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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션에 대한 글을 쓰는 패션칼럼니스트입니다
    Eunjung Kim
    Fashion Columnist
    김은정 / 상세보기
    여행 (2014-07-08)
    추천수 381
    조회수   3,960
    여행
    글·사진 : 김은정 (패션칼럼니스트)
    이 두 글자를 떠올리기만 하면 심장이 뛴다. 두 글자는 “그럴 수도 있구나”라는 사실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새로운 취향을 취하도록 하고, 집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또 다른 나를 발견하도록 이끈다. 부유한 피로감을 선물하는 두 글자는 바로 여행이다. 여행이라는 글 주제를 받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때껏 걸어온 길이 여행으로 점철되었던 것 같다. 집을 떠나 다른 곳에서 살기를 반복하고 있는 나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베트남

    일곱 살 때 처음으로 나라 바깥 땅을 디딘 곳은 월남으로 알려진 베트남이었다. 체크 무늬 치마에 하얀 재킷, 베레모까지 세트로 맞춰서 김포공항으로 향했던 기억은 4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생생하다. 70년대 사이공. 한글 쓰기 연습을 철저히 시켰던 엄마, 녹두와 코코넛 밀크가 들어간 빨강 하양 초록 세 가지 색을 띤 달콤한 음료, 운전수 아저씨가 즐겨 먹던 버터와 설탕을 바른 쫀득하고 고소한 빵(그것이 프랑스인들이 매일같이 먹는 바게트라는 사실은 나중에 알았다!), 파임이 유난히 깊은 연분홍색 실크 블라우스를 입었던 피아노 선생님, 세모꼴 모자를 쓰고 몸에 꽉 붙는 아오자이 차림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던 여자들, 여름만 인식하는 무더운 날씨, 드넓은 초록 잔디를 보유했던 한국대사관에서 열리던 가족 모임, 울창한 고무나무 숲, 국제학교에서 익혀나갔던 영어라는 이름의 외국어, 혀를 기분 좋게 싸고 도는 망고와 파파야, 리치의 향긋하면서도 단 맛, 고개를 들면 허공을 가르는 종려나무의 뾰족한 잎들, 단물만 쏙 빼먹고 버리는 사탕수수, 수십 색의 구슬들이 박힌 벨벳 슬리퍼.
    베트남은 내게 동남아시아의 향신료에 익숙해지고 거멓게 그을린 피부에 애착을 갖도록 힘을 아끼지 않은 일등공신이다. 왜 그렇게 햇빛을 좋아하냐고 묻는 질문에 제일 먼저 튀어 나오는 단어는 “월남”이다. 살갗에 티를 내며 내려앉는 햇빛의 강렬한 기운을 느끼면 버겁게 품고 있던 걱정이 사라지는 행복감에 젖는다. 잠깐이지만 마음을 고쳐 잡는 데 말 잘 듣는 신비한 묘약이다.
    스위스

    열세 살에 만난 유럽은 서양이라는 전혀 다른 세계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주었다. 난생 처음 가보는 스위스의 제네바. 그곳은 초콜릿과 치즈, 시계, 스키장, 손수건으로 유명한 나라였다. 시장을 보러 슈퍼마켓에 엄마를 따라 처음 갔던 날 생애 그토록 풍부한 유제품과 햄을 본 적이 없었다. 마요네즈와 새우를 얹은 카나페, 초콜릿과 생크림, 체리의 맛이 환상적인 블랙 포레스트 케이크, 스키장에서 먹으면 더욱 감칠맛 나는 치즈 퐁듀와 라클레트(뜨겁게 달군 치즈를 먹고 나서 절대로 물을 마시지 말라는 친구 엄마의 조언은 철칙이다.) 등 난생 처음 마주하는 유럽식은 먹성 좋은 소녀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다. 식사 때마다 포도주를 즐겨 마시는 사람들, 식사를 하고 나면 디저트로 마무리하는 식습관, 아침에 먹는 건강식 뮤슬리, 하드롤에 발라 먹는 초콜릿 잼 뉴텔라, 야외에서 구워 먹으면 그 맛이 일품인 짭짤한 메르게즈 소시지. 낯설던 스위스는 그렇게 풍요로운 먹거리로 어색했던 공기에 정을 주게 만들었다.

    생애 두 번째 여행지 스위스에서 건져 올린 보물은 그 무엇보다 불어였고 문화와 관습이 다른 서양 친구들과 나눈 우정, 그리고 가족 모두가 함께한 시간이었다. ‘쁘’, ‘뜨’, ‘끄’ 일색인 불어로 듣고 말하고 쓰는 능력을 어디에서 또 배울 수 있다는 말인가. 스위스,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인 친구들과의 우정이 생기지 않았으면 ‘백인’은 어쩌면 먼 존재로 다가왔을 지도 모른다. 70년대 말에서 80년대 초 시류를 공유한 연대감, 엄마, 아버지, 동생들 모두와 함께한 시간을 떠올리면 가슴이 먹먹하다. 동양과 서양의 정서를 잡음 없이 오갈 수 있는 것, 그 용이함은 세상을 바라보는 눈에 여유 한 줌을 마련해주었다. 누군가 스위스에서 왔다고 하면 반가움이 앞서는 이유다.
    프랑스

    대학 졸업 직후 패션 공부를 하기 위해 날아간 파리. 전통과 현대가 조화롭게 교감을 이루는 파리에서 가져온 것은 일리가 있으면서도 독특함을 내포한 감성이다. 고색창연한 건물이 내뿜는 고매한 베이지 컬렉션, 루프 탑 위로 펼쳐지는 푸른 하늘,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스타일리시한 패션 감각을 소유한 파리지엔들, 저녁 식사 전 아페리티프(식전주) 한잔을 거치는 여유, 끊임 없이 이어지는 예술 전시, 멋의 유혹, 교외 친구네 부모님 댁에서 보내는 한갓진 주말, 길가에서 사먹는 두툼한 버터 설탕 크레이프(옛날 사이공에서 먹던 운전수 아저씨의 바게트 맛과 비슷하다), 싱싱한 굴에 착 달라붙는 서늘한 화이트 와인, 길거리를 누비는 즐거움, 이른 아침 문 여는 카페의 테라스에서 만끽하는 에스프레소와 버터 맛이 잔뜩 나는 크로아상, 크리스마스를 앞둔 갤러리 라파예트 백화점의 진열장, 샴페인을 곁들인 축하 모임, 갖춰서 입는 속옷의 중요성, 자연스러움의 미덕, 오리엔탈 스타일의 재발견, 다분한 호기심, 18구 생 피에르 원단 시장 지역에 거주하는 아프리카인들이 보여주는 색상 감각, 마레 지역의 유태인 빵집, 엘레베이터가 없는 구식 아파트, 어디서든 책을 꺼내 읽는 국민 정서, 어렸을 적부터 아이들에게 채소 먹기를 강요하는 엄마들, 허튼 음료수 대신 소지하고 다니는 물 한 병. 로망을 투영하는 가로등 불빛, 결코 미워할 수만은 없는 잿빛 비둘기, 음산한 가을 공기, 저녁 식사 옷차림에 신경 쓰는 몰입도… 파리의 단상들은 형용할 수 없는 감(感)으로 신경 세포를 적셔 놓는다.
    파리의 공기는 여자를 더 여자답게 탈바꿈시키는 마력을 갖는다. 리차드 와그너, 에밀 졸라, 위젠 드라크르와, 프랑스와 트뤼포, 샤넬 등 파리의 예술적 취향이 수많은 아티스트들을 불러모은 점을 보면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파리는 창의적인 에너지를 제공해주는 영감의 보물 창고다. 옛날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미래도 그럴 것이다.
    중국

    남편과 아들, 우리 가족이 처음으로 생활하게 된 외국은 중국이었다. 불혹의 나이가 될 때까지 중국은 내 심장에 들어 있지 않았다. 호감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찾을 수 없었다. 중국을 갔다 온 사람들로부터 숱하게 들은 여행담의 골자는 비위생적인 환경이었으니 가보지 않은 사람으로서는 선뜻 좋은 감정이 생길 리 만무했다. 그러나 7년이 지난 지금은 다르다. 중국이 거론되면 일단 반갑고 정겹다. 살아 보지 않으면 왈가왈부할 수 없는 것임을 터득하도록 안내해준 길잡이는 4년간의 남부도시 선전에서의 나날들이었다. 식당에서 식은 밥을 내올 수 있고 문제가 있어도 괜찮다고 (이해가 안 되는) 웃음으로 일축할 수 있고 더운 날씨를 못 이겨 러닝 셔츠를 걷어 올리고 다닐 수 있고 병원에 놓인 메모지 한 무더기를 내 것인 양 가져 올 수 있고 계약서를 존중하지 않을 수 있고 사람이 건널목을 건너고 있음에도 차들이 정지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에 처음에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분노가 치밀어 올라 가슴을 혼자 팍팍 치는 버릇이 생겼다. 그러던 어느 순간 중국에 산다는 사실이 대단하게 느껴지는 반전이 일어났다. 효능이 제 각각인 차들이 몸을 더 편하게 해준다는 사실에,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 산해진미에, 그곳에서 짜인 새로운 인간 관계에, 서방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문화의 깊이에 동화되는 나 자신을 발견하면서부터 13억 인구가 숨 쉬는 땅이 매력 있게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을 만나 통성명을 하는 과정에서 중국이 둥지라고 말하면 눈들이 커지면서 우려와 호기심, 선망이 뒤섞인 반응이 읽혀지곤 했다. 성장을 멈추지 않는 중국 시장의 위력은 세계의 기업들에게 절체절명의 기회를 안겨주고 있기에 새로운 포부를 품고 중국 땅을 밟는 외국인들이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현실은 중국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고 있다. 비약하는 중국에 대해 미약하게나마 증언할 수 있음이 얼마나 역사적인가.
    세련되게 다듬은 유행이 발 빠르게 전해지지 않아도 하루하루 웃으며 지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보다 낯선 땅에서 알게 된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었다. 보통이 아닌 국가에서 사는 외국인들은 좀 더 잘 뭉치는 경향이 있다. 예사롭지 않음을 공유하면서 각별한 친구가 되어버린다. 중국 안에서 세계를 체험하는 신기로움 속에서 나는 내 안의 ‘세계’를 지각하는 행복을 맛보았다.
    싱가포르

    싱가포르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서비스가 최고라고 소문난 싱가포르 항공과 맛 있다는 음식, 아시아의 스위스라고 불릴 만큼 깨끗한 도시 환경이 고작이었다. 마흔 줄 중반이 된 길목에서 만난 싱가포르는 싱그러운 거주지로 어렸을 적 베트남을 상기시키는 요소들이 종종 눈에 띄는 것이 몇 초, 때로는 몇 분, 과거로의 아득한 시간으로 데려가곤 했다. 겨울과 무관한 열대성 기후만으로도 사랑하기에 충분했다. 중국계, 말레이계, 인도계 등 다민족으로 구성된 국민성은 서로 다른 종교에 따른 사회 관습을 유지하는 이채로운 조화를 보여주고 있어 그 절묘한 균형 체계는 새로운 둥지로 3년 간 자리매김할 이국 땅에 가까이 가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켰다. 매일 아침 눈뜨면 동공에 맺히는 열대 나무들과 샛노란 햇빛은 다음 행선지인 홍콩에 가면 보지 못할 장면이다. ‘정원 속의 도시(a city in a garden)’. 도시 곳곳을 누비다 보면 눈에 들어오는 캐치프레이는 캠페인 구호에 머물지 않고 실행력이 뛰어나 자연과 도시의 틈을 보기 좋게 메운다. 시민의 건강을 책임지는 아름다운 공원들, 지역별로 특색 있게 존재하는 호커 푸드 센터(노천식당), 큰 소리 치지 않는 사람들, 비라는 것이 도대체 언제 왔었냐는 듯 거짓말처럼 쾌청한 날씨, 기다림을 요구하지 않는 공항의 출입국 심사대, 우산을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되게끔 버스 정류장에서부터 주요 쇼핑센터까지 설치한 캐노피, 매콤한 페퍼 크랩. 이렇게 나의 싱가포르는 백지에 기록되고 있다.
    다음 행선지는 홍콩이다. 어떤 그림이 그려질지 궁금하나 깊이 생각하지 않을 요량이다. 낯선 곳은 언젠가 익숙한 곳으로 변할 것이다. 떠나고 살고 사랑하기를 거듭하는 가운데 삶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읽는 이야기 책을 닮아가고 있다.

     

    _김은정은 이화여대 불어불문학과와 프랑스 파리 에스모드 스타일리즘 학과를 졸업했다. 파리에서 일하다 패션잡지 「엘르」가 국내에 들어온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패션 에디터로의 열망을 안고 한국에 돌아왔다. 패션 라이센스 잡지 엘르(ELLE KOREA), 마리 끌레르(Marie Claire KOREA)에서 패션&뷰티 디렉터, 마담 휘가로(madam figaro KOREA)에서 편집장을 역임했다. 이후 샤넬 코리아(CHANEL KOREA)에서 홍보부장으로 근무했다. 현재는 싱가포르에 거주하며 패션에 관한 글을 한국의 패션잡지에 기고하며 패션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며 패션과의 끈을 단 한순간도 놓지 않고 살고 있다. 저서로는 [Leaving Living Loving](2009), [옷 이야기](2011)가 있다. ⓒPhoto by Jin Soo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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