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reative Lab
  • INTRO
  • CREATOR
  • TOPIC
  • HOT
  • 손화신의 조용한 수다방
    당신의 따뜻한 말 한 마디에 세상은 흐드러지게 피어나고
    Hwashin Son
    Writer
    손화신 / 상세보기
    2018, 리셋 Reset
    추천수 198
    조회수   2,382
    2018, 리셋 Reset
    글 : 손화신 (작가)
    “4년 전 밴쿠버 때의 김연아는 잊은 지 오래됐다. 지금 여기, 현재에만 집중하고 있다.”
    - 2014. 2. 18. 소치 올림픽을 앞두고, 김연아 인터뷰 중

    <출처: 인터넷 커뮤니티>
    피겨로 세계를 제패한 김연아 선수. 그녀가 강심장이라는 사실은 온 국민이 안다. 올림픽 같은 세계무대에서 육중한 부담감과 스트레스를 극복하고 목표한 바를 이뤄내는 모습은 피겨 실력만큼이나 감탄스럽다.
    김연아의 강심장 비결은 뭘까. 태생적인 성격 덕도 있겠지만 평생에 걸쳐 부담감과 싸워온 사람만이 터득할 수 있는 무언가가 분명 있을 것만 같다. 분명 그녀에겐 자신만의 ‘마음경영법’이 있었을 것이다.
    지난 2014년 소치 올림픽을 앞둔 김연아의 인터뷰들을 보며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바로 인터뷰의 공통된 키워드에 답이 숨어있었다.
    ‘Reset’
    “이제 프리 스케이팅만 남겨뒀습니다. 경기에 임하는 각오 한 마디 해주시죠.” 지겨우리만큼 들었을 기자들의 이 질문에 그녀 또한 지겨우리만큼 매번 비슷한 답변을 내놓았다.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이전의 경기를 잘 했든 못 했든 상관없이 경기에 임하겠습니다.”
    한마디로 ‘리셋’하겠단 말이다. 마음에 집착 덩어리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면 경기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다는 것을 그녀는 오랜 훈련과 경기 경험을 통해 깨달은 게 분명해보였다. 김연아는 눈앞에 주어진 경기가 처음인 것처럼 매번 비움의 의식을 치렀을 것이다.
    불교의 관점을 빌리자면 무언가를 바라거나 혹은 바라지 않는 모든 마음의 판단들이 집착을 낳는데 이 집착이 마음의 흐름을 막는 장애물이 된다. 김연아의 인터뷰를 통해 그녀가 마음에 집착덩어리를 만들지 않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쇼트 프로그램을 잘 했으니까 프리 스케이팅도 실수 없이 하겠다'든지 '쇼트 프로그램에서 실수를 했으니까 프리 스케이팅에서는 실수를 하지 않겠다'는 식의 말은 없었다.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던 걸까? 아무리 좋은 각오일지라도 그것이 마음 안에서 자리를 잡으면 오히려 짐이 된다는 것을. 그 마저도 하나의 집착이라는 것을 말이다. 빈 방보다 좋은 건 없다.
    생각, 생각, 생각...... 중요한 순간일수록 우리는 끝없이 이어지는 생각의 흐름을 단호히 끊고 오직 이 순간에 머물러야 한다. 백지처럼 아무 생각 없이, 머리도 마음도 모두 리셋될 때 이전의 시간도 이후도 시간도 없이 오직 ‘이 순간’만 남는다. 이것은 ‘완전한 시간’이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쓴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자신의 묘비명으로 이런 글을 남겼다. “I hope for nothing, I fear nothing, I am free." (나는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다.)
    아무런 집착이 없는 상태, 자유로운 마음 상태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것’에서 출발한다. nothing의 상태가 곧 reset의 상태다. 김연아는 경기를 치르는 그 순간에 우승을 원했을까? 나의 추리가 틀리지 않았다면 그녀는 그 순간엔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경기가 시작되고 음악이 흐르는 순간, 그땐 올림픽도 없고 금메달도 없고 관중의 시선도 없고 오직 노래와 동작만이 남은 텅 빈 우주 그 속에서 김연아는 홀로 서 있었을 것이다.
    * 이 글은 손화신 작가의 에세이 <나를 지키는 말 88>에도 실렸습니다.

     

    _손화신은 에세이 <나를 지키는 말 88>의 저자다. 스피치 모임을 10년 동안 진행해오며, 진정한 말은 침묵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대로 된 한 마디’를 하기 위해 말의 뿌리인 침묵 안에서 우리가 무엇을 키워나가야 하는지를 이야기한다. 현직 음악담당 기자이며, 길스토리 프로보노이자 카카오 브런치 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글 쓰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 브런치 주소: brunch.co.kr/@ihearyou )
    추천스크랩 목록
    PRE 꼬리표 떼기
    NEXT 담백한 아름다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