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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와 문화, 미래의 가치를 품고 있는 서울 한양도성에서
      우리의 가치를 경험할 수 있는 길을 찾고, 그 길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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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ORY
    Ep.02 김남길이 읽어주는 한양도성 3km

    우리가 만드는 문화유산, 한양도성 2화

    김남길이 읽어주는
    한양도성 3km

    2016년 8월 23일 연재

    이날은 하늘이 점지해준 날인 듯 오래간만에 파란 하늘을 보며 성북동 북정마을에 도착했습니다. 꿋꿋이 마을 뒤로 병풍처럼 펼쳐진 한양도성을 바라보며 와룡공원까지 올라가 봅니다. 그리고 다시 천천히 성벽을 따라 걷기 시작합니다. 지나온 길 어디서든 그 모든 시선 곁에 넉넉하게 아랫마을을 굽어보고 있던 한양도성이 나를 반겨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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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와 현재의 공존

    산의 능선을 따라 축조되어 성벽의 안쪽은 밑단의 일부가 땅에 묻혀 얕게 드러나 있는 반면, 바깥쪽은 성곽의 몸체라 할 수 있는 체성이 더 높게 드러나 있어 그 위용을 자랑합니다. 직접 보기 전에는 도성이 앞뒤로 똑같을 거라고 막연한 상상을 했는데 이렇게 하나하나를 꼭꼭 씹듯이 직접 이 길을 걸으니 단순히 안내 지도를 보며 길을 상상할 때와는 정말 다릅니다.

    무엇보다 성벽 마디마다 뚫린 사각형의 총안이 보여주는 성 밖 풍경은 직접 걷지 않고서는 제대로 느낄 수 없을 것입니다. 액자 같은 구멍 사이로 뚫린 풍경이 미술관에서 작품을 보는 듯, 총안마다 보이는 모습은 제각각 다른 풍경입니다. 미래를 볼 수 있는 600년 전 과거의 사람이 2016년 우리 모습을 보고 있는 듯합니다. 총안 마다 바라보는 풍경이 모두 다르기에 하나하나 바라보며 걸어 보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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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잃어버린 길을 찾아서

    내심 이 길이 끝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걷다 보면 서울과학고등학교에 도착합니다. 이 길은 다시 경신고등학교로 이어지는데, 이때부터는 혜화문까지 성곽이 유실된 구간입니다. 미리 지도에서 보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는 왔지만 그렇게 유려하게 이어지던 길이 중간에 끊어지니 많이 섭섭하네요.

    그러다 발견한 전봇대 위에 붙어있는 '혜화문'이라고 적힌 작은 이정표 하나. 그런데 여기서부터는 더욱 난감한 상황과 마주합니다. 경신고등학교 시멘트 담벼락 밑으로 성곽인 듯 성곽 아닌 모습이 이어지고 있었던 거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성곽이냐며 이대로 길을 잘못 들었나? 저쪽 골목으로 가란 건가 하며 계속 돌아보고, 이 길이 맞나 주위를 두리번거리게 합니다.

    길 자체는 성곽길이 아니라 그저 흔하디흔한 동네 골목길 같았죠. 그래도 앞으로 더 걸어가 보니, 아직 포기하지 말고 더 가보라는 응원처럼 성북동 도시 텃밭 뒤로 이어지는 한양도성이 보였습니다. 그래도 이쯤에서는 유실 구간이 끝나기를 목 빠지게 소망하던 때, 드디어 바다 길이 열리듯 시원하게 양옆으로 이어진 한양도성과 만났습니다.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혜화문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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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혜화문, 봉황의 의미

    한달음에 혜화문 앞으로 내려가 홍예 안의 천장을 봅니다. 오색 빛깔의 화려한 새 두 마리가 마주 보고 있는 그림인데, 봉황입니다. 서로 마주 보고 있는 한 쌍의 새의 모습이 무척 화려하더군요. 보통 성문의 홍예 안에는 용이 그려져 있던데, 이곳만 봉황인가? 봉황은 사이좋은 짝을 의미하기도 하니까, 이 주변에 열녀나 효자가 많아서 특별히 그려준 건가 하는 엉뚱한 상상도 해봅니다.

    과거, 혜화문이 있는 삼선동 일대에 참새들이 많아 농부들의 피해가 극심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를 예방하는 차원에서 봉황을 그려 넣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하기야 봉황은 그냥 새가 아니라 영검한 새이니 참새들을 다스리란 뜻으로 그려 넣은 것일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정말 옛사람들은 무엇 하나 그냥 한 일이 없는 듯합니다. 그 모두에 나름의 의미가 있으니 한양도성 길을 걷는 맛이 더 깊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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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을 쌓은 사람들

    혜화문 건너편으로 길을 건너 낙산 구간으로 올라가는 계단으로 끊어져 이어지는 한양도성을 찾아 올라가 봅니다. 성의 외벽을 따라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성돌을 짚으며 그리고 걸으며 오래전 이곳을 똑같이 걸었을 사람들을 생각해보게 됩니다. 그들은 어디서부터 어떤 경로로 산 넘고 물 건너 그 먼 한양까지 왔을까.

    성돌 틈 사이를 뚫고 나무뿌리가 튀어나와 있는 모습을 보며 그 오랜 세월 동안 이렇게 서로 받쳐주며 단단히 버티고 있는 성돌들이 새삼 대견하기까지 합니다. 그러자 이 정다운 성을 쌓은 사람들은 누구일까 궁금해졌습니다.

    특별한 기구도 없이 이 언덕으로 어떻게 돌을 끌고 왔을까, 이 모든 돌들을 정과 끌로 손수 손으로 깎았다는데 그 자체가 얼마나 고된 일이었을까? 실제로 공사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부상을 입거나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숭고한 영혼이 담겨 있을 듯한 이 길을 이토록 쉽게 가볍게 산책하는 게 왠지 숙연해지며 이 길을 정성스럽게 걸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렇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게 하는 한양도성을 걷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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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라져도 사라지지 않는 것

    한양도성 3km 길의 도착지, 장수마을의 할머니 쉼터 벤치에 앉아 봅니다. 사방이 뚫린 바람길에 앉아서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생각해보니, 평소에 보이지 않던 사소한 것들이 보였습니다. 이 순간만큼은 세상의 모든 시간을 잠시 멈추고 나만의 시간 안에 머물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굳이 속도를 내지 않아도, 특별히 무얼 하지 않아도 뿌듯했던 미쁜 순성의 기억, 우리에게는 사라져도 사라지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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