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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션에 대한 글을 쓰는 패션칼럼니스트입니다
    Eunjung Kim
    Fashion Column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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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옷 이야기 (2013-11-08)
    name : 김은정 (패션 칼럼니스트)    date : 2016-08-01 10:12:10
    추천수 53
    조회수   1,581
    옷 이야기
    글·사진 : 김은정 (패션칼럼니스트)
    옷들이 내게 말을 걸어온다는 얘기를 하면 사람들은 신기한 표정 반 웃음 진 표정 반을 내보이며 옷이 무슨 얘기를 그렇게 하냐고 묻는다. 그렇다. 내 곁을 지키는 옷들은 주인에게 쓴 소리 단 소리를 조잘거리며 나의 하루하루를 보좌한다. 어떤 옷은 제발 좀 입어달라고 떼쓰지를 않나 어떤 옷은 쉬고 싶으니 다른 옷 좀 입어 보라고 권하는가 하면 또 어떤 옷은 같이 어울릴 새 친구를 조달해 달라고 보챈다. 나의 이런 믿음은 미친 여자로 볼 확률이 높은 성질의 것임이 자명하다. 허나 어쩌랴. 비정상적인 믿음 덕에 매일 아침 하루를 여는 마음이 새로울 수 있으니 말이다.
    옷을 그리도 아끼고 좋아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우선 벌거벗고 살 수 없도록 해주니 외출할 때마다 밀려오는 감사함이 이루 말할 수 없다. 상상해 보라. 지하철 안, 카페, 버스 정류장, 파티 등의 장소에 모인 사람들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상태를. 한 마디로 끔찍한 일이다. 옷에 감사하는 이유 하나 더. 신체의 단점을 감춰주고 장점을 부각시키는 역할은 옷이 아니면 들어줄 수 없다. 품이 느슨한 원피스를 집어들 때마다 살그머니 고개를 내민 뱃살이 덮이면 마음을 내려놓게 된다. 화려한 프린트가 새겨진 의상은 구부리거나 앉을 때 접히는 살집을 교묘하게 보호한다. 무늬가 현란하고 색이 풍부히 들어가면 접힌 살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우리의 생활을 지배하는 여러 가지 옷들은 저마다의 힘을 갖고 있다. 옷을 주제로 수다를 떨 수 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하나씩 짚어 보겠다. 원피스는 상의와 하의의 매치에 신경을 그다지 쓰지 않아도 되는 편리한 옷이다. 혼자 있어도 잘 사는 옷이다. 특히 일년 내내 햇빛을 보는 국가에서는 원피스가 폭 넓은 사랑을 받는다. 하나짜리 원피스를 입으면 일직선으로 쭉 뻗친 고속도로가 연상되곤 하는데 그 느낌이 시원하다. 그런데 원피스만 내내 입다 보면 심드렁해지는 나 자신을 발견하면서 위아래로 조화시킬 다른 옷들을 찾게 되고 만다. 코디네이션을 도모할 뭔가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청바지다. 전 지구인이 “싫다 좋다”를 논하지 않고 즐겨 입는 청바지는 생각할수록 대단한 옷이다. 남녀노소가 나이에 상관 없이 입는다는 사실이 위대하다. 지하철 안에서 청바지 입은 승객 수를 셀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어쩌면 다들 각자의 다리 길이에 맞는 청바지들을 찾아내는지 모르겠다. 청바지만큼 지위나 빈부의 차이 없이 누가 입어도 어색하지 않은 옷이 티셔츠다. 티셔츠가 있어 몸도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것. 아무리 사도 모자라지 않는 옷이다.
    이처럼 몸에 여유를 선물하는 옷이 존재하는가 하면 긴장감을 건네는 옷도 있게 마련이다. 예의를 부여하는 재킷과 셔츠는 보는 이로 하여금 최소한의 믿음을 갖도록 돕는 의젓한 맏언니들이다. 재킷은 격식과 거리를 둔 티셔츠와 청바지의 체면을 살릴 뿐만 아니라 어깨가 좁은 이들의 구세주이기도 하며 성장(盛粧)의 문을 여는 첫 번째 옷인 까닭에 특별한 대접을 받음이 마땅하다. 셔츠를 떠올리면 마음이 청소가 되는 느낌이 든다. 모서리가 뚜렷한 반듯한 깃과 일렬로 늘어선 단추들, 군기가 들어간 소매산, 깨끗하게 다려진 몸판 등 셔츠의 올곧은 생김새는 행동에 아름다운 제약을 가한다. 셔츠가 남성이라면 블라우스는 여성이다. 솔직히 곡선 진 블라우스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날이 선 현대적 스타일만이 세련미의 잣대가 아님을 절감한다. 부드러운 시폰 자락이 살랑거리는 블라우스를 청바지와 함께 입으면 쿨하지 못하다고 확신했던 간들거림이 시크한 감(感)으로 전환된다. ‘시크’를 논하자니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트렌치 코트다. 시크한 면모가 제일 앞서는 옷이 아닐까 싶다. 어떤 옷을 입든 트렌치 코트만 걸치면 스타일리시해 보이는(청바지와 티셔츠 차림부터 드레스까지) 점이 무엇보다 신기하다. 철저한 기능성에 바탕을 둔 트렌치 코트의 구조는 새빨간 트렌치 코트마저 난해하지 않게 느껴지도록 하니 1백60여 년 된 역사의 저력에 새삼 혀가 내둘린다.

    옷 중에서 지혜롭다고 여기는 아이템이 있다면 피케 셔츠라고 말하고 싶다. 셔츠의 격과 티셔츠의 실용성이 보기 좋게 합쳐졌기 때문이다. 캐주얼한 차림 속에서는 우아하게 빛나고 포멀한 차림 위에서는 편안하게 돋보이는 양면성 덕에 피케 셔츠를 귀하게 대한다. 사람마다 편하고 불편한 옷이 제각각 일 것이다. 차이는 개인적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에 의거하겠지만 체형과 밀접할 확률이 높다. 그러한 맥락에서 바지는 신경을 비중 있게 건드리는 옷이다. 하체에 너무도 자연스럽게 달라붙는 나잇살이 노출되는 것이 부담스럽다. 그래도 바지를 거부할 수 없는 상황이 있다면 성묘하러 갈 때나 제삿날 큰집에 갈 때다. 조상을 모실 때는 통이 낙낙한 검은색 바지를 입는다. 패션이 좋아도 함께할 곳이 있고 그렇지 않은 곳이 있는 법이다. 바지는 옷 입는 것이 귀찮게 느껴지는 날과 추운 날 입게 된다. 그렇다고 치마를 배제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치마를 입는다면 발목까지 오는 플레어 스커트에 양말을 신는다. 치마는 “저 여자에요!”를 외치는 옷이라서 좋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다리를 스치는 치맛자락 그리고 치맛자락 밑에서 낭랑하게 울리는 구두 굽 소리에 작은 미소가 쓱 귀에 걸린다. 여자로 산다는 미소 말이다.
    모든 옷은 저마다의 생명력을 쥐고 태어난다. 예쁜 옷도 있고 덜 예쁜 옷도 있다. 왜 만들었는지 모를 미운 옷도 널려 있다. 어떤 주인을 만나는 가에 따라 예쁜 옷이 빛을 잃을 수도, 그저 그런 옷이 빛이 날 수가 있다. 옷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자신에 맞게 입도록 훈련이 될 것이고 훈련이 되면 옷을 자연스럽게 소화할 것이다. 옷과 사람, 둘 사이가 통해야 옷도 살고 사람도 사는 가운데 일색의 조화가 생긴다. 조화는 멋의 어머니. 멋은 옷을 입는 즐거움을 낳는다. 옷을 즐기면 자신감이 찾아 든다. 자신감은 긍정적인 에너지를 공급하고 긍정적인 에너지는 생기를 빚고 생기는 사람을 아름답게 보이도록 마술을 부린다. 옷은 생기를 전하는 매개체다. 내가 옷을 사랑하는 이유다.

     

    _김은정은 이화여대 불어불문학과와 프랑스 파리 에스모드 스타일리즘 학과를 졸업했다. 파리에서 일하다 패션잡지 「엘르」가 국내에 들어온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패션 에디터로의 열망을 안고 한국에 돌아왔다. 패션 라이센스 잡지 엘르(ELLE KOREA), 마리 끌레르(Marie Claire KOREA)에서 패션&뷰티 디렉터, 마담 휘가로(madam figaro KOREA)에서 편집장을 역임했다. 이후 샤넬 코리아(CHANEL KOREA)에서 홍보부장으로 근무했다. 현재는 싱가포르에 거주하며 패션에 관한 글을 한국의 패션잡지에 기고하며 패션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며 패션과의 끈을 단 한순간도 놓지 않고 살고 있다. 저서로는 [Leaving Living Loving](2009), [옷 이야기](2011)가 있다. ⓒPhoto by Jin Soo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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