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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한양도성
      역사와 문화, 미래의 가치를 품고 있는 서울 한양도성에서
      우리의 가치를 경험할 수 있는 길을 찾고, 그 길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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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DIO
    한양도성 오디오 가이드 3_남산 구간
    한양도성 오디오 가이드 3_남산 구간

    < 한양도성, 조선의 옛길을 걷다 >
    * 코스 : 남산공원 – 목멱산(남산) 구간 - 숭례문


    길을 걷는 건 순례이기도 합니다. 머물렀던 자리를 내어주면서 흘러갑니다. 새롭게 만나는 것에 감동하며 그것이 나에게 말을 걸도록 마음을 엽니다. 서서히 나 중심적인 삶에서 벗어나 타인에게로 시선을 확장합니다.

    세월을 견디고 남아있거나 사라져버린 한양도성 성곽길을 걷는 건 인생을 사는 것과 비슷합니다. 알 것 같지만 알 수 없고, 보이는 것 같지만 보이지 않는 게 삶이니까요. 그래도 다행인 건 선배들이 남기고 떠난 발걸음의 흔적입니다. 우리가 오늘 한양도성 성곽길을 걸을 수 있는 건 이전에 이 길을 아끼며 걸었던 사람들 덕분입니다. 저도 이 길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한양도성 순성길을 안내하고자 합니다. 지하철 동대입구역 6번 출구에서 출발해서 서울역 3번 출구에서 끝나는 길입니다. 도심 속에 남아있는 조선의 길을 새롭게 발견하면서 걸어보면 어떨까요.

    지하철 동대입구역 6번 출구로 나와 왼편에 있는 장충단 공원으로 들어섭니다. 공원 입구에 바로 ‘수표교’가 보입니다. 수표교는 조선시대 청계천을 가로질러 쌓은 돌다리인데 청계천 복개공사를 하면서 이곳으로 옮겨놓았습니다. 수표교를 건너면 남산으로 가는 버스정류장이 나옵니다. 국립극장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가도 되지만 옛 터가 남아있는 장충단 공원을 가로질러 국립극장까지 걸어가도 그리 멀지 않습니다.

    국립극장 정문 앞에 도착하면 한양도성 순성길 표지판을 확인하고 남산공원 입구 방향으로 걷습니다. 남산 숲길은 높이 솟은 나무 사이로 산책로가 잘 닦여있습니다. 걷다 보면 발밑에 도로를 가로질러 서울 한양도성 순성길이라고 쓴 흰색 페인트 글씨가 보입니다. 왼편으로 고개를 돌리면 도로 아래 성벽이 있고, 오른 편으로 고개를 돌리면 산 위로 성벽이 이어집니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성벽이 끊어진 겁니다. 이제부터는 산 위로 이어진 나무계단을 밟고 올라갑니다.

    옛 모습 그대로 보존이 잘 되어있는 성벽이 바로 이 길입니다. 성벽을 자세히 관찰하면 돌이 다른 모양으로 쌓인 부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태조, 세종, 숙종, 순조 때마다 성벽을 쌓는 방식이 달랐다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성벽은 돌이라는 자연과 돌을 깎아 쌓은 인간의 손길이 어우러진 구조물입니다. 자연이 빚은 돌로 새로운 걸 창조해낸 인간의 위대함을 성벽을 보면서 깨닫습니다.

    가파른 길을 올라 전망대에 서서 지나온 길을 내려다보면 숨이 탁 트이는 정취를 만끽할 수 있습니다. 다시 한 길로 뻗은 숲길을 걷다 보면 곧 여러 갈래로 뚫린 아스팔트 길과 만납니다. 버스 정류장을 지나 남산타워 전망대 방향으로 걸음을 옮겨봅니다. 여기서부터는 성벽이 어깨 높이로 나란히 걸을 수 있습니다. 거대한 성벽이 아닌 오를 수 있는 담 같아 정겹게 느껴집니다.

    남산 팔각정 뒤편으론 목면산 봉수대 터와 복원된 봉수대가 있습니다. 봉수는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로 급한 일을 전달했던 통신수단입니다. 순성길은 봉수대 왼편, 남산 도서관 방향으로 이어진 내리막길입니다. 이제 올라온 만큼 내려갑니다. 나무계단에 이어서 돌길이 나오는데 자세히 보면 구간마다 돌의 크기가 다릅니다. 시대마다 달랐던 성벽 축조기술을 바닥에 형상화한 듯 보입니다.

    오래전 성벽은 도시 안과 밖의 경계를 정하고 외부의 침입을 막아주는 안전장치였습니다. 사람들은 성 안과 밖을 넘나들면서 떠도는 이야기를 전달했을 것입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 몸 안에 쌓이는 건 이야기입니다. 사람이 산다는 건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이 땅에 남기는 게 아닐까요. 어떤 이야기를 남길까 생각하다보면 어떻게 내 삶을 살아갈지를 고민하게 됩니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걷다 보면 짧지만 존경스러운 이야기를 남기고 떠난 안중근 의사 동상과 만나게 됩니다.

    안중근 기념관을 그냥 지나치지 말고 동상 오른 편에 있는 기념관으로 들어가 더 많은 그의 이야기와 만나보는 건 어떨까요. 기념관을 나오면 김구 선생님을 기리는 ‘백범 광장’으로 발길을 옮깁니다. 바닥을 보면 성벽은 사라졌지만 그 흔적을 남긴 돌이 길을 안내합니다. 멀리 김구 선생님의 동상도 보이고 끊어졌던 성벽도 보입니다. 복원된 성벽이 반갑기도 하지만 돌에 시간이 깃들지 않아 아쉽기도 합니다. 복원보다 보존의 소중함을 알게 해주는 시간입니다. 이 성벽을 따라 내려오면 힐튼 호텔이 보이는 도심과 만나게 됩니다. 오른 편으로 길을 잡고 걷다가 남산공원 입구 앞에서 횡단보도를 건넙니다. 그리고 다시 왼편 횡단보도를 건너 숭례문 방향으로 내려가다 보면 사라졌던 한양도성 성벽이 어깨 높이에서 낮게 이어집니다. 성벽이 숭례문으로 길을 안내합니다.

    국보 제1호인 숭례문은 조선 태조 7년에 한양도성 남쪽 대문으로 세워졌습니다. 2008년에 훼손되었다가 2013년에 복구되었는데 이때 좌우 성곽도 함께 복원되었습니다. 때를 잘 맞추면 숭례문 앞에서 진행하는 파수꾼 교체 의식과 순라군 군례 의식을 볼 수 있습니다. 숭례문으로 가까이 가서 홍예문 천장에 다채롭게 그려진 두 마리의 용 그림도 확인해보면 좋습니다.

    발길을 돌려 서울역방향으로 내려가다가 처음 만나는 신호등 앞에 서면 한양도성 순성길 표지판이 보입니다. 이전에 보이지 않았던 게 보이고 그것이 기쁘다면 인연이 깊어졌다는 신호입니다. 횡단보도를 건너 오른 편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남쪽 연못이었던 ‘남지 터’ 비석과 만납니다. 성 밖에 있었던 남지 터에 서서 숭례문을 바라봅니다. 오래전 사람들은 이 길을 어떤 마음으로 걸었을지 상상해보면서 도착지점인 서울역 3번 출구로 내려갑니다.

    ‘사람이 사는 마을’에서 벗어나 걸었던 길은 다시 마을로 이어집니다. 길은 언제나 다시 사람이 사는 곳으로 돌아오는지도 모릅니다. 순례의 여정을 마치고 새로운 마음으로 새 삶의 이야기를 이어가도록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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