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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와 문화, 미래의 가치를 품고 있는 서울 한양도성에서
      우리의 가치를 경험할 수 있는 길을 찾고, 그 길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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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ORY
    Ep.07 남산 길 따라 숭례문까지 순성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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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만드는 문화유산, 한양도성 7화

    김남길, 남산 성곽길 따라
    숭례문까지 순성하는 길

    2016년 10월 6일 연재

    언제나 사람들과 대기 중인 버스들로 복작복작한 남산의 N서울타워 버스정류장. 마음만은 산 정상에 오른 듯 기지개를 켜고 숨을 크게 들이마십니다. 남산의 신성한 정기가 사방의 나뭇가지를 타고 온몸으로 흘러드는 것 같습니다. 이제부터는 힘차게 남산 성곽길을 따라 도심 한가운데 남겨진 숭례문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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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절로 휘파람이 나오는 길

    등대처럼 우뚝 솟은 N서울타워와 한양도성의 모습이 새삼 반갑습니다. 성곽 밖 구름다리처럼 놓인 철제 계단으로 올라가면 전망대와 공원이 나옵니다. 남산의 명소인 커플들의 자물쇠가 채워진 전망대 곁, 남산 팔각정으로 가봅니다.

    예전 남산 팔각정 자리에는 지금의 인왕산 국사당이 있었다고 합니다. 국사당은 남산의 산신인 목면대왕을 모시는 제사를 지냈던 곳입니다. 바로 그 앞에 도성 안내 표지판이 친절히 놓여있네요. 길 안내 표지판 화살표가 남산 케이블카, 남산 봉수대를 나란히 가리킵니다. 그 방향 그대로 서너 걸음만 떼면 바로 봉수대 터와 복원된 봉수대가 보입니다.

    봉수대는 긴급한 사태가 발생한 경우 그 사실을 가까운 관아와 해당 지역에 신속하게 알리는 전보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밤에는 불, 낮에는 연기를 이용했는데 평상시에는 하나, 적이 나타나면 둘, 경계에 접근하면 셋, 경계를 침범하면 넷 이렇게 그 위급함의 정도에 따라 불을 붙였다고 합니다.

    이제는 봉수대 곁으로 난 성곽길을 걷습니다. 하늘 계단처럼 영원히 안 끊길 듯이 층층이 나 있는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서 이끼를 머금은 성곽의 여장과 함께 미니어처처럼 보이는 도시의 풍경을 구경합니다.

    이곳은 그 아래 도시를 아늑하게 감싸 안은 여러 산맥의 풍광이 한눈에 담깁니다. 하늘과 산과 그 아래 도시. 각자 다른 세 가지 세계가 한 곳에 우연히 만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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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과 산과 그 아래 도시

    사방으로 산새 소리와 풀벌레 소리로 가득합니다. 그 어느 때보다 게으름을 피우며 걷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토록 느릿느릿 흡사 달팽이가 나뭇잎 위를 기듯이 걷고 있으니, 행복이 본래 가진 속도감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느리고 고요해서 그 순간에는 손에 잡히기도, 눈에 보이기도 어려웠다는 걸 기억해봅니다. 지금 이대로 귓불을 스치는 솔바람과 산새소리가 그저 좋습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뚜렷하고 선명하게 느껴지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연히 산신이 사는 이곳에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땅 위에 세워진 도시를 다시 굽어보는 것이죠. 분명 깊은 산속을 걷는 줄 알았는데, 가만 보니 도시 한가운데 같습니다. 무언가 속은 느낌입니다. 세상에 이런 풍경이 다 있을까 감탄하면서도 산인지 도심인지 모를 이 묘한 풍경에 빠져들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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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이야말로 남산 순성길의 매력

    이대로 성벽을 끼고 다시 내려가는 계단 길에서도 이런 묘한 잔상은 계속됩니다. 왼편으로는 여전히 가는 길을 동행해주는 미쁜 성돌들과 그 옆으로는 다시 잎사귀 커튼에 살짝 가려진 도시의 풍경이 훤합니다.

    아무리 보고 또 보아도 신기합니다. 한양도성을 끼고 있는 숲길 한가운데, 바로 그 곁으로 펼쳐진 도시 한복판의 도로 위 분주히 움직이는 차들이 보입니다. 가만히 그 이질적이면서도 조화로운 풍광을 보고 있자면, 작게 보이는 차들이 풀잎 사이를 비행하는 반딧불이처럼 보입니다.

    그렇게 점점 더 산 아래로 내려가는 중입니다. 어느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계단 길이 산 밑 평지로 이어집니다. 마침 알맞게 화장실도 있고 벤치도 있으니 잠시 쉬었다 가는 것도 괜찮겠습니다.

    이제는 완전히 산 아래로 내려왔습니다. 안중근 의사의 동상 앞으로 '서울 한양도성'이란 글씨가 바닥에 선명히 새겨져 있습니다. 예전에 성벽이 세워져 있던 자리입니다. 이참에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 들러보려고 합니다. 잠시 그가 살아낸 이야기 속에 머물러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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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이 지나간 자리에 머무르는 길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서 나와, 이제는 김구 선생님을 기리는 '백범 광장'을 지나갑니다. 끊겼던 성벽이 공원 한가운데로 복원되어 있습니다. 성곽을 곁에 끼고 정면으로 보이는 힐튼 호텔을 마주하고 내려오는 길. 이제 숭례문 가까이에 다 왔습니다.

    완전히 도심 한가운데로 들어섭니다. 이대로 성곽을 등지고 인도를 내려오면 어느새 남산 공원 글자를 조형해놓은 안내판을 지나 퇴계로 6가 길이 보이는 신호등 앞에 섭니다.

    이제는 성벽이 끊어져 다시 보기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길 건너편 인도 옆으로 한양도성의 여장이 낮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코앞에 보이는 숭례문까지 잠시라도 성곽을 끼고 걸어야겠습니다. 건널목을 건너 몇 걸음 떼자 빌딩 숲 한가운데 숭례문의 뒷모습이 보입니다. 원을 그리듯 동그란 성문 곁을 돌아서 숭례문 정문 앞으로 가봅니다.

    높고 깊어진 가을 하늘을 머리에 이고 있는 듯 숭례문이 당당히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조선의 정문으로서 시간을 여닫고, 날씨에 관여했던 당시를 생각해 봅니다. 조선시대에는 가뭄이 들면 왕이 근신하고, 죄수들을 풀어주거나 숭례문, 흥인지문, 돈의문, 숙정문에서 제사를 지냈습니다.

    특히 가뭄은 음양의 조화가 깨어진 데서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해석하여, 가뭄이 심하면 숭례문을 닫고, 숙정문을 열어 두었다고 합니다. 남쪽 숭례문에서는 양의 기운이 들어오고, 북쪽 숙정문에서 음의 기운이 들어온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남문의 양기를 막고, 북문의 음기를 들여 비가 오기를 빌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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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의 기운이 지나다니는 문

    숭례문 근처에 ‘남지(南池)’라는 연못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참에 '남지 터'도 보고 가려고 합니다. 잊혀졌거나 사라진 무엇을 찾아내는 기쁨이 지금의 순성길의 묘미가 아닐까요.

    사방이 빌딩이고 자동차가 지나가는 대로 한가운데 작은 비석만 남은 남지 터. 일단 지도를 보면 '대한상공회의소'로 올라가는 길 중간에, 숭례문이 맞은편으로 보이는 지점에 있는 것 같습니다.

    일단 숭례문을 뒤로하고 정면에 난 도보 끝으로 서울역을 바라보며 버스정류장 쪽으로 내려갑니다. 첫 번째로 보이는 신호등을 건너, 대한상공회의소 방향으로 가봅니다. 맞은편으로는 숭례문이 지척에 보이니 이 근방 인도를 좌우로 자세히 살펴봐야겠군요.

    비석이 있을만한 자리가 마땅히 없는데 바로 보이지 않네요. 혹시 한양도성 길을 이어주는 표식처럼 대로 한가운데 있는 건 아니겠죠? 차로에 비석을 두지는 않았을 텐데요... 아니 가만가만, 이게 남지 터 비석이 아닌가요? 드디어 찾았습니다!

    성문 밖 연못, '남지'는 관악산의 강한 화기(火氣)에 노출되어 있는 경복궁을 보호하기 위해 나라에서 만든 연못이었기 때문에 조선시대 왕실의 과수원을 관리하고 궁중에 꽃과 과일을 공급하던 관청인 ‘장원서’에서 손수 관리했다고 합니다.

    덧붙이자면 성문 밖에는 이곳 말고도 몇몇 연못이 있었는데, 서대문 북쪽에 '서지(西池)', 동대문 안쪽에 '동지(東池)'라는 연못도 있었습니다. 모두가 ‘남지’처럼 연꽃이 피는 연못이었습니다.

    '남지 터' 비석 곁에 서서 잠시 숭례문을 바라봅니다. 옛날에는 성 밖에 늘어선 장터와 민가들, 성문을 오가는 사람들로 항시 북적였겠지만, 지금처럼 복잡하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숭례문 양옆으로 잘려버린 성벽으로 주위로, 다시 성문 앞뒤로 쉴 새 없이 차들이 지나갑니다.

    이제는 사방이 평온한 숲 대신 하늘을 가릴 만큼 높다란 빌딩들이 마치 옹성처럼 숭례문을 포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밤낮으로 쉬지도 않고 숭례문 주위를 이명처럼 가득 채울 도시의 소리, 그 이전에는 꿈결에라도 상상하지 못 했을 새로운 종류의 소음들. 그 소란스러운 도심의 정가운데에 갇혀버린 숭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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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숭례문도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일까

    지금 숭례문은 느긋한 듯 흥미로웠던 그 시절의 소리를 그리워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이 빌딩 숲에 익숙해지고 정이 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사방으로 뻥 뚫려 있던 당대의 하늘 길만은 유독 못 잊고 있을 것만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그 자리에 있어 줘서 고맙다고, 앞으로도 오래오래 또 바뀔 이곳의 풍경을 지켜봐 달라고 그렇게 숭례문에게 말을 건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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