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담백한 아름다움 >
_ 군자는 미사여구를 쓰지 않는다
글 : 손화신 (작가)
“군자의 사귐은 담담하다.”
- 노자
삐-삐-삐-. 당신이 옷가게에서 나오는데 도난방지기가 요란하게 울린다. 당신은 옷을 훔치지 않았는데 누구의 장난인지 당신 가방에서 옷이 나온다. 당신의 반응은? 당연히 결백을 주장하며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많이 당황한 당신은 “진짜로 제가 안 훔쳤어요! 진짜라니까요! 미치겠네! 하늘에 맹세코 저는 훔치지 않았다니까요!”라며 많은 부사와 꾸밈말을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어쩐지 그럴수록 당신은 진짜 도둑 같기만 하다.
지나친 강조는 오히려 불신을 줄 수 있다. “저는 이 물건을 훔치지 않았습니다. 누군가 장난을 친 것 같습니다”라고 단호하면서도 간결하게 말하는 편이 낫다. 최대한 담백하게. “진짜 진짜 진짜 진~짜! 제가 안 훔쳤어요”라고 말한들 '진짜'의 수만큼 당신의 결백이 보장되는 건 아니다.
사랑하는 연인에게 고백할 때도 마찬가지다. 당신이라면 ‘사랑해’와 ‘진짜 사랑해’ 둘 중에 어떤 말을 택하겠는가. 물론 상황에 따라, 상대의 성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수식어 없는 담백한 세 글자 '사랑해'가 어쩐지 더 미덥게 느껴진다. ‘진짜 사랑해’라고 말하는 저 사람 마음 안에는 ‘가짜 사랑해’도 있을 것만 같다. 말은 꾸미면 꾸밀수록 진정성이 떨어진다. 군자는 화려한 미사여구를 쓰지 않는다.
말과 음식은 어쩌면 비슷하다. 요리를 할 때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기 위해서는 각종 양념과 조미료, 향신료를 자제해야 한다. 맛있는 요리를 만들겠다는 의욕에 차서 이것저것 좋다는 것들을 첨가하면 할수록 조잡스러운 맛이 난다. 요리의 고수들이 담백한 음식을 만들 듯, 말의 고수들은 담백한 화법을 구사한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시리즈를 쓴 유홍준 교수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좋은 글’에 대한 물음에 이런 대답을 내놓았다.
"좋은 글이란 쉽고, 짧고, 간단하고, 재미있는 글입니다. 멋 내려고 묘한 형용사 찾아 넣지 마십시오. 글맛은 저절로 우러나는 것입니다. 치장한 글은 독자가 먼저 알아봅니다."
글도 마찬가지다. 힘 있고 진솔한 글을 쓰고 싶다면 수식어를 배제하고 담백해지자. 자기 안의 생각이나 감정을 모조리 표현하려는 조바심이 들 때, 그럴수록 차라리 미사여구를 버리고 정제하자. 귀한 선물일수록 포장은 정갈한 법이다.
_손화신은 에세이 <나를 지키는 말 88>의 저자다. 스피치 모임을 10년 동안 진행해오며, 진정한 말은 침묵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대로 된 한 마디’를 하기 위해 말의 뿌리인 침묵 안에서 우리가 무엇을 키워나가야 하는지를 이야기한다. 현직 음악담당 기자이며, 길스토리 프로보노이자 카카오 브런치 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글 쓰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 브런치 주소: brunch.co.kr/@ihear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