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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 길을 걷다 만난 사람들의 세상 사는 이야기가 머문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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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작가들의 단편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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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alking+Communications (2015-06-08)
    추천수 300
    조회수   2,488
    Walking+Communications
    글·사진 : 금윤경 (Communications Consultant)

    나는 어느 날인 가부터 이 도시를 걷기로 했다.
    의지적으로 걷기로 했다. 건강 때문에도, 치솟은 기름값 때문도 아니다.
    이제 더 이상 내 인생에서 우연한 만남, 진짜 스치는 인연은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1평도 안 되는 작은 차 안에서 혼자, 그것도 걸어가도 15분 거리인 곳을 도로가 꽉 막혀있어30분째 신호등만 쳐다보고 있어야 하는 상황에서 번뜩 떠올랐다. 어느 순간부터 자동차는 내 몸을 길들여버렸고, 세상과의 소통을 단절시켜 버렸다.
    그 날 이후 나는 걷기로 했다.
    차를 타더라도 언제라도 차를 버리고 걸어갈 수 있는 버스를 타기로 했다.
    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우연한 만남이 부쩍 늘어났다.
    사람보다 차가 더 많은 대로를 씩씩하게 걸어가는 내게 자동차들이 말을 건네온다. 아니, 자동차 안에 갇힌(?) 사람들이 말을 건네온다. 열이면 일곱은 오래 전 회사 일로 만나 연락이 끊긴지 오래된, 소식이 궁금했으나 딱히 안부를 묻기에는 쑥스러운 인연들이다.
    가끔은 두 팔을 힘차게 저어가며 도심을 신나게 관통하고 있는 나를 세우는 목소리들이 있다.
    8차선 대로에서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던 옛 직장 후배는, 절대 걷는 이 없는 길을 어떤 여자가 참도 씩씩하게 걸어간다 했더니 바로 나였다며 반가워 소리쳤단다. 아마 나도 자동차 속에 있었다면 서로 모르고 지나쳤으리라.
    내가 걸어 나가니 세상이 내게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걷다가 커피 향 좋은 곳에 불쑥 들어가 차 한잔 마시고 나올 수 있다. 길을 걷다 우연히 마주친 반가운 사람과 술 한잔 하기에도 부담 없다. 내비게이션의 기계음이 가르쳐주던 길은 이제 낯선 사람이 알려 준다.
    걸으면서 세상과 이야기한다는 것. 나 혼자서 사는 세상이 아닌 "더불어 함께 살고 있다’는 관계의 이치를 체득했다.
    걷기는 이젠, 내 몸과도 소통하기 시작했다.
    잠들 때면 다소 뻐근한 종아리가 기분이 좋다. 온 몸은 점점 근육으로 탄탄해지고, 몸은 스스로 걷기에 좋은 모양으로 회복되는 것 같이 느껴진다. 걷기는 천천히 걸어도 1시간에 120㎉, 빨리 걸으면 300㎉까지 열량을 태운다고 한다. 하루에 45분씩 만 걸으면 1년에 8kg 감량할 수 있다고. 맨발로 모래 위를 걷듯이 발목을 굴리면서 발뒤꿈치에서 발 앞쪽으로 무게 중심을 이동해 걷는 게 좋다는 보다 전문적인 정보도 습득하기 시작했다.
    ‘6월에는 무슨 꽃이 피지?’
    요즘 담장 줄기를 타고 피어있는 장미들이 향기롭다. 집 근처 주택가에는 때늦은 라일락도 피어있다. 그 옆집 베란다에는 비로 눅눅해진 이불이 볕에 잘 마르고 있다. ‘저녁 이슬 때문에 얼른 걷어야 할 텐데..’하며 지난다. 동네 골목길의 풍경이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다. 자동차를 타고 지나가면 절대 볼 수 없는 풍경일거다. 아직은 아침 저녁 공기가 선선하다. 오랜만에 비 내리는 길도 걷고 싶다.
    자꾸 밖으로 걸어 나가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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