부했던 이화학당 교실을 재현해 놓았다고 합니다.

담벼락 안으로 유관순 열사의 동상도 보이네요. 담장 밖에서 보면 비록 뒷모습만 보이지만, 소녀의 어여쁜 댕기 머리가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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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 따라 한 걸음씩
너와 함께

가만 보니 이 옛길을 걷는 내내 과거와는 길 자체가 많이 바뀌었다지만, 격변의 시기에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타국의 이방인들과 배움의 열정으로 가득했던 우리 학생들이 함께 공유한 길이니,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도 우리가 함께 빛을 향해 나아갔던 동감의 순간을 기억하면서 걸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때그때 길의 색이 바뀌고 이야기가 변하고 풍경이 다른, 그런 다채로운 정동길 이대로 이젠 아무 생각도 궁금한 것도 없이 정동 사거리까지 걸어 갑니다.

그다음 성문인 돈의문 터가 그 일대에 있는데 이번 한양도성 길 찾기는 이만 접어두고, 정동길에 아기자기한 카페에서 커피 한잔 마시며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이어보며 다음 길을 생각합니다.

오늘은 이 길을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누군가와 함께 걷고 싶습니다. 순성길은 혼자 걸을 때도 좋지만 누군가와 함께 수다를 떨며 걸어도 좋은 길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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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 22 Dec 2016 17:36:44
<![CDATA[Ep.09 돈의문을 지나 가리어진 길을 걷다]]>

우리가 만드는 문화유산, 한양도성 9화

김남길, 돈의문을 지나
가리어진 길을 걷다

2016년 10월 20일 연재

정동길을 지나 잃어버린 성문, 돈의문을 찾아갑니다. 그럼 이제 성문을 찾아 얼마나 더 걸어야 할까요? 사실 정동사거리 그 앞에서 더 이상 가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 자리에서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세요. 그냥 평범한 도로처럼 보이지만, 옛날 이 자리에는 돈의문이 있었습니다.
강북삼성병원 앞 인도에 목재로 만들어진 과거 돈의문이 있던 자리임을 알리는 표식이 눈에 띕니다. 그전에 수없이 마주한 성문 터를 표시하던 비석과는 달리 목재로 세운 벽 위에 덤으로 유리판이 덧대어져 돈의문 터라는 글씨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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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문
그리고 가리어진 길

돈의문이야말로 잃어버린 문인 것 같습니다. 문이 헐릴 때 경매에 부쳐 그 성돌 하나하나, 목재, 석재, 기와까지 팔아버린 문이니까요. 1915년, 총독부에서 경매 입찰을 진행하였고 염덕기 라는 사람에게 205원 50전에 낙찰하였다는 매일신보 기사가 남아 있습니다.

당시 문루를 헐어낼 때 그 안에서 불상과 많은 보물이 나와서 그가 큰 횡재를 했다고 하는군요. 그렇게 전찻길 조성을 명목으로 철거된 이후로 현재 돈의문은 숭례문, 흥인지문, 숙정문 서울 사대문 중 유일하게 미복원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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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이로
잊힌 사람들

그렇게 이제는 기억과 이야기로만 전해지는 돈의문. 이제는 전설 같은 이야기만 남기고 사라진 애틋한 성문에서 강북삼성병원 앞으로 난 오르막길로 들어섭니다. 그 길 초입에 '경교장'이 있습니다.

경교장은 백범 김구 선생의 사저이자 공관, 해방 후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로 쓰였던 곳입니다. 1938년에 지어진 단아한 2층의 서양식 건물입니다.
입구에서부터 일반 가정집 같지 않은 높은 천장과 널찍한 응접실이 보입니다. 그 위로 이층 계단을 올라가면 김구 선생의 서재로 쓰던 공간이 나옵니다. 창가에 놓인 의자 옆 유리창에 총탄 자국이 선명합니다. 바로 김구 선생이 암살당한 그날 앉아 있던 자리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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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느린 숨으로
찬찬히 들여다보기

그렇게 그분의 서재를 뒤로하고 경교장에서 나와 다시 오르막길을 따라 걸음을 옮깁니다. 서울 성곽길 표지판이 보이면 그대로 성벽을 품은 월암근린공원으로 들어갑니다. 산책로를 따라 자연스럽게 펼쳐진 한양도성이 반갑습니다.

조금 전까지도 도심 한가운데 있었는데 새삼 이런 한적한 공원 안에서, 또 한양도성 곁을 따라 걸을 수 있다니 걸으면 걸을수록 신기합니다. 그렇게 얼마 걷지 않은 것 같은데 어느새 공원 길이 끝나버리고 주택 단지 내로 들어가는 듯한 골목이 보입니다.
아쉽게 이대로 돌아서려던 차에 앵두를 닮은 빨간 열매를 맺은 나뭇가지 사이로 표석이 보입니다. 여기도 역사적인 장소였을까요? 표석을 가까이가 자세히 보니, 이 근방이 '어니스트 베델'의 집터였다고 알리고 있습니다.

그는 일제 정책에 반대하는 대한매일신보를 간행하는 동안 수많은 고초를 겪으시다 병이 들어 끝내 고국으로 못 돌아가셨다 합니다. 그 마지막까지도 조선이 처한 부당한 상황을 알리는 신문을 걱정했다던 그 마음이 꼭 지금 이 표석을 둘러싼 붉은 열매같이 느껴집니다. 물론 그 따듯한 마음을 어떤 색으로도 표현할 수는 없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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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성 길에 각인된
역사와 이야기

그렇게 깊은 사연이 담긴 이곳을 두고 다시 사라진 한양도성을 찾아서 주택가로 들어갑니다. 이제는 양옆으로 빽빽하게 있는 빌라 단지에 들어서니 전봇대에 부착된 한양도성 안내 표지판이 보입니다. 앞으로 인왕산 정상까지 1.9km 남았습니다. 새문안 빌리지 건물을 지나 사직공원 쪽으로 올라갑니다.
좌우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지 헷갈리는 고불고불한 길이 반복됩니다. 좌측은 '송월 1길'이고 우측이 '사직로 6길'인데요, 송월 1길을 통해 곧은 도로로 곧장 올라갑니다. 그러면 곧 한양도성 안내 표지판을 지나 '인왕산로 1가 길'에 들어서게 됩니다. 그럼 끊겼던 한양도성을 다시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쯤에서 고민이 됩니다. 이대로 성의 외벽을 끼고 올라가면 암문이 나올 텐데 바깥으로 걸을까, 아니면 산책로가 나 있는 그 안쪽 길을 걸을까... 그래도 성 밖 마을 길을 걷다 성안으로 들어가는 재미가 있으니, 암문까지 이대로 성 밖을 걸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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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든 오갈 수 있는
마을과 성벽 사이

그러고 보니 이곳이 행촌동 성곽 마을이군요. 왼편에 '사직로 1다 길'이라 도로 표지판이 붙은 전봇대 밑으로 바로 마을로 가는 계단이 있습니다. 마을과 성벽 사이에 도로를 두고 있지만, 언제든 오갈 수 있을 정도로 가깝습니다.
마을로 통하는 암문으로 들어가버리면, 어느새 바라보기만 해도 시원한 산책로가 열립니다. 잠깐 동안 암문에 들어서자마자 반갑게 놓여있던 단란한 나무 의자에 앉아봅니다. 운동화 끈을 고쳐 묶고 물도 한 모금 마십니다.

여기서부터는 본격적으로 인왕산 정상까지 한양도성이 이어지는 길입니다. 살짝 보기만 해도 깎아지른 절벽 위에 간신히 매달린 듯한 나무 계단이 보이는군요. 아마 이대로 올라가 버리면 창의문까지 꼼짝없이 다시 내려가지도 올라가지도 못하고 쭉 걸어야 할 것 같습니다.

무언가 싱겁긴 하지만 이번 순성은 이대로 가볍게 마무리 지어야 할 것 같군요. 도저히 이대로 다시 쭉 걸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다음 순성 길에는 단단히 준비하고 와야겠습니다.
돈의문으로부터 이어지는 한양도성 순성 길을 걸으며 근현대사 속 인물들이 걸었을 길을 동행했다고 생각하니, 이번 길도 평범한 듯 특별했습니다.

이 근방 마을 골목길 사이에 근대 소설 '삼대'에도 묘사되었던 홍난파 가옥과 1919년 3•1운동 독립선언서, 화성 제암리 학살사건 등을 외신으로 처음 보도한 앨버트 테일러의 가옥 '딜쿠샤(Dilkusha)'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딜쿠샤’ 바로 옆에는 수령이 4백 년이 넘는 은행나무가 서 있는데, 행주대첩을 이끈 권율 장군의 집에 있던 나무로 전해집니다. 이 일대 행촌동이란 지명도 바로 이 은행나무에서 유래됐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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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속살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한양도성의 매력

'이렇게 벗기면 벗길수록 새로 나오는 한양도성의 숨겨진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언제든 새로운 곳에서 순성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사방으로 연결되는 한양도성의 행로는 그래서 거듭 걸을수록 다채로워지나 봅니다.
그렇게 나만의 한양도성 길을 그려가다 보면 하루가 인생 전부인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확실히 이 하루의 전부를 제대로 누린 것 같은 뿌듯함을 느낍니다. 바로 그때, 그날 하루... 한양도성 순성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 어디에서든 마음 가득 채워지는 즐거움이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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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 22 Dec 2016 17:04:30
<![CDATA[Ep.10 인왕산을 넘어 창의문으로]]>

우리가 만드는 문화유산, 한양도성 10화

김남길, 인왕산을
넘어 창의문으로

2016년 10월 27일 연재

행촌동 사직 근린공원의 산책로를 따라 그저 파란 쪽빛 하늘을 머리에 인 여장 아래로 한양도성 순성을 시작합니다.
인왕산 구간 중에 사직 근린공원 부근의 성곽은 성의 안과 밖을 모두 살펴볼 수 있는 구간이라고 합니다. 지금 성안을 걷고 있으니 인왕산 입구에 가서는 성 바깥 오솔길로 걸어보기로 합니다. 이제는 느긋하게 하늘 위에 붕 떠 있는 듯한 인왕산 정상을 바라보며 걷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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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이굽이 바위산을 넘어
성곽 길을 따라가는 여정

이제 코앞으로 듬직한 바위 봉우리가 보이네요. 인왕산에는 유독 바위들이 많다는데, 그 이름들이 제법 특이합니다. 선바위, 모자바위, 범바위, 기차바위... 그렇게 별별 생각을 하며 머릿속으로 그 모든 돌들의 모양을 직접 빚어보다 보면 다시 인왕산 공원 입구, 탐방로가 시작하는 지점에 다다릅니다.

한양도성 탐방로 '외곽 길'이라 표시된 나무 표지판을 따라 성 밖으로 걷습니다. 어느새 뒤돌아보면 지금까지 지나온 유려한 성벽이 한눈에 보입니다. 곡선을 그리며 남산 쪽으로 휘어진 성벽 안으로 촘촘히 마을 지붕들이 앙증맞게 놓여 있습니다. 그 뒤로 훤하게 솟아 있는 N서울타워도 보이는군요.
이제는 한양도성과 함께 아늑하게 둥지를 튼 도시의 풍광을 산수화 보듯이 지켜보며, 이제는 친근하다 못해 익숙한 각기 다른 모양의 성돌을 세어보며 계단을 오릅니다.

시작부터 경사가 높은 계단이 걱정이었는데 어느새 계단 대신 신발 밑으로 평평한 흙길이 느껴집니다. 숲 속을 가볍게 산책하듯이 길 위에 깔아둔 까끌까끌한 짚 길을 천천히 밟으며 성벽 곁을 걷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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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이 숨겨둔
한양도성의 정원

새삼 서울이 숨겨 둔 정원에 온 것 같습니다. 조금 전에는 마을버스가 올라오는 행촌동 마을이었는데, 어느새 이렇게 숲 속 한가운데 한가롭게 서 있다니, 뭐 이제는 한양도성이 바꿔버리는 이런 공간의 마법에 익숙해질 때도 됐지만, 매번 신기합니다.
보고 또 봐도 남산 한가운데로 구불구불 흘러가는 한양도성과 그 좌우로 서울의 풍경이 두 눈 가득히 벅차게 차오릅니다. 그만 그 풍경에 취해서 자리를 떠날 수가 없습니다. 어느새 모여든 다른 사람들도 한참을 이 아래 세상을 내다봅니다. 우리의 일상 가까이에 닿아있는 이 바위산과 초록빛을 감싸 안은 한양도성이 고마워집니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바위 계단을 올라야 합니다. 앞을 똑바로 보고 천천히 미끄러지지 않게 올라오세요.
걷다가 중간중간 서서 풍경을 바라봅니다. 전망대에 있을 때보다 이곳에서 저 멀리 청와대와 경복궁, 광화문 일대, 옛 육조거리까지 한 번에 보입니다. 발길을 멈춘 곳마다 드러나는 산맥과 도시의 모습이 일품입니다.

N서울타워가 시계탑처럼 솟아 있는 남산까지 내려가는 성곽을 중간에 두고, 주위에 북한산, 북악산, 관악산, 한강 모두가 한데 모여 조화를 이룹니다. 과연 서울이 천하의 명당이 맞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대로 풍광에 넋을 놓고 있기에는 길이 험하니 그저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가는 길 내내 바위 사이에 틈들이 많이 보입니다. 작지만 옹골찬 골짜기와 성벽의 흐름 따라 내려와 보면, 어느새 내리막길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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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가까이에
닿아있는 한양도성

여장의 총안 안으로 울긋불긋 솟아 있는 주택의 지붕들이 보입니다. 이제는 땅 밑으로 가까이 내려가고 있는 중인가 봅니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곧 숲길이 끝나고 도로가 나옵니다.
인왕산 순성길이 끝나는 초입에는 왼쪽 청운 공원, 오른쪽 사직공원을 가리키는 나무 표지판이 서 있습니다. 그렇게 표지판 앞에서 아스팔트 길 위에 도착하면, 청운 공원 쪽으로 걸어가세요. 서너 발자국 앞으로 한양도성 창의문까지 800m 앞이라는 표지판도 보이네요. 이대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 신나게 내려갑니다.

그렇게 부담 없이 인도 아래를 걷다가, 수성동 계곡으로 갈 수 있다고 알리는 표지판을 만나면 윤동주 문학관으로 직진합니다. 이대로 산책로를 걸으면 정면에 우뚝 솟은 산봉우리가 보이고, 옆길에는 청운 문학도서관을 가리키는 표지판이 보입니다. 그만 그 화살표대로 내려가 한옥으로 지어진 청운 문학도서관에서 책도 빌려 부암동으로 내려가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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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길,
오늘도 갈 나의 길

그래도 창의문을 먼저 찾아야 하니 윤동주 문학관으로 걸어갑니다. 새하얀 건물 외벽에 윤동주 문학관이란 글씨가 선명합니다. 그 밑으로 어린 시인의 얼굴이 점묘법으로 금방이라도 흩어질 것만 같은 물방울처럼 표현되어있습니다.

그 곁으로 윤동주의 시가 새겨져 있습니다. '내를 건너 숲으로 다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그가 이 근방의 서촌에서 하숙방까지 가려고 건너던 모든 골짜기와 작은 골목길들을 상상하게 됩니다. 이 부암동 언덕을 넘어 서촌으로 가면, 그가 여름방학을 맞아 서너 달을 지냈던 누상동 하숙집이 있었습니다.
그의 절친한 후배였던 정병욱의 증언에 의하면, 그곳에 살던 5월 그믐 무렵부터 여름방학이 끝날 때까지 그의 일과는 단순하지만, 꽤 알찼다고 합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인왕산 중턱까지 산책하고 산골짜기 아무 데서나 세수를 합니다. 아침을 먹고 학교에 갔다가 수업을 마치면 전차를 타고 충무로의 고서점을 순례하고 명동이나 을지로를 거쳐 다시 청계천 주위 헌책방에 들릅니다. 그리고 하숙집으로 다시 돌아와 저녁을 먹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그는 그 당시 산맥 중간중간에 솟아 있는 초소 건물이나 전봇대 전깃줄로 시야가 막히지 않은 지금보다 더 단출하고 고즈넉한 인왕산의 도성 길을 걸었을 겁니다. 그리고 이대로 창의문을 지나 서촌 하숙집으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어떻게 창의문으로 갔을까요? 물론 지금과는 길이 많이 달랐겠지만, 이 지점에서 매우 가까이 성문이 있습니다. 여기서 길을 건너면 눈에 익은 표지판이 보입니다. 한양도성 순성길 표지판이 창의문 100m 앞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제 정말 창의문에 도착했습니다. 성문 안으로 들어가 봅니다. 일본 강점기 때도 헐리지 않고 원형 그대로 남은 문 이라더니, 실제로 보니 그 주위 풍경마저 단단하게 감싸 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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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을 단단하게
감싸 안고 있는 창의문

일명 ‘자하문(紫霞門)’이라고 불렸는데, 이미 조선 초기에 축조되었으나, 창의문이 경복궁을 내리누르는 위치에 있다는 해석 때문에 오랜 기간 일반 출입은 금지되었습니다. 다만 왕명에 의하여 일시적으로 통행을 허가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조용한 문이 큰 사건으로 소란스러웠던 때가 있었습니다. 바로 인조반정 때, 반란군들이 이 문의 빗장을 부수고 들어가 광해군을 폐위시켰습니다. 그리고 설이 분분하지만, 왕위에 오른 인조가 이때 거사에 협조한 문밖 백성들을 위해 능금, 자두나무를 심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때 서울의 특산품이었던 ‘경림금(京林檎)’이 바로 창의문 밖 능금이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창의문 정면으로 난 작은 터널을 지나 부암동으로 나옵니다. 이 길 건너편 버스 정류장에서 1020 버스를 타고 경복궁역에 갈 수도, 부암동의 작은 미술관과 카페에 들렸다 겸재 정선이 자주 갔다는 수성동 계곡에 들러 보실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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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가 존재하는
시공간과 함께하는 것

아직도 그 하나하나의 성곽 길에서 받았던 감정들이 선명합니다. 다만 더는 그동안 지나온 행로가 자세히 생각나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그려지는 것이 각인이라고 한다면, 차라리 지금 지난 길들이 기억나지 않는 것이 다행입니다. 그만큼 마음으로 그리며 걸어왔으니까요.

이 성곽 도시의 기억이, 이미 오래전 이곳을 지나던 사람들의 그 모든 시간이 지금 내가 존재하는 이 시공간과 함께한다는 걸 알게 됐으니 말입니다.
이제는 성곽 도시의 모습을 다만 상상하고 짐작하는 것을 넘어서 직접 느끼고 동감하게 됩니다. 그렇게 이 작은 여행으로 나 자신의 시간의 빛깔이 좀 더 다채롭고, 풍요로워지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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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 22 Dec 2016 16:55:36
<![CDATA[Ep.11 숙정문에서 그 후로도 오랫동안]]>

우리가 만드는 문화유산, 한양도성 11화

김남길, 숙정문에서
그 후로도 오랫동안

2016년 11월 3일 연재

드디어 순성장거의 마지막 길이 시작됩니다. 창의문을 지나, 산속에 자리한 '숙정문'으로 향합니다. 창의문 안내소에서 신분증 확인을 하고 받은 출입증을 목에 걸고 북악산 순성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안내소 옆을 에둘러 산의 능선으로 힘차게 이어지는 성벽이 보입니다. 부암동 마을 풍경을 구경하며 올라갑니다. 슬그머니 총안 사이로 손을 넣어보니 손끝으로 산들바람이 스쳐 지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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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악산 능선으로 힘차게
이어지는 한양도성

중간에 멈춰 서 바로 뒤를 돌아보니 흡사 낭떠러지를 닮은 풍경에 그저 앞으로 걷기만 해야 한다는 중압감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순성길이 가진 특유의 고요함은 잠시 멈춰 서서 숨고를 때마다 여유를 되찾게 해줍니다. 사실 그 덕에 더 특별한 길이 될 수도 있습니다.

땀을 실컷 흘리며 걷다가 잠시 여장 너머로 절경을 볼 때는 무언가 쟁취한 것만 같습니다. 그 순간에는 좀 더 자유로워지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실제로 점점 높이 올라가니 구름 위에 붕 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이대로 하늘 가장 가까이 손이 닿을 것만 같습니다.
계단 사이사이 떨어져 있는 솔방울들을 쓸데없이 세우며 걷다 보니 더 이상 마을도 보이지 않습니다. 공기부터가 정상에 다다랐다는 느낌을 줍니다. 숨을 크게 내쉬면 풀잎에 묻어있던 솔잎 잔향이 몰려듭니다. 그러다 어느새 소나무 숲 한가운데에 서있습니다.

그런데 길 한편에 빨간색 타원형 점을 찍은 소나무가 보입니다. 자세히 보니 총탄 자국 표시입니다. 그리 크지도 않은 나무 몸통에 정말 여러 자국의 상처가 나 있습니다. 안내판을 보니 이 나무가 1.21사태 소나무라는군요.

수령이 200년 정도 된 소나무인데 15발의 총탄 자국이 남아있습니다. 이 자국은 1968년 1월 21일, 청와대를 습격하려고 침투한 북한 특수부대원들과 우리 군경이 교전한 흔적이라고 합니다. 지금의 아늑한 소나무 숲과는 다른 격전지를 지나 다시 고요한 계단을 내려갑니다.
그렇게 얼마 안가 숙정문까지 1.2KM 앞, 청운대를 알리는 안내판 앞에 섭니다. 한양도성에서 가장 고도가 높은 곳이라는 데, 그 밑으로 서울 시내가 한눈에 보입니다.

마치 한편의 드라마를 엮어내듯이 그 좌우로 이어지는 도로와 마을과 마을의 경계까지 담깁니다. 당장이라도 양팔 벌려 품으면 한 번에 안을 수 있을 만큼 온 서울 시내가 작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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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풍경 속에서
다가오는 모든 것들

이제 청운대에서 산 밑으로 내려가는 성 밖 길로 걸어 내려옵니다. 왼쪽으로 나 있는 철조망과 체성 사이를 암문이 나올 때까지 걷습니다. 정면으로는 녹음이 우거진 산봉우리가 보입니다.

새삼 산 한가운데에 있다는 게 신기합니다. 이렇게 잘 정돈된 길을 쉽게 걷고 있으니 말입니다. 길이야 성벽을 따라 걸으면 산속에서 미아가 될 일이 없고, 초입에 계단이 힘들어서 그렇지 항상 성벽 곁으로 걷기 편하게 길이 나있습니다.
암문 안으로 들어가면 정면에 보이는 장승 옆으로 나무 울타리가 길을 막고 있습니다. 이 길로 숙정문으로 가는 길이 맞는 것인가 갸우뚱하실 수도 있습니다. 오는 동안에도 한양도성 안내판이 한동안 안 보였기에 불안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그대로 왼편으로 쭉 걸어가다 '백악 곡성'이라 표시된 안내판을 봤다면 잘 가고 있는 겁니다.

곡성은 막상 보면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성벽이 쌓인 형태를 자세히 보면, 지금까지 일직선으로 이어지던 성벽과 다르게 타원형으로 둥글게 성벽이 굽어져 있습니다. 주요 지점이나 시설을 방어하기 위해 성벽 일부를 밖으로 둥그렇게 돌출시켜 쌓은 성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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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속 깊은 곳에
숨겨놓은 숙정문

백악 곡성에서 얼마 걷지 않아서 다시 성 밖으로 보이기 시작한 마을 풍경과 소나무 숲을 지납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단청 지붕이 보입니다. 처음 봤을 때는 그 모습이 새것 같아 정자인가 했는데, 좀 더 가까이 가자 지대가 낮아지면서 성문의 온전한 모습이 보입니다.
드디어 순성길의 마지막에서 숙정문을 만났습니다. 파란 하늘을 이고 있는 처마 끝으로 솟아있는 소나무의 그늘 옆, 숙정문 홍예 안으로 들어가 봅니다.

숙정문은 조선시대 대부분 폐쇄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도 당시 여인들은 설날이 되면 숙정문에 가서 기도를 올리는 풍습이 있었답니다. 계곡 끝자락에 자리 잡은 이곳이 음기(陰氣)가 강해 최고의 기도처라고 소문이 났기 때문이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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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마주한 지금,
미래로 가는 한양도성의 길

조선 태종 때 풍수가로 이름난 최양선은 숙정문을 막아야 한다고 상소를 올렸는데, 백악산 동쪽 고개와 서쪽 고개가 경복궁의 양팔과 같아 이곳에 문을 내서는 안 된다고 했답니다. 태종은 그의 말만 믿고 숙정문을 폐쇄했다고 하네요. 또한 숙정문을 열어놓으면 여인들이 음란해지고 풍속을 해칠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라는 속설도 전해집니다.

서너 걸음 뒷걸음질 쳐서 보는 열린 성문 안 모습, 잠시 그 모습만으로 조선시대에 온 착각이 듭니다. 그 당시 잠긴 성문에 손을 대고 기도하는 여인들의 모습이 지금도 보이는 듯합니다. 다들 무슨 소원을 그토록 정성껏 빌었을까요.
성문 양쪽으로 놓인 돌계단을 올라 문루로 올라가 봅니다. 앞으로 놓인 길은 그전보다 다소 평평해 보입니다. 이제는 처음처럼 높은 계단을 오를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내려가는 일만 남았으니까요.

와룡공원까지 100M 앞이란 안내판이 보입니다. 성안에서 다시 성 밖으로 나오면, 중간을 가로지르는 성벽이 나무와 풀숲 사이로 사라집니다. 적재 재소에 붙어있는 안내판을 따라 숲길을 따르면, 어느새 다시 잃어버렸던 성벽과 마주합니다.

여기서부터는 한양도성 순성길의 출발점, 성북동으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아마 이 길처럼 흙 길의 멋이 살아있는 구간은 없을 겁니다. 길 위에 깔아둔 짚을 밟으며 왼쪽으로는 다채로운 숲을 벗하여 높다란 체성을 끼고 걷습니다. 곧게 난 그 길을 걸으며 그간 걸었던 길들을 되돌아봅니다.
와룡공원으로 내려와 다시 북정마을 카페 앞 버스 정류장까지 갑니다. 그렇게 순성장거를 처음 시작했던 그때로 돌아와 있습니다.

청운대에서 굽어보던 광화문 밖 육조거리 풍경을 떠올려봅니다. 그렇게 다시 지금까지 걸어온 순성길을 생각해 봅니다. 그 오랜 시간, 한양도성은 모두가 함께 살아낸 길이었습니다. 모두가 함께, 한 시대에 존재하며 자신들에게 주어진 역할을 이어가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 긴 순환이 지금까지 한양도성을 따라 이어져 우리에게로 왔습니다. 그 끝없는 이야기 속 한가운데 우리는 이렇게 서있습니다. 어디 서있다 뿐입니까, 이 가파른 길을 기꺼이 힘내서 두 발로 직접 올라와 보고 느낄 수 있는 삶을 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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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은 그 모든 길
내내 토닥여줬습니다

지금 이대로, 그 모습 그대로 이곳을 걷는 당신과 먼 과거의 모두는 연결되어 있다고 한양도성은 말해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당신은 오늘도 내일도 앞으로도, 우리가 그랬듯이 그냥 그곳에 서 있으면 된다고... 그러니 앞으로 다가오는 모든 것들은 흘러가는 대로 스스로 이 궤도 안에 자리 잡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순성장거를 마치고 돌아온 북정마을에서 다가오는 모든 것들에 대한 그 든든한 격려를 다시 되새겨봅니다.

처음에는 어렴풋한 인상이라고 느꼈던 감정들이 성문에서 다음 성문으로 넘어갈 때마다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바로 지금 우리 곁에 있는 한양도성이 이 시대의 증인이 되어줄 거라는 믿음 때문이었을까요. 그렇게 지금까지 걸어온 한양도성의 길은 모든 존재의 확인이었습니다.
그 어떤 여행에서도 찾을 수 없는 특별한 자부심을 주는 한양도성의 길. 특별히 어떤 소감으로 이 길에서 받은 모든 것들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할 수 있을까요. 그 후로도 오랫동안 이 길을 함께 걸으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동안 참 고마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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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 22 Dec 2016 16:51:22
<![CDATA[Ep.01 한양도성 순성길에서 만난 나의 어머니]]>

서울 한양도성 10人10色 Ep.01

한양도성 순성길에서 만난
나의 어머니

2016년 9월 13일 연재

매일같이 비슷한 시간들이 지나간다. 때론 그렇게 지루하고 따분하지만, 또 위안이 되는 일상이다. 그 안에서 우리가 평소에 걷던 길을 생각해 본다.

우리가 맛을 기억할 때 미각에 의존하는 것처럼 기억 또한 평소에 머물던 공간을 통해 이루어진다.

매일 습관처럼 지나치던 집으로 가는 길. 그 골목에 들어선 작은 가게, 버스 정류장, 공원에서 스스로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그 풍경은 마음속 깊이 새겨진다. 그렇게 일상에 자리한 크고 작은 기억들은 그 길, 틈 사이사이 각인된다. 그렇게 우리의 시간이, 기억이 만들어진다.

그러나 이제는 도심 속 정형화되고 일렬로 제단 된 길 위에서 작은 틈 하나 찾기가 쉽지 않다. 어느새 길은 그냥 길로, 일상의 행로 중 가장 빠르게 지나치는 존재가 됐다. 그러니 천천히 가만히 길을 걷는 일은 숨 쉬는 일처럼 중요하다. 그렇게 온전한 시간을 누려서, 진짜 삶을 살아내기 위해서는 다시 천천히 걸어야만 했다.

이제는 숨 쉬듯 천천히 걷던 때가 언제였는지 모르겠다. 그러면 왠지 서글퍼진다. 문득 이대로 시간여행을 갈 수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그렇게 다른 시공간으로 갈 수만 있다면, 새로운 길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간절히 지금까지와는 다른 길을 꿈꾸게 된다. 그러면 어김없이 함께 걷는 것만으로도 든든하던 그 길을 떠올리게 된다. 오래전 가졌었지만 이제는 잃어버린 집으로 가는 길. 당연하고 평범했지만 사실은 특별했던 동행. 키가 어머니 무릎에 닿았던 작은 시절, 어머니 보폭에 맞춰 뛰듯 걸었던 그 길.

그 옛날, 이 순성이 낸 길과 함께 호흡하던 사람들을 생각해본다. 청계천으로 이어지는 순성길엔 어쩔 수없이 항상 누군가의 어머니가 있다. 그때도 집안에서 가장 바빴을 사람, 어머니. 그날도 어김없이 온 집안 식구들의 새하얀 옷을 입힐 준비를 했겠다. 어머니는 머리에 빨랫감을 이고 한 손으로는 어린아이의 손을 꼭 잡고 마을 냇가로 향한다.
이간수문(二間水門). 을지로 6가 18번지 청계천의 오간수문 바로 남쪽에 도성의 성곽을 통과하는 수문이다. 일제강점기 경성운동장이 들어서면서 자취를 감추었고, 지금은 동대문역사문화공원 내에 복원되어 남아있다.

키가 어머니 무릎에 닿았던 작은 시절, 어머니 보폭에 맞춰 뛰듯 걸었던 그 길.

한양도성의 내사산으로부터 시작되어 산의 능선을 따라 흐르고 흘러, 다시 한양도성의 이간수문을 통해 들어온 물길 어디든 자리를 잡는 어머니들. 아이들은 곁에서 물장구치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빨래방망이를 두드려 때를 뺀다. 그러면 얼마 안 가 어깨부터 팔까지 쉬지 않고 내려오는 통증. 그래도 쉼 없이 더 복닥복닥 이야기꽃을 피우며, 흰 무명옷을 더 희게 만들던 여인들. 우리들의 어머니.

반나절의 시간이 지나 자기 몸체만 한 소쿠리를 머리에 이고, 아이는 너무 신나게 놀아 두 볼이 빨갛게 익어 집으로 가는 길. 사실 이대로 일이 끝날 리 없다. 다시 다려 주름을 펴고, 햇볕에 말리고, 단정하게 접어놔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잔뜩 배가 고파 세상 모든 먹거리의 이름을 조잘거리는 아이, 그 곁을 천천히 걸으며 그 이름 하나하나 자세히 들어주던 사람. 그 모든 어머니들이 아이와 함께 걸었던 길. 처음부터 그 길은 너무 가까이 있었다.
오간수문 (五間水門). 동대문에서 중구 을지로 6가로 가는 성벽 아래 청계천 6가에 있던 조선시대의 수문이다. 1907년 일제가 청계천 물이 잘 흘러가게 한다는 명목으로 오간수문을 모두 헐어버리고 콘크리트 다리로 교체하였다가 후에 그 위의 성곽이 훼손되면서 함께 없어졌다. 지금은 같은 자리에 오간수교가 복원되어 세워져 있다.

한양도성을 걸으며 그 흔적들을 만나며 나는 왜 어머니를 떠올렸을까.

서울 도심 속 하천, 청계천의 다리마다 남아있는 빨래터의 흔적들. 한양도성이 끊어진 듯 이어지는 청계천은 옛 서울 사람들의 놀이터이자 빨래터였다. 백악산의 백운동천으로 시작해, 동대문 오간수문을 통해 빠져나가던 내천이 한양도성과 함께 간직해 온 우리들의 이야기. 그 지워진 길 어딘가에서 알 수 없는 따스함이 몰려온다.

아마 또 다른 어머니도 고단했을 것이다. 앉아만 있어도 땀이 한 바가지던 어느 여름날, 갓난아이 막내와 놀아주다 큰 아이가 그만 잠이 든다. 그새 더위에 지칠까 부채질을 해주던 어머니. 그러다 그녀 자신도 어느새 선잠에 든다. 그 고요하고 따듯한 품으로, 그 이후로도 오래오래 아이의 시간을 감싸 안아주던 사람, 어머니...

그 작은 포옹만으로 세상의 모든 빛을, 어떤 불안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던 순수한 시간.

나의 잊었던 혹은 잃어버렸던 시간을 순성이 낸 길을 따라 기억해 본다. 골목골목 어떤 이야기가 남아있는 길, 북적북적 사람들의 눈물과 웃음이 스며든 길, 언제고 편하게 찾아가 천천히 걷는 길, 그런 살아 숨 쉬는 공간이 주는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그립다.

어떤 목적 없이 걷다가 잠시 멈춰 서 그 길 속에 담긴 풍부한 시간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래서 쉬지 않고 달려온 일상에서 나만의 가치를 되돌아보게 하는 그런 쉼표 같은 길을 걸을 수 있다면 우리는 잠시라도 쉴 수 있을까.

우리는 이미 그토록 아름다운 길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한양도성은 그 모습 그대로, 지금도 여전히 보석 같은 이야기들을 품고 있다. 그저 조금만 더 가까이 다가가면, 누구나 닿을 수 있는 곳에 있었던 한양도성. 성돌 하나하나에 새겨진 시간의 풍요를 상상하며 기꺼이 내 것으로 누려본다.

산에서 산으로 냇물 흐르듯 능선 따라 자연스럽게 내려오는 성벽 곁에 모인 정다운 마을. 그 길에선 특별히 무언가 하지 않아도 그날 하루가 뿌듯해지던 기억. 그리고 그 길에서 만난 나의 어머니. 너무도 익숙해 무심히, 당연하듯 살았던 한양도성 안에서, 그 모습을 너무도 닮아있었던 나의 어머니.

한양도성은 '어머니'이다.

처음부터 늘 내 곁에 있었지만 빠른 일상 속에 보이지 않았던, 느림으로 바라보니 보이는 얼굴.

겹겹이 쌓아낸 영겁의 시간 속에서 만나, 서로의 무게를 버티어 내며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어도 밀어내지 않고, 때로는 모진 비바람에 깎이고 깨어져도 모난 돌이라고 타박하지 않고 품어주던 얼굴.

내가 굳이 선택하지 않았는데... 내가 애써 노력하지 않았는데... 나를 둘러싼 울타리가 되어주고, 나를 나로서 가치 있게 빛내주는...

당신은 나의 어머니.
by 김남길
<서울 한양도성 10人10色> 영상은
김남길과 시민 9명이 한양도성을 걸으며 직접 촬영, 제작했습니다.
]]>
Thu, 22 Dec 2016 16:50:27
<![CDATA[Ep.02 한양도성으로부터의 사색]]>

서울 한양도성 10人10色 Ep.02

한양도성으로부터의 사색

2016년 9월 20일 연재

낯선 곳을 여행하다 보면, 혼자 말이 많아질 때가 있다. 꼭 누가 옆에 있기라도 한 것처럼. 새로운 공간이 주는 자극 때문일까? 그 미지의 세계에는 새로운 이야기가 숨어있고, 지금과는 또 다른 순간을 만나게 될 거라는 기대를 하게 만든다.
그렇게 평소에 나 자신도 알아채지 못 했던 내 안의 속사람을 발견하게 만든다. 결국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 이 모든 순간들을 보이지 않게 운용해 왔던 나만의 가치는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한다.

나만의 가치는 무엇일까

한양도성은 우리에게 그런 뿌듯한 대화를 하도록 주선한다. 이 고즈넉한 옛길을 가만히 걷고 있으면, 도저히 속사포로 쏟아지는 그 질문들을 무시할 수가 없다. 애초에 이 옛길엔 그런 힘이 있었다.

조선팔도 모든 길은 한양으로 통하고 한양도성에 닿았다. 성문에는 쉼 없이 사람들이 오고 가고 그 수많은 발자국들로 닳고 닳던 흙길에는 사람 사는 다채로운 이야기가 새겨졌다. 그렇게 당대의 수많은 이야기들은 입에서 입으로, 기억에서 기억으로 전해져 온 것이다.
그 끊어진 듯 이어진 길 하나하나에 새겨진 평범하면서도 특별했던 이야기들은 지금 우리의 세계를, 시대를 또 다른 방식으로 들여다보게 하여 결국에는 나에게로 가는 길을 찾도록 도와준다.

특별하지도 비범하지 않은 우리 보통 사람들. 언젠가 같은 학교, 같은 교실에 같은 세대를 공유했던 내 친구들, 나를 나로서 존재할 첫 토양이 되어준 가족들, 다시 가족에서 가족으로 연결된 우리들, 그 모든 이웃들이 가지고 있는 본연의 힘을 생각하게 한다.

나에게로 가는 길

그들 모두는 각자의 길을 내왔다. 그 길들에는 자연히 그 시대의 생각이 담기고 삶들이 모여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를 만든다. 그것이 곧 하나의 시대이며 역사였다. 하지만 이제는 그 모든 사람들에 대한 관심, 오직 한 사람의 작고 사소한 이야기에 대한 따듯한 시선이 귀해졌다. 이제는 '식구', '우리'라는 정다운 말들이 그 어감조차 낯설게 느껴진다.
어쩌면 조만간 '함께한다', '동행한다'는 뜻을 사전에서만 찾아볼 수 있을지도, 마음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시대가 올지도 모르겠다. 이미 지금도 어색하지 않는가? 공동의 공간을 공유한다는 것, 하나의 공동체 안에서 산다는 것, 함께 서로의 삶을 돕는다는 것.

이제 우리는 온전히 각자의 공간에 살고 층층이 분리된 시간 속에서 살고 있다. 뉴스에서는 점점 더 고독사 이야기가 늘어나고, 남녀노소 모두가 사회적 소외를 걱정한다. 개인의 삶의 질을 결정짓는 행복의 조건에 대한 고민을 넘어, 함께 ‘동행’한다는 것에 대하여 진지하게 해답을 찾아야 될 때가 온 것은 아닐까.

삶의 질을 결정짓는 행복의 조건

한양도성의 성곽마을들은 그래서 더욱 특별하다. 그렇다. 우리는 특별히 운이 좋았다. 이제는 서울에서 사라져버린 작은 샛길과 골목을 가진 북적북적한 마을. 주민들이 동네를 사랑스러워하고 이내 자랑스러워 보존하기를 원하는 마을. 마을 한복판 평상에 삼삼오오 모여 일상을 공유하기를 꺼리지 않고, 이웃들과 함께 밥과 마음을 나누는 작은 공간을 갖고 있는, 그렇게 기꺼이 함께 공유하는 시간들을 지켜내고 있는 사람들이 정겹다. 기억 저편으로 흐려져 간 이 다정한 풍경을 한양도성에 기대어 다시 힘껏 일으켜 세워보고 싶다.

60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한양도성이 남겨준 우리네 삶의 기록들, 산과 들과 냇물과 함께한 그 소소한 삶의 기쁨을 함께 나누어야 할 때를 더 이상 늦출 수는 없다. 마치 화초를 가꾸듯 자세히 보고, 자주 보고, 또 보고 돌보면 오래오래 이 미쁜 순성과 함께할 수 있을 거라는 따듯한 상상을 해본다.
한양도성과 600년을 넘어 동행한 보통 사람들의 흔적을 사색하며, 나를 나로서 있게 해주는 나만의 가치도 더불어 찾게 되기를 바라본다. 이번 프로젝트에 재능기부로 참여한 시민 '강민석'씨의 '한양도성 그리고 나의 미래가치' 영상을 통해 다시 한번 이 시대가 나에게 전하는 물음에 답을 찾을 수 있기를 응원한다.
by 김남길
"아래 소개하는 영상은
<길스토리: 서울 한양도성 10人10色 프로젝트>의
시민 참여자 '강민석'씨가 직접 촬영한 영상으로
'한양도성 그리고 나의 미래가치'를 주제로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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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 22 Dec 2016 16:4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