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로 채움
그림·글 : 이성수 (미술가)
향기로 채움 40F oil and acrylic on canvas 2021
정원의 수풀은 향기로 나를 채우고, 지우고, 점유한다.
오늘 이 유희의 전장에선
매우 공격적인 릴리와 장미가 선발로 달려 나오고
아카시아와 배꽃 향기가 배수진을 치며
바질과 루콜라, 허브 병정들이 바쁘게 움직이며
향기의 빈자리를 채운다.
나는 일종의 환희를 맛보며 하나하나의 정체를 밝히기도 하고
둘 셋, 혹은 모두의 하모니를 음미하기도 한다.
향기는 늘 빠르게 지나가는 경험이다.
그러나 난 한 번도 내가 경험하고 보낸 향기를 아쉬워해본 일이 없다.
내게 향기는 아름다운 감각임을 넘어 매개체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향기는 순간이지만 내게 호흡이 되어 허파를 통해
뇌의 어느 부분엔가 남아있을 거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세상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을 그 향기를 다시 맡으면
그 향기와 함께 지나간 그 시절의 모든 경험이 되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향기는 호흡, 내 안에 있어 실재이니
향기와 함께 모든 지나가는 순간은
현재로 간직될 것이다..
_이성수는 서울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했다. 2003년부터 국내외에서 다수의 개인전을 열었고 그룹 전과 아트페어에 참가했다. 그의 작품에는 사람이 있고, 환상이 있고, 웃음이 있고, 공기가 있고, 바다가 있으며 그 안에 너와 내가 있다. 환경, 동물, 사람이 존재하고 융합되는 그의 이미지는 때로는 부드럽게 따뜻한 시선으로 때로는 지독하게 차가운 얼굴로 다가와 세상의 무엇을 이야기한다. ⓒLee Soungsoo soungsoole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