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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와 문화, 미래의 가치를 품고 있는 서울 한양도성에서
      우리의 가치를 경험할 수 있는 길을 찾고, 그 길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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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ORY
    Ep.09 돈의문을 지나 가리어진 길을 걷다

    우리가 만드는 문화유산, 한양도성 9화

    김남길, 돈의문을 지나
    가리어진 길을 걷다

    2016년 10월 20일 연재

    정동길을 지나 잃어버린 성문, 돈의문을 찾아갑니다. 그럼 이제 성문을 찾아 얼마나 더 걸어야 할까요? 사실 정동사거리 그 앞에서 더 이상 가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 자리에서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세요. 그냥 평범한 도로처럼 보이지만, 옛날 이 자리에는 돈의문이 있었습니다.

    강북삼성병원 앞 인도에 목재로 만들어진 과거 돈의문이 있던 자리임을 알리는 표식이 눈에 띕니다. 그전에 수없이 마주한 성문 터를 표시하던 비석과는 달리 목재로 세운 벽 위에 덤으로 유리판이 덧대어져 돈의문 터라는 글씨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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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이지 않는 문
    그리고 가리어진 길

    돈의문이야말로 잃어버린 문인 것 같습니다. 문이 헐릴 때 경매에 부쳐 그 성돌 하나하나, 목재, 석재, 기와까지 팔아버린 문이니까요. 1915년, 총독부에서 경매 입찰을 진행하였고 염덕기 라는 사람에게 205원 50전에 낙찰하였다는 매일신보 기사가 남아 있습니다.

    당시 문루를 헐어낼 때 그 안에서 불상과 많은 보물이 나와서 그가 큰 횡재를 했다고 하는군요. 그렇게 전찻길 조성을 명목으로 철거된 이후로 현재 돈의문은 숭례문, 흥인지문, 숙정문 서울 사대문 중 유일하게 미복원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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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사이로
    잊힌 사람들

    그렇게 이제는 기억과 이야기로만 전해지는 돈의문. 이제는 전설 같은 이야기만 남기고 사라진 애틋한 성문에서 강북삼성병원 앞으로 난 오르막길로 들어섭니다. 그 길 초입에 '경교장'이 있습니다.

    경교장은 백범 김구 선생의 사저이자 공관, 해방 후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로 쓰였던 곳입니다. 1938년에 지어진 단아한 2층의 서양식 건물입니다.

    입구에서부터 일반 가정집 같지 않은 높은 천장과 널찍한 응접실이 보입니다. 그 위로 이층 계단을 올라가면 김구 선생의 서재로 쓰던 공간이 나옵니다. 창가에 놓인 의자 옆 유리창에 총탄 자국이 선명합니다. 바로 김구 선생이 암살당한 그날 앉아 있던 자리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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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좀 더 느린 숨으로
    찬찬히 들여다보기

    그렇게 그분의 서재를 뒤로하고 경교장에서 나와 다시 오르막길을 따라 걸음을 옮깁니다. 서울 성곽길 표지판이 보이면 그대로 성벽을 품은 월암근린공원으로 들어갑니다. 산책로를 따라 자연스럽게 펼쳐진 한양도성이 반갑습니다.

    조금 전까지도 도심 한가운데 있었는데 새삼 이런 한적한 공원 안에서, 또 한양도성 곁을 따라 걸을 수 있다니 걸으면 걸을수록 신기합니다. 그렇게 얼마 걷지 않은 것 같은데 어느새 공원 길이 끝나버리고 주택 단지 내로 들어가는 듯한 골목이 보입니다.

    아쉽게 이대로 돌아서려던 차에 앵두를 닮은 빨간 열매를 맺은 나뭇가지 사이로 표석이 보입니다. 여기도 역사적인 장소였을까요? 표석을 가까이가 자세히 보니, 이 근방이 '어니스트 베델'의 집터였다고 알리고 있습니다.

    그는 일제 정책에 반대하는 대한매일신보를 간행하는 동안 수많은 고초를 겪으시다 병이 들어 끝내 고국으로 못 돌아가셨다 합니다. 그 마지막까지도 조선이 처한 부당한 상황을 알리는 신문을 걱정했다던 그 마음이 꼭 지금 이 표석을 둘러싼 붉은 열매같이 느껴집니다. 물론 그 따듯한 마음을 어떤 색으로도 표현할 수는 없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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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성 길에 각인된
    역사와 이야기

    그렇게 깊은 사연이 담긴 이곳을 두고 다시 사라진 한양도성을 찾아서 주택가로 들어갑니다. 이제는 양옆으로 빽빽하게 있는 빌라 단지에 들어서니 전봇대에 부착된 한양도성 안내 표지판이 보입니다. 앞으로 인왕산 정상까지 1.9km 남았습니다. 새문안 빌리지 건물을 지나 사직공원 쪽으로 올라갑니다.

    좌우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지 헷갈리는 고불고불한 길이 반복됩니다. 좌측은 '송월 1길'이고 우측이 '사직로 6길'인데요, 송월 1길을 통해 곧은 도로로 곧장 올라갑니다. 그러면 곧 한양도성 안내 표지판을 지나 '인왕산로 1가 길'에 들어서게 됩니다. 그럼 끊겼던 한양도성을 다시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쯤에서 고민이 됩니다. 이대로 성의 외벽을 끼고 올라가면 암문이 나올 텐데 바깥으로 걸을까, 아니면 산책로가 나 있는 그 안쪽 길을 걸을까... 그래도 성 밖 마을 길을 걷다 성안으로 들어가는 재미가 있으니, 암문까지 이대로 성 밖을 걸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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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든 오갈 수 있는
    마을과 성벽 사이

    그러고 보니 이곳이 행촌동 성곽 마을이군요. 왼편에 '사직로 1다 길'이라 도로 표지판이 붙은 전봇대 밑으로 바로 마을로 가는 계단이 있습니다. 마을과 성벽 사이에 도로를 두고 있지만, 언제든 오갈 수 있을 정도로 가깝습니다.

    마을로 통하는 암문으로 들어가버리면, 어느새 바라보기만 해도 시원한 산책로가 열립니다. 잠깐 동안 암문에 들어서자마자 반갑게 놓여있던 단란한 나무 의자에 앉아봅니다. 운동화 끈을 고쳐 묶고 물도 한 모금 마십니다.

    여기서부터는 본격적으로 인왕산 정상까지 한양도성이 이어지는 길입니다. 살짝 보기만 해도 깎아지른 절벽 위에 간신히 매달린 듯한 나무 계단이 보이는군요. 아마 이대로 올라가 버리면 창의문까지 꼼짝없이 다시 내려가지도 올라가지도 못하고 쭉 걸어야 할 것 같습니다.

    무언가 싱겁긴 하지만 이번 순성은 이대로 가볍게 마무리 지어야 할 것 같군요. 도저히 이대로 다시 쭉 걸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다음 순성 길에는 단단히 준비하고 와야겠습니다.

    돈의문으로부터 이어지는 한양도성 순성 길을 걸으며 근현대사 속 인물들이 걸었을 길을 동행했다고 생각하니, 이번 길도 평범한 듯 특별했습니다.

    이 근방 마을 골목길 사이에 근대 소설 '삼대'에도 묘사되었던 홍난파 가옥과 1919년 3•1운동 독립선언서, 화성 제암리 학살사건 등을 외신으로 처음 보도한 앨버트 테일러의 가옥 '딜쿠샤(Dilkusha)'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딜쿠샤’ 바로 옆에는 수령이 4백 년이 넘는 은행나무가 서 있는데, 행주대첩을 이끈 권율 장군의 집에 있던 나무로 전해집니다. 이 일대 행촌동이란 지명도 바로 이 은행나무에서 유래됐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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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의 속살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한양도성의 매력

    '이렇게 벗기면 벗길수록 새로 나오는 한양도성의 숨겨진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언제든 새로운 곳에서 순성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사방으로 연결되는 한양도성의 행로는 그래서 거듭 걸을수록 다채로워지나 봅니다.

    그렇게 나만의 한양도성 길을 그려가다 보면 하루가 인생 전부인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확실히 이 하루의 전부를 제대로 누린 것 같은 뿌듯함을 느낍니다. 바로 그때, 그날 하루... 한양도성 순성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 어디에서든 마음 가득 채워지는 즐거움이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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