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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골버스
      빠르게 지나가는 도시의 속도를 멈추고, 천천히 흐르는 시골버스에 몸을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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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SAY
    길을 읽어주는 남자, 시골버스_삼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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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골버스, 삼척
  • -prologue-


    최근 2000년대 초 한국 영화에 흠뻑 빠져있었다.
    진하지 않은 향기를 머금은 그 필름 영화가 좋았다.
    나는 최신의 카메라로 영상을 찍지만,
    마음의 여유가 없을 때 옛날 필름 영화를 찾게 되는 건
    ‘시나브로’
    그 은근한 멋을 맛보고 싶은 까닭이다.

    결국,
    기술의 발전은 마음의 노선과 길이 달랐다.

    영화 ‘꽃 피는 봄이 오면’의 촬영지. 서울살이에 지친 현우가
    강원도 ‘도계중학교’ 관악부 선생님을 하면서 그려지는
    탄광촌 마을의 드라마.
    영화 제목처럼 꽃 피는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었을까?
    출발 전, 세 번째 ‘꽃 피는 봄이 오면’을 보고 기차에 올라탔다.

  • #도계역으로 가는 무궁화호

  • 도계는 서울에서 버스와 기차로 가는 방법이 있다. 버스는 삼척에 들렀다가 다른 버스로 돌아가는 노선이고, 기차는 도계역에 바로 정차한다. 비록 1시간 가까이 더 걸리지만, 갈아 타지 않는 무궁화호 기차에 올라탔다.


    #도계역으로 가는 무궁화호

  • 내 좌석의 번호를 확인하고 자리에 앉았다. 뒤에 온 할머니가 자신의 자리에 다른 이가 앉아있어 표를 비교해보다가 본인의 표가 내일 기차임을 알았다.
    “야야! 이거 표가 내일 표다”
    놀란 할머니는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서 다시 물어보고는 기차에서 내리려고 하셨다. 그때 오늘 그 자리의 주인이 내리지 말고 우선 타라고 했다. 주변에 다른 아저씨도 내리지 말고 있으면 승무원이 올 거고 그때 이야기해보라고 할머니를 부추겼다. 그렇게 내일의 할머니와 오늘의 아저씨, 장난치는 꼬마들, 혼내는 엄마, 그리고 이 광경을 흥미롭게 지켜보는 나까지, 기차문이 닫히고 오늘의 무궁화가 출발했다.


  • #무궁화호 승무원

  • 기차와 삶을 비교해본 적이 있었다. 한 번 달리면 되돌릴 수 없는 열차와 한 번 태어나면 되돌릴 수 없는 우리 삶의 비가역적인 부분이 닮았다고 생각하면서부터였다. 기차를 타기 위해 달려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마치 난자를 향해 달려가는 정자의 움직임으로 보였다. 기차에 올라타자마자 문이 닫히고 하나의 정자가 난자에 수정되는 순간 문이 닫혔다. 기차는 출발했고 생명이 탄생했다. 나에게 기차표와 출생신고서는 이렇게 닮아 보였다.
    내 나이 서른둘. 지금 나는 32번 좌석에 앉아되돌릴 수 없는 기찻길 위에 있다. 당신은 지금 몇 번 좌석에서 어떤 풍경을 바라보고 있을까? 같은 칸에 탄 사람들은 또 어떤 모습일까? 기차가 인생이라면 기왕이면 고속 열차보다는 천천히 달리는 이 무궁화호에 올라타고 싶다.


  • #거대한 브로콜리가 창밖에 서있다


    #보낸 걸까 놓친 걸까

  • 해 질 녘에야 도계역에 도착했다. 늦기 전에 숙소를 구해야 했지만, 그것보다 오래된 나무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곳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는 도계의 집들이 세트장처럼 펼쳐져 있다. 세로로 높은 서울의 아파트가 아닌 가로로 길게 늘어진 도계의 아파트. 땅부자가 아닌 하늘 부자. 이것이 도계의 첫인사였다.

  • 불과 도계에 도착한지 삼십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마음이 편안해진다. 내가 ‘잘 왔다’라는 생각이 들게 되는 건, 멈춰버린 동네가 나를 같이 멈추게 한 까닭이다. 서울에서 쌓아올린 나뭇조각들이 아슬아슬하게 휘청거리다가 여기 도계에서 무너져내린다. 생각을 멈추고 마을을 바라본다.


  • #도계읍의 주택가


  • #도계로 이끈 영화 간판


  • #연탄


  • #도계읍 풍경


  • #도계읍 풍경


  • #천연기념물 95호 <긴잎느티나무>


  • #태백장 여관

  • ‘시골버스’를 하면서 어디에서 묵을지 걱정하지 않았다. 걷다 보면 오늘은 여기라고 말해주는 곳이 늘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렇게 ‘태백장 여관’이 나타났다. 시설이 좋은 곳은 근처에 있지만, 그곳에는 사람도 없고 이야기도 없을게 분명하여 이곳으로 들어갔다. 한여름에 가장 걱정되는 건 에어컨이었다. 들어가자마자 서울깍쟁이 티 내듯 “에어컨 있어요?” 라고 여쭤보았다. 할머니는 대답 대신 문을 열고 보여주셨다. “요즘 에어컨 없는 곳이 어딨대요?” 하신다. 눈으로 한 번, 말로 한 번 혼이 났다. “도배도 엊그제 해서 이렇게 깨끗하대요” 할머니는 자려면 자고 말려면 말라는 식으로 한마디를 던지고 뒤도 돌아보지 않는다. “할머니 카드 되나요?” “카드? 그거 긁으면 되지” 첫날, 묘하게 쿨한 할머니가 계시는 ‘태백장 여관’에서 묵게 되었다.


  • #오른쪽 1번 방


    #에어컨도 있고 선풍기도 있다


  • #태백장 여관

  • 다행히 서울의 열대야는 아직 도계까지 쫓아오지 못했나 보다. 선선한 날씨에 숨이 트이는 저녁을 맞이했다. 슬 잠을 자려고 문을 잠그려는데 문이 잠기지 않았다. 안에 하나 더 있는 미닫이문에 의지해서 잠을 청했다. 결국, 선잠으로 아침을 맞았다. 일어나자마자 할머니에게 문이 안 잠긴다고 하니 “밖에서 잠그면 잠긴대요” 하신다... ‘그럼 내가 나갈 수도 없지 않은가.’ 그 말이 더 무서워서 이곳의 정체를 잠깐 의심했지만, “나도 한여름에 창문 다 열고 대문 다 열고 자도 아무 일 없대요” 라고 하신다. “할머니 하루 더 묵을게요. 또 카드예요” 긴 세월 아무 일 없다는 할머니의 말씀에 또 바로 마음이 넘어갔다. 배낭에 노트와 물 한 병을 넣었다. 여분의 필름도 챙기고 카메라를 집어 들어 반셔터를 눌러보았다.


  • #밖에서 잠그면 되지...

    이런, 배터리가 다 됐는지,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옛날 필름 카메라에 들어가는 구하기 힘든 배터리여서 난감해지기 시작했다. 이제 겨우 둘째 날인데 카메라가 작동되지 않으면 심봉사가 된 채로 도계를 정처 없이 떠돌 운명이었다. 나는 심청이 대신 문구점을 찾아야 했다.

  • 우선 ‘태백장 여관’ 바로 앞 문구점에 들렀다. 찾던 배터리는 없었다. 사장님은 ‘만물사’라는 곳을 알려주셨다. 거기는 이름처럼 없는 게 없을 거라고 하시면서 미로 같은 길을 설명해 주신다. 중간쯤 오다가 길이 헷갈려 다른 문구점에 들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배터리도 보여드렸지만, 여기도 그 배터리는 없었다. 다시 ‘만물사’로 향했다.


    #중간 문구점

    드디어 보이는 간판. 반가운 마음에 여기에 오게 된 여정부터 늘어놓았다. 주인아주머니는 땀에 젖은 나에게 선풍기부터 돌려주신다. 한쪽 구석, 먼지 쌓인 박스에서 배터리를 찾으셨다. 다시 카메라에 빨간 불이 들어온다. 심봉사, 다시 눈을 떴다! “어머니 여기 탄광촌 가보려고 하는데요?” 탄광촌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보았다. “아 저 위에 탄광촌? 까막 동네라고 저 위에 있어요. 까마귀처럼 검다 그래서 까막 동네!” ‘까막 동네라..’ 이름만 들어도 어떤 동네일지가 그려진다.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 전 그냥 ‘탄광촌’이라는 명사는 마을 사람들의 숨을 통해서 형용사가 되어버린다.
    까마귀처럼 검다 그래서 지어진 이름
    ‘까막 동네’

  • 방전된 배터리로 시작해 만물사에 도착하기 전까지 사뭇 이 사람들의 마음이 고마워진다. 핸드폰으로 길을 찾거나 물어보았다면, 이런 이야기는 듣지 못했을 것이다. 핸드폰엔 방대한 정보가 있지만, 사람에게는 깊은 마음이 있음을 또 한 번 느꼈다.


    #만물사

    이렇게 ‘시골버스’의 규칙이 하나 더 만들었다.

    핸드폰으로 길을 찾지 말 것.

    사람들에게 물어 물어갈 것.

    ‘만물사’에서 나와 ‘까막 동네’까지 십여 분을 걸었다. 한낮의 온도는 39도를 넘어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도계를 가로지르는 철길은 뜨겁게 달궈졌다.


    #까막동네 초입


  • #까막동네

  • 마을은 단층집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모양이다. 벽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탄가루들이 셋집살이를 하고 있다. 곧게 뻗은 골목이 아닌 굽이 도는 골목길. 그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어떤 풍경이 나올지 기대하게 된다. 조심히 조용히 마을을 바라보았다.
    나이 드신 분들이 마을 정자에 하나둘씩 모인다. 여기 계신 분들은 예전 탄광이 한창일 때 이곳에서 평생을 바친 노동자들이라고 한다. 어른들의 연세만큼이나 마을도 나이가 들어 보였다. ‘막장인생’ 요즘 말로는 험한 의미가 담겨버렸지만, ‘막장’은 갱도의 막다른 길을 일컫는다. 볕이라고는 한 줌도 들어오지 않는 이 막장에서 갱도를 뚫고 탄을 실어 나르는 삶을 감히 내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 치열한 삶의 현장과는 반대로 너무나 조용한 마을이 마치 9라운드를 모두 마친 복서의 숨소리처럼 들렸다. 마을 어르신에게 탄광 가는 길을 물어보고 탄광으로 향했다. 마음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까막동네


  • #탄광 입구

  • 삶의 현장에 함부로 들어가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입구 앞에서만 사진을 찍었다. 아직 운영이 되고 있는 듯 일하시는 분들도 보이고, 거대한 기계는 굉음을 내며 검은 탄을 실어 날랐다. 햇빛 사이로 검은 탄가루들이 반짝였다. 입구에 꽃이 피어 있었는데 그 위로도 탄가루들이 내려앉았다. 이곳 사람들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탄광 입구

  • 너무나 아쉬웠지만 더 들어가기에는 용기가 나질 않아서 다시 동네로 발을 돌렸다. 한 열 발자국 정도 걸었을까? 이대로 가면 후회할 것 같아 다시 발걸음을 돌려 그 안으로 들어갔다. 밝게 인사하고 당차게 소개해도 나가라고 하면 그때 나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생각보다 나에게 관심이 없었다. 카메라를 꺼내고 담기 시작했다.


    #탄광 풍경


  • #탄광 풍경

  • 탄광의 내부를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는데 저 멀리서 어느 아저씨가 나에게 손짓을 했다. 무단 침입한 나는 체념하고 아저씨에게 다가갔다. “사진작가시오?” 예상치 못한 질문에 얼굴을 쳐다보는데 아저씨의 얼굴이 너무 평온한 얼굴이었다. “아니요 그냥 취미로..” “그래? 나는 사진협회에 등록되어있는데, 내가 도계에서 사진관을 하나 하거든” 아저씨는 낮은 간이의자를 내어주면서 앉으라고 손짓하셨다. 한낮의 더위가 처마 그늘에 가리어져 덕분에 나도 조금 쉴 수 있게 되었다. 아저씨는 낮에는 광부 일을 하시고, 낮에 사진관은 사모님이 봐주신다고 하신다. 나도 도계에 온 까닭과 이곳으로 걸음 하게 된 이유를 소상히 고백했다. 여기 시골의 사람들이 녹음한 안내방송이 나오는 ‘시골버스’에 대해 말씀드렸다.

  • “허 그래그래. 좋은 생각이다” 내가 혼자 시골을 돌아다니면서 ‘시골버스’에 대해 이야기를 드리면 모두들 자신들의 사투리로 나지막이 멘트를 해보신다. 모두가 평소에 쓰던 말투와 익숙한 정류장 이름이지만 내가 대놓고 물어보면 부끄러운 듯 잘 모르겠다고 하신다. “허. 그거 뭐라고 해야 하나” 아저씨도 내심 부끄러우신 듯 웃어넘기신다. 순간 아저씨의 표정이 너무 아름다워 보였다.
    “선생님 저 사진 한 장만 찍어도 될까요?”
    “뭐 볼 게 있다고” “그래”
    카메라를 들고 전문 사진작가님 앞에서 셔터를 눌렀다. “선생님 아무것도 하지 마시고, 지금처럼 그냥 저랑 대화한다고 생각해 주세요”
    탄가루들이 쏟아지는 햇빛에 반짝이는 금가루처럼 보였다.


  • #사진작가 광부 아저씨


  • #사진작가 광부 아저씨

  • 아저씨는 광산으로 나는 또 다른 곳으로 향했다. 좀 전에 발걸음을 돌린 용기가 스스로 대견했다. 올라올 때 뵙던 어르신들이 아직도 정자에 앉아 아무 말씀도 없이 더위를 곁에 두셨다. 나는 내리쬐는 해를 피해 도계역 앞에 있는 카페를 갈 생각이었다. 이렇게 무더위가 심할 때에는 현장에서 일하시는 아버지 생각이 문득 든다. 조금 전 광부 아저씨의 삶과 다르지 않은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면 이 무더위가 덜컥 무서워진다. 아버지에게 전화를 드렸다.
    “여보세요 아버지 일하세요?” “일하지” “날이 너무 더워요 좀 쉬면서 일하세요” “그래 언제 오냐” “저 한 이틀 뒤에요” “그래”
    부자 지간의 통화는 웬만해선 1분을 넘기기 어렵다. 식사는 하셨는지 집에 도착하셨는지 그 두 가지만 여쭤보고는 말이 쏙 들어가 버린다. 아버지는 건축 현장에서 일을 하신다. 예전에 현장 일을 도와드린 적이 있는데, 8층부터 1층까지 각층에 스무 포대씩 시멘트를 나르는 일을 했다. 한 포대만 올려도 다리가 후들거리고 숨이 턱 막혔다. 몸이 성한 나도 이렇게 힘이 드는데 현장의 아버지들은 묵묵히 포대를 실어 나르고 또 실어 날랐다. 결국 나는 하루 일하고 몸살이 나버렸고, 다음 날 그 다음날도 아버지들은 새벽에 현장으로 출근하셨다.

    ‘인이 박힌다’라는 말이 참을 인자인지 사람 인자인지 모르겠지만, 몇십 킬로의 포대를 어깨에 짊어지는 까닭은 그것보다 더 무거운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추측만 해볼 뿐이다. 내가 현장에서 본 아버지들은
    언제나 아버지였고, 나는 가끔 아들이었다.


  • #아버지


  • #대도 사진관

  • 카페에서 시원한 아메리카노를 마시니 해가 중천을 지났다. 약국에 들러 박카스 한 박스를 사고 좀 전에 광부 아저씨가 운영한다는 사진관에 들렀다. 영문을 모르는 사모님이 나오신다. “어쩐 일이세요?” “사진관에 사진 찍으러 왔죠 사장님 계세요?” “아직 안 오셨는데” 능청맞게 농담을 하고 박카스를 드렸다. “아 사실 아까 탄광에 갔다가 아버지 만나 뵙고 이야기를 나눴어요. 오는 길에 인사차 들렀습니다” “아이고. 뭐 이런 걸 사 오고 그래요” 안에서는 따님분이 시원한 보리 차를 내어주신다. 앉아서 사진관과 도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태백장 여관’으로 귀가했다. 해는 저만치 멀어졌고 그 공간을 시원한 공기가 메웠다. 오늘은 도계에 계신 아버지에게 말하지 못한 감사의 마음을 박카스로 대신했다.

  • 문이 잠기지 않는 ‘태백장 여관’ 1번 방도 이젠 그러려니 하며 편하게 잘 수 있게 되었다. 내일은 도계를 떠날 참이었다. 다른 곳으로 옮겨서 ‘시골 버스’의 또 다른 후보지를 찾고 싶었다. 여행지로는 쉽게 가지 않을 이 ‘도계’를 나는 꽤 오랫동안 기억할 것 같다.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하고 살아가는 관광지보다 내 식대로 살아남은 동네가 ‘시골버스’와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과하게 포장할 필요도 없고, 구태여 설명을 붙일 일도 없다. 보여줄 건 사람밖에 남지 않은 곳. 2000년대 초반, 필름 영화에서 내가 느낀 진하지 않은 향기를 머금은 그런 곳들. 다시 떠날 생각을 하니 이틀의 여독이 올라온다. 만난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르고 말들이 스민다. 내일은 할머니와 인사를 나눠야겠다.


  • #태백장 여관 할머니

  • 아침에 일어나 방 정리를 하고 마당에서 할머니를 기다렸다. 묘하게 쿨하셨던 할머니의 자부심은 30년 넘는 시간이 겹겹이 쌓인 이곳에서 만들어진듯하다. 경상도에서 올라오셔서 아직까지 이 여관을 하고 계신 이유와 팔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서 들었다. 할머니의 모습에서 첫날 보았던 천 년 넘은 나무가 있었다. 할머니의 뿌리 깊은 마음 덕분에 오늘의 나까지 편히 쉬고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는 도계의 맛 집에 대해, 그 맛을 만드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까지 한 시간가량을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채웠다. “할머니 가기 전에 사진 한 번만 찍어도 될까요?” “이쁘게 하고 찍어야 하는데” 이미 예쁜 할머니는 예쁜 소녀의 모습으로 당신의 여관 마당에 앉으셨다. 할머니는 교회로 가신다 하시고 나는 터미널로 간다고 했다.


  • #태백장 여관 할머니

    도계 터미널에 도착해서 삼척으로 가는 버스 표를 끊었다. 정류장 반대편에는 탄광촌의 구조물들이 우뚝 솟아 있었다. 오늘도 찌는듯한 폭염. 그새 옷의 경계선을 따라서 피부색이 검게 그을렸고 샌들의 모양은 나의 발등에도 같은 자국을 남겼다. 인적 드문 터미널에서 내 발 등을 보고는 혼자 픽 웃어버렸다.

  • 삼척에 내려 카페의 아주머니에게 덕산이라는 곳을 추천받았다. 남해와는 다르게 덕산으로 가는 시내버스에서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잠시 딴 생각을 하다가 한 정류장을 지나쳤다. 다시 돌아가다는 길에 히치하이킹을 하려 했지만, 부끄러워 눈빛만 쏘고 한참을 걸어서 덕산에 도착했다.


    #한 정거장을 지나치다


    #거대한 마시멜로


    #길 꽃


  • #덕산 입구

    마을부터 둘러보니 아쉽게도 이 마을은 내가 찾는 곳과는 거리가 멀었다. 사람의 첫인상처럼 마을도 첫인상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다시 다른 곳을 찾기에는 시간도 늦고 고단하여 여기서 하루를 묵기로 했다. ‘태백장 여관’의 할머니와 밀당 같은 것 없이 깔끔한 숙소를 골라서 들어갔다. 곳곳에 펜션, 민박집이 성수기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고, 마을 안에는 편의점도 있었다. ‘시골버스’는 이곳처럼 편리하고 쉽고 붐비는 곳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늦은 밤늦은 끼니에 소주 한 잔을 걸쳤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시골버스’가 가야 할 곳과 가지 말아야 할 곳을 더 명확하게 해준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럼 시골버스는 어디로 가야 할까? 아름다운 곳. 그냥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치열하고 고된 삶을 살아서 결국엔 아름다움만 남은 곳이어야만 한다. 사람으로 치자면 삶의 언덕바지를 넘은 사람 중 아이의 순수함이 묻어나는 사람. 무지에서 나오는 아이의 순수함이 아니라, 인생 고락 다 넘고 넘어 결국에는 순수만을 외치는 사람들. 그런 표정이 있는 사람과 그런 사람들이 사는 동네.

  •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내가 아는 곳으로 걸었다. ‘덕산’에서 거리로 6킬로 남짓 되는 ‘맹방’ 예전에 차로 여행 중에 아무도 모를 법한 해수욕장을 발견했고, 바다가 보이는 해수욕장에 차를 대고 이박 삼일을 멈춰있던 적이 있다. 아껴두고 싶은 마음에 알면서 가지 않았지만, 위로받고 싶은 마음에 다시 그곳으로 향했다. 40도에 육박하는 한낮. 그늘도 없는 길에서 쉼과 걸음을 반복하니 어느덧 아는 길이 나왔다.


    #맹방

    “할머니 안녕하세요” 너스레를 떨며 감자를 정리하고 있는 할머니에게 향했다. 작년에 이 앞바다에서 무단 취식했던 사람이라고 고백하고, ‘덕산’에서 여기까지 걸었다고 하니 놀라시며 이 더위에 큰일 난다고 걱정하신다. 마치 친할머니에게 이야기하듯 어리광을 피워본다. “감자 이거 주면 묵을래?” “이런 거 안 묵지?” 감자를 고르시는 할머니는 내 뱃속 사정을 걱정해주셨다. “할머니 안 그래도 밥 먹으러 갈 건데 할머니 자동차 좀 빌려주세요” “그려 타고 가” 할머니의 로시난테, 사륜바이크를 타고 식당으로 향했다. 감자랑 파가 있는 장바구니에 카메라와 지갑을 같이 실었다.


  • #맹방 할머니 자동차

    밥을 먹고 해변가에 앉아서 장비를 수리하시는 할아버지에게 다가갔다. 이 맹방 바다와 함께 평생을 사신 할아버지. 일 년 전 이곳에서 할아버지는 족히 수십 년 이 돼 보이는 나무 뗏목을 끌고 바다로 향하셨다. 너 다섯의 통나무를 붙인 뗏목을 긴 나무로만 휘휘 저어서 바다가 파도치는 반대로 조금씩. 어느새 할아버지는 수평선에 서 있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그림 같던지 할아버지와 뗏목이 아주 작아 보일 때까지 멍하니 쳐다만 봤던 기억이 있었다. 저 뗏목을 다시 보는데 내 오래된 필름 카메라와 닮아 보였다. 할아버지가 묵묵히 노를 저어서 파도를 탔던 것처럼 나도 이 카메라를 들고 혼자서 전국 팔도 두메산골을 휘휘 돌아다니는 생각을 했다. 언젠간 도계 광부 아저씨, 태백장 여관 할머니가 녹음한 안내방송이 흘러나오지 않을까? 자신들만의 이야기와 자신들만의 목소리.
    남해에서 삼척까지 다음엔 또 어디로 향하게 될까? 장비를 수리하는 할아버지를 조용히 지켜보았다.

    함께 길을 걷다 만난 사람들의
    세상 사는 이야기


  • #맹방 바다


  • #할아버지 뗏목

  • -Epilogue-


    시골버스의 글을 쓰는 9월에도 내 발등엔
    삼척에서 탄 자국이 없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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