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도성 오디오 가이드 1_성북 구간
숨 쉬듯 천천히, 그렇게 길을 걷던 때가 언제인가요? 매일 다람쥐 쳇바퀴 돌듯 그렇게 걷고 있는 아스팔트 길 위에서는 나만의 가치를 차분하게 느낄 수 있는 길을 찾기가 점점 더 힘이 듭니다. 그래서인지 언젠가부터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나는 길, 들여다 볼수록 새로워지는 길, 나도 모르게 느리게 걷는 길에 자꾸 눈이 갑니다. 몇 백 년 전 지어진 집에 여전히 사람이 살고 있고, 건물과 건물 사이 남겨진 옛 길의 흔적까지 남아있는 곳. 성돌 틈으로 뚫고 나온 나무 뿌리와 여장 위로 솟은 수북한 이끼들, 그리고 그 곁에 옹기종기 모인 오색 지붕의 마을들. 우리가 잊고 살아왔던 그 시간들을 찾아서, 이곳, 한양도성을 걸어봅니다. >>>>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 6번 출구. 3번 마을버스를 타고 북정마을 꼭대기에서 내립니다. 엄마 품처럼 평안한 북정마을을 돌아보시다가 고개를 들어 보면 파도가 굽이치듯 내려가는 한양도성, 백악구간을 발견하실 겁니다. >>>> 한양도성의 출발점, 북정마을을 시작으로 한양도성을 벗삼아 성곽아래, 장수마을까지 걸어가봅니다. >>>> 북정마을 노인정에서 골목길을 따라 올라가면 와룡공원에서 성곽 밖으로 이어진 계단을 따라 걸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한양도성은 안과 밖의 모습이 참 다른 풍경입니다 땅 밑으로 묻혀있는 듯 땅에 닿은 성벽의 안쪽 길, 그곳을 걸으며 성 밖을 내다보면 칸칸이 다른 풍경을 보며 걸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밑단부터 더 높게 드러나 있는 성벽의 바깥쪽 길, 그 길에선 성돌을 짚어가며 마을과 숲길을 끼고 걸을 수 있어 좋습니다. >>>> 이렇게 성 밖의 성벽을 따라 내려오다 보면 작은 정자가 있는 성북동 쉼터에 도착합니다. 여기서부터는 한양도성이 유실된 구간을 지나게 될 텐데요, 끊어진 성벽을 끼고 그대로 걸어 내려오면 차도가 나오고, 거기서 '혜화문'이라는 이정표가 보이는 골목 길로 들어섭니다. 민가와 건물 벽에 군데군데 남아있는 한양도성의 모습들이 다시 시작될 겁니다. >>>> 경신고등학교, 그 높은 시멘트 담벼락 밑 둥에 올망졸망한 돌들이 남아 있는 것을 발견했나요? 그래도 끊어진 듯 이어지는 이 길을 따라가다 보면, 그 끝에는 혜화문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혜화문의 원래 이름은 '홍화문' 이었는데요, 창경궁이 건립되고 나서는 그 정문과 이름이 겹쳐서 '은혜를 베풀어 교화 한다'라는 뜻의 혜화문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 그럼, 이제 혜화문에서 나와 낙산구간으로 이어지는 장수마을로 가볼까요? 차도를 건너 한양도성 낙산구간 안내판이 서있는 계단으로 올라가 봅니다. 여기서부터는 성의 외벽, 한양 도성의 몸체라 할 수 있는 체성을 더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원래 한양도성을 처음 축조할 때 산지는 석성으로 쌓고, 평지는 토성으로 쌓았다고 합니다. 그러다 세종 이후, 시기별로 보수를 하면서 돌의 모양이 달라진 거죠. 자연석을 그대로 사용한 게 태조 때였고, 완두콩 알맹이처럼 옹기종기 모인 거무스름한 돌은 세종 때, 석공이 영혼을 끌어 모아 다듬은 듯 네모 반듯한 것이 숙종 때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 돌들은 다 누가 쌓았을까요? 태조 5년, 궁궐과 종묘사직을 건축한 이후에 전국의 수십만 명이 넘는 백성을 동원해서 쌓았다고 합니다. 돌은 오로지 정과 끌 같은 소도구를 이용해 사람 손으로 직접 깎았다고 하는데요... 성돌 하나하나를 다듬어냈을 백성들의 마음을 생각해 봅니다. >>>> 그렇게 여러 대를 거쳐 만들어진 성벽을 살피며 걷다 보면, 장수마을이라고 쓰여진 돌판을 만나게 됩니다. 이 돌판을 옆으로 두고, 장수마을을 지붕처럼 둘러싸고 있는 성곽을 따라 계속 올라가 보면 성 안으로 들어가는 암문에 도착합니다. >>>> 암문은 비밀리에 군사를 이동하거나 물자를 조달하기 위해 만든 문이라고 합니다. 평소에는 큰 돌로 입구를 막았다가 전쟁 중에만 사용했다고 하네요. >>>> 우리는 성 밖을 걷는 중이니, 성 안으로 들어가는 대신 '동네목수의 작은 카페'가 있는 장수마을 골목길로 내려가 볼까 합니다. >>>> 장수마을은 함께 모여서 와글와글했던 옛 골목길의 향수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성곽마을입니다. 이 마을에는 평상이 놓여있는 6개의 골목이 있습니다. 이 평상에서 마을 회의도 하고 가파른 언덕을 오르다 힘들면 누구든 쉬어갈 수 있다고 합니다. 마을을 둘러싸고 꿋꿋이 솟아있는 한양도성의 굳건함 덕분인지... 장수마을에서는 삶의 고단함보다는 정답고 따뜻한 미래를 기대하게 됩니다. >>>> 저기 장수마을의 할머니 쉼터가 보입니다. 잠시 앉았다 갈까요? 다리도 좀 풀고, 물도 좀 마시고요. 바람이 불면 눈도 한번 감아보세요. 이런 바람 길은 평소에 만나기 쉽지 않습니다. 어쩌면 북악산 자락을 따라 내려온 산의 기운이 한양도성을 타고 내려오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 오랜 세월 동안 이곳을 거쳐 갔던 수많은 사람들을 상상해 봅니다. 과거 시험 한번 보겠다고 굽이굽이 이어진 문경새재 건너오던 선비들, 이 다리에서 저 다리로 물건을 팔며 서신도 전해주던 봇짐꾼들, 어떤 볼일들로 성 안과 밖으로 오가던 백성들, 그 모든 여객들이 지친 몸을 안고 저 멀리 보이는 성벽 하나로 안도했을 그 모든 순간들을 말입니다. 그 시간이 품은 이야기들이 한양도성을 따라 흐르고 흘러서 지금 바로 여기 이 순간까지 우리에게 이어져 왔음을 깨닫게 됩니다. >>>> 길은 언제나 그랬습니다. 길이 아닌 곳도 사람들이 드나들면서 길이 되었고, 아무도 찾지 않으면 그 길은 사라졌습니다. 한양도성의 길도 우리가 오래오래 걸어야 사라지지 않고 우리 곁에 남아 있지 않을까요? 수많은 이야기들을 담아내며 변함없이 서울을 지키고 있는 한양도성, 지금도 우리 곁에서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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