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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렌즈 너머, 아이들의 작은 자화상

  • 공동관심:자화상
    + 공공예술캠페인
  • 지난 8월 9일, 15명의 보육원 친구들과 함께 <공동관심 : 자화상> 사진전을 진행했습니다. 사진작가 친구들이 사진을 통해 자신의 세상을 표현하고, 그 안에서 '나'를 찾으며 자기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시간을 가졌는데요.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며 공감하는 일은 정말 특별한 일 같습니다. 길스토리 프로보노인 '손화신' 작가님의 시선으로 그날의 이야기를 여러분께 전해드리려 합니다. 여러분의 후원으로 아이들이 어떤 경험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나'를 어떻게 표현했는지 그날의 이야기를 함께 보실까요?
    (본 글에 사용된 아이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으로 기재되었습니다.)
    나의 하루를 소개합니다
    8월의 어느 금요일 오후. 보육원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서울 성수동 헤이그라운드 전시 공간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저 커튼 뒤에 우리 사진이 있어! 확실해. 저걸 열면 사진이 나올 거야."
    정답이다. 커튼 뒤에는 아이들, 그러니까 오늘의 주인공인 작가님들의 사진이 개인별로 구역을 나눠 붙여져 있었다.
    촤르르륵. 긴 커튼이 양쪽으로 걷혔다.
    수줍은 듯한 작은 탄성들이 터졌다. 아이들은 귀신같이 자신의 사진을 찾아 곧장 다가갔다. 하나하나 유심히 들여다보더니, 다른 친구들 사진이 더 궁금했는지 더 오래 그것들을 바라봤다.

    아이들은 나눠 받은 포스트잇에 친구들과 언니, 누나, 오빠, 동생들에게 전하고픈 짧은 메시지를 써서 사진 옆에 붙였다.
    '귀여워'. '멋있어'. '잘 찍었다!'. '여긴 어디야?'
    자신들의 익숙한 삶의 공간을 이렇게 흑백 사진으로 보는 게 흥미롭고, 또 그 안에 담긴 친구들과 자기 모습도 새삼스레 보이는 눈치였다. 귀여워. 귀여워. 가장 많이 붙은 글귀였다.
    자, 그러면 작가의 의도를 한번 들어볼까?
    발표 시간이 시작됐다. 열다섯 명의 아이들은 한 명 한 명 앞으로 나와 마이크를 들고 사진을 설명했다.

    "저희 아빠랑 저희 형이랑 제 친구랑 큰엄마랑 같이 기념사진 찍은 거예요. 카메라를 처음 쓴 날이었어요."
    초등 2학년 원이는 사진기를 들고 다닌 한 달 중, 보육원 식구들을 맨 먼저 찍은 모양이다.
    원이와 동갑내기 재훈이는 “아빠랑 형아랑 아름엄마, 새롬엄마랑 같이 마라톤을 뛰었다”라며 3km 마라톤에서 자기가 받은 메달을 담았다. 그리고는 또 다른 사진을 가리키며 메달보다 더 자랑스럽게 말했다.
    "우리 엄마예요. 예쁘죠?"
    초등학교 2학년부터 5학년까지. 아이들의 사진 속에 공통으로 담긴 그것. 그 간판! 그것은 바로 ‘보석 탕후루’. 새콤달콤 탕후루를 향한 이들의 일관된 열망이 전해져 와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귀엽다.
    초등학생 친구들은 엄마, 언니, 형아들, 탕후루 가게, 다이소(보물창고라고 했다), 독수리 인형, 인생네컷처럼 일상에서 자신들이 아끼는 것을 주로 카메라에 담았다.
    자립: 약속된 미래 앞에서
    중학생 아이들은 좀 더 자신의 취향과 개성이 드러나는 사진들, 나에 대한 인식이 담긴 사진들을 찍었다.

    중2 대현이의 사진 자화상 타이틀은 [세상의 주인공은 나다]이며, 준혁이는 [나의 소중한 것], 민선이는 [나의 하루는 여기입니다]였다. 그리고 초등 아이들과 달리, 미래에 대한 고민도 담겨 있었다.
    중1 준혁이는 미술을 좋아한다. 만다라를 컬러링 하는 본인의 모습, 미술 할 때 쓰는 펜들, [마법천자문]에 나오는 호킹 호랑이를 따라 그린 그림을 신이 나서 설명했다. 온종일 그림 생각뿐인 것 같았다.
    면도기 사진에 대해선 "어린이날 받았는데, 이제 수염이 그렇게 많이 난다"라며 수줍고도 자랑스러운 설명을 덧붙였다.
    축구를 좋아해서 축구공 사진을 메인컷으로 골랐다는 중2 대현이. 그의 발표를 들어보자.

    길스토리: "밥솥을 찍었네요?"
    대현: "제가 밥을 좋아해서 찍었어요."
    길스토리: "이 책들 사진은 뭐예요?"
    대현: "자립이야기 책들이에요. 빨리 제가 일을 하고 싶어서요. 혼자 나가서 돈 벌고 싶어서요. 그리고 저만의 집도 가지고 싶어서요. 돈 많이 벌어서 가족하고 제 배우자하고 같이... 빨리 돈 많이 벌어서 건물을 산 다음에 편안하게 살고 싶어요."
    길스토리: "괘종시계 사진은 왜 찍었어요?"
    대현: "시간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찍었어요."
    보육원 친구들의 시간은 '자립준비청년'이라는 동일한 지점을 향해 내달리고 있다. 열다섯 대현이는 보호종료까지 5년 남짓한 시간이 남았지만 이미 '그날'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중요하단 걸 인지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여름을 사랑했다: 오늘도 사랑 안에서

    [가족사진]이란 타이틀을 붙인 중3 지우의 작품들에는 온통 동생들이 담겨 있었다. 얼마나 동생들을 아끼는지 설명하지 않아도 고스란히 전달됐다.
    "얘는 두 살이고요... 애기들을 다 좋아해요. 이 아이는 형준인데요. 저희 방에서 제일 귀여운 동생이에요."

    파란 모자를 눌러쓴 고2 동민이는 진짜 사진작가 같은 포스를 풍겼다. 타이틀은 [색 없는 여름]. 그의 모든 사진은 초록, 화분, 풀들, 여름, 비 같은 자연의 순간들이었다. 물론 흑백사진엔 초록이 없지만. 이토록 감각적인 톤 앤 매너를 선보인 동민이는 이렇게 말했다.
    "여름의 장마는 무엇으로 이루어졌을까 생각했어요. 이 카메라가 색을 담을 수 없잖아요. 그래서 여름의 물성을 생각하면서 사진을 찍었죠. ‘계산하지 않는 것은 낭만을 알게 만든다’는 말이 있는데 사진을 찍으면서 그 말이 떠올랐어요."
    동민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책인 황수영의 [여름 빛 아래]의 구절들도 낭독해 줬다. "그럼에도 여름을 사랑했다"라는 문장이 아련하게 여운으로 남았다.
    동민이가 [공동관심: 자화상] 사진전을 대하는 진지한 태도에 길스토리 식구들은 감명받지 않을 수 없었다. 길스토리 아라 간사님의 제보(?)에 따르면, 본인 순서를 기다리며 발표할 내용을 썼다 지웠다 계속해서 준비하는 동민이의 뒷모습이 감동 포인트였다고.
    고1 아린의 [나의 취미] 사진들은 배드민턴, 방문에 붙은 가수 정동원, 와인카페 등으로 구성돼 있었다. 와인카페는 가보지 않았지만 동네에 새로 생겨서 그냥 찍었다는데, 분위기 좋은 어른들의 공간에 대한 여고생의 호기심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우리’ 속에서 ‘나’로 살아가기

    별똥별 보는 걸 좋아해서 망원경 사진을 메인으로 택했다는 고2 상진이. 머쓱한 듯 웃는 얼굴이 순수해 보이는 그의 사진들에는 자신이 채워가는 평범한 일상에 대한 애정이 진득하게 묻어났다.
    "저를 구성하는 일상을 찍었어요. 사람은 혼자 사는 게 아니잖아요. 서로 상호작용을 해야 자기가 있다는 게 증명되잖아요."
    단체생활을 하는 아이들이 힘들지 않을까, 그런 생각 중에 상진이의 말을 들으니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얼얼했다. 상호작용 속에서 자기가 있다는 걸 증명한다는 그 말. 아이들은 이렇게 단체 속에서 더 빛나는 개인으로 성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마지막 발표자는 정하연 선생님. 하연 선생님은 "퇴소를 앞둔 친구들과 얘기해 보면 퇴소 후에 보육원 친구들과 멀어질까 봐 걱정하더라. 걱정하지 말고 자립하고 나서도 집에 와서 밥도 먹고 하면 된다고 말해줬다"라고 전했다. 퇴소 후를 염려하는 아이들의 속내, 고민을 하연 선생님의 시선을 통해 들을 수 있었다.
    이날 여섯 명의 선생님이 아이들과 함께 사진전을 찾았는데, 본인 휴대폰 사진첩이 터질 정도로 아이들의 모습을 찍는 모습에서 무한애정이 느껴졌다. 평상시에 들어본 적 없는 아이들의 생각을 그날 알게 돼서 선생님들은 놀라는 것 같기도 했다. 이들은 아이들의 사진과 말들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고, 한 마디라도 놓칠세라 아이들 말에 귀 기울였다. 동시에 손가락은 셔터를 마구 눌러대면서.
    자립이라는 ‘기대’ 속으로
    사진전의 모든 일정이 끝나고 돌아갈 시간. 아이들은 자기 사진 앞으로 가서 제법 작가 같은 포즈를 취하며 야무지게 기념사진을 남겼다. 이어서 서로를 찍어주며 막바지 시간을 분주하게 보냈는데, 특히 사진 속 장면을 재연하며 선생님과 어깨동무하고 사진을 찍는 두 사람이 다정해 보였다. 며칠 후 그 사진을 길스토리에 보내주기도 했다.
    이 사진전이 아이들에게 전시 이름처럼 '자화상'을 그려보고 들여다보는 시간이 되었을까. 굳이 의식하며 사진을 찍지 않았어도, 자신을 발견하고 표현하는 기회가 됐을 거라 기대한다.

    째깍째깍 다가오는 ‘자립 종료’라는 미래에 조급함을 느낄지도 모를 이 친구들에게, 어쩌면 한 뼘짜리 이 카메라와 한정된 필름이 다정한 친구로서 그들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건네주지 않았을까. 낭만을 선물해 주지 않았을까. 그랬길 바란다.
    사진 앞에서 눈을 빛내던 아이들이 벌써 보고 싶다. 한정된 지면 때문에 열다섯 명 이야기를 다 적지 못해 아이들이 섭섭해하진 않을까 조금 걱정도 되지만.
    자립이라는 두 글자가 단지 보호종료의 동의어가 아니길. 괘종시계의 시침이 미래에 대한 기대로 째깍째깍 움직이길. 사진 속에 담긴 그 미소처럼, 너희들의 멋진 미래를 응원해!

    글 : 손화신
    사진 : 김동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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