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시간의 공통점
글 : 손화신 (작가)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기회다. 아무리 백만장자라 한들 24시간에서 1분도 더 보태어 가질 수 없다. 모두를 굽실거리게 만드는 권력가라 하여도 말단관리로부터 1분의 삶도 빼앗을 수 없다. 돈으로도 어떻게 안 되는 것들. 사람의 마음, 죽음, 그리고 시간.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야 말로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 아니었던가?
그래서 사람들은 시간을 금이라 불러가며 아껴 쓰려 애쓴다. 하지만 시간은 세상에서 가장 짓궂은 아이러니다. 시간은 아끼려고 할수록 낭비된다. 시간의 효율성을 위해 우리가 영리하게 계획하는 모든 일들은 오히려 순간의 삶을 깊이 누리지 못하게 한다. 그리하여 외려 시간을 낭비하게 만든다. 밥 먹으며 스마트폰으로 이메일을 확인하는 일은 겉으로 보기엔 시간을 아끼는 것 같지만 실로 그렇지 않다. 밥알의 윤기를 혀끝으로 느끼는 ‘영원의 시간’을 놓치게 만들 뿐이다. 순간을 충만하게 누리는 것이야말로 시간을 아끼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시간을 낭비하자,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
한 연주가는 “나는 시간을 버리는 것이 두렵지 않다”고 말했다. 하루 종일 악기 앞에 앉아 있다고 연습이 잘되는 건 아니라고, 자기는 시간을 버리는 것이 전혀 두렵지 않다고, 연습이 안 될 때는 악기를 내려놓고 친구를 만나거나 여행을 한다고 했다. 이 연주가가 그렇듯 때론 버림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시간이다.
1만 시간의 법칙이란 유명한 말도 있지만, 피아니스트의 혼이 담긴 연주는 1만 시간의 연습만으로 이루어지는 건 아니다. 그의 영혼이 충만한 기쁨으로 넘쳤던 단 1초의 순간ㅡ가령 사랑하는 사람과의 눈맞춤ㅡ은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예술’로 만드는 영원의 묘약 아닐까. 1초 속에도 우리는 영원을 담을 수 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사건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을 갖기 위해서 필요한 지혜가 있다. 그것은 갑자기 달려드는 시간에게 허를 찔리지 않고, 허둥지둥 시간에게 쫓겨 다니지도 않겠다는 분명한 의지로 알 수 있는 지혜이다. 우리는 그 능력을 ‘느림’이라고 불렀다. 느림은 우리에게 시간에다 모든 기회를 부여하라고 속삭인다. 그리고 한가롭게 거닐고, 글을 쓰고,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휴식을 취함으로써 우리의 영혼이 숨 쉴 수 있게 하라고 말한다.” (피에르 쌍소,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동문선)
말과 시간은 공통점을 지닌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기회라는 것. 한 번 지나가버리면 다시 되돌릴 수 없다는 것. 효율적으로 쓰려고 욕심낸다고 그것을 제대로 활용하는 건 아니라는 것. 순간 속에 영원을 담거나, 한 마디 속에 사람을 살리는 구원을 담을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둘 다 사람의 영혼이 숨 쉬는 곳이 되어야 한다는 것.
말을 잘하기 위해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할 때면, 시간을 생각하자. 시간을 잘 쓰기 위해 시간을 낭비하듯 말을 잘하기 위해서 말을 버리자. 내가 가진 말이 내가 가진 시간처럼 나의 영혼이 깃드는 곳이 될 수 있도록, 우리 그렇게 말하며 살자. 말은 영혼을 담는 그릇이다.
- 손화신 작가의 에세이 <나를 지키는 말 88>(쌤앤파커스)에 실린 글입니다.
_손화신은 에세이 <나를 지키는 말 88>의 저자다. 스피치 모임을 10년 동안 진행해오며, 진정한 말은 침묵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대로 된 한 마디’를 하기 위해 말의 뿌리인 침묵 안에서 우리가 무엇을 키워나가야 하는지를 이야기한다. 현직 음악담당 기자이며, 길스토리 프로보노이자 카카오 브런치 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글 쓰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 브런치 주소: brunch.co.kr/@ihear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