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라는 큰 그림
글 : 손화신 (작가)
“인간의 나약함이 서로를 이해하는 계기가 되길......”
- 톨스토이
지인 중에 행복전도사가 한 분 계시다. 거짓말이 아니다. 만나면 무조건 행복을 전도 받는다. 소외된 곳을 찾아다니며 봉사하는 삶을 사는 멋진 여성이다. 다음은 그녀가 겪은 용서와 화해 이야기다.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던 그녀는 총명하고 심성 고운 한 초등학생 남자 아이를 유심히 지켜봐왔다. 그러다 어느 날, 그 아이가 칠판에 그림을 그리는 것을 우연히 봤는데 폭력성이 짙은 끔찍한 그림이었다. 깜짝 놀란 그녀는 내심 걱정이 됐다. 며칠을 고민하다가 아이의 어머니와 성적 이야기로 통화를 하던 차에 조심스럽게 그 이야기를 꺼냈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반응이 돌아왔다. 노발대발한 아이 엄마는 “내 아들을 어떻게 보고 그런 소리를 하느냐”며 독설을 퍼부었고, 그녀도 확 꼭지가 돌았다. 수화기 너머로 오간 격렬한 다툼은 급기야는 오프라인으로 이어져 얼굴을 대면한 더 격렬한 싸움으로 번졌다. 서로의 가슴에 큰 못 하나씩 박은 날이었다.
8년 후. 그녀는 8년 동안 인생의 큰 굴곡들을 겪는다. 건강문제 등 평생 있을 시련이 한꺼번에 찾아오면서 인생 전체가 흔들렸고 그 계기로 삶에 대한 가치관을 모두 바꾸고 행복전도사의 길을 걷게 됐다. 그녀는 8년 동안 늘 찝찝함으로 남아있던 아이 엄마와의 매듭을 풀고 싶었다. 결혼을 하고 보니 그때 아이 엄마의 마음이 이해가 됐던 거다. 아이 엄마는 워킹맘이었다. 다른 엄마들만큼 아이에게 신경을 못 쓰는 죄책감과 열등감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내가 상처가 될 수 있는 말을 했구나, 후회가 됐다. 비로소 아이 엄마를 마음으로 용서할 수 있었고 또 용서받고 싶었다.
8년 만에 전화를 걸었다. 부재중이었다. 순간 그녀는 엄청난 안도감을 느꼈다. 내심 전화를 안 받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으니까. 몇 분 후 아이 엄마로부터 문자가 왔고, 그녀는 왜 전화를 했었는지 긴 문자로 설명했다. 용서를 비는 문자 끝엔 만나 뵙고 못다 한 사과를 마저 전하고 싶다고 썼다. 아이 엄마는 사과는 받겠지만 만나는 것은 원치 않는다며 거절의 답장을 보내왔다. 그녀는 아이 엄마를 만나는 대신, 집필 중인 자신의 저서에 아이 엄마에게 건네는 사과의 말을 적었다. 책이 출판된 날, 그녀는 아이 엄마에게 문자를 보내 사과의 글을 책에 싣게 되었으니 기회가 되면 읽어주셨으면 좋겠노라고 말했다. 몇 주 후, 아이 엄마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선생님, 우리 만나요.”
책을 읽고 그녀의 진심 어린 사과에 감동한 아이 엄마가 자신도 용서를 빌고자 만나자고 한 것이다. 8년 만에 두 사람은 얼굴을 마주 보고 앉았다. 그리고 서로의 가슴에 박은 못을 직접 뽑아주었다. 그리고는 친구의 연을 맺었다. 두 사람은 요즘도 가끔 만나서 사는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다.
그녀의 용서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용서는 ‘나약함’이라는 붓으로 그리는 ‘큰 그림’이다. 이 붓이 없을 땐 상대의 행동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화만 날 뿐이지만, 자신의 나약함에 눈을 뜨고 겸손해질 때 상대의 행동 역시 ‘악함’보다는 ‘나약함’에서 비롯됐단 걸 알게 된다. 나의 나약함이 상대의 나약함을 이해하는 것. 바로 용서라는 큰 그림이다.
- 작가의 에세이 <나를 지키는 말 88 (쌤앤파커스)>에 실린 글입니다.
_손화신은 에세이 <나를 지키는 말 88>의 저자다. 스피치 모임을 10년 동안 진행해오며, 진정한 말은 침묵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대로 된 한 마디’를 하기 위해 말의 뿌리인 침묵 안에서 우리가 무엇을 키워나가야 하는지를 이야기한다. 현직 음악담당 기자이며, 길스토리 프로보노이자 카카오 브런치 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글 쓰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 브런치 주소: brunch.co.kr/@ihear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