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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대로 읽고 쓸 수 있으며, 명확하게 말하고, 섬세하게 들을 수 있기를 원합니다
    Gayoung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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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유고(遺稿)
    name : 이가영    date : 2017-04-03 18:33:52
    추천수 17
    조회수   555
    어떤 유고(遺稿)
    글 : 이가영 (작가)

    -Vilelm Hammershoi (5/15, 1864- 2/13, 1916)
    1991년, 그의 하나뿐인 아들은 매우 난감한 상황에 처한다. 정말이지 어느 쪽을 선택해도 애매 했다. 고인의 유언에 따라 미완성 유고를 공개할 것인가, 아니면 문학의 역사에 기여하기 위해서라도 보존할 것인가?
    혹자는 위대한 작가의 글이라면, 가장 최악의 작품일지라도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다고 했다. 무엇보다 그간 그의 작품을 읽으며 행복을 느끼며, 새 이야기를 기다려 온 독자들에게도 알 권리가 있지 않겠는가? 심지어 그 원고가 개인의 치부를 드러내는 내밀한 일기도 아닌 그냥 이야기인데? 이는 엄연히 평생에 걸쳐 그가 사랑하며 남긴 작품이다. 어쩌면 공개하는 게 모두를 위한 일이 아닐까? 사실 그 자신도 마지막 원고를 없애고 싶었던 건 아닐지 모른다. 그럼 차라리 스스로 모두 찧어 버렸겠지. 아니지, 자기 자식과도 같은 작품을 스스로 없애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인가? 그것도 심신이 모두 지쳐버린 마당에 차마 그토록 완성하고 싶던 글을 조각낼 수는 없었으리라.
    결국 작가의 아내는 그가 남긴 이 숙제를 쉽게 처리할 수가 없었다. 분명 남편은 죽어가면서도 거듭 미완성의 이 원고를 소각하라고 당부했지만, 마지막 순간 시시각각 닥쳐오는 죽음에 저항하면서 써 내려간 어엿한 작품을 도저히 죽일 수가 없었다. 비록 그 시작과 끝이 평소대로 완벽하게 채워지지 않은, 사방으로 조각난 메모에 불과했을지라도 도저히 태울 수 없었다. 이리하여 결국, 그 막중한 책임은 아들에게로 넘어갔다.
    그리하여 그는 어느날 갑자기 세상의 온갖 딜레마를 욱여넣은 책임을 넘겨받는다. 대체 어찌 한단 말인가. 차라리 속 시원하게 공개해버릴까? 그럼 고인의 신성한 유언은 어찌되는 것인가? 죽은 자에게도 인권이란 게 있다. 아무래도 생전에 완벽주의 성향의 작가였던 아버지의 마지막 자존심을 손상 입혀서는 안 될 것 같다. 무엇보다 이는 결코 신사적인 행동이 아니다. 당시 많은 이들이 그런 양심의 문제로 원고 공개를 반대했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그 메모들을 손상시키는 일은 문학사적 손해로 여겼다. 차라리 만인에 공개해 그가 남긴 작품들을 더욱 풍요롭게 하기를 바랐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미완성 원고는 그 어떤 작가의 초고보다 특별했다.
    생전에 작가는 남들과는 좀 특이한 작업 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원고지가 아닌 인덱스카드에 초고를 작성했는데, 평소에 카드를 고무 밴드로 묶은 다음 들고 다니며 그 뭉치를 손안에서 굴리거나 카드 순서를 뒤바꾸는 ‘놀이’를 했다. 그 놀이가 곧 탈고의 과정이었던 것인데, 최종적으로 비서나 부인이 이 메모들을 타이핑했다. 마지막에는 이것들을 집 뒤뜰 소각장에서 직접 불태웠다. 그리고 그 자신은 결코 마지막 작품이라 예상하지 못했던 총 138개의 인덱스카드. 8000개 단어, 그 최후의 작품.
    ‘The original of Laura’.

    -그의 마지막 육필 원고, 인덱스카드.
    이 메모들의 공개 여부를 고민하는 ‘드미트리 나보코프’의 이야기는 이후 ‘드미트리 신드롬’으로 회자되었다. 그리고 해가 갈수록 전문가들과 독자 대중의 안타까운 호기심을 부추겨 왔다. 이토록 요란했던 소동은 그 후 수십 년이 흘러서야 끝이 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어느 날 아버지의 환영이 나타나 그런 골칫거리는 이제 집어치우고 차라리 그 돈으로 인생을 즐기라는 경쾌한 조언을 해주셨다 한다. 그리고 마침내 2008년, 마침내 이 메모들의 출간이 결정된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Vladimir Nabokov)
    - 4/22. 1899 ~ 7/2. 1977-

    *이 어린이는 이 다음에 자라서, <롤리타>를 씁니다.

     

    _이가영은 끊임없이 오랜 시간 동안 소설 쓰기를 하는 작가다. 제대로 읽고 쓸 수 있으며, 명확하게 말하고, 섬세하게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그녀는 소설로 등단을 하겠다는 꿈을 갖고 있는 '글을 쓰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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