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화신]]> <![CDATA[Gilstory - Challenge for the Unlimited Possibilities! > 손화신]]> 손화신]]> 손화신 http://gil-story.com 제공, All rights reserved.]]> Sun, 26 Jun 2022 08:35:36 Sun, 26 Jun 2022 08:35:36 <![CDATA[여기서 조금 더 머물다 가겠습니다]]>
여기서 조금 더 머물다 가겠습니다
글 : 손화신 (작가)
천국의 주인은 머무는 사람이어서 "여기서 조금만 더 머물다 가자"는 말을 달고 사는 사람은 이미 천국에 들어가 있다. 그곳에서는 아이도 어른도 머물 수밖에 없다. 집에 가야 해, 집에 갈 시간이야, 말해도 어린이는 쉽게 동물원을 떠나지 못한다. 사슴의 눈을 계속 보려고 하고 고래의 다음 비상을 한 번 더 보려고 기다린다.
아이는 자기의 천국에 더 머물기 위해 울고 떼를 쓰지만 어른들의 생활양식은 그런 게 아니다. 어른은 시계의 초침과 분침과 시침을 잘 떠나지 못한다. 우린 천국을 떠나온 지 꽤 오래고 돌아보니 길도 꽤 멀어졌다. 하지만 떠나지 못해 머무는 생활방식은 세상의 모든 거짓 속에서 진실한 것들을 가려낸다.
지금 보는 하늘의 구름이 근사하다면 그렇다면 머물러서 바라볼 일이다. 그 구름은 어제의 구름과 다르고 내일과 모레, 앞으로 보게 될 어떤 구름과도 다른 것이다. 다시는 반복될 수 없는 장면이기에 지금 머물지 않으면 영영 놓쳐버리는 천국이다.
지금 마시는 커피가 황홀하다면 혀에 조금 더 머물게 하고, 그럴 때 나의 하루가 충만함을 얻는다. 많은 것을 눈에 담는 여행보다 하나의 풍경을 마음속에 오래 머물게 담아두는 여행을 하고 싶다. 파리를 떠올렸을 때 그곳의 갖가지 모습들보단 노천카페에 앉아서 가만히 응시했던 길바닥의 울퉁불퉁한 회색 돌이 떠오른다면, 그것도 참 괜찮겠다.
내장사 가는 벚꽃길 어쩌다 한순간
나타나는, 딴 세상 보이는 날은
우리, 여기서 쬐금만 더 머물다 가자
(황지우, '여기서 더 머물다 가고 싶다' 중)

_2016년 8월부터 길스토리 크리에이터 멤버로 활동 중이다. 6년째 문화예술 전문 기자로 일하고 있으며, <나를 지키는 말 88>의 저자이기도 하다. 2019년 9월 1일, ‘제6회 카카오 브런치북’ 대상에 빛나는 두 번째 책 <아이라는 근사한 태도로>(웨일북)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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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 14 May 2022 13:25:34
<![CDATA[나는 왜 과정보다 결과를 생각할까]]>
나는 왜 과정보다 결과를 생각할까
글 : 손화신 (작가)
어떤 아이돌 그룹의 한 멤버가 인터뷰 때 이렇게 말했다.
"저희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잖나. 무대에 서는 게 재밌고, 그래서 하루 종일 재밌는 거 같다. 스키를 타러 간다고 했을 때 가는 차 안에서의 시간도 있지 않나. 스키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걸 타러 가는 시간 동안도 즐거운 것처럼 저희도 같은 마음이다. 무대를 준비하면서 아침부터 일어나 머리를 하고 옷을 입는 그런 모든 과정이 즐겁다."
듣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건 그 자체가 가장 큰 보상이라고. 그 보상이 최상의 결과라고. 우리의 시간은 한정돼 있고, 흘러가는 이 시간은 애틋할 정도로 소중한데 그 시간 속에서 경험하는 수많은 과정들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면 얼마나 가여운 일일까. 결과의 시간만을 소망하고 결과의 시간만을 내 삶으로 인정한다면 그건 과정이라는 더 긴 시간을 내다 버리는 것 아닐까.
나에겐 과거 한때 'Not Yet'의 시간들이 있었다. 내가 바라는 이상향을 정해놓고서 아직은 그때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살았던 날들. 그때 난 '지금 이 시간은 내 목적지로 가기 위해 견뎌내고 거쳐 가는 시간일 뿐이다, 그러니 빨리 지나가버리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다. 부끄럽지만 이런 태도로 꽤 오래도록 살았다.
그 시간들은 이미 나를 지나가버렸다. 후회는 내가 감당할 몫이다. 그래도 저 멀리 보이는 문이 아직은 닫히지 않은 것 같다. 과정의 충만함이 있는 저 문 안의 세계로 들어가 보려 한다.

_2016년 8월부터 길스토리 크리에이터 멤버로 활동 중이다. 6년째 문화예술 전문 기자로 일하고 있으며, <나를 지키는 말 88>의 저자이기도 하다. 2019년 9월 1일, ‘제6회 카카오 브런치북’ 대상에 빛나는 두 번째 책 <아이라는 근사한 태도로>(웨일북)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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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 14 Apr 2022 12:08:50
<![CDATA[글쓰기는 자유다]]>
글쓰기는 자유다
글 : 손화신 (작가)
글쓰기는 내게 자유와 해방감을 준다.
이 세상에서 내가 거의 유일하게 내 멋대로 할 수 있는 일이 바로 글쓰기다. 세상 대부분의 일이 내 마음대로 안 되는데 글을 쓸 땐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내 맘대로 반죽할 수 있다.
무엇을 쓸 것인지를 고르는 것부터 무슨 단어를 쓸 것인지, 이 단어를 어떤 단어와 붙일 것인지, 문단을 여기서 나눌 것인지 좀 더 가서 나눌 것인지... 그 모든 것을 내 마음대로 결정하고 실행할 수 있다. 아무도 참견하지 않는다.
글쓰기는 나 혼자 중에서도 가장 나 혼자 하는 일이어서 그 누구도 내게 감 놔라 배 놔라 지시할 수 없다.
나는 하얀 백지 안에서 뛰논다. 울타리 하나 없는 드넓은 초록 들판을 뛰어다니는 길들여지지 않은 말처럼! 정말이지 난 그 자유로운 느낌 하나 때문에 계속 글쓰기를 하고 있는 것만 같다. 나를 조금이라도 가두는 그 모든 것들로부터 달아나기 위해서.

 

_2016년 8월부터 길스토리 크리에이터 멤버로 활동 중이다. 6년째 문화예술 전문 기자로 일하고 있으며, <나를 지키는 말 88>의 저자이기도 하다. 2019년 9월 1일, ‘제6회 카카오 브런치북’ 대상에 빛나는 두 번째 책 <아이라는 근사한 태도로>(웨일북)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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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 8 Mar 2022 17:23:52
<![CDATA[동그란 것보단 뾰족한 글이 좋아]]>
동그란 것보단 뾰족한 글이 좋아
글 : 손화신 (작가)
내게 영감은 '외부로부터 오는 자극'이다. 모양을 상상해보자면, 동글이가 아니라 뾰족이에 가깝다. 자극은 대부분 불편하고 성가시고 신경 쓰이고 시끄럽다. 그런데 그런 이유로써 새로운 무언가를 떠올리게 만든다. 어떤 영화를 보고 그 까끌함에 마음이 영 불편하다면, 그러나 그 불편함이야말로 내게 많은 생각을 떠올리게끔 해주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뾰족한 글을 좋아한다. 뾰족한 글들이 내게 영감을 준다. 새로운 무언가를 마주하길 고대하며 날 선 생각과 문체의 매력적인 책들을 찾아서 읽고, 나 또한 그렇게 써보려고 한다. 이처럼 나와 최대한 반대 지점의 글들을 많이 만나려고 하는 건, 그런 글들이 다채롭고 매력 있는 모서리를 내게 부여해 주는 듯해서다.
동그라미 말고 피라미드나 별 모양, 아니면 초승달처럼 에지 있는 모양의 글을 쓰고 싶다. 어느 구석 하나쯤은 뾰족한 데가 있는 글, 그럼으로써 읽는 이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글 말이다. 뾰족한 글이 도로 위를 구르면 덜컹댈 것이고, 모서리는 도로의 표면을 자극할 것이다. 잠잠히 쉬던 길은 이로써 불편해질 거다. 그런데 불편한 게 나쁜 건가?

 

_2016년 8월부터 길스토리 크리에이터 멤버로 활동 중이다. 6년째 문화예술 전문 기자로 일하고 있으며, <나를 지키는 말 88>의 저자이기도 하다. 2019년 9월 1일, ‘제6회 카카오 브런치북’ 대상에 빛나는 두 번째 책 <아이라는 근사한 태도로>(웨일북)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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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 11 Feb 2022 11:55:02
<![CDATA[오늘은 달걀노른자를 터뜨려보겠습니다]]>
오늘은 달걀노른자를 터뜨려보겠습니다
글 : 손화신 (작가)
나는 일상에서 이미 만들어진 길로만 다니려는 사람이었다. 계란 프라이를 굽는 스타일도, 분리수거하는 방식도 무의식적으로 어릴 때부터 집에서 봐온 대로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말하자면, 부모님의 라이프스타일을 생각 없이 따라 하며 살고 있었다.
예전엔 이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어릴 때부터 봐왔던 게 엄마의 계란 프라이였으니 그렇게 해야지만 제대로 된 계란 요리를 한 기분이었다. 그런데 부모님도 나와 똑같은 사람이고 인생을 처음 살아보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을 때, 나만의 방식을 새로이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내 인생인데 내 방식이 없는 거지?
기존의 것을 거부하고 새 것을 만들어가는 도전은 사실 별 게 아닌지도 모른다. 평생 안 터트리고 굽던 계란의 노른자를 한번 깨트려보는 그런 거. 일탈이 도전이다.
어른이 되어가면서 기존의 일정한 방식에 익숙해지고, 그러면서 그것만이 옳다고 믿게 되지만 어쩌면 그건 그저 ‘익숙함’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 아닐까. 삶의 방식, 라이프스타일이란 건 정답과 오답으로 나눠지는 게 아니라 빛의 스펙트럼처럼 넓고 다양한 경우의 수를 지니는 것이다. 우리가 아이였을 땐, 그 스펙트럼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지 않았나.
하루에 하나씩, 무엇이든 작은 일탈을 하고서 그 시도가 내게 새로운 세계를 가져다주는 걸 지켜보는 건 꽤 설레는 일일 것이다.
“당신이 지금까지 살아온 것처럼 앞으로도 살아간다면 세계도 지금까지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당신이 살아가는 방식을 바꾼다면 그에 따라서 세계도 새로운 얼굴을 보여줄 것이고 더욱 커질 것이다.” - 비트겐슈타인, <논리철학논고> 중

 

_2016년 8월부터 길스토리 크리에이터 멤버로 활동 중이다. 6년째 문화예술 전문 기자로 일하고 있으며, <나를 지키는 말 88>의 저자이기도 하다. 2019년 9월 1일, ‘제6회 카카오 브런치북’ 대상에 빛나는 두 번째 책 <아이라는 근사한 태도로>(웨일북)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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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 5 Jan 2022 15:14:40
<![CDATA[글쓰기가 우리를 성장시키는 방식]]>
글쓰기가 우리를 성장시키는 방식
글 : 손화신 (작가)
글쓰기는 수행과도 같다. 글이 막혀서 안 써질 때 우린 인내심을 발휘하고, 그 인내심은 우리를 성장시킨다. 결국 아무 글도 못썼더라도 무언가를 쓰려고 내면으로 시선을 돌리고 견뎌내고 고뇌하는 그 과정으로 이미 그 사람은 쓰기 전과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
어떤 글을 씀으로써 가시적으로 생겨난 글자의 합이, 그 내용이 우리 정신을 고양시키기도 하지만 글쓰기를 행하는 몸과 마음의 움직임 그 자체가 인간 영혼을 고양시키기도 한다. 그것은 마치 도를 닦는 과정과 같다. 도 중에서도 다도. 글쓰기는 다도와 비슷하다.
다도[茶道] : 차를 마시는 일과 관련된 여러 다사(茶事)를 통하여 심신을 닦는 행위
차를 우려내고 따를 때의 태도를 상상해보라. 몸짓은 군더더기 없이 정갈하고 마음은 단 하나가 되어 정성을 다한다. 맑게 우려내며, 온도는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적정함을 취한다. 글쓰기는 종이 위에 글을 따르는 일이니, 어찌 도와 별개로 볼 수 있겠는가.
글쓰기는 쓰는 사람 자신과의 대면이다. 그 과정에서 내면을 스스로 북돋우고 보살피므로 우리는 안으로 뿌리를 내리듯 성장한다. 그러니 무엇을 쓰든 크게 상관없다. 무엇이든 당신이 글을 쓴다는 사실이, 의자에 앉아서 차분해진 마음으로 글의 차를 따른다는 사실이, 그 다도의 행위가 당신의 생각과 감정을 바꾸는 것이다.
나는 차를 따르듯 살고 싶다. 차를 따르듯 쓰고 싶다.

 

_2016년 8월부터 길스토리 크리에이터 멤버로 활동 중이다. 6년째 문화예술 전문 기자로 일하고 있으며, <나를 지키는 말 88>의 저자이기도 하다. 2019년 9월 1일, ‘제6회 카카오 브런치북’ 대상에 빛나는 두 번째 책 <아이라는 근사한 태도로>(웨일북)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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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 14 Dec 2021 15:10:33
<![CDATA[당신의 뮤즈는 누구인가요]]>
당신의 뮤즈는 누구인가요
글 : 손화신 (작가)
나의 제일은 나의 뮤즈다. 내게 영감과 자극을 주는 존재만큼 세상에 귀한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영감 같은 거 없이도 창조적인 일들을 할 수 있지만 이왕이면 영감에서 시작되는 창작을 하고 싶다. 영감이 나를 즐겁게 하고 짜릿하게, 소름 돋게 해주기 때문이다.
마음을 빼앗는 무언가를 품게 되면 감정과 생각의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엔도르핀이 솟는다. 힘도 나고 신도 난다. 그래서 늘 무언가를 늘 누군가를 사랑해야만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가까이 있는 별이든 멀리 있는 별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뮤즈라는 별, 사랑과 동경의 대상인 그것. 내 마음은 늘 그것으로 가득차길 갈망한다.
좀 더 생활 말투로 표현하자면 '덕질'이요, 지금 난 덕질이란 것의 순기능을 예찬하는 중이다. 별의별 것에서 우리는 영감을 받는다. 고로, 덕질의 대상은 무한하다. 그것이 무엇이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열심히 마음 다해 좋아하면 내가 사랑하는 그것이 내게 영감을 쏟아 부어 준다. 보상은 따로 필요 없다. 나의 뮤즈는 내게 사랑을 받고 내게 영감을 주었으니 그것으로 이미 나는 충분한 보답을 받은 것이다.
한 싱어송라이터를 인터뷰했는데, 그에게 자신만의 성공을 정의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그는 "음악으로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싶다"라고 답했다. 그의 대답이 뭐랄까,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것처럼 시원했다. 보통 음악으로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고 싶다, 공감을 주고 싶다고 많이들 말하는데 그는 '영감'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 대답이 내게 영감을 줬다. 나는 물었다. 음악을 통해 어떤 방식으로 영감을 주고 싶은지. 그는 "음악을 대하는 내 태도가 영감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답했다. 그래서 또 물었다. 음악을 대하는 너의 태도가 무엇인지. 그러자 그는 쑥스러운 듯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음악을 사랑하는 거."
그의 대답을 통해 내가 요즘 영감을 받고 있는 그것이 왜 내게 뮤즈인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 영감의 대상이 만약 댄서라고 한다면, 그의 춤에 대한 열정이 매우 뜨겁고 순수하다는 점, 이 점이 내게 영감을 주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나 탁월하게 추느냐보다 춤을 대하는 그의 태도가 어떠한지, 그것이 바로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는 결정적 요소였다.
영감은 이렇듯 '사랑'에서 온다. 나는 나의 뮤즈를 사랑한다. 그래서 그로부터 영감을 얻는다. 나의 뮤즈 또한 무언가를, 누군가를 사랑한다. 그러니 나의 영감은 뮤즈의 뮤즈의 뮤즈의... 뮤즈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참 신비롭지 않은가. 무언가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열정, 그 열정이라는 에너지가 사람에게서 사람에게로 전파된다는 것 말이다.
당신의 뮤즈는 누구인지 궁금하다. 당신의 창작활동 혹은 삶에 활력과 영감과 긍정적인 기운을 불어넣어주는 대상은 무엇인가.

_2016년 8월부터 길스토리 크리에이터 멤버로 활동 중이다. 6년째 문화예술 전문 기자로 일하고 있으며, <나를 지키는 말 88>의 저자이기도 하다. 2019년 9월 1일, ‘제6회 카카오 브런치북’ 대상에 빛나는 두 번째 책 <아이라는 근사한 태도로>(웨일북)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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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 11 Nov 2021 16:14:32
<![CDATA[글쓰기는 무의미를 의미로 바꾸는 연금술]]>
글쓰기는 무의미를 의미로 바꾸는 연금술
글 : 손화신 (작가)
비스와바 쉼보르스카가 쓴 긴 시의 시작은 이랬다.
인생이란...... 기다림.
리허설을 생략한 공연.
그의 말처럼 인생이란 기다릴 수밖에는, 달리 도리가 없는 무엇이다. 리허설? 턱도 없는 소리. 막이 오르면 그때그때의 매 신 안에서 우리는 움직이고 말하며 그 신을 소화해야 한다. 어떤 준비도 할 것 없이 그저 맞이해야 하는 것이 삶이어서 스스로 의지를 내어 할 수 있는 건 다음 신을 기다리는 일 뿐이다. 그러나 별일 없는 밤이 오면 리허설 없는 공연도 잠시 멈추고, 어떤 이들은 그 틈을 노려 글을 쓴다. 세상이 잠깐 하품하는 사이에.
연금술의 시간이다. 혼자 글 쓰는 밤. 무의미를 유의미로 바꾸는 장막 뒤의 시간이다. 아무리 계획을 세우고 예행연습을 해도 1분 후의 삶은 예상할 수 없는 낯선 나라다. 그저 우린 비금속의 시간을 살아낸 다음 연금술을 시도해 의미라는 귀금속으로 그것을 바꿀 따름이다. 아무도 모르게.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은 음악 안에서 의미를 찾고, 글을 사랑하는 사람은 글 안에서 의미를 찾는다. 결국 그릇의 형태만 다를 뿐 본질은 같다. 우리가 사랑하는 그것에는 우리의 삶이 투영되어 있으므로.
글을 쓴다. 아니, 의미를 찾는다. 진흙을 고귀한 금으로 바꾼다. 내가 괴롭던 때에 노트를 꺼내어 쓴 글들, 그 고통의 글들은 결국 금이 되었다. 종이 위에 빽빽하던 잉크들은 역겨운 고름이었다가 마침내는 순금으로 거듭났다. 노트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나는 두 번째 삶을 열었다.
"비행을 한번 맛보면 하늘을 바라본 채 걷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곳으로 돌아가기를 간절히 바라게 될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글을 쓰기 시작하고 나는 의미 없는 삶으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게 됐다.
- 손화신 에세이 <쓸수록 나는 내가 된다>(다산초당) 중

 

_2016년 8월부터 길스토리 크리에이터 멤버로 활동 중이다. 6년째 문화예술 전문 기자로 일하고 있으며, <나를 지키는 말 88>의 저자이기도 하다. 2019년 9월 1일, ‘제6회 카카오 브런치북’ 대상에 빛나는 두 번째 책 <아이라는 근사한 태도로>(웨일북)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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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 15 Oct 2021 13:37:46
<![CDATA[쓰는 만큼 존재한다]]>
쓰는 만큼 존재한다
글 : 손화신 (작가)
글쓰기는 언제고 내가 연기처럼 사라져버릴 것만 같은 순간이 올 때,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다. 이것을 20대 중반에 어떤 계기로 깨닫게 됐다. 살면서 그런 순간이 몇 번이고 더 찾아왔고, 나는 예고편도 없는 공포와 위기감 속에서 계속 글을 썼다.
글을 쓰거나 음악을 만들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춤을 추거나, 그 무엇으로든 자기를 표현할 때만큼은 누구나 자신으로 존재한다. 존재할 뿐 아니라 좀 더 적극적으로 자신을 지킬 수 있다. 내가 글을 쓸 줄 아는 사람이라는 사실은, 나의 언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이 세상이 내게 말도 안 되게 덤벼들 때조차 조금도 기죽지 않게끔 나를 북돋웠다. 읽고 쓰면서 나는 점점 세상이 두렵지 않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펜은 세상을 바꾸기 전에 그 펜을 든 사람을 먼저 바꾼다. 쓰는 내가 내 글을 짓는 줄만 알았는데, 쓰는 만큼 글도 나를 창조했다. 씀으로써 나는 세상에서 오직 유일한 ‘나’가 됐다.
글을 쓰는 데 다른 이유가 필요하다면 그건 세속적이고 허영에 찬 목적을 위한 것이리라. 돈과 명예를 위해 글을 쓸 때 그럼 나는 사라진 것인가, 사라지지 않은 것인가.
나는 언제까지나 씀으로써 나를 존재하게 할 것이다.
- 손화신 에세이 <쓸수록 나는 내가 된다>(다산초당) 중

_2016년 8월부터 길스토리 크리에이터 멤버로 활동 중이다. 6년째 문화예술 전문 기자로 일하고 있으며, <나를 지키는 말 88>의 저자이기도 하다. 2019년 9월 1일, ‘제6회 카카오 브런치북’ 대상에 빛나는 두 번째 책 <아이라는 근사한 태도로>(웨일북)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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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 10 Sep 2021 14:13:36
<![CDATA[나만의 오답노트를 쓰다]]>
나만의 오답노트를 쓰다
글 : 손화신 (작가)
내가 쓰는 글들은 학창시절의 오답노트를 닮았다. 이 노트의 주인공은 정답이 아니라 오답이었고, 나는 이게 참 우습고도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이 노트를 만들려면 필수적으로 있어야하는 게 나만의 오답들이었던 거다. 스스로 생각했으나 틀린 것들, 이 흔적을 노트에 모으면서 나는 타인의 의한 내가 아닌 나에 의한 내가 되어갔다.
내 인생에 정작 필요했던 것도 오답노트였다. 남들이 만들어 놓은 해설지를 들춰보고서 정답으로만 살아갈 수도 있겠지만 오답이어도 좋으니 나로 한번 살아보고 싶었으니까. 그러고 나서 다른 사람들의 조언을 들어도 늦지 않을 테니까.
한때는 인생을 먼저 살다간 현자의 말, 철학자와 인문학자들의 말을 정답으로 삼고 그것을 나침반 삼아 살기도 했다. 그것은 쉽게 들추어 본 해설지였다. 내 인생의 문제는 틀리더라도 내가 직접 풀어야만 한다는 걸 꽤나 뒤늦게 깨달았다.
오답을 쓰면서 나는 내 삶 앞에서 고뇌하고, 그렇게 내 삶의 주인공이 되어갔다. 모든 문학의 주인공들도 고뇌하지 않던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베르테르가 고뇌하고 <햄릿>의 햄릿 역시도 깊은 번민에 빠진다. 주인공은 고뇌하기 때문에 주인공인 것이고 그 고뇌가 오직 자기만의 것이어서 근사한 것이다.
내 삶이란 문학에서 나는 주인공이 될 것이다.
- 손화신, <쓸수록 나는 내가 된다> 중

 

_2016년 8월부터 길스토리 크리에이터 멤버로 활동 중이다. 6년째 문화예술 전문 기자로 일하고 있으며, <나를 지키는 말 88>의 저자이기도 하다. 2019년 9월 1일, ‘제6회 카카오 브런치북’ 대상에 빛나는 두 번째 책 <아이라는 근사한 태도로>(웨일북)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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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 11 Aug 2021 14:50:05
<![CDATA[나를 잃었을 때 미친 듯이 쓰기 시작했다]]>
나를 잃었을 때 미친 듯이 쓰기 시작했다
글 : 손화신 (작가)
글을 쓰려는 사람들은 어쩌면 어딘가 불행한 사람들이다. 행복한 사람은 대체로 글을 쓰려하지 않는다. 외로운 사람, 고통 안에 있는 사람, 상처 받은 사람만이 무언가를 애써 글로 토해낸다.
내가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나는 내가 될 수 없다’는 생각에 다다랐을 때다. ‘나는 진짜 나로 살고 있나?’ 혹은 ‘이 삶이 정말 내 것일까?’라는 질문 끝에 달린 의문 부호가 점점 커지더니 어느샌가 나를 쓰기의 세계로 밀어 넣었다.
펜을 들었다. 아니, 동아줄을 잡듯 펜을 붙들었다. 여기서 더 멀어지면 다시는 나로 돌아올 수 없을 것 같아서 본능적으로 쓰기 시작했다.
억압된 인간은 점점 굳어져가다가 글이라도 써서 억눌린 것들을 해소하려고 한다. 아니, ‘하려고 한다’는 의지가 아니라 ‘해야만 한다’는 절박함으로 쓴다. 글을 씀으로써 자기 안의 짓무른 것들이 씻겨 내려간다는 걸 인간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게 틀림없다.
사제이자 신학자인 헨리 나우웬이 그랬듯 나는 ‘상처 받은 치유자’가 되어 여기에 있다. 고통과 상처에서 살아 돌아온 자만이 울릴 수 있는 비상경보기를 울리는 것이 나의 의무라는 걸 직감하고 있다. 지나온 고통은 내가 그것에 관해 써야 비로소 의미를 획득할 것이고, 그 글이 나누어질 때 한 번 더 의미를 부여받을 것이다.
오늘도 글을 쓰려는, 자기 앞의 생으로부터 소외된, 삶이란 핍박을 견디는 모든 이에게 인사를 건넨다. 평안에 이르고 싶지만 아직은 그러지 못하는, 나 자신이 될 수 없음에 홀로 좌절하는, 어딘가 조금 불행한 사람들에게.
- 손화신 에세이 <쓸수록 나는 내가 된다>(다산초당) 중

 

_2016년 8월부터 길스토리 크리에이터 멤버로 활동 중이다. 6년째 문화예술 전문 기자로 일하고 있으며, <나를 지키는 말 88>의 저자이기도 하다. 2019년 9월 1일, ‘제6회 카카오 브런치북’ 대상에 빛나는 두 번째 책 <아이라는 근사한 태도로>(웨일북)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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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 14 Jul 2021 13:48:23
<![CDATA[쓸수록 나는 내가 된다]]>
쓸수록 나는 내가 된다
글 : 손화신 (작가)
“씀으로써 내 운명을 사랑하게 됐다.”
"써야만 하는 이유의 끝에서, 그렇게 쓰는 글은 분명 당신의 인생을 바꿔놓을 것이다."
글을 쓸수록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게 된다. 쓰기는 인생에 주어지는 비극적 경험을 ‘쓸모 있는’ 재료로 여기게 하므로. 인생의 행복뿐만 아니라 불행까지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이유를 제공해준다.
나 역시 글을 쓸수록 내 운명을 더 사랑하게 됐다. 나를 둘러싼 모든 비극과 희극을 사랑해야만 하는, 쓰는 자로서의 의무감이 좋다. 좋은 글을 쓰고 싶은 갈망이 커지면 커질수록 나는 내 운명에 깃든 고통을 정중히 대하고 또한 자세히 관찰한다. 어떨 땐 외로움이 내 글의 힘처럼 느껴지고, 가난이 소중한 재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거기서 오는 비애감을 사랑해 마지않는다. 글 안에는 작가 내면의 빛과 그늘이 균형을 이루며 반영되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모진 말과 행동이 내게 상처가 되었을 때도 그 상처가 언젠가 내 글의 가장 아름다운 문양으로 남을 것을 직감한다. 그러니 그 사람을 그만 미워하기로 한다. 이런 자발적 ‘어쩔 수 없음’을 나는 사랑한다. 자기 운명의 그림자까지도 끌어안는 태도로 글을 쓰고 살아간다면 삶의 고통도 그 의미를 찾아 숭고한 빛을 띨 것이다.
누구에게나 인생은 어렵다. 생업에 매몰되어 지쳐가든, 꿈을 잃고 방황하든, 소중한 사람과 이별하는 상실감을 겪든, 삶의 험준한 골짜기를 통과하며 온갖 문제와 맞닥뜨릴 것이다. 그럴 때 글 따위는 삶 앞에서 무의미해 보일 수도 있고 삶과 완전히 별개의 것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쓰고 싶어도 도저히 여건이 안 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글과 삶이 하나가 되어갈수록, 삶은 점점 더 견딜 만해진다.
그러니, 온 마음 다해 감히, 당신의 씀을 응원한다.
- 위의 글은 5월 10일 출간된 손화신 작가의 신간 <<쓸수록 나는 내가 된다>>(다산초당)를 발췌한 것입니다.

_2016년 8월부터 길스토리 크리에이터 멤버로 활동 중이다. 6년째 문화예술 전문 기자로 일하고 있으며, <나를 지키는 말 88>의 저자이기도 하다. 2019년 9월 1일, ‘제6회 카카오 브런치북’ 대상에 빛나는 두 번째 책 <아이라는 근사한 태도로>(웨일북)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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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 10 May 2021 17:13:00
<![CDATA[이렇게라도 저는 웃어야겠습니다]]>
이렇게라도 저는 웃어야겠습니다
글 : 손화신 (작가)
아, 내가 웃음을 잃어버렸구나 하고 느끼는 순간은 아이러니하게도, 웃을 때다. 밤에 자려고 누워서 인스타그램을 쭉 훑어본다. 그러다가 유머 게시글을 보고는 어둠 속에서 홀로 빵 터진다. 실컷 웃고 나면 그제야 비로소 깨닫는 것이다. 아... 나 오늘 처음 웃는 거네?
어릴 때는 자기 전 빼고 하루 종일 수시로 웃었다. 병아리 발톱만큼만 웃겨도 웃어댔다. 한바탕 미친 듯이 웃었던 기억은 근사한 곳을 여행하거나 대학에 합격한 일처럼 내 인생의 잊을 수 없는 날로 남아있었다.
어쩌면 웃음을 찾는 건 본능일지도 모르겠다. 배꼽 잡고 크게 터뜨리는 묵직한 웃음이 아니어도 좋다. 일상의 길 위에서 흩날리는 꽃잎처럼 가벼운 유머들이 내 삶도 가볍게 해주었다. 그 가벼움이 삶을 견디게 해주었다.
크고 작은 웃음들은 진지하고 경직된 나를 툭 건드려 힘을 빼게 만들었고, 그렇게 좀 웃고 나면 뭐든 견딜만해지고 뭐든 별 거 아닌 일처럼 여겨졌다. 그건 여러 번 느껴도 매번 기분 좋은 느낌이었다.
아이들이 가벼운 건 자주 웃어서다. 자주 웃는 사람이 어떻게 무거울 수 있을까. 그건 처음부터 앞뒤가 안 맞는 말 아닌가. 힘 좀 빼고 자려고, 낮에 못 웃은 나는 오늘 밤에도 휴대폰을 만지작거릴 것 같다. 이렇게라도 나는, 웃어야겠다.
"그대의 마음을 웃음과 기쁨으로 감싸라. 그러면 1천 해로움을 막아주고 생명을 연장시켜 줄 것이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_2016년 8월부터 길스토리 크리에이터 멤버로 활동 중이다. 6년째 문화예술 전문 기자로 일하고 있으며, <나를 지키는 말 88>의 저자이기도 하다. 2019년 9월 1일, ‘제6회 카카오 브런치북’ 대상에 빛나는 두 번째 책 <아이라는 근사한 태도로>(웨일북)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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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 14 Apr 2021 14:26:48
<![CDATA[저는 그것을 모름으로써 알고 싶습니다 ]]>
저는 그것을 모름으로써 알고 싶습니다
글 : 손화신 (작가)
아는 것은, 그것을 모르게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멸치가 몸에 좋다는 정보를 ‘알면’ 그때부터 내가 멸치를 좋아하는지 안 좋아하는 ‘모르게’ 된다. 멸치가 몸에 좋다는 걸 알기 때문에 챙겨먹는 건지 아니면 내가 진짜 멸치를 좋아하기 때문에 즐겨 먹는 건지 헷갈리는 것이다. 차라리 멸치가 몸에 좋은 음식이란 걸 몰랐다면 나의 멸치에 대한 취향을 알기 쉬웠을 텐데.
“관념을 갖는 것은 잔인한 일이다. 만일 당신이 어떤 관념, 신념, 원칙들을 갖고 있다면 당신은 자신을 똑바로 볼 수 없다.”
-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 중
누구도 관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태어나자마자 우린 사회로부터 이것저것 주입받기 때문이다. 취향도 주입된 하나의 관념일 수 있다. 자라오면서 접촉해온 외부의 것들, 타인의 평균적 취향들이 내 안에 얼마나 많이 스며들었는지 생각해본 적 있는지? 내가 블랙 앤 화이트의 모던한 색상을 좋아한다고 알고 있지만 실은 무채색이 세련된 색이라고 사회로부터 인식‘당했기’ 때문에 그 취향을 내 것으로 선택한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순수하게 끌리는 색은 녹색일수도 있지만 그러나 내가 녹색을 가장 좋아한다는 사실을 평생 모르고 죽을 수도 있는 일이다.
몰라야지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한 사람을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편견 없이 볼 수 있다면 우리 사이는 꽤 달라졌을 거다.
지두 크리슈나무르티는 “마음이 기억에 의해 불구가 되지 않아야만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했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선입견이란 것도 ‘마음이 기억에 의해 불구가 되는’ 일이다. 어떤 대상을 내가 직접 마주하기 전에 특정한 외부의 관점을 미리 취해버리면, 곧장 시선의 밸런스를 잃게 된다.
외부의 간섭 없이 나만의 시선으로 고유하게 인식하고 느낀다는 것은 정녕 불가능한 일일까. 뭉크의 ‘절규’를 보고서 불안 말고 다른 인상을 받는다면 그 사람은 일자무식자인 걸까. 잘 모르겠다. 아니, 웬만하면 뭐든지 모르고 싶다.

_2016년 8월부터 길스토리 크리에이터 멤버로 활동 중이다. 6년째 문화예술 전문 기자로 일하고 있으며, <나를 지키는 말 88>의 저자이기도 하다. 2019년 9월 1일, ‘제6회 카카오 브런치북’ 대상에 빛나는 두 번째 책 <아이라는 근사한 태도로>(웨일북)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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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 12 Mar 2021 14:41:24
<![CDATA[저는 여러 겹으로 만들어진 크레이프 케이크입니다]]>
저는 여러 겹으로 만들어진 크레이프 케이크입니다
글 : 손화신 (작가)
“우리는 자기 자신을 잘 알지 못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으로부터 가장 먼 존재이며, 이방인이다.”
- 니체, <도덕의 계보> 중
사람은 죽을 때까지 설명되어질 수 없는 존재다. 내 안에는 이토록 많은 성격들이 섞여 있는데도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관해 남들이 알아듣기 쉽게끔 ‘설명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잘 설명하기 위해 ‘나다운’ 모습을 정해두려고 하기도 했다.
누군가 내게 “넌 어떤 사람이니?” 물으면 “나 이런 사람이에요”하고 머뭇거림 없이 명쾌하게 답할 수 있어야지만 나 자신을 잘 아는 것이라 여긴 것이다. 그런 사람이 성숙한 어른이라고 믿었고, 그런 어른이 되려고 나는 ‘보여지는 나’를 마련해두고자 했다.
난 내가 카스테라인 줄 알았다. 옆구리를 떼어먹든 머리를 떼어먹든 한결같이 균일한 맛의 카스테라. 그런데 알고 보니 나는 여러 겹으로 된 크레이프 케이크였다. 층마다 색깔도 다르고 맛도 다른. 겹겹이 누운 그 층들이 하나의 케이크를 만들었고, 모든 층이 나였다.
가장 바깥으로 보이는 자아만 나라고 생각하고 그것만이 ‘공식적인’ 나라고 여길 필요가 애초에 없었던 거다. 세상에 공개한 나도 있지만 가족과 친구들만 아는 나도 있고, 가까운 그들조차 모르는 비밀스러운 나만의 나도 있다. 모두 나다.
사람들에게 보여주려고 준비해둔 ‘사회적인 자아’뿐 아니라 혼자 있을 때 슬며시 드러나는 ‘심층적인 자아’도 나로 인정하는 일. 지금부터라도 내가 해야 할 일은 이것인 듯하다. 촌스럽게 크레이프 케이크를 한 겹 한 겹 떼어 먹지 말고, 이제라도 대범한 수직적 포크질을 해야 할 때다.
이제 나는 ‘어떤 사람’일 필요가 없어졌고, 그러니 어제의 차분하던 내가 오늘 알 수 없는 깨방정을 떤다 하더라도 그건 ‘나답지 않은’ 행동이 아니라 ‘또 다른 나다운’ 행동인 것이다.

_2016년 8월부터 길스토리 크리에이터 멤버로 활동 중이다. 6년째 문화예술 전문 기자로 일하고 있으며, <나를 지키는 말 88>의 저자이기도 하다. 2019년 9월 1일, ‘제6회 카카오 브런치북’ 대상에 빛나는 두 번째 책 <아이라는 근사한 태도로>(웨일북)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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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 19 Feb 2021 18:35:19
<![CDATA[오늘 내가 한 실수를 자랑 하겠습니다]]>
오늘 내가 한 실수를 자랑 하겠습니다
글 : 손화신 (작가)
“탱고를 추는 걸 두려워 할 필요가 없어요. 인생과는 달리 탱고에서는 실수가 없거든요. 실수를 해서 발이 엉키면, 그게 바로 탱고랍니다.”
- 영화 <여인의 향기>, 알 파치노(프랭크 슬레이드 역)의 대사
실수는 행복이 그렇듯 제각각이어서, 어떤 사람에게 실수라고 여겨지는 일이 다른 사람에게는 전혀 실수가 아니기도 하다. 아이에겐 방바닥에 쏟은 물도 실수의 흔적이 아니다. 어른들은 바닥에 물을 쏟았을 때 "실수했어!"라고 말하며 당황해하지만, 물을 쏟은 게 잘못한 일일까 생각해보면 막상 그렇지도 않다. 우리는 물을 쏟지 않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니까.
물을 쏟고도 당당한 어린이는 실수를 모르는 자유의 전령이다. 그들은 모래성을 쌓다가 무너지면 끼륵끼륵 갈매기처럼 웃어버린다. 모래성의 주인은 자신이니까 무너졌다고 해서 실수를 했다고, 잘못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완성된 모래성을 선생님에게 숙제로 제출하고 점수를 받아야 하는 '학생' 이전의 어린이는 아무렇지 않게 모래성을 망가뜨리고 나서 또 쌓으며 논다.
그러다 학교를 다니고, 회사에 들어가서 매 순간 평가를 받다 보면 무너진 모래성 앞에서 웃지 못하는 인간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물을 쏟고서 습관처럼 실수했다고 말하는 건 물을 쏟으면 엄마한테 혼났기 때문에, 그것이 실수라고 학습된 탓일지도 모른다.
좀 더 어린이같이 산다면 나의 실수들은 '잘못'이 아니라 그냥 '웃긴 일'이 돼버릴 것이다. 친구에게 “내가 웃긴 이야기 하나 들려줄게” 하고 무용담 늘어놓듯 내 실수들을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실수에 한바탕 웃어버리거나, 아무렇지 않게 자기 실수를 떠벌리는 건 주인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내 인생은 내 것이니까, 내가 나에게 실수하는데 누구의 눈치를 볼 것도 반성할 것도 없다.
실수를 안 하려고 한 게 다 실수였다. 노예가 실수하지 주인은 실수하지 않는다. 어른이 실수하지 어린이는 실수하지 않는다.

_2016년 8월부터 길스토리 크리에이터 멤버로 활동 중이다. 6년째 문화예술 전문 기자로 일하고 있으며, <나를 지키는 말 88>의 저자이기도 하다. 2019년 9월 1일, ‘제6회 카카오 브런치북’ 대상에 빛나는 두 번째 책 <아이라는 근사한 태도로>(웨일북)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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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 20 Jan 2021 13:31:45
<![CDATA[더 이상 변하려고 노력하지 않겠습니다]]>
더 이상 변하려고 노력하지 않겠습니다
글 : 손화신 (작가)
모자란 것을 그 자체로 완성으로 바라본다는 건 '미완'을 받아들인다는 말과 같다. 성숙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나를 채워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내가 원하는 이상향을 향해서 나아가지 않더라도 어쩌면 나는 내가 선 이 자리에서도 완전해질 수 있는 것 아닐는지.
초승달은 노력할 필요가 없다. 초승달은 보름달이 되지 못한 미완성의 달이 아니라 그냥 초승달이니까. 그러니 보름달이 되려고 힘써야하는 존재가 아닌 것이다. 이런 점을 고치면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거야, 이건 나의 부족한 점이고 흠이니까 보완해야지. 이런 생각을 달고 살다보니 나는 보름달을 꿈꾸는 초승달이 되어버렸다. 그건 내가 나로 사는 게 아니었다.
이제는 더 나은 초승달이 되려고 애써보려 한다. 보름달이 아니라. 더 가늘고 더 섬세한, 보름달은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예술적인 초승달이 되고 싶다. 어쩌면 보름달이라는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게 초승달의 임무가 아니라, 초승달이라는 미완을 완성으로 받아들이는 게 초승달의 임무일지도 모른다.
"Please look at the imperfect human being God gave you to love once."
(신이 너에게 한 번 사랑해주라고 보내신, 불완전한 인간을 보아라.)
- 커트 보니것, <세상이 잠든 동안> 중
어쩌면 신은, 이 세상은, 어른스러운 완성의 나보다 아이 같은 미완성의 나를 더 사랑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5살짜리 아이는 더 나은 인간이 되기 힘을 빼지 않는다. 그들은 성장해야만 한다고 자신을 재촉하지도 않는다. 나도 노력하지 않아야할 일은 더 이상 노력하지 않으리. 내 부모가 나를 사랑하려고 노력하지 않고서도 나를 사랑하는 것처럼. 너무 더운 여름이 가을이 되고 싶어 조급해하지 않고서도 푸르르 듯.

_2016년 8월부터 길스토리 크리에이터 멤버로 활동 중이다. 6년째 문화예술 전문 기자로 일하고 있으며, <나를 지키는 말 88>의 저자이기도 하다. 2019년 9월 1일, ‘제6회 카카오 브런치북’ 대상에 빛나는 두 번째 책 <아이라는 근사한 태도로>(웨일북)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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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 22 Dec 2020 17:42:26
<![CDATA[생각에 급브레이크 걸고 완전히 휴식 하겠습니다]]>
생각에 급브레이크 걸고 완전히 휴식 하겠습니다
글 : 손화신 (작가)
어른을 한 마디로 정의해보라면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생각이 많은 사람들. 조금만 더 길게 정의해보라 한다면? 그럼 이렇게 말해야지. 생각이 많아서 스스로를 괴롭히는 멍청이들.
고백하자면, 그 멍청이 대열에서도 저기 저 앞쪽에 선 자가 바로 나다. 나는 내가 만든 생각에 짓눌려 자신을 괴롭히는 인간 군상의 완벽한 표본이었다. 이런저런 수많은 생각을 하는 것보다 천만 배 더 고통스러운 건 하나의 생각을 반복해서 하는 것이었다.
사소하고 별 거 아닌 생각이라도 그걸 계속 되풀이하다보면 시커멓고 깊은 구덩이 하나가 만들어지고, 그 구덩이에 결국 내가 빠지는 건 자명한 수순이었다.
늪에서 나오는 방법은 하나였다. 아예 스위치를 꺼버릴 것. 생각이란 녀석을 창밖으로 가차 없이 집어던져야 했다. 어떠한 생각을 ‘안 하려고’ 애쓰는 게 답인 줄 알고 그렇게 노력했더니 ‘그 생각을 하지 말자’란 문장에서 ‘그 생각’이란 글자가 점점 더 진해지며 커졌다. 거대해져서 나를 완전히 덮쳐버렸다.
그 생각을 ‘안 하려고’ 하지 말고, 다른 생각을 ‘하려고’ 해야 한다. 포인트는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이다. 전환. 스위치 온, 스위치 오프. 그럴 때 망각의 은총이 내게 소리 없이 내려 앉아 ‘그 생각’을 씻겨내려 줬다. 그럼 난 다시 평온의 길 위로 진입할 수 있었다.
주기적으로 생각에 브레이크를 걸고, 완전히 머리를 비워줄 필요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_2016년 8월부터 길스토리 크리에이터 멤버로 활동 중이다. 6년째 문화예술 전문 기자로 일하고 있으며, <나를 지키는 말 88>의 저자이기도 하다. 2019년 9월 1일, ‘제6회 카카오 브런치북’ 대상에 빛나는 두 번째 책 <아이라는 근사한 태도로>(웨일북)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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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 12 Nov 2020 18:13:07
<![CDATA[오늘 돌릴 팽이를 절대 내일로 미룰 수 없습니다]]>
오늘 돌릴 팽이를 절대 내일로 미룰 수 없습니다
글 : 손화신 (작가)
6살 꼬마에게 "2020년은 너에게 어떤 해였니?"라고 묻지 않는다. 이것이 어딘가 이상한 질문이란 걸 직관으로 알고 있어서가 아닐까. 대신 아이에겐 이렇게 묻는다.
"오늘 하루 어땠니?"
어른들의 하루는 아침과 점심과 저녁과 밤으로 이루어져 있고 숫자로 말하자면 24시간이지만, 어린이들의 하루는 좀 다르다. 어린이는 시침이 아니라 분침 위에서 살아간다. 2시간을 사는 게 아니라 120개의 1분을 산다. 그들에겐 매 순간이 매 순간일 뿐이어서 지금 이 순간이 다음 순간을 위한 발판이 되는 일도, 지금 순간이 이전 순간이 낳은 결과가 되는 일도 없다. 그러므로 어린이는 현존하는 자이고, 그렇기 때문에 강자이다.
"나는 저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치들과는 달라요. … 나는 그저 하루하루 살아나갈 뿐이오."
- 가수 프랭크 시나트라
'My Way'를 부른 가수로 잘 알려진 프랭크 시나트라가 한 말이다. 말 많고 탈 많은 삶을 살았던 사람이지만 긴 호흡으로 부르는 그의 노래들만큼은, 그리고 저 한 마디만큼은 깊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그를 만나본 적은 없지만 저 한 마디 말로 유추할 수 있는 건 그가 어린이 같은 사람이었을 거란 사실이다. 그날 먹을 생크림 케이크를 내일을 위해 아껴두는 타입의 사람은 절대 아니었겠지.
아이들은 오늘 돌릴 팽이를 내일로 미루지 않는다. 그건 미룰 수 있는 게 아니다. '하루'는 오늘의 것이지 내일의 것이 아니니까. 오늘 내 것이어야 할 행복과 기쁨을 언젠가의 날들 속에 저장해두는 건 아이들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완성된 인생은 없지만, '하루'는 언제나 완성이다.
* 손화신 작가의 에세이 <아이라는 근사한 태도로>에 실린 글입니다.

 

_2016년 8월부터 길스토리 크리에이터 멤버로 활동 중이다. 6년째 문화예술 전문 기자로 일하고 있으며, <나를 지키는 말 88>의 저자이기도 하다. 2019년 9월 1일, ‘제6회 카카오 브런치북’ 대상에 빛나는 두 번째 책 <아이라는 근사한 태도로>(웨일북)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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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 13 Oct 2020 14:26:10
<![CDATA[선배 말고 이름을 부르겠습니다]]>
선배 말고 이름을 부르겠습니다
글 : 손화신 (작가)
어른이 되면서 개인을 개인으로 보는 법을 잊어간다. 휴대폰에 번호를 저장할 때 상대의 이름만으로 저장한 지가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난다. 이름 앞에는 그가 속한 회사명을 적고 이름 뒤에는 그가 그곳에서 맡고 있는 직책을 적는다. 안어른 컴퍼니 손화신 대리. 이렇게 길고 꽉 차게 적어야 안심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다. 이름만 적어서는 그 사람을 기억할 자신이 없다. 일로 만난 사람이라 그럴 수밖에 없다지만, 한 사람을 그의 이름 석 자 고유명사로써 대하는 게 아니라 역할의 이름으로써 대한다는 게 씁쓸하다. 내가 관계 맺고 대화하는 내 앞의 이 존재는 회사인가, 사람인가.
일을 하면서 가끔 관계자 미팅을 할 때가 있다. 안어른 컴퍼니의 언론홍보팀 직원을 만나서 점심식사를 한다고 했을 때 일단은 개인적인 소재로 대화의 문을 연다. 이 음식이 입에 잘 맞으신지, 댁은 어느 쪽이신지, 출퇴근하기 멀진 않으신지.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업무와 관련된 이야기로 넘어가지만 아주 가끔은 개인적인 대화만 하다가 끝나는 미팅도 있다. 물론 이야기가 잘 통하는 경우에 한해서다. 그럴 때 그 직원이 안어른 컴퍼니의 대리인이 아니라 이름 석 자를 가진 사람으로 보인다.
왠지 기분 좋은 만남은 늘 이런 식이었다. 만날 땐 비즈니스로 만났지만 이야기하면서 서서히 인간적으로 연결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 실제로 대리님-기자님 하던 사이에서 언니-동생 하게 된 경우도 있다. 스쳐가는 사람이 아니라 오래 갈 사람을 얻은 것이다.
예전에 한 여배우를 인터뷰했을 때 그가 한 말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아직도 기억한다.
"저는 지금 이 순간도 '대화'를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영화 홍보 차 마련된 인터뷰긴 하지만 어찌됐건 이 순간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거잖아요. 비즈니스처럼 딱딱하게 이야기한다면 그건 너무 삭막한 것 같아요."
벌써 꽤 시간이 지났지만 내게 후회로 남아있는 일 하나가 있다. 기자일을 막 시작했을 때 나보다 3개월쯤 먼저 입사한 선배가 있었는데 나이는 나보다 4살쯤 어렸다. 그 선배가 집에 가는 지하철 플랫폼에서 내게 "나이도 제가 어리고 연차도 별로 차이가 안 나니까 그냥 편하게 불러 달라, 선배라고 부르지 말고 이름을 불러 달라, 나도 언니라고 부르겠다"고 제안했는데, 글쎄 그때 내가 뭐라고 답했는지 아는가. "어떻게 그렇게 하느냐, 그럴 수 없다"고 답했다. 바보 같은!
갓 입사한 나는 필요 이상으로 군기가 잡혀있었다. 그때 내 눈에 그 사람은 오직 선배였다. 더 안타까운 건 그 사람과 진심으로 친해지고 싶었고 그 사람이 좋았다는 점이다. 결말은 말 안 해도 아시리라. 우린 친해지지 못했다. 내가 그를 역할로만 보는 바람에.
사람을 잃는 여러 가지 방법 중에 가장 손쉬운 방법이었다.
* 손화신 작가의 에세이 <아이라는 근사한 태도로>에 실린 글입니다.

_2016년 8월부터 길스토리 크리에이터 멤버로 활동 중이다. 6년째 문화예술 전문 기자로 일하고 있으며, <나를 지키는 말 88>의 저자이기도 하다. 2019년 9월 1일, ‘제6회 카카오 브런치북’ 대상에 빛나는 두 번째 책 <아이라는 근사한 태도로>(웨일북)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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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 7 Sep 2020 13:32:09
<![CDATA[한 번도 분 적 없는 트럼펫을 불겠습니다]]>
한 번도 분 적 없는 트럼펫을 불겠습니다
글 : 손화신 (작가)
미국의 어느 재즈바. 무대 위에서 트럼펫을 불던 남자는 자신의 연주를 집중해서 듣던 한 테이블의 꼬마에게 다가가 물었다. "너 트럼펫 불 줄 아니?" 질문에 꼬마가 대답했다.
"글쎄요. 한 번도 불어본 적이 없어서 제가 불 줄 아는지 못 부는지 저도 모르겠어요."
그 꼬마가 바로 미국의 재즈 트럼펫 연주자이자 가수 루이 암스트롱이야, 하고 누군가 내게 말해줬다. 실화인지 아닌지 찾아보려고 인터넷을 뒤졌지만 찾을 수 없어서 그냥 나는 꼬마 루이 암스트롱을 상상하면서 머릿속에 이 이야기를 담아두고 있었다.
아이의 대답이 당돌하다. 트럼펫을 불어본 적 없다면 보통 사람은 "못 분다"고 답하겠지만 꼬마는 "모른다"고 답했다. 자신 안에 잠재된 가능성을 스스로 존중하는 태도처럼 보인다. 이 꼬마는 언젠가는 트럼펫을 불 것이다. 그때 자기가 그것을 못 분다는 것을 확인할 것이고, 언젠가는 잘 불 수 있을 거라는 예감 또한 그날 함께 얻게 될 것이다. 꼬마는 결국 세계적으로 유명한 트럼펫 연주자가 될 것이다.
안 해봤다고 못하는 건 아니다. 한 번도 안 써봤어도 시를 쓸 수 있고, 한 번도 축구공을 본 적 없어도 슛을 넣을 수 있다. 시도해봐야 아는 거니까. 내 안에 어떤 재능이 있는지 나도 모르니까.
어린이라고 해서 모두 루이 암스트롱처럼 시도에 열려있는 건 아닐 테다. 시도했지만 실패한 경험이 쌓이고 그것이 부끄럽고 자존심 상하는 기억으로 남는다면 도전을 두려워하게 된다. 그건 어른도 마찬가지다. 아니, 살아온 날만큼 더 많은 실패를 쌓아온 어른들은 두려움이 더 클 것이다. 하지만 뭐든 시도해보는 게 아예 안 하는 것보다 낫다는 깨달음을, 이 역시 경험으로써 쌓아왔기에 우린 도전에 기꺼이 몸을 던진다. 어린이처럼 천진한 도전이 아니어도 좋다. 뭐라도 시도할 때 삶이 지루하지 않고 에너지가 생기는 걸 나 또한 체험으로 알고 있고, 그래서 뭐든 시도해보고 싶은 마음이다.
나는 기술을 배우고 싶다. 지금까지 시도를 많이 하고 살았지만 그것이 대부분 공부와 관련된 것이었다. 컴퓨터 자격증이나 한자 자격증, 한국사 자격증 같은 걸 땄을 때 성취감을 느끼긴 했지만 그것은 관념적인 것이어서 몸으로 느끼는 기술의 맛을 얻을 수는 없었다. 이제는 눈에 보이는 성취를 더 많이 하고 싶다. 일상에서 쓸 일이 별로 없고 까먹는 것들 말고 기능적인 무언가를 배워보고 싶다.
보다 체험적이고 육체적인 시도들이 내게 성취감과 자신감을 줬다. 가령 운전을 처음 배울 때, 핸들감각이 하루가 다르게 생겨나고 브레이크를 부드럽게 밟을 수 있게 됐을 때 내 안에서 생기는 엔도르핀이 삶에 활력을 줬다. 기타나 피아노 같은 악기를 배울 때도 비슷한 기분을 느꼈다. 매일 비슷하고 지루한 삶에 짜릿한 균열이 생겨 그 틈으로 에너지가 나오는 느낌. 그 기분을 한 번 만 더 경험할 수 있다면!
"너라는 위대함을 믿어."
집에 가는 길에 문득 고개를 돌렸는데 정류장에 저 문구가 있었다. 나이키 광고였는데, '너의' 위대함이 아니라 '너라는' 위대함이란 표현이 인상적이었다. 어쩌면 나의 위대함은 내 일부가 아니라 나 자체일지도 모르겠다. 한 번도 트럼펫을 불어본 적 없어도 어쩌면 내가 트럼펫을 불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믿는 것. 그 믿음이 나의 위대함을 인정하는 일 아닐까. 누군가 내게 “너는 그것을 절대 못할 것”이라고 말해도 이제 그런 말 따위 무시하는 아이처럼 되기를.
어느 날 내가 굴삭기나 지게차를 몰고 나타나도, 경비행기를 타고 하늘에서 내려와도 놀라지 마시기를. 나 역시 당신이 하는 시도와 그 시도의 성공과 실패까지, 그 모든 것을 응원할 테니.
* 손화신 작가의 에세이 <아이라는 근사한 태도로>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_2016년 8월부터 길스토리 크리에이터 멤버로 활동 중이다. 6년째 문화예술 전문 기자로 일하고 있으며, <나를 지키는 말 88>의 저자이기도 하다. 2019년 9월 1일, ‘제6회 카카오 브런치북’ 대상에 빛나는 두 번째 책 <아이라는 근사한 태도로>(웨일북)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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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 7 Aug 2020 14:23:03
<![CDATA[지금 내가 원하는 건 한우가 아니라 떡볶이입니다 ]]>
지금 내가 원하는 건 한우가 아니라 떡볶이입니다
글 : 손화신 (작가)
아이들은 무언가를 고를 때 어른보다 머리를 덜 굴린다. A와 B 중에 지금 당장 자기가 원하는 것을 직선적으로 고를 줄 안다. 떡볶이에 빠져 있는 아이에게 접시 두 개를 내밀며 “너 떡볶이 먹을래, 아니면 횡성한우 먹을래?” 묻는다면 아이는 당장 떡볶이가 담긴 접시를 집어들 것이다.
나였다면? 입만 아프게 할 질문은 하지 말아줬으면 한다. 나였다면, “전 지금 떡볶이가 무척 당기지만, 그러나 저는 바보가 아니잖아요?” 하며 횡성한우를 집어 들었을 것이다.
어른이 된 나는 재기의 달인이다. 지금 당장 무언가를 원한다고 해도 이리저리 재보고 계산하고, 미래까지 당겨 와서 이리저리 예측해본다. 그리고는 지금은 그다지 원하지 않지만, 상식적으로 가치 있다고 생각되는 걸 고른다. 누가 봐도 당연한 선택을, 또한 나에게 조금이라도 더 큰 이익이 되는 선택을 해야만 현명한 것처럼 생각됐다. 그렇게 나는 내 마음을 무시했다. 머리는 공손히 떠받들면서 말이다.
얼마 전에도 이런 헛된 욕심 때문에 그날의 선물을 놓친 적이 있다. 카페에 간 나는 적립쿠폰을 쓰기 위해 가장 비싼 음료를 주문했다. 그건 상식적으로 당연했다. 쿠폰으로 비싼 음료를 시키는 건 욕심까지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난 좀 찔린다. 왜냐하면 그때 나는 커피를 마시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적립쿠폰으로 커피를 마시는 만행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쿠폰 유효기간은 그날이 마지막이었고, 나는 결국 별로 당기지도 않는 비싼 음료를 시켜 마셨다. 나는 ‘당장 느낄 수 있는’ 지금의 행복을 포기하고 ‘생각해봤을 때’ 더 좋아 보이는 상식적 행복을 선택했던 것이다.
욕심 버리기, 이건 너무 어려워서 난 못할 것 같다. 적립쿠폰으로 아메리카노를 시킬 만큼 욕심 없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적립쿠폰으로 아메리카노를 시킬 만큼 돈에 연연하지 않는 부자가 되는 게 훨씬 빠른 길처럼 보이니까 말이다. 떡볶이가 먹고 싶을 때 떡볶이를 선택하고, 커피가 마시고 싶을 때 커피를 선택하는 건 나에겐 쉽지 않은 일이다.
* 이 글은 손화신 작가의 에세이 <아이라는 근사한 태도로>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_2016년 8월부터 길스토리 크리에이터 멤버로 활동 중이다. 6년째 문화예술 전문 기자로 일하고 있으며, <나를 지키는 말 88>의 저자이기도 하다. 2019년 9월 1일, ‘제6회 카카오 브런치북’ 대상에 빛나는 두 번째 책 <아이라는 근사한 태도로>(웨일북)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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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 15 Jul 2020 14:06:21
<![CDATA[세상의 숫자를 없애는 방법을 알려 드립니다]]>
세상의 숫자를 없애는 방법을 알려 드립니다
글 : 손화신 (작가)
“10살에 봤던 25살은 아저씨였고, 20살에 봤던 25살은 어른이었고, 25살에 느낀 25살은 아직 어리네.”
- 트위터 닉네임 ‘팩트폭행범’(Fact_missile)
위의 말에 나는 넘치게 공간한 나머지 내적 박수를 쳐댔다. 10살 때 봤던 25살은 아저씨인 정도가 아니라, 공경해야 할 어르신이었다. 그런데 지금 바라보는 25살은? 글쎄... 앙증맞은 꼬꼬마 혹은 볼을 꼬집어주고 싶은 귀염둥이? 내가 초등학생 때 그토록 존경과 감사를 담아 썼던 ‘군인 아저씨께 보내는 편지’는 알고 보니 20대 초반의 볼을 꼬집어주고 싶은 청년들에게 전달됐던 것이다!
뒤늦게 그걸 알고서 내가 받은 충격이란... 20대 푸르른 나이에, 아저씨라는 단어가 행마다 총총히 등장하는 편지를 받게 한 점, 이 자리를 빌려서 사죄드린다. 죄송했습니다, 오... 오... 오빠들. 자신이 아직 어른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는 건, 오빠들이나 저나 아마도 다르지 않았겠지요.
“중세학자들은 시간이란 우리들의 착각이고, 인과 관계 속에서 연속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여겨지는 시간의 경과는 우리의 감각기관의 산물에 지나지 않으며 사물의 진정한 존재는 영원한 현재라고 설명했다.”
- 토마스 만, <마의 산> 중
예전엔 나의 한 평생이 참 긴 것처럼 여겨졌다. 이제 막 생의 출발선을 떠나온 것 같았다. 그런데 요즘은 내 인생이 꽤나 내달렸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오래 달리기인 줄 알고 뛰었는데 100미터 달리기였단 걸 알았을 때 느끼는 당혹감이란! 우리네 인생이 90세 까지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의외로 길지 않은 시간이란 생각이 들 때면 발을 동동 구르게 된다.
억울해할수록 나는 지나가는 시간을 아쉬워하고 또 의식하게 됐다. 분하게도, 시간을 의식한다는 게 바로 내가 어리지 않다는 증거였다. 이것이 가장 뼈아픈 타격이었다. 가는 시간을 아쉽게 여겨서 아껴 쓰려고 하기 때문에 시간은 더 짧아지는 거다.
시간에 매번 끌려 다니기만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시간의 멱살을 끌고 리드하는 기분을 한 번쯤은 제대로 느껴보고 싶다. 그럴 수 있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시간을 없앨 것.
시간을 없앤다는 말은 즉 무아지경에 빠진다는 뜻이다. 내가 사라지는 경지에 이를 때 우린 영원을 체험한다. 그럴 때 시간은 무한대로 확장되어 아예 사라져버린다. 어딘가에 몰입할 때 오는 진공의 상태를 얼마나 자주 경험하는가를, 시간을 ‘잘’ 썼는지 아닌지 평가하는 잣대로 쓰고 싶다.
무아지경의 시간은 잴 수 없는 시간이다. 춤을 추면서 5분 동안 무아지경에 빠질 예정일 순 없다. 자연스럽게 빠져들어 자연스럽게 지속되는 시간. 그렇듯 시간 너머에 있는 그 시간은 우리가 ‘시간 아까워!’ 하고 그것을 의식하는 순간 깨져버리기에 그저 진공관에서 빠져나오지 말고 그 안에 머물 일이다.
“어느 모로 보나 시간낭비 짓을 하고 있는데도 당신이 웃고 있다면 그렇다면 그건 더 이상 시간낭비가 아닙니다.”
- 파울로 코엘료, <마법의 순간> 중

 

_2016년 8월부터 길스토리 크리에이터 멤버로 활동 중이다. 6년째 문화예술 전문 기자로 일하고 있으며, <나를 지키는 말 88>의 저자이기도 하다. 2019년 9월 1일, ‘제6회 카카오 브런치북’ 대상에 빛나는 두 번째 책 <아이라는 근사한 태도로>(웨일북)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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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 11 Jun 2020 15:02:51
<![CDATA[백 번 놀랐지만 천 번은 더 놀랄 예정입니다]]>
백 번 놀랐지만 천 번은 더 놀랄 예정입니다
글 : 손화신 (작가)
"무릇 위대한 환상가와 위대한 시인은 사물을 이런 식으로 보지 않던가! 매사를 처음 대하는 것처럼! 매일 아침 그들은 눈앞에 펼쳐지는 새로운 세계를 본다. 아니, 보는 게 아니라 창조한다."
-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중
아이들이 보는 세상은 매사가 처음이라서 경탄할 것들 천지다. 모르는 걸 하나씩 묻고 알아가면서 그들은 자라난다. 하지만 아는 게 많아지면서 질문은 점점 적어진다. 열 살 아이는 확실히 네 살 때보다 조금 질문하고, 덜 감탄한다. 그렇게 무덤덤해져가다 스무 살이 될 것이다. 스무 살이 되면 아이는 이제 너무 많은 것을 알게 되어 경탄의 세계에서 저 멀리 변두리까지 밀려나버린다.
"그대 만일 날마다 일어나는 삶의 기적들을 가슴속에 경이로움으로 간직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고통도 기쁨처럼 경이롭게 바라볼 것을."
- 칼릴 지브란, <예언자> 중 ‘고통에 대하여’
백번을 놀랐다고 해도 더 놀랄 게 있는 게 내가 사는 이 세상이니! 매사를 처음 보는 것처럼 대한다면 나의 날들은 경이로운 것이 되리라!
* 손화신 작가의 에세이 <아이라는 근사한 태도로>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_2016년 8월부터 길스토리 크리에이터 멤버로 활동 중이다. 6년째 문화예술 전문 기자로 일하고 있으며, <나를 지키는 말 88>의 저자이기도 하다. 2019년 9월 1일, ‘제6회 카카오 브런치북’ 대상에 빛나는 두 번째 책 <아이라는 근사한 태도로>(웨일북)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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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 15 May 2020 18:27:26
<![CDATA[버스에 올라타면 나는 승객이 됩니다]]>
버스에 올라타면 나는 승객이 됩니다
글 : 손화신 (작가)
어린이는 '가질 수 있는 것'을 매일 가지고 그것에 기뻐할 줄 아는 존재다. 어린이는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존재다. 미래에 무언가가 되길 희망하기보다는 오늘 무언가가 되는 사람인 것이다.
버스에 올라타면 어린이는 승객이 '된다'. 빵집에 들어가면 어린이는 빵 고르는 사람이 '된다'. 미용실에 가면 어린이는 머리카락 잘리는 사람이 '된다'. 놀이터에 가면 미끄럼틀 타는 사람이 '되고', 동물원에 가면 기린과 인사 나누는 사람이 '된다'.
그들은 매 순간 주체다. 어린이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에 주체적 인간이 아니라는 말은 어른들의 헛소리다. 어른은 미래에 무엇이 되길 꿈꾸지만 어린이는 지금 이 순간 모든 것이 된다. 의사가 되고 싶고, 배우가 되고 싶고, CEO가 되고 싶은데 아직 그것들이 안 돼서 되어야만 하는 어른들 사이에서 그들은 이미 모든 것을 가진 인간으로서 충만한 하루를 보낸다.
버스에 올라타 지루한 얼굴로 앉은 어른들 속에서 어린이는 승객으로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고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누린다. 그들에겐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만 중요한 게 아니다. 손잡이를 잡아보려고 애쓰고 벨을 먼저 누르려고 앞자리 또래와 경쟁하고 버스의 덜컹거림에 꺄르르 비명을 지르고 교통카드 찍히는 소리를 따라하기도 하며 차창 밖으로 보이는 가게와 강아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오늘 하루 아이의 마음으로 살아본 나는 커피 마시는 사람이 되었고, 음악 듣는 사람이 되었으며, 심지어 글 쓰는 사람이 되었다. 완벽해! 내가 바란 것들이 다 이루어진 오늘이 특별하지 않은 날이라고, 평범한 날들 중 하나일 뿐이라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 이 글은 손화신 작가의 에세이 <아이라는 근사한 태도로>에 실린 글입니다.

_2016년 8월부터 길스토리 크리에이터 멤버로 활동 중이다. 6년째 문화예술 전문 기자로 일하고 있으며, <나를 지키는 말 88>의 저자이기도 하다. 2019년 9월 1일, ‘제6회 카카오 브런치북’ 대상에 빛나는 두 번째 책 <아이라는 근사한 태도로>(웨일북)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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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 16 Apr 2020 14:23:41
<![CDATA[돌멩이를 주웠는데 소중한 것이라 드릴 수 없습니다]]>
돌멩이를 주웠는데 소중한 것이라 드릴 수 없습니다
글·사진 : 손화신 (작가)
길에서 쓰레기를 주워오는 어린이를 본 적 있는지? 아니면, 당신이 그런 어린이였는지? 철학자 발터 벤야민은, 어린이는 자신만의 가치기준으로 사물을 모으고 그것들을 자신만의 규칙으로 연결한다고 말했다.
어른들이 부러워하는 어린이의 창의성이란 이렇듯 우리가 쓰레기라 부르는 것들을 주워와 창조적으로 연결하고 독창적으로 편집함으로써 탄생하는 것이다.
요즘 SNS를 기웃거리다보면 '예쁜 쓰레기'라는 단어가 종종 보인다. 어린이가 길거리의 그 예쁜 쓰레기에 마음을 빼앗길 때(물론 그들에게는 쓰레기가 아니다) 그 물건은 아이를 애타게 부른다.
"친구야, 나를 데려가! 난 너의 둘도 없는 친구가 될 거야. 나를 네 방의 후드라이언 인형 옆으로 데려다주겠니? 나랑 같이 놀자."
- 예쁜 쓰레기
그러면 아이는 그것을 주머니에 소중하게 넣으며 그 외침에 응답한다. 어린이는 이런 식으로 세상의 존재들과 소통하고 그것들을 사랑한다. 남들에게는 버려 마땅한 물건일지라도 아이에게는 잘 때까지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제일가는 보물이 된다.
그들이 어른보다 쉽게 행복해지는 비밀이 여기에 있는 것 아닐까? '나에게' 소중한 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주체적이고 개별적인 태도. 어린왕자가 자신의 장미 한 송이를 보살피는 일처럼 서로에게 길들여진 나만의 것이 있어서 그것을 보살핀다는 것. 어른들도 그런 식으로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 손화신 작가의 <아이라는 근사한 태도로>에 실린 글입니다.

_2016년 8월부터 길스토리 크리에이터 멤버로 활동 중이다. 6년째 문화예술 전문 기자로 일하고 있으며, <나를 지키는 말 88>의 저자이기도 하다. 2019년 9월 1일, ‘제6회 카카오 브런치북’ 대상에 빛나는 두 번째 책 <아이라는 근사한 태도로>(웨일북)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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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 16 Mar 2020 15:03:12
<![CDATA[나는 용감하니까 내가 다 구해주겠습니다]]>
나는 용감하니까 내가 다 구해주겠습니다
글 : 손화신 (작가)
"인생을 가치 있게 살고자 원한다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 톨스토이
어린이는 자아와 타자의 경계를 특별히 나누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용사라도 된 듯 친구를 돕고 구하는 데 자신의 몸을 사리는 법이 없다. 비록 가상의 칼싸움이지만. 그러다가 크면서 점점 자신과 타인, 자신과 세계를 경계 짓기 시작하고 경쟁에 내몰리면서 더욱 타자를 타자로써 구별 짓는다.
어른들은 '내 사람들'에겐 헌신적이지만 남에게는 매정하게 굴 때가 있고, 어릴 때는 그러지 않았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다.
필요한 날에 나는 깊은 곳의 용기를 끌어올려 그 용기를 타인을 위해 쓸 수 있을까. 나는 타인이라는 지옥 혹은 파라다이스 속에서 어린이처럼 무모할 수 있을까. 타인으로부터 멀어지고 고립되면서까지 이기적으로 구는 나를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나는 타인이 참 어렵다. 너무 좋기도 하고 너무 두렵기도 하고 너무 모르겠기도 하다. 그래서 누군가를 돕는 것도, 도움을 받는 것도 여전히 불편하다. 솔직히 그렇다.
어린이는 약하지만 용감하고 어른은 강하지만 용감하지 않다. 바라는 것은 다만, 약하더라도 용감한 자로 살아가려는 의지와, 누군가를 도우면서 머릿속을 비울 수 있는 단순함인 것이다.
- 에세이 <아이라는 근사한 태도로>에 실린 글입니다.

_2016년 8월부터 길스토리 크리에이터 멤버로 활동 중이다. 6년째 문화예술 전문 기자로 일하고 있으며, <나를 지키는 말 88>의 저자이기도 하다. 2019년 9월 1일, ‘제6회 카카오 브런치북’ 대상에 빛나는 두 번째 책 <아이라는 근사한 태도로>(웨일북)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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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 10 Feb 2020 13:34:24
<![CDATA[행운이 비처럼 쏟아져도 피하지 않겠습니다]]>
행운이 비처럼 쏟아져도 피하지 않겠습니다
글 : 손화신 (작가)
어린이는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편안하게 받을 줄 안다. 자신이 그것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이걸 받으면 갚아야하는 건 아닌지 생각하지 않는다. 그 당연함이 어린이로 하여금 무언가를 계속 받게 하고 그들의 삶을 마르지 않게 한다. 누군가가 선물을 주면 “아닙니다. 넣어두세요” 하고 거절하는 어린이를 본 적 있으신지. 누군가 칭찬을 하면 “아이고~ 과찬이십니다” 하며 겸손을 연기하는 아이를 본 적 있으신지.
이 우주는 화수분처럼 무한한 곳이라는 믿음은,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 마인드와 반대점에 있다. 받은 만큼 돌려주지 않아도 되고, 받은 것 이상으로 돌려줘도 된다. 아이가 엄마에게 받은 만큼 돌려주지 않아도 엄마는 계속 주고 또 주는 것처럼 우주가 내게 그런 존재라고 생각하면 좀 더 살만해지는 것 같다.
기브 앤 테이크의 방정식으로 득실을 샘하는 나의 버릇이, 내게 쏟아져 내리는 은총을 얼마나 많이 튕겨냈을까. 나 같은 멍청이는 또 없을 테지. 쏟아지는 폭포수 아래 그저 대범하게 서 있기만 하면 되는 것을, 은총의 물방울을 콩알 세듯 하나씩 세면서 받았던 건 아니었을지. 현실화되지 못한 감사할 일들이, 나의 운명 한 구석에 퇴물처럼 처박혀 있는 건 아닌지.
남한테 피해주면 안 된다는 생각과 신세지면 안 된다는 생각이, 돌아보면 그다지 어른스럽고 성숙한 생각은 아닌 듯싶다. 최대한 빚지지 않고 살아가려는 어른들 심리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거기엔 배려보다는 배척이 더 크게 자리하고 있다. 나도 너한테 피해 안 줄 테니까 너도 내게 피해주지 말라는 암묵적인 요구가 깃들어 있는 것이다.
세상은 내 생각처럼 그렇게 빡빡한 전당포가 아닌지도 모른다. 세상은 내게 행운을 부어줄 때 섬세한 요리사처럼 계량컵을 꺼내들지 않는다. 엄마 품에 안겨 외출한 아기가 모르는 사람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듯 내게 다가오는 모르는 호의들을 모두 받아도 괜찮은 일이다.
“그리고 그대들 받는 이들이여, 물론 그대들 모두는 받는 이들이지만, 얼마나 감사해야 할까를 생각하지 말라. 그것이야말로 그대들 자신에게나, 주는 이에게나 굴레를 씌우는 일.
그보다는 주는 이와 함께 그의 선물을 날개 삼아 날아오르라.
자신이 진 빚을 지나치게 염려함은 아낌없이 주는 대지를 어머니로 삼고 신을 아버지로 삼은 그의 자비를 의심하는 일이므로.”-칼릴 지브란 (‘예언자’ 중 ‘주는 일에 대하여’)
- 손화신 작가의 에세이 <아이라는 근사한 태도로>에 실린 글입니다.

_2016년 8월부터 길스토리 크리에이터 멤버로 활동 중이다. 6년째 문화예술 전문 기자로 일하고 있으며, <나를 지키는 말 88>의 저자이기도 하다. 2019년 9월 1일, ‘제6회 카카오 브런치북’ 대상에 빛나는 두 번째 책 <아이라는 근사한 태도로>(웨일북)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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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 17 Jan 2020 14:42:51
<![CDATA[우리 각자 목적이 되어 햇빛을 쬐러 갑시다]]>
우리 각자 목적이 되어 햇빛을 쬐러 갑시다
글 : 손화신 (작가)
햇빛이 기가 막히는 날에는 식물처럼 광합성을 하고 싶다. 건물 안에 갇혀 있는 날이면 커피가 당기듯 햇빛이 당긴다. 좀비처럼 퀭한 눈으로 컴퓨터 앞에 있다가도 밖에 나가 가르마 사이로 햇빛을 좀 쬐어주면 축축하던 기분이 보송보송해진다. 그러면 다시 건물 안에 갇히러(?) 가는 발걸음마저 가벼워지는 것이다.
회사원들의 점심시간은 햇볕이 가장 좋은 시간과 맞물린다. 마치 대학교 중간고사 기간과 벚꽃 만개일이 1일의 오차도 없이 맞물리는 것처럼. 점심시간 1시간은 만원 식당에서 빨리 먹기 대결하듯 밥을 먹고 커피를 홀짝이기에 턱없이 짧다. 햇볕 좋은 날이면 어쩐 일인지 시간은 더 쏜살같아서 오전 내내 노동으로 땀 맺힌 정수리를 다 말리지도 못한 채 응달로 돌아가야만 한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안달하던 그 많던 초등학생들이, 고등학생 혹은 대학생이 돼서 “어른 되기 싫다”고 말할 때,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에게 설문지를 돌리면 과연 최다득표는 어떤 항목에 돌아갈까. 아마 다음과 같은 항목이 아닐까 싶다.
‘얽매이는 게 점점 더 많아짐’
가기 싫어도 직장에 가야하고, 하기 싫어도 야근을 해야 하는 것. 쉬고 싶고 놀고 싶을 때도 마음대로 즐기지 못하는 것. ‘해야 할 일’에 ‘하고 싶은 일’이 늘 자리를 양보해야 하는 것. 이런 억압들을 받아들이고 익숙해진다는 게 어른이 되는 일처럼 보여서, 그래서 그들은 어른이 되기 싫은 거다.
오늘 학교에 안 가면 안 될까 하는, 엄마의 ‘등짝 스매싱’을 부르는 말을 지치지도 않고 매일 아침 하는 어린이는 그렇게 아침마다 어른이 되는 훈련을 하고 있다. 그런 아이에게 진심을 담아, 힘이 되어줄 한 마디를 하고 싶다. 아이야! 너무 힘들어하지 마렴. 지금의 고통은 아무 것도 아냐. 어른이 되면 너는 백배 더 얽매이고 백배 더 힘들어질 거야. 그러니 힘내, 파이팅! :)
“타인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라.”
- 칸트
인간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라는 말은 이 시대에 점점 무색해져간다. 그것은 타인을 종이 아닌 자유인으로서 대하라는 말이지만 산업화된 사회의 노동자는 부품화, 수단화될 수밖에 없다. 한 개인이 조직을 위한 구성원으로서의 정체성을 굳혀갈수록 그는 목적으로서의 인간에서 점점 멀어진다.
요즘 서점가에선 퇴사를 주제로 한 책들이 인기를 끌고, 직장인을 위한 퇴사 학교도 생기고 있는데 이는 수단으로서의 인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부품들의 몸부림처럼 보인다. 인간은 누구든 억압이 아닌 자유의 태양 아래서 살고 싶어 하니까.
“정신이 더 이상 주인이나 신으로 섬기려고 하지 않는 거대한 용의 이름은 무엇인가? 거대한 용은 ‘너는 해야 한다’를 뜻한다. 하지만 사자의 정신은 ‘나는 하려고 한다’라고 말한다.”
-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
‘나부터 행복해야한다’는 불변의 진리를 가장 잘 지키는 사람은 어린이들이다. 아이들은 자신의 행복을 타인에게 양도하지 않으며 내일에 양도하지도 않는다. 지금 행복할 것. 내가 먼저 행복할 것. ‘너는 무엇을 해야 한다’의 의무에 쫓기기보다는 ‘나는 무엇을 하려고 한다’는 자유를 우선으로 받들 것. 이것은 어린이 나라의 칙령이다. 아이들이 수단이 되지 않고 목적의 인간으로서 남는 비법이다.
- 손화신 작가의 에세이 <아이라는 근사한 태도로>에 담긴 글입니다.

 

_2016년 8월부터 길스토리 크리에이터 멤버로 활동 중이다. 6년째 문화예술 전문 기자로 일하고 있으며, <나를 지키는 말 88>의 저자이기도 하다. 2019년 9월 1일, ‘제6회 카카오 브런치북’ 대상에 빛나는 두 번째 책 <아이라는 근사한 태도로>(웨일북)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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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 17 Dec 2019 14:35:22
<![CDATA[내가 당신을 울릴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내가 당신을 울릴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글 : 손화신 (작가)
"라파엘로처럼 그리는 데는 4년이 걸렸지만, 어린아이처럼 그리는 데는 평생이 걸렸다."
- 파블로 피카소
피카소의 저 한마디가 예술의 본질을 얼마나 부족함 없이 담고 있는지, 무언가를 창작해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것 같다. 그림 그리는 일을 왜 기술이라고 하지 않고 예술이라고 하는지도. 나는 화가나 음악가 같은 예술가는 아니지만 글을 창작하는 동안 '어린아이처럼' 쓰는 것에 대한 갈망이 커져감을 느낀다.
"글을 참 잘 쓰시네요."
이 말이 어찌나 듣기 좋던지. 그런 때가 있었다. 글에 있어서만큼은 누구보다 탁월해지고 싶었고, 그래서 어떻게 하면 잘 쓸 수 있을지 고민하며 문장을 쌓아갔다. 그걸 누가 알아봐주고 글 참 잘 쓴다고 칭찬하면 종일 충만한 기분에 젖었다. 나의 재능과 노력을 인정받은 것 같아서.
지금은 욕심이 커질 대로 커져버려서 더 이상 글 잘 쓴다는 소리가 기쁘지 않다. 이것은 재수 없게 들릴 것을 감수하고서 하는 고백이다. 이제는 글쓰기 기술과 능력으로 사랑받기보단 그냥 내가 사랑받고 싶다. '글'과 함께 '글쓴이'로서도 사랑받고 싶어진 것 같다. 어쩌면 글쓰기에 대한 욕심이 커진 게 아니라 반대로 욕심이 완전히 없어져 버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글에 내가 더 많이 담기게 쓰는 것. 글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나를 보여주는 것. 남들의 시선과 뒤섞인 무언가가 아니라 단지 내 눈으로 내가 바라보는 세상을 담아내는 것.
예전에는 글 자체가 목적이었다면 이제 글이란 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나란 사람을 표현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처럼 여겨진다. 만약 내게 작곡 능력이 있었다면 글 대신 노래를 만들었을 거고 그림에 소질을 타고났다면 그림으로 나를 표현했을 거다. 꼭 글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사람들에게서 "글 좋네"로 끝나는 평가가 아니라 "이 글을 쓴 사람이 궁금해", "이 글을 쓴 사람이 좋아", "이 사람의 다른 글도 보고 싶어"란 말을 듣고 싶다.
글 속에 나를 최대한 수수하게 담아내는 것. 화장을 지우고 아이처럼 되는 것. 요즘 원하는 건 이런 거다. 솔직하고 본능적으로, 자의식도 뽐냄도 없이 느끼고 생각한 걸 표현하는 어린이를 닮고 싶다. 내 글이 어떤 쓸모를 가질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지를 너무 고민하고 싶지 않다. 이 글이 어떤 비난을 받지는 않을지 걱정하기보다는 이 글이 너무 전형적이거나 관습적인 끈에 얽매여있지 않는지를 염려하고 싶다. 검열 없이 무언가를 표현할 수 있는 용기를 갖기를.
의식의 표면에 떠 있는 것들이 아니라 그 아래의 것들로 쓰는 것, 이것이 어린이의 창작방식이다. 어떤 그림의 예술성을 평가할 때 그것이 일정한 공식에 들어맞는가는 기준이 될 수 없다. 기존의 표현방식을 답습하지 않고 얼마나 자신만의 자유로운 방식으로 그린 것인가가 기준이 될 것이다. 영혼의 세계, 태초의 세계가 엿보이는 작품. 어떤 눈치도 보지 않고, 이성과 논리의 세계 너머에서 만들어진 작품은 어린이 같은 순수한 에너지를 품고 있다.
나는 누군가를 울리고 싶다. 이게 내가 글을 쓰려는 이유다. 아이처럼 쓴다면 그런 짠한 글을 쓸 수 있을까.
- 손화신 작가의 에세이 <아이라는 근사한 태도로>에 담긴 글입니다.

_2016년 8월부터 길스토리 크리에이터 멤버로 활동 중이다. 6년째 문화예술 전문 기자로 일하고 있으며, <나를 지키는 말 88>의 저자이기도 하다. 2019년 9월 1일, ‘제6회 카카오 브런치북’ 대상에 빛나는 두 번째 책 <아이라는 근사한 태도로>(웨일북)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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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 14 Nov 2019 17:2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