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이야기
  • 시골버스
  • 서울 한양도성
  • 제주
  • 성북
  • 북촌
  • 카테고리 전체보기
    • 서울 한양도성
      역사와 문화, 미래의 가치를 품고 있는 서울 한양도성에서
      우리의 가치를 경험할 수 있는 길을 찾고, 그 길을 걷는다
      40 2,175 57,098
    ESSAY
    Ep.05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트위터로 보내기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미투데이로 보내기 요즘으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서울 한양도성 10人10色 Ep.05

    김남길,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2016년 10월 11일

    여행의 행로로 표현하자면, 나의 이번 한양도성의 순성 여행은 어디까지 온 걸까?

    한양도성에 대한 그 수많은 인상과 풍경을 다 담으려면 분명 온 우주의 은하계가 필요할 것만 같다. 혜화문에서 흥인지문, 다시 광희문, 남소문 터 그리고 숭례문까지. 이제는 끝인가 했지만 뫼비우스 띠처럼 이어지는 순성이 낸 길. 다시 굽이굽이 넘어 소의문, 돈의문. 산 깊숙이 들어가 있는 창의문에서 숙정문까지 그 모든 길을 쉬지 않고 한 번에 걸으면 현기증이 날 것만 같다.

    그렇게 길 곳곳에 우뚝 서서 또 다른 길을 내던 사대문과 사소문

    얼핏 보면 수도인 '한양'과 그 외 지방을 구분 짓기 위한 담벼락 같은 거 아닌가... 성문이 있는 건 사람과 물자가 오고 가야만이 수도의 기능을 하니까 당연한 거라고 대수롭지 않게 볼 수도 있다. 순성놀이에 대한 첫 인상도 그와 같았다.

    처음에는 그저 성 외벽을 끼고 걷는 일이 놀이라는 게, 그것도 몇 백 년 이상의 시간 동안 유행했다는 말을 듣고 의아했었다. 하지만 직접 조금씩 알음알음 한양도성을 구간별로 걸어보니 재미가 있다.

    퍼즐 맞추기처럼 그때그때 빈 공간을 채워가는 그런 뿌듯함이 있다. 그러니 당대의 사람들에게 이만한 여행지는 없었으리라. 한양도성이야말로 수도 안에 있는 휴양지가 아닐까? 조선시대에는 이만한 여행지는 없었을 듯싶다.

    일단 그때는 한양의 안과 밖을 오가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지방에서부터 한양에 온다면 그 여행은 시작부터 험난했다. 길은 좁고 구불구불했고 포장도로는 존재하지 않았겠다. 더욱이 여름철 집중 호우로 강에 다리를 놓아도 자주 유실되고 진창이 되었을지도.

    그뿐인가 모든 여객은 방대한 짐을 바리바리 싸 들고 다녀야 했겠지. 심지어 말이 먹을 콩과 덮을 담요도 따로 구하기 어려워 사람 짐과 함께 매고 다녔을 것이다.

    그럼에도 여행자들이 있었다.

    공적인 업무를 수행하거나 친척이나 친구를 만나고, 과거 시험을 보기 위해 상경하거나 유배를 가야 했던, 혹은 길 위에서 생업을 꾸리던 보부상들....

    그 모든 백성들의 여행. 당대는 자신이 살던 고을을 벗어나 길을 나서기로 했다면 모든 경비와 물자를 완벽히 준비했대도 가장 큰 문제가 하나 남아 있었다. 정확한 지리 정보를 찾기가 힘들어 길 찾기에 큰 난항이 있었을 것이다. 물론 접어서 갖고 다닐 수 있는 절첩식(折帖式) 지도가 있었지만 지도 자체가 귀했던 시대였으니까 말이다.

    그때는 어떻게 길을 찾았을까?

    그나마 길가에 세워진 장승에 이웃 고을까지의 거리가 새겨져 길 찾기에 도움이 됐을까. 혹은 여객들 사이에 돌고 도는 한 고을에서 다른 고을까지의 거리가 명시된 노정표(路程表)를 참조했을까. 목판으로 인쇄된 것도 있었지만, 늘 여기저기 떠돌아 다녀서 길을 잘 아는 장사꾼 등에게 물어 메모해 둔 필사본도 많았다니 말이다. 또한 자오침(子午針)이라 부르는 나침반을 갖고 다니며 방위를 판별하기도 했다고는 하지만 길 찾기가 참 어려웠겠다.

    그러나 이런 것들만으로 정확한 거리와 방향을 알아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가장 좋은 방법은 대개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길을 묻는 것이다. 이 방법은 지금도 같아서 한양도성을 걷기 전에 지도로 얼추 거리를 짐작할 수는 있지만, 직접 걷고 그 길 한가운데에서 물어물어 길을 찾기까지는 그 길을 정확히 알 수가 없다.

    무엇보다 해가 지기 시작하면 일단 가던 길을 멈춰야 한다. 밤만 되면 가로등이 있는 것도 아니고 금세 칠흑 같은 어둠이 된다. 그러고 보니 당시처럼 하늘의 빛나는 별을 볼 수는 없어도 지금은 한양도성의 멋진 야경을 볼 수 있다는 데에 위안이 된다.

    마치 풍등처럼 마을 집집마다 뿜어져 나오는 불빛들과 골목골목의 가로등 불빛, 그리고 한양도성 성벽을 달빛마냥 비추는 조명이 함께 합해져 반딧불이가 사방에 날아다니는 것만 같은 야경이 만들어진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조선시대의 밤은 그런 낭만과는 거리가 멀었을 것 같다. 밤에는 길을 더 이상 걸어 갈 수가 힘들었을 것이다. 일단 해가 지면 사방이 터널 안처럼 칠흑같이 깜깜해지고, 짐승의 습격과 도적패의 기습을 받을 수도 있었다.

    특히 인왕산 주변에는 호랑이가 많았는데, 구한말까지도 한양도성의 안과 밖 그곳이 어디든 호랑이 천지였다 한다.

    심지어 당대에 조선을 여행했던 한 파란 눈의 여객도 가는 곳곳 호랑이와 관련된 온갖 전설과 사건 사고를 들었다고 한다. 한번은 어느 주막에 묵었는데 주인이 온돌을 너무 뜨겁게 떼는 바람에 그만 숨이 막혀 문을 열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새 주인이 황급히 달려와 문을 닫는 것이다. 그러다 호랑이가 들어와 일을 친다고 말이다.

    어쩔 수 없이 이 가여운 여객은 40도가 넘는 방안에서 겨우 문풍지에 구멍을 내고 숨을 쉬며 긴긴 겨울 밤을 보내야 했다. 그래도 그 사람은 해가 사라지고 별이 교대한 밤에 창호지 구멍 사이로 지금보다 더 밝고 찬란한 별 밤 속에서 잠들었을 것이다. 그렇게 짙은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 하나하나 세는 즐거움, 그런 여행의 맛.

    별 하나하나 세는 즐거움, 그런 여행의 맛

    여행 한번 가려면 산 넘고 물 건너, 때론 목숨을 걸고, 배고픔은 예사요, 자연재해에 맞먹는 환경변화와 맞서 싸워야 했던 당시를 상상해 보면 순성장거는 도성 사람들에게 큰 위안이 되었을 듯싶다.

    원칙적으로는 원하는 복을 이루려면 전 구간을 중간에 쉬지 않고 돌아봐야 한다지만, 그거야 걷는 사람 마음이 아니던가? 물론 산속 깊이 위치한 구간에서는 바스락거리는 소리만 조금 나도 뒤돌아 산 짐승이 덮치는 건 아닌지 경계했겠지만 결국은 모두 한양도성의 안과 밖이었다.

    그런 순성놀이의 담백하지만 진한 매력이 오래도록 당대에 화자가 되었나 보다. 그러고 보니 본래 여행이라는 것이 단순히 새로운 것을 보고 즐기는 놀이만은 아니지 않았나. 생각 보다는 익숙한 곳에서 그리 먼 거리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긴긴 여행을 즐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 한나절 안에 세계 여행을 하듯, 각기 다른 마을의 풍경과 사계절을 한대 담은 풍광들이 주는, 작지만 큰 여행에서의 뿌듯함을 그대로 간직한 채로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한나절 안에 세계 여행을 하듯

    그 새롭고도 평범한 길을 걷는 여행자의 마음속에 지어지고 다시 헐리기를 반복하는 생각의 행로. 그렇게 다시 내게로 한걸음씩 다가가는 길.

    그제야 진짜 여행의 시작이 될 것만 같다. 이쯤은 한양도성의 어느 쯤 일까, 이 길은 내가 자주 다니는 서울 시내 어디로 통하지, 아주 먼 옛날에는 이 길이 저 길로도 통했구나... 끄덕여 가면서 이곳 저곳 기웃거리면서... 다시 오고 가다 마주친 사람들과 하는 이야기들 속에서 나라는 사람이 가진 생각의 궤적을 한 꺼풀씩 벗겨나간다.

    그렇게 자꾸만 내 자신을 알아가는 것이 아닐까? 지금까지 걸어온 길들을 되새겨 보면서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내 자신을 더 애틋하고 귀하게 여길 수 있는 것 같다.

    순성놀이의 그런 당찬 매력

    그렇게 평범하고도 지루한 일상 안에서 조금은 자유롭고 때로는 신명 나서 어깨 춤 두둥실 추게 하는 즐거움을 순성은 그 오랫동안 매일같이 도성 사람들에게 선물해주었다. 그러니 그토록 오랫동안 그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추억으로 남았던 것이 아닐까.

    부모의 부모가 또 다시 자식의 자식이 함께 걸었던 그 오랜 옛길은 그래서 지금도 여전히 한양도성의 성벽 따라 흘러내리는 유려한 바람 길을 유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진짜 여행의 시작은 한양도성 한가운데 그 자리에 서서, 눈을 감고 어느 바람이든 맞아보기, 바람 속에 스며드는 내 목소리에 귀 기울여보기, 다시 그 틈 사이 휘파람처럼 들려오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가만가만 들어보기에서 시작해 보자. 그런 한가하면서도 정겨운 여행을.
    by 김남길
    "아래 소개하는 영상은
    <길스토리: 서울 한양도성 10人10色 프로젝트>의
    시민 참여자 '장은영'씨가 직접 촬영한 영상으로
    '나 그리고 한양도성'을 주제로 제작되었습니다."
    추천수 23 조회수 754
    추천스크랩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