鄉間巴士]]> <![CDATA[Gilstory - Challenge for the Unlimited Possibilities! > 鄉間巴士]]> 鄉間巴士]]> 鄉間巴士 https://gil-story.com 제공, All rights reserved.]]> Sat, 9 Nov 2024 06:14:58 Sat, 9 Nov 2024 06:14:58 <![CDATA[길을 읽어주는 남자, 시골버스_삼척]]>
  • 시골버스, 삼척
  • -prologue-


    최근 2000년대 초 한국 영화에 흠뻑 빠져있었다.
    진하지 않은 향기를 머금은 그 필름 영화가 좋았다.
    나는 최신의 카메라로 영상을 찍지만,
    마음의 여유가 없을 때 옛날 필름 영화를 찾게 되는 건
    ‘시나브로’
    그 은근한 멋을 맛보고 싶은 까닭이다.

    결국,
    기술의 발전은 마음의 노선과 길이 달랐다.

    영화 ‘꽃 피는 봄이 오면’의 촬영지. 서울살이에 지친 현우가
    강원도 ‘도계중학교’ 관악부 선생님을 하면서 그려지는
    탄광촌 마을의 드라마.
    영화 제목처럼 꽃 피는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었을까?
    출발 전, 세 번째 ‘꽃 피는 봄이 오면’을 보고 기차에 올라탔다.
  • #도계역으로 가는 무궁화호

  • 도계는 서울에서 버스와 기차로 가는 방법이 있다. 버스는 삼척에 들렀다가 다른 버스로 돌아가는 노선이고, 기차는 도계역에 바로 정차한다. 비록 1시간 가까이 더 걸리지만, 갈아 타지 않는 무궁화호 기차에 올라탔다.

    #도계역으로 가는 무궁화호

  • 내 좌석의 번호를 확인하고 자리에 앉았다. 뒤에 온 할머니가 자신의 자리에 다른 이가 앉아있어 표를 비교해보다가 본인의 표가 내일 기차임을 알았다.
    “야야! 이거 표가 내일 표다”
    놀란 할머니는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서 다시 물어보고는 기차에서 내리려고 하셨다. 그때 오늘 그 자리의 주인이 내리지 말고 우선 타라고 했다. 주변에 다른 아저씨도 내리지 말고 있으면 승무원이 올 거고 그때 이야기해보라고 할머니를 부추겼다. 그렇게 내일의 할머니와 오늘의 아저씨, 장난치는 꼬마들, 혼내는 엄마, 그리고 이 광경을 흥미롭게 지켜보는 나까지, 기차문이 닫히고 오늘의 무궁화가 출발했다.

  • #무궁화호 승무원

  • 기차와 삶을 비교해본 적이 있었다. 한 번 달리면 되돌릴 수 없는 열차와 한 번 태어나면 되돌릴 수 없는 우리 삶의 비가역적인 부분이 닮았다고 생각하면서부터였다. 기차를 타기 위해 달려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마치 난자를 향해 달려가는 정자의 움직임으로 보였다. 기차에 올라타자마자 문이 닫히고 하나의 정자가 난자에 수정되는 순간 문이 닫혔다. 기차는 출발했고 생명이 탄생했다. 나에게 기차표와 출생신고서는 이렇게 닮아 보였다.
    내 나이 서른둘. 지금 나는 32번 좌석에 앉아되돌릴 수 없는 기찻길 위에 있다. 당신은 지금 몇 번 좌석에서 어떤 풍경을 바라보고 있을까? 같은 칸에 탄 사람들은 또 어떤 모습일까? 기차가 인생이라면 기왕이면 고속 열차보다는 천천히 달리는 이 무궁화호에 올라타고 싶다.

  • #거대한 브로콜리가 창밖에 서있다

    #보낸 걸까 놓친 걸까

  • 해 질 녘에야 도계역에 도착했다. 늦기 전에 숙소를 구해야 했지만, 그것보다 오래된 나무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곳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는 도계의 집들이 세트장처럼 펼쳐져 있다. 세로로 높은 서울의 아파트가 아닌 가로로 길게 늘어진 도계의 아파트. 땅부자가 아닌 하늘 부자. 이것이 도계의 첫인사였다.

  • 불과 도계에 도착한지 삼십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마음이 편안해진다. 내가 ‘잘 왔다’라는 생각이 들게 되는 건, 멈춰버린 동네가 나를 같이 멈추게 한 까닭이다. 서울에서 쌓아올린 나뭇조각들이 아슬아슬하게 휘청거리다가 여기 도계에서 무너져내린다. 생각을 멈추고 마을을 바라본다.

  • #도계읍의 주택가

  • #도계로 이끈 영화 간판

  • #연탄

  • #도계읍 풍경

  • #도계읍 풍경

  • #천연기념물 95호 <긴잎느티나무>

  • #태백장 여관

  • ‘시골버스’를 하면서 어디에서 묵을지 걱정하지 않았다. 걷다 보면 오늘은 여기라고 말해주는 곳이 늘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렇게 ‘태백장 여관’이 나타났다. 시설이 좋은 곳은 근처에 있지만, 그곳에는 사람도 없고 이야기도 없을게 분명하여 이곳으로 들어갔다. 한여름에 가장 걱정되는 건 에어컨이었다. 들어가자마자 서울깍쟁이 티 내듯 “에어컨 있어요?” 라고 여쭤보았다. 할머니는 대답 대신 문을 열고 보여주셨다. “요즘 에어컨 없는 곳이 어딨대요?” 하신다. 눈으로 한 번, 말로 한 번 혼이 났다. “도배도 엊그제 해서 이렇게 깨끗하대요” 할머니는 자려면 자고 말려면 말라는 식으로 한마디를 던지고 뒤도 돌아보지 않는다. “할머니 카드 되나요?” “카드? 그거 긁으면 되지” 첫날, 묘하게 쿨한 할머니가 계시는 ‘태백장 여관’에서 묵게 되었다.

  • #오른쪽 1번 방

    #에어컨도 있고 선풍기도 있다

  • #태백장 여관

  • 다행히 서울의 열대야는 아직 도계까지 쫓아오지 못했나 보다. 선선한 날씨에 숨이 트이는 저녁을 맞이했다. 슬 잠을 자려고 문을 잠그려는데 문이 잠기지 않았다. 안에 하나 더 있는 미닫이문에 의지해서 잠을 청했다. 결국, 선잠으로 아침을 맞았다. 일어나자마자 할머니에게 문이 안 잠긴다고 하니 “밖에서 잠그면 잠긴대요” 하신다... ‘그럼 내가 나갈 수도 없지 않은가.’ 그 말이 더 무서워서 이곳의 정체를 잠깐 의심했지만, “나도 한여름에 창문 다 열고 대문 다 열고 자도 아무 일 없대요” 라고 하신다. “할머니 하루 더 묵을게요. 또 카드예요” 긴 세월 아무 일 없다는 할머니의 말씀에 또 바로 마음이 넘어갔다. 배낭에 노트와 물 한 병을 넣었다. 여분의 필름도 챙기고 카메라를 집어 들어 반셔터를 눌러보았다.

  • #밖에서 잠그면 되지...

    이런, 배터리가 다 됐는지,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옛날 필름 카메라에 들어가는 구하기 힘든 배터리여서 난감해지기 시작했다. 이제 겨우 둘째 날인데 카메라가 작동되지 않으면 심봉사가 된 채로 도계를 정처 없이 떠돌 운명이었다. 나는 심청이 대신 문구점을 찾아야 했다.

  • 우선 ‘태백장 여관’ 바로 앞 문구점에 들렀다. 찾던 배터리는 없었다. 사장님은 ‘만물사’라는 곳을 알려주셨다. 거기는 이름처럼 없는 게 없을 거라고 하시면서 미로 같은 길을 설명해 주신다. 중간쯤 오다가 길이 헷갈려 다른 문구점에 들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배터리도 보여드렸지만, 여기도 그 배터리는 없었다. 다시 ‘만물사’로 향했다.

    #중간 문구점

    드디어 보이는 간판. 반가운 마음에 여기에 오게 된 여정부터 늘어놓았다. 주인아주머니는 땀에 젖은 나에게 선풍기부터 돌려주신다. 한쪽 구석, 먼지 쌓인 박스에서 배터리를 찾으셨다. 다시 카메라에 빨간 불이 들어온다. 심봉사, 다시 눈을 떴다! “어머니 여기 탄광촌 가보려고 하는데요?” 탄광촌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보았다. “아 저 위에 탄광촌? 까막 동네라고 저 위에 있어요. 까마귀처럼 검다 그래서 까막 동네!” ‘까막 동네라..’ 이름만 들어도 어떤 동네일지가 그려진다.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 전 그냥 ‘탄광촌’이라는 명사는 마을 사람들의 숨을 통해서 형용사가 되어버린다.
    까마귀처럼 검다 그래서 지어진 이름
    ‘까막 동네’

  • 방전된 배터리로 시작해 만물사에 도착하기 전까지 사뭇 이 사람들의 마음이 고마워진다. 핸드폰으로 길을 찾거나 물어보았다면, 이런 이야기는 듣지 못했을 것이다. 핸드폰엔 방대한 정보가 있지만, 사람에게는 깊은 마음이 있음을 또 한 번 느꼈다.

    #만물사

    이렇게 ‘시골버스’의 규칙이 하나 더 만들었다.

    핸드폰으로 길을 찾지 말 것.

    사람들에게 물어 물어갈 것.

    ‘만물사’에서 나와 ‘까막 동네’까지 십여 분을 걸었다. 한낮의 온도는 39도를 넘어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도계를 가로지르는 철길은 뜨겁게 달궈졌다.

    #까막동네 초입

  • #까막동네

  • 마을은 단층집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모양이다. 벽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탄가루들이 셋집살이를 하고 있다. 곧게 뻗은 골목이 아닌 굽이 도는 골목길. 그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어떤 풍경이 나올지 기대하게 된다. 조심히 조용히 마을을 바라보았다.
    나이 드신 분들이 마을 정자에 하나둘씩 모인다. 여기 계신 분들은 예전 탄광이 한창일 때 이곳에서 평생을 바친 노동자들이라고 한다. 어른들의 연세만큼이나 마을도 나이가 들어 보였다. ‘막장인생’ 요즘 말로는 험한 의미가 담겨버렸지만, ‘막장’은 갱도의 막다른 길을 일컫는다. 볕이라고는 한 줌도 들어오지 않는 이 막장에서 갱도를 뚫고 탄을 실어 나르는 삶을 감히 내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 치열한 삶의 현장과는 반대로 너무나 조용한 마을이 마치 9라운드를 모두 마친 복서의 숨소리처럼 들렸다. 마을 어르신에게 탄광 가는 길을 물어보고 탄광으로 향했다. 마음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까막동네

  • #탄광 입구

  • 삶의 현장에 함부로 들어가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입구 앞에서만 사진을 찍었다. 아직 운영이 되고 있는 듯 일하시는 분들도 보이고, 거대한 기계는 굉음을 내며 검은 탄을 실어 날랐다. 햇빛 사이로 검은 탄가루들이 반짝였다. 입구에 꽃이 피어 있었는데 그 위로도 탄가루들이 내려앉았다. 이곳 사람들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탄광 입구

  • 너무나 아쉬웠지만 더 들어가기에는 용기가 나질 않아서 다시 동네로 발을 돌렸다. 한 열 발자국 정도 걸었을까? 이대로 가면 후회할 것 같아 다시 발걸음을 돌려 그 안으로 들어갔다. 밝게 인사하고 당차게 소개해도 나가라고 하면 그때 나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생각보다 나에게 관심이 없었다. 카메라를 꺼내고 담기 시작했다.

    #탄광 풍경

  • #탄광 풍경

  • 탄광의 내부를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는데 저 멀리서 어느 아저씨가 나에게 손짓을 했다. 무단 침입한 나는 체념하고 아저씨에게 다가갔다. “사진작가시오?” 예상치 못한 질문에 얼굴을 쳐다보는데 아저씨의 얼굴이 너무 평온한 얼굴이었다. “아니요 그냥 취미로..” “그래? 나는 사진협회에 등록되어있는데, 내가 도계에서 사진관을 하나 하거든” 아저씨는 낮은 간이의자를 내어주면서 앉으라고 손짓하셨다. 한낮의 더위가 처마 그늘에 가리어져 덕분에 나도 조금 쉴 수 있게 되었다. 아저씨는 낮에는 광부 일을 하시고, 낮에 사진관은 사모님이 봐주신다고 하신다. 나도 도계에 온 까닭과 이곳으로 걸음 하게 된 이유를 소상히 고백했다. 여기 시골의 사람들이 녹음한 안내방송이 나오는 ‘시골버스’에 대해 말씀드렸다.

  • “허 그래그래. 좋은 생각이다” 내가 혼자 시골을 돌아다니면서 ‘시골버스’에 대해 이야기를 드리면 모두들 자신들의 사투리로 나지막이 멘트를 해보신다. 모두가 평소에 쓰던 말투와 익숙한 정류장 이름이지만 내가 대놓고 물어보면 부끄러운 듯 잘 모르겠다고 하신다. “허. 그거 뭐라고 해야 하나” 아저씨도 내심 부끄러우신 듯 웃어넘기신다. 순간 아저씨의 표정이 너무 아름다워 보였다.
    “선생님 저 사진 한 장만 찍어도 될까요?”
    “뭐 볼 게 있다고” “그래”
    카메라를 들고 전문 사진작가님 앞에서 셔터를 눌렀다. “선생님 아무것도 하지 마시고, 지금처럼 그냥 저랑 대화한다고 생각해 주세요”
    탄가루들이 쏟아지는 햇빛에 반짝이는 금가루처럼 보였다.

  • #사진작가 광부 아저씨

  • #사진작가 광부 아저씨

  • 아저씨는 광산으로 나는 또 다른 곳으로 향했다. 좀 전에 발걸음을 돌린 용기가 스스로 대견했다. 올라올 때 뵙던 어르신들이 아직도 정자에 앉아 아무 말씀도 없이 더위를 곁에 두셨다. 나는 내리쬐는 해를 피해 도계역 앞에 있는 카페를 갈 생각이었다. 이렇게 무더위가 심할 때에는 현장에서 일하시는 아버지 생각이 문득 든다. 조금 전 광부 아저씨의 삶과 다르지 않은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면 이 무더위가 덜컥 무서워진다. 아버지에게 전화를 드렸다.
    “여보세요 아버지 일하세요?” “일하지” “날이 너무 더워요 좀 쉬면서 일하세요” “그래 언제 오냐” “저 한 이틀 뒤에요” “그래”
    부자 지간의 통화는 웬만해선 1분을 넘기기 어렵다. 식사는 하셨는지 집에 도착하셨는지 그 두 가지만 여쭤보고는 말이 쏙 들어가 버린다. 아버지는 건축 현장에서 일을 하신다. 예전에 현장 일을 도와드린 적이 있는데, 8층부터 1층까지 각층에 스무 포대씩 시멘트를 나르는 일을 했다. 한 포대만 올려도 다리가 후들거리고 숨이 턱 막혔다. 몸이 성한 나도 이렇게 힘이 드는데 현장의 아버지들은 묵묵히 포대를 실어 나르고 또 실어 날랐다. 결국 나는 하루 일하고 몸살이 나버렸고, 다음 날 그 다음날도 아버지들은 새벽에 현장으로 출근하셨다.

    ‘인이 박힌다’라는 말이 참을 인자인지 사람 인자인지 모르겠지만, 몇십 킬로의 포대를 어깨에 짊어지는 까닭은 그것보다 더 무거운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추측만 해볼 뿐이다. 내가 현장에서 본 아버지들은
    언제나 아버지였고, 나는 가끔 아들이었다.

  • #아버지

  • #대도 사진관

  • 카페에서 시원한 아메리카노를 마시니 해가 중천을 지났다. 약국에 들러 박카스 한 박스를 사고 좀 전에 광부 아저씨가 운영한다는 사진관에 들렀다. 영문을 모르는 사모님이 나오신다. “어쩐 일이세요?” “사진관에 사진 찍으러 왔죠 사장님 계세요?” “아직 안 오셨는데” 능청맞게 농담을 하고 박카스를 드렸다. “아 사실 아까 탄광에 갔다가 아버지 만나 뵙고 이야기를 나눴어요. 오는 길에 인사차 들렀습니다” “아이고. 뭐 이런 걸 사 오고 그래요” 안에서는 따님분이 시원한 보리 차를 내어주신다. 앉아서 사진관과 도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태백장 여관’으로 귀가했다. 해는 저만치 멀어졌고 그 공간을 시원한 공기가 메웠다. 오늘은 도계에 계신 아버지에게 말하지 못한 감사의 마음을 박카스로 대신했다.

  • 문이 잠기지 않는 ‘태백장 여관’ 1번 방도 이젠 그러려니 하며 편하게 잘 수 있게 되었다. 내일은 도계를 떠날 참이었다. 다른 곳으로 옮겨서 ‘시골 버스’의 또 다른 후보지를 찾고 싶었다. 여행지로는 쉽게 가지 않을 이 ‘도계’를 나는 꽤 오랫동안 기억할 것 같다.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하고 살아가는 관광지보다 내 식대로 살아남은 동네가 ‘시골버스’와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과하게 포장할 필요도 없고, 구태여 설명을 붙일 일도 없다. 보여줄 건 사람밖에 남지 않은 곳. 2000년대 초반, 필름 영화에서 내가 느낀 진하지 않은 향기를 머금은 그런 곳들. 다시 떠날 생각을 하니 이틀의 여독이 올라온다. 만난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르고 말들이 스민다. 내일은 할머니와 인사를 나눠야겠다.

  • #태백장 여관 할머니

  • 아침에 일어나 방 정리를 하고 마당에서 할머니를 기다렸다. 묘하게 쿨하셨던 할머니의 자부심은 30년 넘는 시간이 겹겹이 쌓인 이곳에서 만들어진듯하다. 경상도에서 올라오셔서 아직까지 이 여관을 하고 계신 이유와 팔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서 들었다. 할머니의 모습에서 첫날 보았던 천 년 넘은 나무가 있었다. 할머니의 뿌리 깊은 마음 덕분에 오늘의 나까지 편히 쉬고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는 도계의 맛 집에 대해, 그 맛을 만드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까지 한 시간가량을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채웠다. “할머니 가기 전에 사진 한 번만 찍어도 될까요?” “이쁘게 하고 찍어야 하는데” 이미 예쁜 할머니는 예쁜 소녀의 모습으로 당신의 여관 마당에 앉으셨다. 할머니는 교회로 가신다 하시고 나는 터미널로 간다고 했다.

  • #태백장 여관 할머니

    도계 터미널에 도착해서 삼척으로 가는 버스 표를 끊었다. 정류장 반대편에는 탄광촌의 구조물들이 우뚝 솟아 있었다. 오늘도 찌는듯한 폭염. 그새 옷의 경계선을 따라서 피부색이 검게 그을렸고 샌들의 모양은 나의 발등에도 같은 자국을 남겼다. 인적 드문 터미널에서 내 발 등을 보고는 혼자 픽 웃어버렸다.

  • 삼척에 내려 카페의 아주머니에게 덕산이라는 곳을 추천받았다. 남해와는 다르게 덕산으로 가는 시내버스에서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잠시 딴 생각을 하다가 한 정류장을 지나쳤다. 다시 돌아가다는 길에 히치하이킹을 하려 했지만, 부끄러워 눈빛만 쏘고 한참을 걸어서 덕산에 도착했다.

    #한 정거장을 지나치다

    #거대한 마시멜로

    #길 꽃

  • #덕산 입구

    마을부터 둘러보니 아쉽게도 이 마을은 내가 찾는 곳과는 거리가 멀었다. 사람의 첫인상처럼 마을도 첫인상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다시 다른 곳을 찾기에는 시간도 늦고 고단하여 여기서 하루를 묵기로 했다. ‘태백장 여관’의 할머니와 밀당 같은 것 없이 깔끔한 숙소를 골라서 들어갔다. 곳곳에 펜션, 민박집이 성수기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고, 마을 안에는 편의점도 있었다. ‘시골버스’는 이곳처럼 편리하고 쉽고 붐비는 곳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늦은 밤늦은 끼니에 소주 한 잔을 걸쳤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시골버스’가 가야 할 곳과 가지 말아야 할 곳을 더 명확하게 해준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럼 시골버스는 어디로 가야 할까? 아름다운 곳. 그냥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치열하고 고된 삶을 살아서 결국엔 아름다움만 남은 곳이어야만 한다. 사람으로 치자면 삶의 언덕바지를 넘은 사람 중 아이의 순수함이 묻어나는 사람. 무지에서 나오는 아이의 순수함이 아니라, 인생 고락 다 넘고 넘어 결국에는 순수만을 외치는 사람들. 그런 표정이 있는 사람과 그런 사람들이 사는 동네.

  •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내가 아는 곳으로 걸었다. ‘덕산’에서 거리로 6킬로 남짓 되는 ‘맹방’ 예전에 차로 여행 중에 아무도 모를 법한 해수욕장을 발견했고, 바다가 보이는 해수욕장에 차를 대고 이박 삼일을 멈춰있던 적이 있다. 아껴두고 싶은 마음에 알면서 가지 않았지만, 위로받고 싶은 마음에 다시 그곳으로 향했다. 40도에 육박하는 한낮. 그늘도 없는 길에서 쉼과 걸음을 반복하니 어느덧 아는 길이 나왔다.

    #맹방

    “할머니 안녕하세요” 너스레를 떨며 감자를 정리하고 있는 할머니에게 향했다. 작년에 이 앞바다에서 무단 취식했던 사람이라고 고백하고, ‘덕산’에서 여기까지 걸었다고 하니 놀라시며 이 더위에 큰일 난다고 걱정하신다. 마치 친할머니에게 이야기하듯 어리광을 피워본다. “감자 이거 주면 묵을래?” “이런 거 안 묵지?” 감자를 고르시는 할머니는 내 뱃속 사정을 걱정해주셨다. “할머니 안 그래도 밥 먹으러 갈 건데 할머니 자동차 좀 빌려주세요” “그려 타고 가” 할머니의 로시난테, 사륜바이크를 타고 식당으로 향했다. 감자랑 파가 있는 장바구니에 카메라와 지갑을 같이 실었다.

  • #맹방 할머니 자동차

    밥을 먹고 해변가에 앉아서 장비를 수리하시는 할아버지에게 다가갔다. 이 맹방 바다와 함께 평생을 사신 할아버지. 일 년 전 이곳에서 할아버지는 족히 수십 년 이 돼 보이는 나무 뗏목을 끌고 바다로 향하셨다. 너 다섯의 통나무를 붙인 뗏목을 긴 나무로만 휘휘 저어서 바다가 파도치는 반대로 조금씩. 어느새 할아버지는 수평선에 서 있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그림 같던지 할아버지와 뗏목이 아주 작아 보일 때까지 멍하니 쳐다만 봤던 기억이 있었다. 저 뗏목을 다시 보는데 내 오래된 필름 카메라와 닮아 보였다. 할아버지가 묵묵히 노를 저어서 파도를 탔던 것처럼 나도 이 카메라를 들고 혼자서 전국 팔도 두메산골을 휘휘 돌아다니는 생각을 했다. 언젠간 도계 광부 아저씨, 태백장 여관 할머니가 녹음한 안내방송이 흘러나오지 않을까? 자신들만의 이야기와 자신들만의 목소리.
    남해에서 삼척까지 다음엔 또 어디로 향하게 될까? 장비를 수리하는 할아버지를 조용히 지켜보았다.

    함께 길을 걷다 만난 사람들의
    세상 사는 이야기

  • #맹방 바다

  • #할아버지 뗏목

  • -Epilogue-


    시골버스의 글을 쓰는 9월에도 내 발등엔
    삼척에서 탄 자국이 없어지지 않았다.
  • ]]> Mon, 1 Apr 2019 11:49:51 <![CDATA[Ep.01 길을 읽어주는 남자, 시골버스 그리고 남해]]>
  • 시골버스, 남해
  • -prologue-


    몇 해 전 꽤나 오래된 이야기이다.
    남해에 여행을 떠나 목적지 없이 버스로 이동 중 이였다.
    남해는 어느 도시보다 아름다웠고,
    사람들은 남해를 지키는 파수꾼 같았다.
    왼편엔 파수꾼들이 지키는 마을이, 오른 편엔 바다가 펼쳐졌다.
    당신은 살면서 자연에 몰입된 경험이 있는가?
    나에겐 그때 그 곳이 그랬다.
    잠시 후 버스 안에서 안내방송이 흘러 나왔고,
    뭔가 이질감을 느꼈다.
    모든게 완벽해 보이는 풍경에
    2% 부족한 안내방송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감정을 곱씹어 보다가 이런 생각에 도달했다.

    ‘버스 방송을 이 지역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하시면 어떨까?’

    생각만 해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다시 한 번 남해에 가기로 했다.
    ]]>
    Tue, 24 Jul 2018 18:39:08
    <![CDATA[Ep.02 목적지 없이 오른 남해 시골버스]]>
  • #남해 공용터미널 버스 정류장

  • #농어촌 버스 할머니들

    서울에서 4시간 반,
    남해에 도착했다.

  • 이번 여행은 ‘시골버스’를 위한 답사여서 모든 교통수단을 버스로 한정 지었다. (남해는 자가 용이 없으면 돌아다니기 꽤 힘든 지역이다.)

    모든 가능성을 열고 출발했다. 목적지는 없었다. 정해놓고 이동하면 숙제가 되어 버릴 것이 분명하여 조금씩 마음을 열고 그때 그 마음이 올라오길 기다렸다.
    몰입의 기본은 비움이라 생각했다.

  • 그때 내가 탄 버스는 바닷가를 끼고 달렸었다.

    ’한려해상국립공원’ 방면으로 가는 버스 티켓을 끊고 30분 정도를 기다려 버스에 올라탔다. 번호도 없는 버스를 타는 것에 핸드폰의 정보는 무용지물이었다. 안내하시는 할머니의 말씀에 따라 무작정 올라탈 수 밖에 없었다.

  • #농어촌 버스 풍경

  • 버스에 올라타니 나를 제외하고 모두 할머니 할아버지였다. 이분들이 안내방송을 한다고 생각하니 한 분 한 분이 궁금해졌다. 그 목소리엔 분명 남해의 역사와 당신의 역사가 들어 있을 것이다.

  • 눈이라도 마주치면 어디에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여쭤보신다. 서울에서는 부담이 여기 에선 관심이다. 혼자 왔지만 혼자가 아니게 하는 마음들

  • 예상한 목적지와는 달리 바깥이 좋아 무작정 내렸다. 같이 내린 할아버지에게 잘만 한 곳이 있느냐 물어보니 한쪽을 가리키신다. 서울에서 숙소를 검색해보곤 잘 곳이 마땅치 않아서 걱정을 좀 했는데, 막상 도착하니 마을 사람들이 진짜 정보를 알려주었다.

  • 아직 손안의 세상보다는 발품이 먹히는 시대라고 생각했다. 바로 짐을 풀고 자전거를 타고 밖으로 향했다.

  • #이동면 원천리 풍경

  • 해 질. 녘 부부가 배의 뒷일을 마무리한다. 한참을 아무 말도 없이 그물 손질을 한다. 잔잔한 파도소리 위에 갈매기 울음소리만 포개진다. 한참을 앉아서 어부의 시간에 나를 맞췄다. 서울에 두고 온 사람들이 생각났다.

  • #이동면 원천리 풍경

  • #남해 바래길 노을

  • “카톡”
    서울에 있는 이들에게 연락이 온다. 그들은 아직 회사에 있고, 그래서 남해에 있는 내가 부럽다는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나 역시 불안한 마음이 가득했다. ‘시골버스’는 무얼 말해야 할지, 어떻게 말해야 할지 막막했다.

    ‘몰입의 기본은 비움이니라’ 천천히 고민을 흘려보냈다. 노을이 나를 안아주는 기분이었다.
    별 수 없었다. 안길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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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ue, 24 Jul 2018 18:38:43
    <![CDATA[Ep.03 남해 시골버스가 데려다준 세상]]>
  • #이동면 원천 활어위판장

  • 다음날,
    마을 사람들이 모두 부둣가로 출근을 했다.
    서울이나 여기나 업무가 바쁜 건 매한가지다.
    우리는 컴퓨터로, 이들은 몸으로 일을 한다. 우리가 일을 따내는 것처럼, 이들도 아침 경매에서 매일 신선한 활어를 갖기 위해 그들의 수화로 눈치게임을 시작한다. 족히 몇십 년을 했던 업이지만, 으스대거나 거들먹거리는 모습을 당최 볼 수 없다. 이들이 상대하는 것은 대부분이 자연에서 온 것이기 때문이다.

  • #두모마을

  • 족히 5킬로미터를 걸어 두모마을에 도착했다.
    조금만 더 있으면 유채꽃이 마을 입구를 노랗게 물들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 #두모마을의 할머니와 텃밭

  • #두모마을 사무장님

  • 마을 사무장님을 만나 이곳에 잘 곳을 여쭤보았다. 이곳은 밥 먹을 곳도 하나 없다며, 상주면을 권하셨지만, 이곳에서 자겠다고 떼를 썼다.
    이장님이 오셨고, 우선 밥을 먹으러 가자고 하셔서 사무장님, 이장님과 밥을 먹으러 갔다. 차 안에서 대화를 들어보니 두 분은 부부였다.

  • #두모마을 이장님

  • 혼자 여행을 왔다면 들어가 보지 않았을 식당에 들어갔다. 익숙한 듯 식당 이모와 인사를 하셨다. 호기롭게 잔다고 했지만 막상 환대를 해주시니 머쓱해져 버렸다.

  • #상주면 화니식당

  • #상주면 화니식당

  • 메뉴판에 없는 음식이 나오길래 이 음식들은 어떻게 주문하냐고 여쭤봤다. 그냥 “밥 주세요” 라고 하면 된다 하신다. 정말 밥이 나왔다. 새로운 찬이 중간중간 나오고 식당 이모님이 자연스럽게 자리에 앉는다. 밥상 위에 진지한 토론이 시작됐다.

    내가 듣고 먹은 것은 분명 ‘잘 먹고 잘 사는 법’ 이었다.

  • 마을에 돌아와 사무장님께 ‘시골버스’에 대해 말씀드렸다. “삼촌~ 그것참 좋은 생각이다!” 벌써 어떤 멘트를 할지 고민하신다. “이번 정류장은 두모입니다. 두모는 유채꽃과...”

    ‘좋은 자연은 사람을 만들고 그게 모여 남해가 되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조금씩 마을 사람들의 삶이 보였다. 이번 프로젝트도 ‘사람’의 이야기가 될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틀 동안 버스에서 안내 방송이 안 나왔다. 사무장님께 까닭을 여쭤보니 남해 버스는 안내방송을 안 한다고 하셨다. 허탈해졌다. ‘시골버스’의 핵심 콘텐츠가 사라져버릴 위기에 처해졌다. 다시 고민에 빠졌다. 밤이 찾아왔고, 마을 부둣가에 나가 홀로 소주를 마셨다.

  • #두모마을 부둣가

  • #두모마을 부둣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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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ue, 24 Jul 2018 18:38:15
    <![CDATA[Ep.04 어디이든 누구이든 무엇이든 어떠랴]]>
  • 그래도 아침은 온다. 이곳에 시간에 익숙해져서 서울살이 보다 두어 시간 일찍 일어난다. 익숙해진 마을을 한 바퀴 돌며 산책을 했다. 큰 문제가 생겼지만, 걱정은 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아직 시간이 있고, 나는 여기 있으니까

    #두모마을 길냥이

    #두모마을 할아버지

    마을 분들은 조만간 있을 체육대회를 준비하고 계셨다. 마을대항전이니 준비하는 모습이 사뭇 진지하셨다. 두모 마을은 마을 인원이 적어 ‘입장상’에 주력하고 있었다. ‘입장상'은 말 그대로 입장을 얼마나 잘하느냐에 따라서 주는 상이다.

    마을을 한 바퀴 돌며 연습하는 행렬에 나도 참석했다.

  • #두모마을 체육대회 연습

    #두모마을 체육대회 연습

    #두모마을 체육대회 연습

  • 체육대회를 준비하시는 모습을 끝으로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기약 없는 버스의 시간에 맞추기보다는 걷는 것으로 마음을 먹었다. 서울에서는 몇 분에 버스가 오는지 어디서 환승을 하는지 모든 정보를 쉽게 얻는데, 이곳은 모든 게 미스터리다. 흔한 카페 하나 수소문해서 찾아 가도 문이 닫히기 일쑤다.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간절해지는 순간. 어제 실패한 카페에 다시 도전했다. 한참을 걸어 카페에 도착했는데 은행에 다녀온다는 메시지와 함께 문이 잠겨있었다. 다행히 기다리면 온다는 희망으로 책을 펼쳐 들었다.

  • 기다리면서 몇몇 사람들이 차에서 내려 카페로 왔다. 문이 잠겨있는 걸 보고는 몇 분 기다리다가 모두 떠났다. 차가 있는 사람은 더 빨리 떠나고 두 다리로 온 나는 하염없이 기다린다. 덕분에 마을을 좀 더 구경하고 책을 좀 더 읽었다.

    #남해 카페옆 강아지

  • #남해 카페

  • #남해 카페앞 마을

    편해진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본다. 속도에 대해 생각해본다. 나도 차를 가지고 이곳에 왔다면 바로 다른 카페를 검색해서 미션엔 성공했을 것 같다. 그런데, 지금 여기 앉아서 멍하니 주인을 기다리는 내가 떠나버린 나를 보면 어떤 기분이 들까? 무언가를 놓고 갔다고 말해줄 것 같다.

  • 누구보다 보고 싶었던 카페 사장님께 보리암에 숙소가 있는지 여쭤봤다. 보리암 근처에 밥도 주고 재워도 주는 곳이 있다고 하셔서 오늘은 여기서 묵기로 결정했다. 의식주에서 식과 주가 동시에 해결이 된다면 고민할 필요가 없다.

    한 시간 정도 버스를 기다리고 10분 정도 타니 기사님과 할머니들이 내리라고 손짓한다. 여기서부터는 걸어가야 한다고 하신다.

    금산 700m 위에 있는 숙소까지 몇 시간을 걸어야 했다. 한 시간 넘짓 걷고는 수줍게 히치하이킹을 해봤지만, 간절하지 않아서 모두 거절당했다. 두 시간 넘게 걷다가 남은 거리를 보니 오늘 안에 가긴 글러 보였다. 마주 오는 택시를 부랴부랴 잡아서 보리암으로 올라갔다.

  • 보리암은 태조 이성계가 이곳에서 100일 기도를 하고 조선을 건국했다고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숙소 가는 길에 잠깐 들렀다.

    해 질 녘이 될 때쯤 숙소에 도착했다. ‘금산산장’

  • #보리암

  • #금산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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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ue, 24 Jul 2018 18:37:51
    <![CDATA[Ep.05 진짜 남해 모습, 진짜 남해 사람들]]>
  • “누고~?” 할머니 목소리가 먼저 반긴다.
    인사와 함께 활짝 웃었다.
    여기에선 누굴 만나던지 활짝 웃게 된다.

    자고 갈 거라고 말씀드리니 “밥 묵읐나?” 하시면서 뭔가를 차려주신다. 예전에는 밥을 직접 했지만, 벌금이 생겼다며 조리된 음식을 내주셨다. 할머니 옆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금세 밥을 먹었다. 나도 모르게 오는 손님들의 돈 계산과 음식을 내어주고 있었다.

    #금산산장 할머니

  • #금산산장

    #금산산장

  • 본인은 주인이 아니고 알바라고 소개하셨다. 격주로 올라와 관리도 하시고, 음식도 차려주 신다고 하신다. 내가 마음에 드셨는지 아들처럼 살갑게 대해 주신다. 조용히 생각하려고 했지만, 나도 할머니가 좋아서 티비 보자는 말씀에 같이 할머니와 티비를 봤다. 계속 수염을 깎고 다니라고 하신다.

  • #금산산장 자는 방

    “아가~” 밤 9시에 할머니가 부르셨다. 윗방으로 넘어가니 컵라면에 공깃밥이 있었다. “이거 묵고 자라” 배가 불렀지만, 이미 컵라면에는 김이 올라오고 있어서 할머니와 같이 먹었다. “할머니 저 콜라 하나 먹을게요” 남해 와서 가장 배부른 밤이었다.

  • #금산산장 조식

  • 총 이틀을 묵고 떠나는 날이 됐다. 할머니를 안아 드리고 싶었지만, 부끄러워 그만두었다. 시내에 다녀오면서 포장해온 만두로 내 마음을 전했다.

    오늘은 서울로 돌아가는 날이다. 늦기 전에 다랭이 마을을 둘러보았다. 멋지고 좋았지만, 유명한 관광지가 되어버려서 그다지 내 몸엔 맞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내가 진짜 남해의 모습과 사람들을 만나고 와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버스 안내 방송이 사라진 지금, 나는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마지막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 표를 파시는 아저씨와 대화를 나눴다. 이야기 중에 5월에 농어촌 버스로 15대가 운행이 되는데 그곳에는 방송을 할 거라는 소식을 들었다.

  • 마지막 날 마지막 버스에서 희망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빙긋이 웃었다.

    서울에 와서 필름을 맡겼다. 필름을 한 장 한 장 보는데 ’시골버스’가 이야기할 것들이 이미 사진에 찍혀있었다.




    함께 길을 걷다 만난 사람들의
    세상 사는 이야기

  • -Epilogue-

    두모마을 사무장님께 카드 리더기를 보내드리고 체육대회 입장상 1등을 했다는 소식을 받았다.

    금산산장 할머니 말씀 탓인지 모르겠지만 서울에 오자마자 수염을 밀었다.

  • [남해 두모마을]
    경남 남해군 상주면 양아로533번길 18
    [남해 바래길 탐방안내소]
    경남 남해군 이동면 성남로 99
    [이동면 원천 활어위판장]
    경남 남해군 이동면 원천 활어위판장
    [금산산장]
    경남 남해군 상주면 보리암로 691
    ]]>
    Tue, 24 Jul 2018 18:37:26
    <![CDATA[Probono]]>
    • 제작
    • 길스토리GILSTORY
      김남길KIM Nam-gil
    • 기획
    • 지은석JI Eun-seok
      금윤경KEUM Yoon-kyoung
    • 사진 / 에세이
    • 지은석JI Eun-seok
    • 웹콘텐츠 서비스
    • 오승열OH Seung-youl
      오윤경OH Yun-kyoung
    ]]>
    Tue, 24 Jul 2018 18:33: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