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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대로 읽고 쓸 수 있으며, 명확하게 말하고, 섬세하게 들을 수 있기를 원합니다
    Gayoung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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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의 안과 밖 (2016-06-08)
    추천수 202
    조회수   2,229
    6월의 안과 밖
    글 : 이가영 (작가)

    "Vivian Dorothea Maier" (1926년 2월 1일 - 2009년 4월 21일)
    릴리리랄라~
    싱숭생숭 민숭민숭하다.
    이즈음처럼 알 수 없는 계절이 또 있었나?
    요새 해는 쓸데없이 일찍 출근해서 커튼을 안치고 잠들면 새벽 다섯 시 즈음부터 훤하다. 몸은 아직 잠들어있는데 괜히 눈만 껌뻑껌뻑, 괜히 지표면이 뜨거워지기 전에 혼자라도 나가서 신나게 뜀박질하고 와야 할 것만 같은 이상한 느낌. 이때가 이렇게 특이한 질감을 가지고 있었나 당황스럽다. 여름은 그냥 여름이지.
    하지만 6, 7, 8월 다 같은 여름이 아닐지도 모른다. 단순히 덥고 습해 짜증이 난다...로 기억되던 이 계절은 진작 버린 셈 쳤는데, 아무래도 억울하다. 거의 일 년의 절반이 여름인데! 이젠 어이가 없어서 안 되겠다. 더운가 보다 하면 다시 서늘하며 오락가락 저 혼자서 지그재그로 뜀박질하는 기온도 나름 멋이라 여기면서 그 맛을 찬찬히 음미해야지. 곧 어느 장단에 맞추라는 거냐 씩씩대겠지만 시작은 해봐야겠다.
    하지만 결국 이 정신 나간 리듬을 어찌 이해하겠나? 꼭 그 무명 사진작가의 사진처럼.
    그 내면의 이야기를 들여다볼수록 잘 이해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더 알 수가 없게 되던 것처럼. 영화 각본으로 쓸래도 중간에 스스로 답답해서 이렇게 못 쓸 것 같은 이야기, 그 반짝이면서 쓸쓸하던 미행을 생각하게 된다.
    작년, 이즈음 처음 알게 된 그녀,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
    "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 "
    2007년, 시카고.
    어릴 젓부터 아버지 따라 골동품 수집이 취미였던 청년 존 말루프.
    역사 책에 넣으려 옛 사진들을 찾아 다닌다.
    그렇게 뻔질나가 경매 시장에서 낡은 사진들을 찾아 다니다 지금껏 공개된 적 없는 10만장 넘는 사진을 발견한다. 그런데 이 무명작가, 저장 강박증을 앓고 있던 모양이다. 사진만큼이나 어마어마한 각종 영수증과 잡동사니들을 덤으로 딸려온 걸 보면.
    이토록 난감할 때가.
    더 큰 문제는 인화하지도 않은 채로 박스 안에 칸칸이 쌓인 수 만개의 필름이었다. 대체 이걸 언제 다 인화해 본단 말인가, 그래도 이왕 가져왔으니까 꾸준히 꺼내보자는 무모한 다짐을 한다. 그래도 뭐 모두 50, 60년대 찍은 사진이라니까 저 중에 하나라도 건질게 있겠지.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자신이 엄청난 벼락을 맞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것이야말로 말로만 듣던, 알고 보니 우리 다락방에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진품을 발견 했어요 같은 전개인가? 이 평범한 청년은 전 세계 최초로 한 작가가 꼭꼭 숨겨 온 봉인된 시간을 열었다. 그리고 결심했다. 그녀를 찾아보자고…….
    알고 보니 그 이는 미국 전역에서 보모 일을 하던 유모였다. 사진은 취미였던 셈인데, 항상 산책 때마다 목에 롤리 플렉스 카메라를 메고서 뉴욕 거리를 활보했다. 처음에는 그 시간을 함께한 아이들이라면 그녀에 대해 말해 줄 것이 많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성인이 된 아이들과 그 가족들이 기억하는 그녀는 여전히 비밀스러웠고 의문투성이였다.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남에게 하는 법이 없었고, 첩보물의 주인공처럼 가명을 썼으며, 자신이 사는 집의 뒷마당에까지 신문을 쌓아놓으며 기사들을 모았다. 그래서 항상 같이는 가족들과 실랑이를 벌였다. 그런 일들로 일을 그만둔 적도 많았다.
    그녀는 마치 미국의 그 유명한 동화 속 유모, 메리 포핀스처럼 평범하면서도 신비로운 사람이기도 했다. 기분이 좋은 날에는 아이들과 물놀이도 하며 정답게 놀았다. 어떤 때는 정말 천사 같아서 한없이 아이들을 사랑하며 농담도 곧잘 했다. 하지만 가끔 광적으로 자신의 어둠을 드러내기도 했다. 어떤 날은 5살짜리가 밥을 잘 먹지 않는다고 목을 조른 적도 있었다. 친구도 잘 두지 않았고, 말은 오래 하지 않았다.
    이렇게 보면 매우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 같다가도, 그 사진 속 편안한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 이토록 낯선 이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가는 사람이 또 있을까 감탄하게 된다. 아무리 보아도 사진 속 얼굴들은 느닷없이 들이댔을 렌즈를 그 어떤 거리낌 없이 대려 편안하게 바라보고 있다. 이미 그녀가 만든 세계 안에 편안히 살아 숨 쉰다. 그렇게 우연히 길을 걷다 마주친 타인에게 스스럼없이 말을 걸고 멈춰 서게 만들며 편안한 미소를 짓게 하던 사람.
    이렇게 도통 알 수가 없는 사람,
    " 아무도 몰랐던 당신에 대하여 "
    조금만 더 자신을 날아가게 해주었으면 좋았을 그대에게,
    그렇게 아무도 몰랐던 당신에 대하여…….

    "Vivian Dorothea Maier" (1926년 2월 1일 - 2009년 4월 21일)

     

    _이가영은 끊임없이 오랜 시간 동안 소설 쓰기를 하는 작가다. 제대로 읽고 쓸 수 있으며, 명확하게 말하고, 섬세하게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그녀는 소설로 등단을 하겠다는 꿈을 갖고 있는 "글을 쓰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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