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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대로 읽고 쓸 수 있으며, 명확하게 말하고, 섬세하게 들을 수 있기를 원합니다
    Gayoung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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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의 이메일, 당신의 단어들
    name : 이가영    date : 2016-12-01 19:37:39
    추천수 72
    조회수   1,499
    어머니의 이메일, 당신의 단어들
    글 : 이가영 (작가)

    Hans Andersen Brendekilde(7 April 1857 ~ 30 March 1942)의 그림
    “나의 어머니는 지금 사라지고 없는 시공간에서 온 사람이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는 스칼렛 오하라의 그 유명한 대사 같기도 한 단어들. 하늘에 무지개가 뜨면 또 지는 법이라고, 그렇게 삶이 오고 가는 그 모습 자체를 하나의 그림으로 묘사한 듯한 제목. 한 아들과 어머니가 함께 써 내려간 에세이, ‘The Rainbow Comes and Goes: A Mother and Son On Life, Love, and Loss’
    어쩌면 복잡하지만 또 단순한 이야기들. 단 한 번도 어머니의 어린 시절을, 그 지나간 모든 과거를 터놓고 말해본 적이 없던 그였다. 그런던 어느 날 항상 건강하실 줄만 알았던 어머니가 쓰러지셨다. 그 후로 난생처음 어머니에게 메일을 보내기 시작했다. 물론 처음에는 형식적인 안부가 오갔지만, 곧 그녀는 아들에게 자신이 건너온 세월의 심연을 기꺼이 내보인다.
    그가 서문에 언급했듯이 그녀는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시공간에서 온 사람이다. 그녀 자신도 생각해보면 신기하기 짝이 없을 만큼 정말 한 세기 훌쩍 지나 버렸단다. 여전히 자신은 17살로 느껴지는 데도 말이다. 그리고 이제는 좀 더 이 삶에 머물게 해달라고 간절히 누군가에 빌게 된다고 고백한다. 그토록 시시하고 진부하다고 생각했던 그런 염원을 그토록 처절하게 원하게 되다니 자신도 믿기지 않는다고..
    그만큼 그녀는 아직 하고 싶은 게 많다.
    정리해야 할 것들도 많다. 평생을 패션 사업가, 작가, 사회활동가 등으로 자신이 움직일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해나가며 살았으니까. 그렇게 매사에 열정적으로 삶을 환하게 불태우며 살았던 그녀는 결국 삶은 단 하나의 종착역으로 가는 단순한 이야기라 믿는다. 그러니 시간이 우리를 어디로 안내할지는 결코 복잡한 수수께끼가 아니라고.
    그 말을 가만히 곱씹어 보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좀 더 어릴 때부터 죽음에 대해 인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 본다.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것, 말하지도 생각하지도 존재하지도 않는 것, 그 순간 그대로 멈춰서 그만 증발해버리는 이야기와 세포들. 그렇게 모든 이야기가 철저히 없던 일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줄곧 수많은 예술 속에서 일상 안에서 끝없이 마주하며 살았다. 아니, 짐작하면서 살았다. 실제로 매일같이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이제 막 새로 시작하니까.
    하지만 코앞에 떨어진 불을 끄듯이 진실로 자각하는 것과 막연히 저 멀리 있다고 예감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어떻게 같을 수 있겠는가? 한쪽 발을 깁스했을 때는 그토록 자유로운 두 발의 소중함을 뼈 속 깊이 느끼지만 회복하고 불과 며칠만 지나도 선잠을 자다 꾼 꿈처럼 아득해지지 않는가? 그래도 만약 그녀 정도의 연륜이 된다면, 그나마 그 오래된 미래에 대해 이해할 수 있을까?
    사실 우리의 마지막을 이해한다는 건 흔히들 청춘이라 부르는, 모든 것이 처음으로 기억되던 시절이 과연 온전히 사랑스러웠는지 의심하는 것만큼이나 별 쓸모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삶은 사실 특별한 의미 없이 우연처럼 흘러가고, 다시 그때 그 처음처럼 별일 없다는 듯 태연하게 마지막 앞에 서 있게 만든다.
    그냥 그렇다. 그 시작과 처음에는 특별한 의미나 이유가 없다.
    그렇게 그녀의 시간도 바람이 옷깃을 스치듯이 흘러갔다. 그토록 자연스럽게 소리 소문도 없이 유일하게 사랑한 보호자였던 유모와 강제로 헤어지던 날 영원히 자신의 행복은 끝났다고 굳게 믿었던 열 살 남짓한 아이에서 어느덧 유모와 외할머니보다 더 좋아하는 남자아이가 생겼던 시절, 더 이상 고모네 저택으로 걸려오던 할머니의 전화를 기다리지 않던 때로부터 너무 멀리 와 버렸다. 이제는 유년 시절 유일하게 사랑했던 두 사람과 진작 헤어져 청춘을 가뿐히 넘어가고 그 이후로도 재빠르게 모든 시절을 넘어오며 노인이 되었다.
    처음에는 뭐 이런 운 좋은 사람이 다 있나, 과연 이 사람처럼 운 좋게 몸에도 별 탈 없이 곱게 나이 들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이것이야말로 엄청난 행운이 아닌가? 그러니 이제는 최후의 승리자처럼 반짝이는 왕관을 쓴 여왕의 회고록에 얼마나 깊은 이야기가 들려줄 수 있을까 의심하기 시작했다.
    종국에는 귀한 가문의 영애로 공주처럼 산 그녀에 대한 질투도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물론 그 누구의 삶도 쉽지 않다는 건 머리로 잘 알지만, 그래도 각종 차별과 시대의 폭력 앞에 노출된 약자들에 비하면 유리온실 속에 보호받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의 아픔들은 그 모든 비극들에 비하면 엄살 같기도 했다.
    물론 그 넘겨짚기도 중반에 다다라서는 경솔한 생각이었다는 걸 깨달았지만, 그녀가 태어나면서부터 가진 후광은 그만큼 강력했다. 어디든 자신만만하고 할 수 있고 해낼 수 있다고 믿을 수 있는 자리에 처음부터 존재해 왔다는 것. 물론 그 유년 시절은 스스로 외톨이 같았고 주어온 아이 같아 힘들었다지만 그런 불안감도 사실은 생각보다 많은 아이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일이 아닌가?
    하지만 단지 남들보다 운이 좋았다고 넘겨짚기에는 그녀에게도 삶은 그토록 끝가지 간질간질하게 온몸을 들었다 놨다 끝에 가서도 결판이 나지 않는 지루한 싸움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그 긴 시간을 완결해 나가는 이의 진실한 고백, 삶에 대한 생생한 사랑은 그래서 흠모할 수 밖에 없었다.
    글로리아란 이름을 가진 소녀인 동시에 당대 록펠러 가와 어깨를 나란히 하던 밴더빌트 가문의 사람이었던 결코 평범할 수 없었던 아이. 그 아이가 모든 홀로 겪어내며 스스로를 지켜내야 했던 시간들을 이제는 모두 지나가 버린 어제의 세계다. 이제는 당사자도 짐작하기 어려운 먼 과거 속 세상은 그 어떤 틈도 내주지 않고 그녀에게서 스쳐가 버렸다.
    그렇게 시간은 언제나 간담이 다 서늘해질 정도로 신속하고 정확하게 증발해 버린다. 그러니 한 세기 가까이 살아내는 일은, 무엇보다 처음부터 끝까지 열정적으로 자기 자신을 견뎌내는 일은 그 자체로 엄청난 일이다. 현실에서 삶이 시간 앞에 바스러져 재가 되는 일은 결코 노인과 병을 얻은 사람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니까.
    너무 많은 이들이 이미 다 늙기도 전에 죽은 채로 숨만 쉬기도 한다. 그러니 어떤 식으로든 그녀가 지켜낸 진실한 고백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이들이 무언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 무사히 자신만의 삶을 완결해 내기를 응원하게 만든다.
    그런 묘한 소망을 품게 하는 그녀의 말들, 당신의 언어.
    비록 시작은 질투였지만 결국엔 흠모하게 되는 글로리아 밴더빌트 그녀의 매력, 당신의 단어들.

    _이가영은 끊임없이 오랜 시간 동안 소설 쓰기를 하는 작가다. 제대로 읽고 쓸 수 있으며, 명확하게 말하고, 섬세하게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그녀는 소설로 등단을 하겠다는 꿈을 갖고 있는 '글을 쓰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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