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리둥절, 절이 맞나... " 4호선 한성대입구역 6번 출구에서 성북02 마을버스를 타고 10분. 그 종착점이 바로 이 "길상사"다. 일주문, 즉 입구를 지나면 펼쳐지는 작은 산속 한옥들의 고즈넉한 풍경. 길상사는 그 동안 우리가 마주했던 엄정한 사찰의 그림과는 사뭇 다르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경내를 느릿느릿 걸어 다니는 스님들과 범종각의 단청만 없었다면 “절이 맞나?” 착각할 정도. 그도 그럴 것이 길상사는 원래 절터가 아니라 기생 여인네들의 요정이었기 때문인데, 그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길상사의 안주인이었던 자야(子夜) 김영한과 백석 시인의 애절한 러브스토리도 함께 엿볼 수 있다. " 1000억이 백석의 시 한 줄만 못해 " 1936년 함흥, 한 회식 자리에서 시인 백석과 기생 김영한은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백석은 그녀에게 "자야(子夜)"라는 애칭도 지어준다. 꿈만 같던 3년간의 동거. 그러나 집안의 반대로 백석은 만주로 떠나고 남북에 그어진 3.8선으로 인해 다시는 서로 만날 수 없게 된다. 자야는 이별의 아픔을 잊기 위해 악착 같이 돈을 벌었고, 당시 대한민국의 3대 요정 중의 하나였던 대원각을 세워 어마어마한 재력을 소유하게 된다. 그럼에도 함께 가지 못한 자신을 계속 원망하며 한평생 백석을 그리워한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 어느 날,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감동을 받아 대원각 부지를 스님에게 시주하였고, 대원각은 자야 김영한의 법명 길상화에서 따온 길상사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리고 생을 마감하기 전 그녀는 “기부한 재산이 아깝지 않느냐” 란 기자의 질문에 “1000억이 그 사람 시 한 줄만 못해” 라고 답한다. " 편히 앉아 쉴 곳이 많은 길상사 " 그녀의 바람은 단 하나, 이곳이 시민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이 되어 그들 모두가 고뇌의 마음을 쉴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났으면 하는 것이었다. 법정스님도 많은 이들이 괴로움을 벗어 던지고 기쁨을 누리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 절을 창건했다고 한다. 둘의 공통점은 열린 공간, 다시 말해서 불심 가득한 사찰이 아닌 그저 누구나, 많은 이들이 가볍게 들러줬으면 하는 조용한 여행지쯤으로 생각해주길 바란 건 아니었을까. 그렇지만 이 ‘누구나’ 라는 불특정 혜택은 서로의 배려가 있어야 가능한 법. 그래서인지 길상사는 유독 묵언수행, 즉 침묵이라는 메시지가 강조된다. (기생 웃음소리가 가득했던 예전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지만) 아마도 이곳을 찾는 이들이 서로 화합하고 배려하는 동시에 세상 밖의 모든 소음을 끄고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여보라는 의도도 함께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툇마루나 의자, 벤치들 같은 앉아 쉴 수 있는 자리들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아주 유별나게 대단히 엄청나게 많다. " 있는 그대로 맑고 향기롭게 " 자, 그럼 이들의 배려에 한껏 감사하며 길상사를 여행지처럼 느껴보자. 있는 그대로 걸어보자. 귓가에 들려오는 새 소리, 물소리, 바람소리와 어우러진 사찰의 풍경소리를 들으며 느릿느릿 여유를 부려보자. 군데군데 액자처럼 놓인 법정스님의 글귀들을 차례차례 읽다가 자신을 비추어 봐도 좋고, 담벼락을 점령한 덩굴이나 이름 모를 들꽃에 취해 이 계절을 만끽해도 좋다. 깨방정 떠는 동자승 인형들에게서 잠시 웃거나, 돌탑을 쌓으며 작은 소원 하나 기원해보는 것도 이 여행길의 묘미다. 혹 사랑하는 이와 함께라면 자야를 기리는 비석 앞에 단둘이 서서 지금 함께할 수 있는 자신들의 행복한 상황을 다시금 확인해도 좋다. 무엇이든 길상사에서는 좋다. 그 후 가장 자기 마음에 드는 경치와 소리가 들려오는 스팟을 찾거든 잠시 그 자리에 앉아 눈을 지그시 감고, 올 한 해를 열심히 보낸 자신에게 수고했다고 말을 걸어보는 건 어떨까. 당신에게는 과연 어떤 대답이 들려올 것인가. 내 경우는 음... 이다음엔 여자랑 와야지. Narration by Kim Nam-gil
Written by Lee Hyung-yeol Photo by Kim Hyung-seo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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