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담과 독설
글 : 손화신 (작가)
험담은 세 사람을 해친다. 말하는 자, 험담하는 자, 듣는 자. - 마드리쉬
“귀에 대고 하는 말은 듣지를 말고, 절대 남에게 말하지 말라고 하며 할 얘기라면 하지를 말 일이오. 남이 알까 염려하면서 어찌 말을 하고 어찌 듣는단 말이오. 이미 말을 해 놓고 다시금 경계한다면 이는 사람을 의심하는 것인데, 사람을 의심하면서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 하겠소.”
연암 박지원의 말이다. 험담은 듣지도 말하지도 말라는 충고다. 하지만 이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돌아보니 나도 험담을 하고 살았다. 처음 도마 위의 생선을 올려놓을 때는 살짝궁 '때찌'만 해야지 하다가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느새 회를 뜨고 있다. '아무한테도 이야기 말고 너만 알아야 해' 이런 무용지물 같은 멘트는 필수였다. '아무한테도 이야기하지 마라'고 하면서 마음 한편으로는 그의 사악함을 널리 알려줬으면 싶은 양가적 감정이 일어나는 걸 스스로도 느끼지만, 그래도 빼놓을 순 없는 멘트다.
험담을 하는 순간에는 '그래 이 맛이야!' 싶을 만큼 속이 시원하다. 그런데 속 시원한 그만큼의 찌꺼기를 간직해야 한다는 것이 험담의 치명적 결함이다. 험담을 하면 일단 스스로에게 찌꺼기가 남고 듣는 사람에게도 찌꺼기를 안기게 된다. 스스로에게 남는 찌꺼기란, 험담이 나쁜 짓이란 걸 먼저 알고 있는 내 양심이 내는 소음이다. 듣는 이에게 주는 찌꺼기란,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말하고 싶은 내면의 갈등과 이 사람이 다른 곳에 가서 내 험담도 할 수 있겠다는 불안함이다.
결국 험담은 이익과 손실을 저울질했을 때 손실 쪽으로 기울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큰 그릇의 사람이 되어 험담을 일절 안 하고 싶지만 그릇이 작아 힘들 때 나는 차라리 이렇게 생각한다.
"저 사람을 험담하는 내 시간이 아깝다."
험담을 하다 보면 독설이 나오기 마련이다. 혹은 뒤에서 하는 험담이 아니라도 우리는 대놓고 독설을 할 때도 있다. 독설은 꿀벌의 침과 같다. 꿀벌은 침을 쏘면 침과 함께 내장이 딸려 나와서 죽는다고 한다. 적의 공격을 방어하여 스스로가 살기 위해 침을 쏜 건데 동시에 자신도 죽는다니... 신이 꿀벌을 만들 때 무슨 심오한 메시지를 담으려 한 게 아닌가도 싶다. 순간의 화를 참지 못하고 해서는 안 될 독설(독침)을 쏘고 나면 인간으로서 지니고 있었어야 할 품위(내장) 같은 것이 빠져나가는 느낌이 든다. 독침은 우리 몸속에 있을 때는 아무도 해치지 않는 물질이지만 입을 통해 몸 밖으로 나가는 순간 상대도 해치고 자신도 해치는 무기가 되는 것이다.
분노의 감정이 일어나면 독침에 강렬하게 에너지가 모이면서 속에 지니고 있기가 불편한 게 사실이다. 이 불편한 느낌을 못 참고 분출해 버리지만 꼭 쏘고 나면 1+1 상품처럼 따라오는 건 ‘후회’였다. 군자처럼 너그러워서 독설을 안 하고 살고 싶지만 그것이 내 맘대로 안 될 때가 부지기수다. 그럴 땐 차라리 이렇게 되뇐다.
"저 사람에게 독설 하는 내 입이 아깝다."
- 손화신 작가의 에세이 <나를 지키는 말 88>(쌤앤파커스)에 실린 글입니다.
_손화신은 에세이 <나를 지키는 말 88>의 저자다. 스피치 모임을 10년 동안 진행해오며, 진정한 말은 침묵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대로 된 한 마디’를 하기 위해 말의 뿌리인 침묵 안에서 우리가 무엇을 키워나가야 하는지를 이야기한다. 현직 음악담당 기자이며, 길스토리 프로보노이자 카카오 브런치 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글 쓰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 브런치 주소: brunch.co.kr/@ihear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