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로역정
그림·글 : 이성수 (화가)
017 Kings 40P oil on canvas 2014
먼 길을 걸어왔고,
이제 가야 할 길은
오르막입니다.
난,
"복종"에서 태어나,
"인식"을 항해하고,
"절망"의 숱한 언덕,
"열정"의 늪을 지나,
"신학"의 구조 위에,
오랜 집을 지었습니다.
신학의 구조 위에 세운
나의 집은 많은 방이 있는
견고한 성이었다 기억합니다.
손님을 위한 많은 방과 나를 위한 응접실,
나의 집은 열린 곳이었습니다.
혹, 열린 창가에 언젠가 날아든 가치의 감흥이 아니었다면,
다시는 떠나지 않았을 견고한 성, 열린 나의 집은
이젠 내 기억 속에만 존재합니다.
복종과 인식과 절망과 열정과 신학의 견고한 구조를 지나,
퍽 오랜 방황 이후,
난 미의 산, 가치와 아름다움의 웅장함 앞에 이르러
잠시 서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지나온 길은 외길, 선택이 없었습니다.
선택이 없으므로 자유도 없고,
자유가 없으므로 아무 신도 발견할 수 없는,
그 길을 난 "과정"이었을 뿐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언젠가 날아든 가치의 감흥,
신의 생기는 나에게 자유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난 가치를 따라, 신을 찾아, 모든 것을 버리고,
이 아름다움의 큰 산 앞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내 마음이 갑자기 세차게 움직입니다.
아, 이 산을 넘으면, 그 곳엔 가치의 감흥과
내 마음의 주관이 늘 말하던
바로 그 신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산은 오르막, 지나기가 쉽지 않으며,
아름다움은 높은 산이므로
이전의 모든 길보다 험한
내 마음의 역경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젠 신을 발견하며 걸을 수 있으므로
다만의 "과정"이라 하지 않고,
자유로운 "여정"이라 하겠습니다.
아름다움은 높은 산,
신에게 가는 마지막 여정입니다.
_이성수는 서울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했다. 2003년부터 국내외에서 다수의 개인전을 열었고 그룹 전과 아트페어에 참가했다. 그의 작품에는 사람이 있고, 환상이 있고, 웃음이 있고, 공기가 있고, 바다가 있으며 그 안에 너와 내가 있다. 환경, 동물, 사람이 존재하고 융합되는 그의 이미지는 때로는 부드럽게 따뜻한 시선으로 때로는 지독하게 차가운 얼굴로 다가와 세상의 무엇을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