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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션에 대한 글을 쓰는 패션칼럼니스트입니다
    Eunjung Kim
    Fashion Column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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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남 (2014-10-08)
    추천수 363
    조회수   3,649
    만남
    글·사진 : 김은정 (패션칼럼니스트)
    중국 선전에 살던 때였다. 선전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알게 된 독일인 친구네로 차 마시러 놀러 갔던 어느 날 오후, 대뜸 그 친구가 하는 얘기인 즉, 자신은 새로운 터전에서 정 붙일 친구를 만들려고 노력하지 않을 것이라며 새로운 만남은 필요 이상의 에너지를 소비하는 행동이라는 것이다. 해외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극심한 만남과 이별의 반복은 “마음을 왜 주었을까?” 하는 후회를 가져다 줄 뿐이다 라며 또 다른 인연을 맺기 위해 본인은 힘쓰지 않을 것이라며 유의하라고, 친구로서 조언하고 싶다는 말을 건넸다. 그녀의 발언은 충격이었다. 물론 영양가 있는 사람만 선별해서 만나라는 취지는 알겠으나 만남을 갖는 행위 자체를 깔아뭉개는 식의 사고에 동의할 수 없었다.
    그녀처럼, 그런 사람들이 있다. 곁에 마음이 맞는 몇몇만 두고 ‘나머지’는 배불러 못 먹는 음식인 양 쳐다보지도 않는 식을 존중하는 스타일. 그도 그럴 것이 이팔청춘에서 한참 멀어진 삶의 길목에서는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은 것이 당연지사 일 터. 그럼에도 나는 전에 없던 만남을 좋아한다. 에너지를 소진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인적’ 영감을 받는 기회인 것 또한 사실이라 피곤함을 무릅쓴 채 사람들을 만나는 순간을 저버릴 수 없다.
    혹자는 힘들지 않냐고, 왜 그토록 심신을 피로하게 달구는지, 제발 쉬라고 조언한다. 나, 인간중독인지도 모르겠다. 고백하자면 힘이 들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말하는 것, 경청하는 것 모두 신경을 운동하도록 부추기는 작업이다. 그럼에도 새로운 만남을 향해 기꺼이 다가가는 것은 좋은 기운을 나눠 갖고 싶어서다. 좋은 기운이 많다고 해가 될 것은 없다.
    살다 보면 막역한 친구라고 믿었던 이들과의 관계가 멀어지거나 단절되는 경우가 생긴다. 우정의 숲이 시커매지는 순간이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빛은 다시 들어온다. 그늘은 새로운 인연을 통해 양달로 바뀐다. 긁힌 자국은 그렇게 아물어가는 가운데 삶은 계속된다.

    나는 만남이라는 단어를 사랑한다. 피로함을 안겨주기도 하지만 예기치 않은 보람이 건네는 기쁨의 무게를 난 필요로 한다. 때로는 시간 손실이 발생하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성에 부합하지 않는 사람들을 접하면 다시금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내 마음 속 정원을 거니는 이들이 소중하다고 되뇌면서.
    “설마 너, 친구되기 싫다고 사람을 안 만나고 살겠다는 뜻은 아니지?”
    싱가포르에서 사귄 한 스위스 친구가 있다. 그 친구도 싱가포르에 온지 얼마 되지 않은 터라 우리는 금세 가까워질 수 있었다. 집을 꾸미는 얘기를 하는 과정에서 가구나 인테리어 소품 등을 어디에서 사냐고 물어보길래 중국에서 장만한 것들이 많아 가능한 한 꾸미지 않고 살겠다고 답하자 물어온 그녀의 질문이다. 체류 기간이 정확하게 정해져 있어 (어차피 떠날 운명이라) 사람들을 굳이 사귀지 않는 부류를 익히 봐왔다고. 그녀는 단호했다. 사람은 불리고 싶지 않은 살림살이가 아니라고. 사람 만나는 일에 인색하지 말자는 데 동의하며 우리는 맞장구를 쳤다.
    힘이 되어줄 만남은 일어날 수도,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만나지 않으면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마저 놓치는 격이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을 지속적으로 만나고 또한 예정에 없이 만나게 된다. 번지는 만남 속에서 꽃피는 관계는 믿거나 말거나 피부에 혈색을 돌게 한다. 지난 해 여름 서울에 들어갔을 때 두 달 간 만난 사람 수는 1백 40여 명. 그리하여 결심했던 것이 이 해 여름 서울에 들리면 만남을 대폭 줄이겠다는 다짐이었건만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위가 아파 이틀 간의 약속들을 취소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만남을 어루만질 수밖에 없었다. 근황에 대한 얘기가 앵무새의 수다 같은 모양새를 띠어도 만남을 누릴 수 있다는 고마운 사실에 지친 입은 피로함을 잊는다.
    만남이라는 단어는 목걸이를 연상시킨다. 한 알 한 알이 엮여 차림을 빛내주듯 사람 하나하나가 모여 삶을 비옥하게 다져주니 말이다. 고락간에 만남으로 점철된 인생이 좋다. 만남은 기를 뺏기도 하고 주기도 하나 싫든 좋든 에너지 단지임엔 틀림 없다. 스스로 에너지를 공급받기에 솔로 모드로 조준한 상태에서는 힘들다. 다양한 에너지로 충전된 숨을 내쉬어야만 편하다. 그리고 하나 더, 만남에 의미를 두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으니 나 자신을 더 알게 된다는 것이다. 몰랐던 내가 있다는 사실, 만남은 나를 비추는 거울이다.

     

    _김은정은 이화여대 불어불문학과와 프랑스 파리 에스모드 스타일리즘 학과를 졸업했다. 파리에서 일하다 패션잡지 「엘르」가 국내에 들어온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패션 에디터로의 열망을 안고 한국에 돌아왔다. 패션 라이센스 잡지 엘르(ELLE KOREA), 마리 끌레르(Marie Claire KOREA)에서 패션&뷰티 디렉터, 마담 휘가로(madame FIGARO KOREA)에서 편집장을 역임했다. 이후 샤넬 코리아(CHANEL KOREA)에서 홍보부장으로 근무했다. 현재는 홍콩에 거주하며 패션에 관한 글을 한국의 패션잡지에 기고하며 패션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며 패션과의 끈을 단 한 순간도 놓지 않고 살고 있다. 저서로는 [Leaving Living Loving](2009), [옷 이야기](2011)가 있다. ⓒPhoto by Jin Soo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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