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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한양도성
      역사와 문화, 미래의 가치를 품고 있는 서울 한양도성에서
      우리의 가치를 경험할 수 있는 길을 찾고, 그 길을 걷는다
      40 10,951 135,602
    STORY
    Ep.04 혜화문에서 흥인지문까지

    우리가 만드는 문화유산, 한양도성 4화

    동동~동대문을 열어라~
    혜화문에서 흥인지문까지 2.1km

    2016년 9월 8일 연재

    뜨거운 여름도 가고 걷기 좋은 가을이 왔으니 한양도성 순성을 다시 시작합니다. 산맥의 능선에서 능선으로 이어지던 성벽을, 그 사이사이 다리처럼 놓인 성문을, 다시 그 안으로 흘러 들어가던 그 모든 이야기들을 상상해보며 마음에 한양도성의 지도를 찬찬히 새겨봅니다.

    막상 한양도성의 18.6km의 길을 모두 걸으며 찾아보겠다고 생각하니 엄두가 나지 않더군요. 그래서 나름대로 어디를 기준으로 어떻게 구간을 나눠 한양도성의 길을 찾아 걸어야 할지 여러 자료를 찾아 봤습니다. 그러다 매일신보 1916년 5월 11일 자에 실린 '순성장거' 광고를 보게 되었습니다.

    “경성의 성벽은 오늘날 한양 유명 유적의 제일이로다! 위대한 고적이여! 우리 모두 봄볕 좋은 오는 7일 일요일 이 위대한 고적을 답사하고자 하노라.”


    그때 사람들은 그날 순성장거를 잘 마쳤을까요? 실제로 답사에는 체력과 의지만큼이나 그날의 날씨가 중요한데, 안타깝게도 그날 계획은 비가 오는 바람에 취소되고 일주일 후로 연기됐다 합니다. 당대에는 축수하기 위해 순성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비가 오든지, 바람이 불든지, 꼭 하루 만에 마치지 않으면 효험이 없는 것이라 했다는군요.

    그렇게 간절한 염원을 담은 순성 날짜만큼이나, 실제 행로를 어떻게 정해야 할까 고민이 많았습니다. 국보 1호인 흥인지문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돌까, 아니면 옛날 과거 시험 볼 당시, 고등문관 후보자가 길운을 빌며 순성했던 행로로 가볼까. 일전에 북정마을에서 시작해 장수마을까지 왔었으니 그렇게 시계방향으로 한양도성을 한 바퀴 도는 것으로 이번에는 흥인지문까지 걷는 길을 첫 행로로 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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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이 가장 많이
    드나들던 길

    직접 길을 걷는 데는 산을 기준으로 구간이 나누어져 있는 코스는 그리 용이한 방법은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길은 말 그래도 사람들이 자주 다니다 생긴 곳이니 실제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드나들던 한양도성의 문을 기준으로 행로를 짜보기로 했습니다. 그러면 그 과정에서 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찾아보고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무엇보다 이참에 여러 이름으로 헷갈리던 성문의 이름을 정확히 알아보고 싶기도 했습니다. 계속 부르고 되짚어가며 길을 찾다 보면 그 옛날 사람들에게 그토록 익숙했던 성문의 이름들을 하나하나 기억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 과정에서 짐작보다 더 깊고 넓은 우물 같던 한양도성의 이야기를 만났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성문은 단순한 출입문을 넘어 행정적으로는 도성의 안과 밖을 나누고, 국가의 시간을 도성의 문을 열고 닫음으로써 조절하는 조선의 통치수단 자체였으니까요. 그뿐인가요, 농업국가인 조선에서 가장 중대한 현안이었던 그 해 농사를 결정짓는 날씨도 성의 문을 여닫는 일로서 다스리고자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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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흉화복을 다스리던 성문


    4소문 중 하나였던 혜화문은 북대문의 역할을 대신 했기 때문에 이름만 소문일 뿐 실질상으로는 대문의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일제강점기 때 단계적으로 파괴되었고, 1940년에는 혜화동과 돈암동 사이에 전차 선로를 놓으면서 홍예문마저 없어졌습니다.

    지금의 혜화문은 1994년에 새롭게 복원한 성문입니다. 본래 동소문로 한복판에 성문이 있었는데, 복원 당시 이미 처음의 지형과는 많이 달라졌기 때문에 바로 옆 지금의 자리에 복원되었다고 합니다. 1939년 일제가 전차 노선 연장을 위해 혜화문을 헐 때, 전차의 통행을 위해 성문이 있던 지형의 높이를 낮췄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비록 본래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고 보기 힘든 새 문이지만 그래도 동소문로에 있던 혜화문이 흥인지문까지 이어지는 길을 상상하며 걸어가 봅니다.

    흥인지문은 도성의 동쪽 정문으로 백성들이 인(仁)을 흥하게 하다는 의미를 가진 성문입니다. 흔히 동대문이라 불리는데 이는 조선시대 때도 그랬다고 합니다. 지금도 실록에는 한양도성의 정동(正東)은 흥인문이니 속칭 동대문이라 한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동대문이 있는 땅은 인왕산과 북악산에서 발원한 청계천이 빠져나가는 곳으로 도성에서 가장 낮은 지대입니다. 더군다나 옛날에는 이곳이 저습지이기도 해서 백성들이 도성을 쌓을 때 애를 먹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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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혜화문을 지나 흥인지문까지

    초기 축성을 맡았던 경상도 안동과 성주 사람들은 기일 내에 공사를 마치지 못했다고 합니다. 완공일을 10일 앞두고 농번기를 맞아 공사 일을 남겨둔 채 고향으로 돌아가야 했죠. 그 후로는 같은 해, 2차 공사가 들어가고 나서야 성문을 완성했습니다. 하지만 연약한 지반 탓인지 이후에도 흥인지문 보수공사는 꾸준히 진행되어 왔다고 합니다. 이처럼 흥인지문은 그 지형의 태생적 한계 때문에 방어에도 불리했습니다. 실제로 이러한 취약점을 보완하기 위해서였는지 한양도성 성문 중에 유일하게 옹성에 싸여 있다고 합니다.

    각자성석. 각자성석은 성곽 돌에 축성 관련 글자를 새겨 넣은 것을 말한다. 동대문성곽공원 초입에 성벽 정비 과정에서 발견된 각자성석들을 모아놓았다. 초기(태조,세종)의 각자성석에는 구간과 축성 담당 군현명을 주로 새긴 반면, 조선 중기 이후에는 감독관, 책임기술자 등의 이름과 직책을 명기하였다.
    그렇게 한양의 동서남북 그곳이 어디든 통하는 4대문, 4소문과 함께하는 순성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겠습니다. 지난 여정에서 지나온 혜화문에서 시작해 흥인지문까지 길을 찾아 걸어봅니다. 이전에는 한성대 입구역에서 직접 혜화문을 거쳐 낙산 구간을 걸었지만, 이번에는 혜화역 3번 출구에서 마로니에 공원으로 난 골목길을 통해 낙산 공원 쪽으로 올라가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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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의 암문을 통해 지그재그로 성의 안과 밖을 걷는 재미

    낙산 공원 주차장으로 난 계단을 오르면 곧장 공원으로 통하는데요, 여기서부터 장수마을이 있는 성 밖으로 통하는 암문이 나올 때까지 걸어갑니다. 암문으로 나가니 지난번 걸었던 산책로를 만나게 되네요. 이 지점에서는 성 안쪽으로 걸을까, 그냥 가던 길을 따라 계속 성 바깥쪽으로 걸을까 고민을 하게 되는데 역시 저는 성의 바깥쪽 길이 좋아 성밖으로 걸어나갑니다.

    여기에서는 옛 것과 새것의 콜라보레이션을 보는 듯한 성돌과 성벽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성 밖에서 저만의 빛깔을 지진 성돌을 따라 조금 걷다 보면, 곧 '낙산 성곽공원'이란 글자가 세워진 표지판이 있는 지점이 나옵니다. 여기에서 성벽이 잠시 끊깁니다. 그리고 정면에 마을버스 정류장이 보일 겁니다. 그럼 그대로 직진하지 말고 정류장 위쪽으로 올라가 다시 성 안으로 들어갑니다.

    계속 성 밖을 걷다 보면, 곧 성벽이 저 높이 떠서 멀어지는 걸 느낄 겁니다. 그러니 여기서부터는 그대로 성 안으로 들어가, 한양도성을 담장으로 가진 정겨운 마을 골목길을 걸어 봅니다. 고양이들이 총안에서 낮잠을 자고 있네요. 천천히 숨 쉬는 속도로 걸어가니 보이는 풍경입니다.

    이내 이화동 벽화마을로 가는 양 갈래길이 나옵니다. 아침부터 외국인 관광객들로 동네가 북적입니다. 여기서 오른쪽 길로 내려가면 이화마을로 들어가게 되니 왼쪽 길로 직진을 해서 성벽을 따라 내려갑니다. '성터교회 가는 길'이란 작은 표지판이 붙은 두 번째 암문까지 좀 더 내려갑니다.

    그렇게 암문을 통해 성 밖으로 나오면 유독 까치가 주위를 날아다니는 조용한 산책로가 나옵니다. 여기서부터는 흥인지문이 눈앞에 그 모습을 저절로 드러낼 때까지 여유 있게 걸으면 됩니다. 낙산 구간에 나 있는 두 번의 암문을 통해 지그재그로 성의 안과 밖을 걷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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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길 곳곳에서 별처럼 반짝이는 온갖 이야기들

    혜화문에서 흥인지문까지 2.1km, 한 시간 반 남짓한 시간을 걷는 동안에도 시골에서 본 밤하늘에 쏟아지는 별처럼 온갖 이야기들이 그 길 곳곳에 반짝입니다. 처음에는 한양도성을 알아보면 볼수록 이야기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와 당황스럽기까지 했습니다. 그래도 걸을 때마다 새로 알아가는 재미가 있으니 괜찮습니다.

    이제는 그런 두려움보다 설레는 마음이 더 큽니다. 거대한 시간 저편에 숨어있던 18.627㎞의 순성놀이가 시작됐습니다. 동대문을 열고 지나왔으니 다음은 광희문을 지나 남대문을 향해 걸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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