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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화신의 조용한 수다방
    당신의 따뜻한 말 한 마디에 세상은 흐드러지게 피어나고
    Hwashin Son
    Writer
    손화신 / 상세보기
    말을 삼키다
    추천수 225
    조회수   2,945
    말을 삼키다
    글 : 손화신 (작가)

    “입과 혀는 재앙과 근심의 문이고, 몸을 망치는 도끼이다.”
    - <명심보감> 中
    누군가 그랬다. 열 가지 좋은 습관을 갖는 것보다 자신을 괴롭히는 한 가지 나쁜 습관을 버리는 것이 행복해지는 지름길이라고. 말도 그렇다. 열 마디의 좋은 말을 하는 것보다, 한 마디의 상처 주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 더 좋은 말하기다. 마늘, 양파, 고기, 버섯, 두부 등등 신선하고 좋은 재료를 잔뜩 넣어서 일품요리를 만들어봤자 마지막에 잿가루를 뿌린다면 그 요리는 가치를 상실하고 만다. 제대로 말을 하는 사람은 좋은 말을 많이 하려고 욕심내기 보다는 재 뿌리는 한 마디를 하지 않으려고 신중하고 조심하는 사람이다.
    세 번 생각하고 한 번 말하라는 삼사일언(三思一言)으로도 부족하다고 여겼는지, 공자는 구사일언(九思一言)하라고 <논어>에서 이르고 있다. 아홉 번 생각하고 한 번 말하라는 건, 해서 안 될 말은 철저히 하지 말란 뜻으로 해석해도 무방하겠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면 하지 않아야 할 말이 섞여 나오게 돼 있다. 그러니 우리는 구사일언하여, 하고 싶지만 해선 안 될 말을 꿀꺽 삼키는 연습을 해야 한다. ‘연습’이란 단어를 쓴 이유는 말 삼키기도 노력하면 더 잘할 수 있는 ‘능력’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내가 나가는 대화모임에 25살 먹은 청년 한 명이 있다. 생각도 바르고 예의 있는 모습이 보기 좋은 친구다. 어느 날, 고민을 털어놓고 이에 대해 서로 조언을 나누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그런데 이 청년은 다른 이들에게 자신이 조언을 해줄 차례가 오면 번번이 패스했다. 원래 저런 성격이 아닌데 오늘따라 왜 저렇게 성의 없는 태도일까 의아했다. 그런데 청년은 매번 패스하는 건 아니었고 자신이 겪었던 고민과 비슷한 고민이 나오면 열정적으로 이야기하기도 했다. 모임이 끝나고 청년에게 다가간 나는 발언권을 여러 번 포기한 이유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청년이 답하길, 자신이 잘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넘겨짚어서 이래라 저래라 조언하고 싶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 아닌가! 그의 신중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보통은 타인이 자신에게 고민 상담을 해오면 괜히 으쓱해져서는 무슨 말이라도 해주고 싶은 게 사람 심리인데 청년은 끝까지 긴장을 놓지 않고 자신의 혀를 자제시켰던 것이다.
    알고 보니 이 청년의 구사일언 습관에는 가슴 아픈 사연이 있었다. 청년은 고등학생 시절에 미술을 공부하고 싶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들의 미대 진학 준비를 반대했고 공부에만 집중하길 바랐다. 청년은 어쩔 수 없이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고 미술학원에 다니며 꿈을 향해 정진했다. 자연히 아버지와의 관계는 서먹해졌다. 어느 날 밤늦게 미술학원을 마치고 집에 돌아갔더니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귀가한 청년의 동생이 아버지와 늦은 저녁을 먹고 있었다. 아버지는 현관에 들어서는 청년을 힐끔 보더니 동생을 향해 한 마디를 던졌다. “너는 니 형처럼 저렇게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공부만 열심히 하거라.” 그 말을 듣고 방으로 들어간 청년은 칼 하나가 가슴 중앙에 쿡 박히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나을 줄 알았건만 가슴에 꽂힌 칼이 아직도 빠지지 않는단 것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아버지를 볼 때면 가슴 가운데가 쓰리다고 청년은 고백했다. 그때 일로 청년은 스스로에게 한 가지 약속을 했다고 한다. 남에게 조금이라도 상처로 남을 수 있는 말이라면 절대로 내뱉지 않겠다고. 아버지처럼 누군가의 마음에 칼을 꽂는 일은 살면서 절대 하지 않겠다고. 이것이 그 청년이 가진 신중함의 배경이었다.
    청년의 말을 듣고 멋지다는 생각과 함께, 마음 한쪽에선 ‘형처럼 쓸데없는 짓 하지 말라는 말이 7년이 지나도 아플 만큼 그렇게 심한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의문을 갖는 순간 스스로의 경솔함이 따갑도록 실감되어서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 청년의 아버지도 나처럼 ‘이게 그렇게 심한 말은 아닐 거야’란 생각으로 그 말을 뱉었을 것이다. 하지만 듣는 당사자에게는 치명적인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것. 이것이 중요한 것이다. 자신이 의도한 바가 듣는 이에게도 딱 그만큼의 중량감으로 전해질 것이란 착각은 아주 무서운 것이다. 자신은 시속 20km로 칼을 던졌어도, 그걸 맞는 사람에게는 시속 200km로 꽂힐 수 있단 것을 잊어선 안 된다.
    그때 청년의 아버지가 만약 드시던 밥과 함께 그 말씀을 삼켰더라면 지금 아들과의 관계는 달라졌을까? 분명 달라졌을 거라 아들은 생각하고 있었다. 밥을 삼키는 것처럼 말을 삼키는 것도 쉬운 일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한숨짓는 대신,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부지런히 연습해볼 수도 있겠다. 이 말을 하면 상대가 상처 받을 수도 있겠다, 어쩌면 실례가 되겠다 싶은 말이라면 비록 그 말을 뱉고 싶어 미칠 지경이라도 꾹 삼켜보는 거다. 일상 속에서 그런 연습을 해보는 거다. 처음에는 힘들겠지만 밥을 먹고 몇 시간이 지나면 배가 꺼지듯, 하고 싶은 말을 삼키는 고통 또한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것이다.
    말을 삼키는 것은 성숙한 인격의 일이다. ‘삼킨다’는 말은 ‘소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전제로 한다. ‘두려움을 삼키다’는 말에는, 그 사람이 두려움을 먹어 해치울 수 있는 배짱이 있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하고 싶은 말을 삼키는 것 역시 삼킨 말을 내 안에서 삭혀서 없애버릴 수 있을 만큼 나 자신이 넉넉한 사람이란 걸 증명하는 일이다. “무엇이고 참을 수 있는 사람은 무엇이고 이룰 수 있다.” 누군가가 남긴 이 강렬한 명언처럼 우리가 훈련을 통해 어떤 말이든 참아낼 수 있게 된다면 무엇이고 이룰 수 있을 것이다.
    - 작가의 에세이 <나를 지키는 말 88>에 실린 글입니다

    _손화신은 에세이 <나를 지키는 말 88>의 저자다. 스피치 모임을 10년 동안 진행해오며, 진정한 말은 침묵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대로 된 한 마디’를 하기 위해 말의 뿌리인 침묵 안에서 우리가 무엇을 키워나가야 하는지를 이야기한다. 현직 음악담당 기자이며, 길스토리 프로보노이자 카카오 브런치 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글 쓰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 브런치 주소: brunch.co.kr/@ihearyo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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