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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션에 대한 글을 쓰는 패션칼럼니스트입니다
    Eunjung Kim
    Fashion Column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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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 (2014-03-10)
    추천수 245
    조회수   2,712
    글·사진 : 김은정 (패션칼럼니스트)

    꽃을 싫어하는 여자가 있을까? 있을 것이다. 이 세상에는 다양한 인간이 살고 있으니 말이다. 나 또한 꽃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부류에 속한다. 아니 속했다. 고운 것을 좋아해도 꽃에 마음을 내주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마음을 어떻게 주어야 할지 몰랐다. 꽃을 선물로 받는 것이 싫었다. 화병도 장만해야 하고 물도 갈아야 하고 꽃도 다듬어야 하고 꽃잎이 떨어지면 주변을 치워야 하는 등 일거리를 제공하는 것이 도무지 반갑지 않았다. 꽃다발조차 사랑스럽지 않았다. 실용적이지 않다고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그 때의 나, 꽤 퍽퍽했다. 왜 그랬을까?
    꽃에 마음을 주기 시작한 것은 집안 구석구석까지 사랑을 듬뿍 쏟아 ‘스위트 홈’을 일구도록 부추긴 중국에서의 새로운 삶이 도화선이 되었다. 정신 없이 출근하고 축 늘어진 채 귀가만 하던 사람에게 집을 꾸미는 일은 먼 나라의 이야기였다. 꽃을 집에 들여야겠다고 굳힌 결심 뒤에는 프랑스 친구들의 운치 넘치게 꾸민 집이 미친 영향력이 크다. 거실에 들어서면 코끝을 찌르는 새하얗고 기다란 백합의 향내는 기분에 새 옷을 입혀주는 것 같았다. “난 꽃이 싫어요!”를 외치던 무덤덤한 주부는 동경 어린 시선으로 향을 내뿜는 주인공들을 바라보며 꽃을 사보겠다는 다짐을 굳혔다. 동경은 그렇게 사람을 ‘따라쟁이’로 만들어버렸다. 꽃들과의 동거가 이루어지는 길목에서 마음 한 구석에는 정의하기 힘든 긍정의 감정이 자리잡았다. 자로 잴 수 없는 여유 한 줌이 건네는 기쁨에 눈뜬 시간. 꽃이 행사하는 보이지 않는 마술이 내게도 윙크를 보낸 것이다.

    꽃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자 길거리의 이름 모를 들꽃의 때깔을 옷차림에 반영하는 것으로 나의 ‘예비 꽃 사랑’에는 불이 붙었다. 고백하자면 새롭게 고개를 든 꽃 사랑은 여기 저기서 팡파레를 울리는 울긋불긋한 꽃 그림과 꽃무늬 옷을 즐겨 입는 중국 여자들에게서 영향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처음에 촌스럽다고 여겼던 알록달록한 꽃들이 옷을 고를 때 잣대로 적용되는 이변으로 이어지더니 생활 습관으로 안착했다. 이에 대해 친정 엄마는 야릇한 취향이라고 일축하신다. 타는 듯한 황토 빛 흙으로 물든 토양에 어우러진 꽃분홍 색의 철쭉과 초록빛 잎사귀를 렌즈에 담아 꽃분홍색 탱크톱과 초록빛 치마로 이루어진 옷차림으로 데려오니 그 느낌이 심히 ‘꽃스러워’ 꽃의 에너지에 그만 푹 빠지고 말았다. 어느새 난 옷을 색다르게 입도록 도모해주는 아이디어가 필요하면 꽃집에 들러 색감을 도둑질하는 여자로 변해 있었다.
    꽃을 더 좋아하게 된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꽃에서 훔친 색들을 귀고리에 고이 모시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다. 귀고리를 구성하는 한 알 한 알에 저미는 꽃의 숨결을 사랑한다. 상상하지 못했던 색의 매력이 귀에서 잉태하는 것을 보면 신기하다. 어느 날은 장미, 또 어떤 날은 수국, 어떤 날은 진달래가 귓볼을 파티 분위기로 이끈다. 해바라기가 신경에 꽂히면 노란색 구슬들밖에 보이지 않는다. 노란색으로 물든 귀고리를 하면 해바라기가 된 기분이다. 그 날 하루는 명랑해야 한다고 되뇐다. 어처구니 없는 주문일 수도 있겠으나 효력이 있다. 결론인 즉 기분에 색을 입혀주는 꽃은 컬러 텔레비전 같은 존재다.
    지난 달 집으로 꽃바구니가 하나가 배달되었다. 여느 때 같으면 꽃 선물에 지긋한 시선을 허락하지 않았을 터. 보낸 이의 마음이 실린 꽃들에 감개무량해진 심장. 꽃 선물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아내를 익히 잘 아는 남편이 주문한 생일 꽃이었다. 이른 아침에 이미 생일 축하 전화를 받았기에 더 이상의 기대 같은 건 갖지도 않은 상태에서 품에 안긴 꽃 더미를 그렇게 뚫어져라 쳐다본 적이 있었던가. 난데없이 웬 꽃이냐고 남편에게 물어보니 나이를 먹을수록 꽃으로 말하면 좋을 듯싶다는 명답이 돌아온다.
    주름이 늘수록 말보다 꽃이 좋아진다.

     

    _김은정은 이화여대 불어불문학과와 프랑스 파리 에스모드 스타일리즘 학과를 졸업했다. 파리에서 일하다 패션잡지 「엘르」가 국내에 들어온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패션 에디터로의 열망을 안고 한국에 돌아왔다. 패션 라이센스 잡지 엘르(ELLE KOREA), 마리 끌레르(Marie Claire KOREA)에서 패션&뷰티 디렉터, 마담 휘가로(madam figaro KOREA)에서 편집장을 역임했다. 이후 샤넬 코리아(CHANEL KOREA)에서 홍보부장으로 근무했다. 현재는 싱가포르에 거주하며 패션에 관한 글을 한국의 패션잡지에 기고하며 패션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며 패션과의 끈을 단 한순간도 놓지 않고 살고 있다. 저서로는 [Leaving Living Loving](2009), [옷 이야기](2011)가 있다. ⓒPhoto by Jin Soo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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