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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한양도성
      역사와 문화, 미래의 가치를 품고 있는 서울 한양도성에서
      우리의 가치를 경험할 수 있는 길을 찾고, 그 길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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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ORY
    Ep.05 김남길과 함께 끊어진 순성 길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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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만드는 문화유산, 한양도성 5화

    김남길과 함께
    끊어진 순성 길을 찾아서

    2016년 9월 22일 연재

    한양도성의 낙산 구간을 따라 내려와 드넓은 바다가 펼쳐지듯 시원하게 흥인지문이 눈앞에 보이는 사거리에 도착합니다. 울창한 숲 속에서 갑자기 도심 한가운데로 뚝 떨어진 것만 같은 이질감을 맛볼 수 있는 것도 서울의 매력인 것 같습니다.

    오늘은 흥인지문을 지나 광희문까지 가보려고 합니다. 여기서부터는 유실된 한양도성의 흔적을 찾아서 순성 길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끊어진 한양도성를 마음으로 그리며 그 흔적이 남아있는 '오간수문'과 '이간수문'을 차례로 찾아 걷습니다. 그대로 광희문까지 연결하는 코스를 찾아보려고 합니다.

    흥인지문을 뒤로하고 신평화패션타운을 바라보며 곧장 청계천 6가 사거리까지 걸어갑니다. 청계천을 건너가기 전, 시장 골목 앞에서 횡단보도를 건너갈 때 지나는 다리가 바로 '오간수교'입니다. 그곳에서 오간수문 터의 흔적을 볼 수 있습니다.

    '오간수문'은 서에서 동으로 흐르는 청계천 물줄기가 도성 밖으로 빠질 수 있도록 동대문 성곽과 만나는 지점에 만든 다섯 개의 물길을 낸 수문입니다. 조선 초기 도성을 수축하면서 물길을 낼 때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후 청계천 복원 사업의 일환으로 '오간수교'가 복원이 되었다고 합니다.

    여기에 흥미로운 야화가 하나 있습니다. 청계천 복원 당시에 오간수문 터에서 상평통보 600여 개 그러니까 엽전 600냥이 한꺼번에 묻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당시 쌀 한 가마니를 살 수 있는 큰돈이었답니다.

    누가 숨겨둔 걸까요? 조선 명종 때 전옥서(죄수를 관장하던 관청)를 부수고 가족을 구한 임꺽정은 오간수문의 창살을 꺾은 뒤 도성을 빠져나갔다고 할 정도로 오간수문은 몰래 도성을 드나드는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던 통로였다니 혹시 수문으로 도주하던 도적이 흘리고 간 것일 수도...

    자, 이제 오간수교를 건너 동대문 역사문화공원을 향해 걸어갑니다. 주위에 시장과 화려한 쇼핑몰 등이 이어져 있어 한눈팔기 좋은 유혹들이 가득하지만, 부디 곧장 '이간수문'으로 가시기를 바랍니다. 중간에 너무 멈췄다 가면 정말 다시 가기가 귀찮거든요. 그대로 그날 답사는 끝날 수도 있으니까요.

    동대문 역사문화공원에는 끊겨있던 성벽의 일부가 보존되어 있습니다. 그 일부는 복원된 성벽인데 그 아래로 '이간수문'이 있습니다. '이간수문'은 두 개의 물길을 낸 수문입니다. 이 두 개의 문 중에 한쪽은 창살로 막혀 있고 나머지 한쪽은 열려 있네요. 열린 수문 안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옛사람들은 수문 위에 다시 벽을 쌓아 성곽을 이어 나갔다는데 그 때문인지 이간수문과 성곽은 서로 이어져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대로 성벽을 따라 올라가면 동대문 역사관을 만나게 됩니다. 동대문 역사관에는 지금은 사라진 한양도성 터에 대한 역사를 둘러볼 수 있습니다.

    이제 증강현실 게임을 하듯 옛 한양도성의 길을 현재의 도로와 비교해가며 길을 내면서 찾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벽에 막히네요. 동대문 역사문화공원에서 광희문까지 성벽을 이어가려면 한양공업고등학교 건물 한가운데를 뚫고(?) 지나가라는 말인데 그렇게 갈 수는 없겠죠.

    그렇다면 지하철 2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2번 출구 쪽으로 걸어가 바로 한양공업고등학교 앞 사거리로 가보겠습니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3번 출구로 나오면 건너편에 광희문이 있다고 들었으니 3번 출구를 찾아 걸어가 보겠습니다.

    저기 광희문이 있네요. 그 앞 차도에는 끊어진 성벽을 이어주듯 '서울 한양도성'이라고 차도에 새겨진 길도 보일 겁니다.

    광희문은 태조 5년 1396년에 도성을 축조할 때 동남쪽에 세워졌습니다. 사실 광희문만큼 사연이 쌓인 공간도 찾기 힘들 겁니다. '빛나는 빛의 문'이라는 명칭과는 달리 광희문은 도성 밖으로 시신(屍身)이 나가던 '시구문(屍軀門)'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도성 안에 무덤을 둘 수 없었기 때문에 죽은 모든 이들은 성 밖으로 내보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시구문 밖에는 화장터와 묘지도 많았다고 합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이 주변에서는 귀신에 대한 소문도 많이 떠돌았고, 심지어 어떤 지독한 병도 시구문이 겪은 고난을 이기지는 못할 거라고 생각해 시구문의 돌가루가 만병통치약으로 통했다고 합니다.

    "
    한양도성의 '끊김'은
    서울의 확장

    광희문은 다른 성문들과 비슷하게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는 동안 크게 훼손됐습니다. 현재의 광희문은 1975년에 복원된 것인데 원래 위치보다 남쪽으로 15미터 가량 떨어져 세워졌습니다. 도로 확장 때문에 제자리에서 벗어나 복원되었죠.

    이처럼 한양도성의 '끊김'은 서울의 확장과 연관이 있습니다. 도심지가 확장될수록 성벽이 잘려나갔고 그 성벽 위로는 도로가 닦이고 집이 지어지기도 했습니다.

    끊어짐이 대려 익숙해져 버린 것은 아닐까. 우리의 마음의 속에는 한양도성의 유려한 이어짐이 남아있기를 바라봅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이제 지나가다 섬처럼 홀로 도로 위에 떠있는 광희문과 한양도성의 성문들을 보게 된다면 마음껏 상상하고 궁금해 해주세요. 그러면 분명 다시 잃어버렸던 길이 펼쳐질 겁니다. 결국 서울은 순성하면 모두 이어지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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