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양도성 10人10色 Ep.07 김남길, 과거와 현재 2016년 10월 25일
서울의 남대문 근방에 살며, 평생 별다른 일 없이 글을 읽고 쓰면서 짧은 생을 살았던 21세의 한 사대부. 1775년 첫날에 글을 쓰기 시작해, 그가 십 년 넘게 써 온 수십 권의 그의 특별한 일기. 나는 한양도성을 걸을 때마다 그의 일기가 생각난다.
그 긴 시간 동안 매일같이 남긴 내면의 고백들과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로 연결된 삶을 그렸던 그의 일기. 그렇게 자신이 살았던 한 시대를 그다음 세대로 연결했던 그는, 글을 쓰는 것만큼이나 부지런히 여행을 다녔다고 한다.
조선 시대에는 여행을 하자면 온갖 고생을 다해야 했을 텐데, '여행'이야말로 세상에서 그렇게 편할 수 없다 했던 이 특별한 선비는 늘 혼자서 걸어 다녔다. 그것도 어떤 목적도 없이 이곳저곳, 고상한 곳 미천한 곳 가리지 않고 조선의 땅 위를 누볐다. 그렇게 그는 직접 걸어 다니는 양반이 되었다. 초록빛 미나리가 부들부들하게 피어올라 초가집 담장을 에워싸는 안암동, 까치가 여장 위로 다닐 때마다 그 발바닥에 찍히는 복사꽃 물이 만발한 성북동, 구름 한 점 없는 별 밤에 반딧불이 달빛이 훤하던 청계천 등 그의 묘사는 지금의 도성 벽에 그 옛날 한양의 모습을 생생하게 투사시킨다. 그 내밀한 거리의 흙냄새 나는 풍경
그리고 그가 묘사한 풍경은 당대의 공식 기록과도 일치하는 부분이 존재한다. 정조 임금이 환궁하던 날, 남대문으로 임금을 보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이날 '일성록' 기록에는 정조가 구경하는 사람들이 날이 저물어 서로 밟히는 사고가 날 것을 염려해 남대문과 소의문을 잠그지 말고 야간 통행금지도 해제하라 한 지시도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날에 대한 기록을 그도 남겼다고 한다. 아마 그날 그도 왕의 행차를 보러 집 근처 남대문에서 왕의 어가가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있던 등불 아래 비치던 사람들의 표정마저 보일 듯이 적었겠다. 그 외에도 그가 걸었던 한양도성의 안과 밖의 여행길은 언제나 세세하고 섬세했다. 아마도 그에겐 도성의 안과 밖을 여행하는 그 모든 과정은 또 다른 글쓰기였을 것이다. 마음 안에서 그 어떤 색깔이나 형체도 없이 산란하다 먼지처럼 떠도는 생각과 감정들을 모아 정리하게 하던 한양도성의 순성길.
그 시절, 아픈 아이와 집안일 걱정으로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지 못한 채 울적하게 집으로 가는 길. 곧 한양도성으로 들어가는 성문과 마주할 즈음 묵게 된 주막집. 그 곁 담장에는 그가 좋아하는 해당화가 탐스럽게 피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순간, 정말 뜬금없이 하고 싶었던 일을 되새기게 됐다고 고백한다.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세상 속 숨은 이야기들을 찾아다니고, 그걸 글로 쓰고 싶다’고 말이다. 다른 시공간을 가졌다는 한양도성
그토록 어디든 걷고 들여다보며 스스로와의 대화를 사랑했던 양반. 그런 사람이라면 순성장거를 한 계절이 바뀌는 동안 얼마나 갔을지 상상해본다. 적어도 계절이 바뀔 때마다 가지 않았을까?
절기별로 변하는 성곽 아래의 풍경만으로도 다른 시공간에 있는 듯한 착각을 하게 하는 한양도성이라지만, 이미 차고 넘치게 비경을 가졌다고 한들 언제까지 이 도성 안에만 갇혀서 여장 위로 뛰어다니며 노는 까치만 구경하다 이내 이 모든 삶이 끝나버리면 어쩌나 초조해하기도 했다.
200여 년 전 조선이나 오늘날이나 사람 사는 세상은 비슷한 건지, 자신과의 싸움 그리고 화해를 반복하다 이내 그 스스로를 연민하는 그의 고백들은 일기 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어떤 부분은 보는 사람이 다 짠하고 축 처진 어깨를 토닥여주고 싶을 정도다.
당신이 살았던 시공간에 담긴 그 순성길이 부럽다고, 천운을 타고나신 거라고 말해주고 싶다. 당신도 그걸 알고 있었냐고, 이미 그 이야기 속에 남은 한양도성의 흙 길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이미 그 두 눈에 담았을 텐데 부러워 견딜 수가 없다고, 이제 와 끊긴 한양도성을 전부 복원할 수도 없다고 말이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연결고리
일기를 썼던 사람. 괜찮다고 말하기에는 괜찮지가 않은 날에도, 행복하다고 감히 소리 내 고백하기에는 부끄러운 날들에도, 기꺼이 자신이 존재하는 그 자리에서 일상을 기록했던 성실한 작가. 그는 그렇게 지극히 사적인 경험을 기억으로 만들어 하늘이 준 목숨을 완성하고자 했던 '흠영'을 쓴 '유만주'이다.
여전히 한양도성의 순성길에 고여 있을 그의 시간, 그 사람이 본 당대의 한양도성을 함께 상상해본다. 그가 걸으며 옛 시절을 더듬듯이 이야기했던 도성의 안과 밖의 기억을 지금의 한양도성에 덧붙여 본다.
어느새 이미 사라진 것들과의 생생한 대화가 시작된다. 그렇게 사소한 생의 아름다움. 그렇게 오늘도 한양도성이 낸 바람길에서 들려오는 옛 소리에 귀 기울인다. 한양도성을 통해 나와의 연결을 희망하며...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세상 속 숨은 이야기들을 찾아다니고, 그걸 글로 쓰고 싶다’고 나 또한 바라본다.
by 김남길
"아래 소개하는 영상은
<길스토리: 서울 한양도성 10人10色 프로젝트>의 시민 참여자 '김경수'씨가 직접 촬영한 영상으로 '연결'을 주제로 제작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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