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여러 겹으로 만들어진 크레이프 케이크입니다
글 : 손화신 (작가)
“우리는 자기 자신을 잘 알지 못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으로부터 가장 먼 존재이며, 이방인이다.”
- 니체, <도덕의 계보> 중
사람은 죽을 때까지 설명되어질 수 없는 존재다. 내 안에는 이토록 많은 성격들이 섞여 있는데도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관해 남들이 알아듣기 쉽게끔 ‘설명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잘 설명하기 위해 ‘나다운’ 모습을 정해두려고 하기도 했다.
누군가 내게 “넌 어떤 사람이니?” 물으면 “나 이런 사람이에요”하고 머뭇거림 없이 명쾌하게 답할 수 있어야지만 나 자신을 잘 아는 것이라 여긴 것이다. 그런 사람이 성숙한 어른이라고 믿었고, 그런 어른이 되려고 나는 ‘보여지는 나’를 마련해두고자 했다.
난 내가 카스테라인 줄 알았다. 옆구리를 떼어먹든 머리를 떼어먹든 한결같이 균일한 맛의 카스테라. 그런데 알고 보니 나는 여러 겹으로 된 크레이프 케이크였다. 층마다 색깔도 다르고 맛도 다른. 겹겹이 누운 그 층들이 하나의 케이크를 만들었고, 모든 층이 나였다.
가장 바깥으로 보이는 자아만 나라고 생각하고 그것만이 ‘공식적인’ 나라고 여길 필요가 애초에 없었던 거다. 세상에 공개한 나도 있지만 가족과 친구들만 아는 나도 있고, 가까운 그들조차 모르는 비밀스러운 나만의 나도 있다. 모두 나다.
사람들에게 보여주려고 준비해둔 ‘사회적인 자아’뿐 아니라 혼자 있을 때 슬며시 드러나는 ‘심층적인 자아’도 나로 인정하는 일. 지금부터라도 내가 해야 할 일은 이것인 듯하다. 촌스럽게 크레이프 케이크를 한 겹 한 겹 떼어 먹지 말고, 이제라도 대범한 수직적 포크질을 해야 할 때다.
이제 나는 ‘어떤 사람’일 필요가 없어졌고, 그러니 어제의 차분하던 내가 오늘 알 수 없는 깨방정을 떤다 하더라도 그건 ‘나답지 않은’ 행동이 아니라 ‘또 다른 나다운’ 행동인 것이다.
_2016년 8월부터 길스토리 크리에이터 멤버로 활동 중이다. 6년째 문화예술 전문 기자로 일하고 있으며, <나를 지키는 말 88>의 저자이기도 하다. 2019년 9월 1일, ‘제6회 카카오 브런치북’ 대상에 빛나는 두 번째 책 <아이라는 근사한 태도로>(웨일북)를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