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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와 문화, 미래의 가치를 품고 있는 서울 한양도성에서
      우리의 가치를 경험할 수 있는 길을 찾고, 그 길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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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ORY
    Ep.06 숨어있는 남소문 터를 찾아서

    우리가 만드는 문화유산, 한양도성 6화

    김남길, 숨어있는
    남소문 터를 찾아서

    2016년 9월 29일 연재

    광희문의 뒤편으로 성벽을 따라 골목길을 올라가면 이내 성벽이 끊기고 주택가가 나옵니다. 동호로 20길을 따라서 '한양도성 목멱산(남산) 지역' 표지판이 안내해 주는 길을 찾아 장충체육관 건너편까지 걸어갑니다.

    길을 건너면 바로 민가로 들어가는 골목이 보입니다. 이제 자연스러운 도성 길이 시작됩니다. 그 소박한 성 외벽을 끼고 다산동 마을의 친근한 전경이 훤히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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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박한 성벽이 둘러싼 다산동 마을

    성의 안쪽으로는 신라호텔이 있는데, 예전에는 그 자리에 이토 히로부미의 영혼을 기리기 위해 만든 사찰 ‘박문사(博文寺)’ 가 있었다고 합니다. 성안 쪽으로 우뚝 솟아 있는 호텔 건물을 보고 있자니 성 외벽을 호텔 담벼락으로 오해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참에 성돌의 모양도 자세히 살펴봅니다, 옥수수 이빨 모양을 한 자잘한 돌들이 체성 밑바닥 큰 돌 위에 촘촘히 모여 있는 것이 마을의 풍경만큼 정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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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네 친구처럼
    친근한 길

    좀 더 걷다 보니 길 곳곳에 벤치도 있고 운동기구도 보입니다. 그렇게 동네 친구처럼 친근한 그 길 곁으로 보이는 마을 지붕과 작은 가게들도 둘러보다 보면 어느새 도성의 암문과 만납니다. 물론 산책길은 성의 안과 밖으로 모두에 놓여 있습니다. 하지만 그대로 성 밖으로 걷습니다. 그러다 공영 주차장이 보이면, 숲 속 한가운데로 들어갈 준비를 하세요.

    친근한 마을 길에서 갑자기 숲길로 바뀌어 당황하실 수 있지만 바로 이런 게 순성길의 묘미가 아닐까요? 도성이야 본래 산 능선 위에 쌓았으니, 도성 길을 걷다 보면 어느 순간 숲 한가운데에 서 있을 수 있다는 게 예상되실 겁니다.

    이제는 눈앞 정면으로 한양도성 길 안내 표지판이 있고, 그 옆으로 난 양 갈림길이 보입니다. 아쉽지만 이제부터는 유실 구간입니다. 그래도 또 한 번 도성 길은 이어질 겁니다. 이제는 보물 찾기 하듯 숨었다 다시 나타난 성벽을 발견할 때의 뿌듯함을 미리 상상하며 즐겁게 걷고자 합니다.

    그럼 다시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기 전에 왼쪽 샛길에 자리한 성곽 마루에서 쉬었다 갑니다. 팔각정 아래 남산 소나무 숲이 훤히 내려다보이고, 앞으로 걸어갈 N서울타워가 우뚝 솟아 있는 모습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그렇게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땀도 닦고 물도 마시며 다시 걸을 준비를 합니다.

    다시 순성을 시작하기 전, 갈림길 한가운데 있는 서울 한양도성 순성길 안내판을 확인합니다. 이번 답사에서 찾아야 할 남소문 터 위치를 보고, 국립극장으로 이어지는 반얀트리 호텔 쪽으로 걸어갑니다. 이렇게 호텔 맞은편 정문까지 가서 남소문 터를 찾아갈 겁니다.

    이대로 오른쪽 산책로로 닦여있는 길로 걷습니다. 이 길은 사방에 나무들이 시원하게 뻗어 있어서 등산로를 걷고 있다는 느낌을 줍니다. 이제 곧 다시 도심 한가운데에 뚝 떨어지기 전에 고즈넉한 녹음이 주는 편안함을 마음껏 만끽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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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심 속 숨어있는
    고즈넉한 녹음

    어느새 발 밑에 깔려있던 숲길이 끊기고 시멘트 길과 만납니다. 잠시 발 밑을 한번 쳐다보세요. 그 옛날 성벽이 있던 자리가 도로 위에 흰색 페인트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이제 산책로가 끝나고, 반얀트리 호텔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이번 길은 생각하면 할수록 신기합니다. 이렇게 전혀 도성이 지나갈 것처럼 보이지 않는 공간에 버젓이 도성 길이 남아있었다니요. 이곳에 묵는다 해도 자세히 주위를 둘러보지 않았다면, 호텔 뒤쪽에 이런 길이 있다는 걸 모르고 지나쳤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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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소문 터는 어디에?

    이제는 이 성벽과 이어졌을 '남소문'이 있던 자리를 찾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대체 이 대로의 어디에 남소문 터가 있는 걸까요? 다시 지도를 살펴보니, 확실히 남소문 터는 호텔 정문 앞으로 나 있는 장충단로에 있습니다. 그러니 호텔 정문 도보를 좌측으로 끼고 그대로 올라가 봅니다.

    좁디 좁은 인도 옆을 세차게 지나는 차들에 혼이 빠지지만, 다행히 얼마 안 가 남소문 터를 알려주는 비석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중구’라는 문구가 쓰인 초록색 도로 표지판이 보이는 길목 즈음입니다.

    남소문 터는 말대로 정말 그 어떤 흔적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남소문은 조선 건국과 함께 축조된 다른 성문들과 달리 세조 3년에 축조되었습니다. 조선 시대 한강 나루로 가려면 광희문을 통과해야만 했는데, 이 길이 다니기 불편해 별도의 소문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 성문이 바로 남소문입니다. 대체로 성문은 그 일대 언덕배기에 자리하기 때문에 지금의 장충고갯길에 자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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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지바른 고개에 있는
    남소문 터

    장충고갯길. 지금의 중구 장충동에서 용산구 한남동으로 넘어가는 이 일대의 또 다른 이름은 ‘버티고개’였는데, 여기에는 지명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버티고개'를 ‘부어치’라고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부어치'라니? 무슨 물고기 이름 같기도 해서 이 주위에 그런 물고기가 많이 사는 계곡이라도 있었던 건가 상상할 수도 있지만 ‘부어’란 밝음을 의미하므로 밝은 고개, 즉 양지바른 고개란 뜻입니다.

    그런데 그런 환한 이름에도 불구하고 남소문 일대에 도적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당시 이 고갯길이 유독 좁고 인적도 드물었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그래서 이 근방에는 순라꾼들이 야경을 돌면서 ‘번도!’라고 외치며 도둑을 쫓았다고 합니다. 그 이름이 백성들 사이에 퍼져 '번티 고개'로 불리다가, 그 발음이 변하여 '버티고개'가 되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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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산,
    그리고 한양도성 순성길

    이제 남소문 터도 찾았으니 남산의 한양도성 순성길로 들어가 봅니다. '한양도성 순성길' 안내판을 따라 국립극장 옆으로 나있는 남산 공원길로 올라갑니다. 차로를 따라 조금 올라가면 머지않아 잃어버렸던 성곽이 보입니다. 점점 더 도성 가까이 다가가니, 도로를 내느라 중간에 양쪽 성벽이 서로 끊어진 채로 남아있습니다. 여기서 바로 우측에 성곽을 끼고 길이 나 있는 나무 계단으로 올라갑니다.

    도성 길 초입 성벽에는 다듬어지지 않은 듯 거친 돌들이 땔감을 쌓아둔 것처럼 투박하게 올려져 있습니다. 그렇게 자연스러운 성돌의 맛을 곱씹어가며 걸어봅니다. 이 구간에서는 도성 길은 잠시도 멈추지 않고 하늘 끝까지 이어질 듯합니다. 숨을 몰아쉬고 땀을 흘리며 수고하는 대가가 아깝지 않습니다.

    그렇게 성벽과 잡담을 나누듯 걷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도성과 나 자신 외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직 더 많은 길이 남았다는 게 또 싫지만은 않습니다. 아마 조선 시대 순성놀이 때의 풍광이 지금 이 모습과 가장 비슷했을 겁니다. 그때는 이런 정돈된 길이 아니라 말 그대로 숲길이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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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양도성과 나만
    존재하는 길

    이렇게 아무리 이 좋은 길에서 이대로 머물러 있고 싶대도, 너무 오래 멈춰있으면 다시 올라갈 엄두가 안 날 것 같습니다. 다시 힘을 내서 계단을 오릅니다. 그런데 올라갈수록 초입과 달리 성벽의 돌들이 질서를 찾아가듯이 점점 더 정돈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끝나지 않고 하늘 위로 치솟을 것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더니 어느새 그 경사가 조금씩 잦아들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드디어 N서울타워로 가는 평평한 산책로가 나옵니다. 그렇게 숲길 한가운데 난 구불구불한 산책로를 가볍게 걸으면 곧 N서울타워에 도착합니다.

    이번에는 남소문과 연결되었을 성벽을 따라 남산에 왔다가 전과는 또 다른 귀한 도성 길을 덤으로 얻었습니다. 도심 한가운데 있으면서도 본래 있던 숲 속, 그 자리에 온전히 끊어지는 곳 없이 그림처럼 보존된 이 길을 한 번이라도 걸어보면 차마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물론 그간 모든 도성 길이 저마다의 개성과 아름다움을 지녔지만 어쩔 수 없이 도로와 건물에 한데 섞여 그 맥이 끊기고 유실된 구간이 더 많았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남소문 터로부터 이어지는 남산 속 순성길은 더 특별합니다. 그곳에서는 그 옛길의 흔적뿐만이 아니라 그 당대의 공기가 박제된 것 같은 신비한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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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심 한가운데 온전히 있어준
    고마운 한양도성의 길

    숲 속 길에서 N서울타워로 나오는 길, 그간 줄곧 이어지던 나무 장막에 사이에 둘러싸여 있다가 다시 복작복작한 도시의 길로 돌아왔습니다. 줄곧 가는 길마다 등대처럼 우뚝 서 있던 남산 타워를 보니 새삼 이곳이 관광지였다는 걸 깨닫습니다. 수많은 버스가 정차해 있고 사람들이 정류장 앞으로 복작복작 모여 있습니다. 그렇게 다시 평범한 풍경 사이로 묻혀 들어가 슬며시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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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깊은 서울의 품속에서
    어느 때보다 따듯하게 오래오래

    그러고 보면 도성 길을 뒤로하고 돌아오는 길은 항상 주변의 모든 것들이 새로워진 것 같습니다. 하루 안에 도저히 다 갈 수도 없을, 앞으로도 정해진 시간 안에서는 도저히 갈 수 없을 그 모든 세계를 엿보고 온 것 같아 뿌듯한 마음, 그 모든 설렘들이 벅차오면 어느새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기분 좋은 피로가 몰려옵니다. 그러다 창에 머리를 기대 선잠이 듭니다. 깊은 서울의 품속에서 어느 때보다 따듯하게 오래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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