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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화신의 조용한 수다방
    당신의 따뜻한 말 한 마디에 세상은 흐드러지게 피어나고
    Hwashin Son
    Writer
    손화신 / 상세보기
    당당함과 여유
    추천수 150
    조회수   2,102
    당당함과 여유
    글 : 손화신 (작가)
    “인생을 살아가는 것에 있어서 제일 지혜로운 것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즐기는 것이다.”
    - 셰익스피어

    스피치 모임의 마지막 순서는 언제나 그날의 소감을 듣는 일이다. '떨렸지만 재미있었다'는 말은 식상할 만큼 많이 들었지만, 느낌이 조금 다른 소감을 들은 적 있었다.
    "오늘 너무 떨려서 많이 떨었습니다. 그래서 정말 행복했어요!"
    떨렸지'만'이 아니라 떨려'서' 행복했다는 말은 처음이었다. 우리는 어떤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즐길 수 있지만 정말 그 순간을 온전히 즐기는 사람에겐 '불구하고'란 개념조차 없는 듯했다. 그런 사람에겐 어려움 자체가 즐거움이었다.
    긴장과 어려움을 극복하는 자세도 아름답지만,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듯 긴장과 어려움 자체를 즐기는 사람은 더 아름다워 보인다. 그에게선 당당함과 여유가 느껴진다. 스피치에서도 생즉사 사즉생(生卽死 死卽生)이 통하나 보다. 죽으려 하면 살 것이요, 살려하면 죽을 것이다. 발표할 때 '떨려 죽자'란 심정으로 떨림을 즐기는 정면돌파는 정직하고도 짜릿한 스포츠다.
    실수를 결점으로 생각하는 사람과 실수를 재미있는 에피소드로 생각하는 사람. 둘 중 후자에게서 당당함과 여유가 느껴지는 이유는 후자에겐 실수를 절대 하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 대신에 실수를 해도 되는 자유로움이 있기 때문이다. 실수를 해도 되니까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어 여유 있고, 그러다 정말로 실수를 하게 되면 그것을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니 당당하다.
    전에 TV 토크쇼에서 한 여자 배우가 한 말이 인상 깊었다. 자신은 실수가 너무 좋다고. 살다가 실수하는 경험이 생기면 그걸 이렇게 토크쇼에 나와서 이야기할 수도 있고, 주변 친구들한테 두고두고 말하면서 다 같이 한바탕 웃을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하긴, 실수를 즐기는 사람이 당당하지 않을 재간도, 여유롭지 않을 재간도 없겠다.
    당당함과 여유로움도 수학처럼 배워서 익힐 수 있으면 좋으련만. 이건 머리의 일이 아니라 마음의 일이니 그럴 수 없어 안타깝고, 그렇기 때문에 더 흥미롭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는 받아들임, 자신을 의심하지 않는 믿음, 주어진 모든 상황을 즐기는 대범함. 눈에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이런 마음의 근원에서 당당함과 여유로움이 물 흐르듯 흘러나온다면 보이지 않는 그것을 위해 우리는 순간순간 깨어있어야 할 것이다.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일, 그렇기 때문에 일단 내 것이 되면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나만의 것. 그건 당당함과 여유다. 이는 내가 어떠한 초라한 상황에 있더라도 내 머리 위를 따라다니며 나를 비춰주는 성실한 빛이다.
    - 손화신 작가의 에세이 <나를 지키는 말 88>(쌤앤파커스)에 실린 글입니다.

    _손화신은 에세이 <나를 지키는 말 88>의 저자다. 스피치 모임을 10년 동안 진행해오며, 진정한 말은 침묵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대로 된 한 마디’를 하기 위해 말의 뿌리인 침묵 안에서 우리가 무엇을 키워나가야 하는지를 이야기한다. 현직 음악담당 기자이며, 길스토리 프로보노이자 카카오 브런치 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글 쓰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 브런치 주소: brunch.co.kr/@ihearyo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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