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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션에 대한 글을 쓰는 패션칼럼니스트입니다
    Eunjung Kim
    Fashion Column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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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색상의 힘 (2013-10-08)
    추천수 199
    조회수   3,036
    색상의 힘
    글·사진 : 김은정 (패션칼럼니스트)
    색(色)이 없다면 무슨 즐거움으로 옷을 입을지 모르겠다. 검은색과 흰색 옷만 입는다고 상상해 보자. 매일같이 피아노 건반을 쳐다보는 느낌일 것이다. 물론 흑백이 주는 세련미를 간과할 수는 없다. 하지만 세련미도 지루해지면 돌파구가 필요한 법이다. 색상은 즐거움의 샘이 아닐까?
    어떤 사람이 감각이 있는지 없는지를 볼 때 색상의 몫은 지대하다. 옷을 어떤 색으로 맞추어 입었는지 눈여겨보면 그 사람의 감(感)을 알 수 있다. 버스 안에서, 공항에서, 길에서, 지하철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옷차림은 성공작이든 실패작이든 내게 옷 입는 재미를 갖도록 뇌세포를 동분서주하게 만든다.
    색을 잘 다루면 옷을 단순하게 입어도 심심하지 않게 보인다. 예를 들면 흰색 티셔츠와 청바지 차림에 빨간색이나 초록색 카디건을 걸치면 전체적인 느낌이 산뜻하다. 강렬한 색상은 별다른 액세서리를 곁들이지 않아도 존재감이 크다. 그런 반면 감색(네이비 블루)이나 베이지 등 손이 쉽게 가는 차분한 빛깔은 방점이 될 만한 뭔가로 감각적인 동요를 불러일으켜야 생기가 돈다. 그 뭔가는 스카프가 될 수도, 브로치가 될 수도, 목걸이가 될 수도, 벨트가 될 수도 있다.
    색을 자유자재로 조정하기란 녹록하지 않은 일이다. ‘조정’은 색과의 관계가 가까워져만 가능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친해질 수 있다는 말인가? 우선 자신이 좋아하는 색을 간파해야 한다. 좋아하는 색이 확실하지 않아도 눈길이 가는 색이 있게 마련이다. 없으면 찾아야 한다. 각종 포스터, 광고, 잡지, 그림, 타인의 옷차림, 식물, 하늘, 음식, 가게 진열품 등등 어딘가 발걸음을 멈추게끔 주파수를 보내는 색이 없을 리 없다. 색을 기억하기 위해 나는 카메라로 찍어 두고 틈이 날 때마다 꺼내본다. 팜플렛이나 잡지에서 마음에 드는 색상이나 톤을 발견하면 눈 안에 아로새기기 위해 벽이나 문에 덕지덕지 붙여놓는다. 동공에 맺히면 의식에 스며들기 시작하고 어떤 옷에 손이 가게 된다(이 때 그 색을 둘러싼 여타 색까지 눈에 넣어두도록 한다). 옷차림 전체를 하나의 색으로 도배하지 않고 싶다면 함께 할 파트너 색을 찾는다. 처음에는 두 가지 색을 쓰도록 한다. 두 가지 색상에 익숙해지다 보면 변화를 주고 싶은 욕구에 제3의 색을 추가하고 싶은 것이 ‘좀 더 다르게 돋보이고’ 싶은 사람의 마음이다. 그렇게 실습을 하는 사이 색상 놀이는 조금씩 편해진다.
    각각의 색을 쳐다보고 있으면 저마다 할 말들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내가 제일 센 걸! (빨강)”, “건강하게 살자!(초록)”, “난 항상 명랑해!(노랑)”, “마음을 비우자!(흰색)”, “누가 뭐래도 멋져!(검정)”, “사랑스러움을 더해주는 천사(분홍)”, “난 참 성숙하지!(회색)”, “여름 하면 나를 따라올 자가 없지!(파랑)”…… 이처럼 다양한 목소리를 내니 색의 유희에 흠뻑 빠져들고 마는 것이다. 더한 유희는 색과 색의 만남에서 경험한다. 그런 식으로 쌓은 나만의 원칙을 요약하는 단어는 ‘보완’이다. 검정과 흰색을 제외하고 완벽한 색은 없다. 어쩌면 빨강이 완벽에 가까울 수도 있다. 부족한 색 하나가 부족한 색 또 하나와 손잡고 힘을 불려 완연한 아름다움을 탄생시키는 것이 색의 책임감이란 생각이 든다.
    점잖은 감색이 연분홍과 맞닿으면 연약함을 얻으며 여성스러워지고 흰색 옆에서는 정숙해지고 초록과 함께하면 산뜻해지고 검정과 손잡으면 다소 어두워지긴 해도 시크하다. 배색은 이같이 중요하다.
    베이지를 예로 들어보겠다. 베이지 자체가 지닌 무난한 심성은 어디에나 어우러진다. 무난함은 중화제 같은 역할을 한다. 샤넬 여사의 사랑을 받은 베이지와 검정의 조화는 반듯하고 고급스럽다. 흰색과 마주하면 어딘지 ‘사파리적’이 되어 자연미가 두드러지면서 소박해진다. 그 소박함은 골드가 옆에 다가갔을 때 화려한 골드를 다정하게 토닥거려주는 포용력으로 탈바꿈하여 튀는 수준의 격을 한 단계 상승시킨다. 정도를 걷는 면모가 훌륭한 색임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하루하루 옷을 어떻게 입을지 망설여질 때 색은 똘똘한 길잡이가 되어준다. 그 날 그 날의 기후는 내게 색을 암시해 준다. 창 밖으로 햇빛이 선명하면 내 마음은 이미 흰색으로 칠해져 있다. 잔뜩 구름이 끼면 환한 핑크나 오렌지 등 또렷하게 눈에 들어오는 밝은 색이 날씨를 닮고 싶어 칙칙해진 기분을 전환시켜 준다. 비가 오면 빗물이 튀어도 티가 잘 나지 않는 검은색으로 입는다.
    색의 마력은 거부하기가 힘들다. 유행이라는 이름의 소용돌이에 이끌려 소위 "트렌드 컬러’에 촉이 한 번 꽂히면 그 색이 머릿속에서 계속 노래를 한다.
    멋을 아무리 내도 색을 잘못 쓰면 소용 없는 일이다. 옷을 잘 입을 자신이 없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나는 줄기차게 색을 활용해보라고 조언한다. 티셔츠, 셔츠, 카디건, 바지, 치마, 원피스. 늘 접하는 뻔한 옷들이지만 자신만의 색의 궁합을 찾으면 감각적으로 피력된다. 나의 규칙은‘쉬운 옷’에 색을 더하는 것이다. 빨강은 확신, 검정은 패션, 노랑은 젊음, 분홍은 감성, 초록은 휴식, 보라는 멋, 파랑은 여행, 주황은 동심……빨간 입술, 여고생의 남색 교복 치마, 길 가상자리에 핀 주홍색 꽃들, 케이크의 파스텔 빛, 진열장 속 마네킹 위에서 빛나는 형광 빛 옐로, 황토색 건물 벽과 교차하는 종려나무의 고개 떨군 잎자루, 빛 바랜 어느 식당의 나무 식탁, 멋쟁이 친구의 팔목에서 묘한 화음을 들려주는 산호 팔찌와 금 팔찌, 증권회사에 다닐 법한 남자의 말끔한 옥스퍼드 셔츠. 터키석 귀고리, 빨랫줄에 걸린 꽃무늬 원피스, 성심껏 차린 모양새가 신사의 향내를 풍기는 할아버지의 회색 양복 바지. 도처에서 숨을 내쉬는 색은 영감의 소중한 원천이다.
    미운 색은 없다. 관심을 가져주고 짝을 제대로 찾아주면 말이다. 짝을 찾는 일은 쉽지는 않으나 주변을 살피면 보기 좋은 색이 신경을 잡아 당길 것이다. 그렇게 색을 주시하다 보면 어느 새 멋과 용접하는 날이 올 것이다. 색과 지내온 지난 시간을 곱씹어 보건대 거듭 드는 생각은 색과 색의 만남은 끝이 없는 연구 대상이라는 것. 색을 놓을 수 없는 이유다.

     

    _김은정은 이화여대 불어불문학과와 프랑스 파리 에스모드 스타일리즘 학과를 졸업했다. 파리에서 일하다 패션잡지 「엘르」가 국내에 들어온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패션 에디터로의 열망을 안고 한국에 돌아왔다. 패션 라이센스 잡지 엘르(ELLE KOREA), 마리 끌레르(Marie Claire KOREA)에서 패션&뷰티 디렉터, 마담 휘가로(madam figaro KOREA)에서 편집장을 역임했다. 이후 샤넬 코리아(CHANEL KOREA)에서 홍보부장으로 근무했다. 현재는 싱가포르에 거주하며 패션에 관한 글을 한국의 패션잡지에 기고하며 패션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며 패션과의 끈을 단 한순간도 놓지 않고 살고 있다. 저서로는 [Leaving Living Loving](2009), [옷 이야기](2011)가 있다. ⓒPhoto by Jin Soo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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