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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한양도성
      역사와 문화, 미래의 가치를 품고 있는 서울 한양도성에서
      우리의 가치를 경험할 수 있는 길을 찾고, 그 길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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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SAY
    Ep.03 옛 도시, 한양과의 공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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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한양도성 10人10色 Ep.03

    김남길, 옛 도시 한양과의 공존

    2016년 9월 27일

    서울의 옛 지도를 보고 있자면 이곳이 자연 생태 도시였을 것이라 생각하게 한다. 굳이 나무를 헤집고 본래 지형을 변형시키지 않고도 산맥을 따라 길을 내고, 그 땅 밑으로 흐르는 내천을 에둘러 마을이 형성됐다. 그 곁으로 난 작은 샛길들. 그때는 그런 고즈넉한 작은 길들이 당연했다.

    물론 산업화가 시작도 되기 이전과 지금을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한번 우리가 본래 가지고 있던 풍경을 돌아보자. 도성의 성문 안과 밖으로 나 있는 흙길과 성문 주위에 난 시장과 초가집들, 그 동네 길을 밟던 사람들이 다니던 길을 그림 그리듯 그려보자.

    옛 조선의 길을 생각해 보면, 당대에 모든 공간은 지금 딛고 있는 땅과 나무, 하천 그 모든 것들을 어우르는, 자연스러움을 거스르지 않고 어울리는 모습 속에 자리했다.

    옛 지도 속 생태도시, 한양

    무엇보다 그때는 한양에서 동서남북 어디를 가든 성벽과 성문이 건재했다. 수도를 지키는 내사산을 보좌하는 수호신처럼 그 듬직한 성돌 하나하나가 생생했다. 그리고 어김없이 그 곁으로 우거진 녹음들... 실제로 한양도성의 경관도 도성의 일부로 여겨졌기에 이를 보존하는 일은 도성의 무너진 돌을 보수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게 여겼다고.

    이렇게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지형을 이용해 세워진 옛 한양도성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보자. 그리고 지금 봐도 당대 한양의 모습을 선명하게 간직한 옛 지도를 살펴본다.

    옛 지도는 도성을 기준으로 이루어졌다. 당시 한성을 행정 구역상으로 한성부라고도 불렸는데, 한성 외 지역을 포괄해 부르는 말이었다. 즉 당시 도성 안과 도성 밖 ‘성저십리(城底十里)'까지가 한성부의 관할구역이었다. ‘성저(城底)'는 성 밑 또는 성 밖을 가리키는 말이고, 십리(十里)는 성문을 기준으로 약 10리(4km) 거리에 해당하는 지역을 가리킨다.

    자도성지삼강도(自都城至三江圖). 조선 후기 도성에서 삼강(三江)에 이르는 서울과 그 주변도(周邊圖). 작자 미상. 서울대학교 규장각(奎章閣) 소장.
    한양과 그 주변 지역을 그린 '자도성지삼강도(自都城至三江圖)'를 보면 당대 도성의 안과 밖의 모습이 한눈에 볼 수 있다. 하나의 지구본처럼 도성을 중심으로 원을 두른 듯 울타리 쳐진 도성과 성문 그 밖으로 그물망으로 연결된 하천과 산맥이 선명하다.

    지도에서 가장 크게 보이는 푸른 물줄기가 바로 한강이고, 여기서 지도 왼쪽으로 보이는 하천은 사천, 지금 모래내로 불리는 하천이다. 오른쪽 하천은 중랑천이다. 바로 이 서쪽의 모래내와 동쪽의 중랑천까지가 대략 도성 밖 약 10리(4km) 이내의 지역이다.

    이 구역은 다시 말하면 조선판 그린벨트. 도성 밖 성저십리 내에서는 무덤 만들기를 금하고, 벌목을 금지했는데 특히 국가 국방과 건축의 주요 목재인 소나무 베지 못하게 하는 금송(禁松) 제도가 있었다고 한다.

    한양은 그 자체가 자연이었던 성곽도시

    이렇듯 한양의 행정구획 구분법과 그 운용 기준은 항상 자연에 두었다. 그렇게 한양은 수도 그 자체가 자연이었던 성곽도시였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이 도시가 자연 생태도시이며, 성곽도시였다는 사실을 잊고 살아온 것은 아닌지.

    어쩔 수 없는 세월에 깎이고 사라져 이제는 그 본연의 흔적을 가늠하기 쉽지 않은 지금, 옛 한양도성의 모습을 지금의 끊어져 사라진 길 위에 마음의 눈으로 당시의 모습을 그려본다. 곁에는 이런 옛 도성 지도를 두고서 하나하나 지금의 풍광과 겹쳐 보면, 옛길이 도성의 성벽과 성문을 통해 현실이 될 것이다.

    그렇게 아직도 우리에겐 한양도성 곳곳에 묻혀 있는 당대의 보석 같은 이야기들이 발굴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지금은 어쩔 수 없이 여기저기 끊어진 성벽 때문에 성곽도시의 모습이 많이 사라졌지만, 아직은 그 기억들을 한양도성이 지켜내고 있다. 그러니 앞으로 한양이 성곽도시였음을, 서울 이곳은 여전히 성곽도시임을 염두에 두면서 본격적으로 도성과 그 곁 성문에 얽힌 숨은 이야기들을 캐내려 한다.

    그 기억들을 한양도성이 지켜내고 있다

    하지만 그 흔적 찾기를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조금만 더 손을 뻗으면 이 이야기는 그렇게 오래된 기억이 아니다. 도성을 기반으로 한 우리 본연의 지리적 관점은 해방 전후까지도 선명했다.

    백범 김구의 '백범일지'에서는 “늙은 몸을 자동차에 의지하고 서울에 들어오니 의구한 산천이 반갑게 나를 맞아주었다. 내 숙소는 새문 밖 최창학 씨 집이요”라고 적혀있다. 여기서 말하는 ‘새문 밖 집’이란, 당시 금광을 운영하여 거부가 된 최창학의 주택이었던 '경교장(京橋莊)'을 표현한 것이다. ‘새문’은 돈의문의 위치가 몇 번 변경되며 새로 지어짐에 따라 ‘새문’, 한자명으로 '신문'이라 불렸던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돈의문 일대 신문로란 지명도 ‘신문’, ‘새문’으로 불리던 그 특별한 명칭에서 온 것이라고 한다.

    이렇듯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에게 도성은 서울의 공간을 설명하는 중요한 기준으로 인식했다. 이제는 김구 선생께서 언급했던 새문, 즉 돈의문도 헐리고 그 터만이 남았지만 언젠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혹은 기록으로 불렸을 그 오랜 이름을 불러본다. 마치 평소처럼 벗에게 약속 장소를 가르쳐주듯이 이번에 우리, 새문밖 어디 어디에서 보자고. 그렇게 그 오래된 이름을 다시 토닥이듯 부르며 한양도성이 가진 서사의 힘을 되새겨 본다.

    오랜 성곽도시인 서울을 오랫동안 수도로서 존재하게 하는 한양도성

    한양도성은 그 성벽과 성문을 따라, 내사산의 능선을 따라 유려하게 이어지는 조선팔도 모든 이야기가 여전히 흐르고 있다. 그렇게 박물관 유리 벽 안에 박제된 유물이 아닌 지금 여전히 살아있는 평범한 길로서 우리의 시간을 증언하고 있다.

    이제 모두 다 함께 한양도성의 모습을 마음속에 그려가며 옛 지도를 곁에 두고 도성의 성문인 사대문 사소문을 하나하나 열어보자. 그러다 보면 어느새 먼지 쌓인 옛 지도가 단순히 고리타분한 기록물이 아닌 지금 현재에 유용한 보물 지도라는 사실을 느끼게 될 것이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공간을 찾아서 말이다.
    by 김남길
    "아래 소개하는 영상은
    <길스토리: 서울 한양도성 10人10色 프로젝트>의
    시민 참여자 '주현정'씨가 직접 촬영한 영상으로
    '공존'을 주제로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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