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결함은 언제나 옳았다
글 : 손화신 (작가)
재치의 핵심은 간결함이다. - 셰익스피어
브래드피트 주연의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 초반부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아버지가 어린 아들에게 글을 써오도록 시키는데 아들이 열심히 글을 써오면 아버지는 제대로 읽지도 않고 '반으로 줄여 와' 하고 돌려보낸다. 이 장면이 몇 번이고 반복된다. 2장을 1장으로 줄여오면 1장을 다시 1/2장으로 줄여오게 하고, 1/2장으로 줄여오면 또 다시 한 문장으로 요약해오라며 돌려보낸다.
아버지는 왜 그랬을까. 아들에게 무엇을 알려주고 싶었던 걸까. 그것은 간결함 속에 핵심이 있다는 교훈이었다. 군더더기를 걷어내고 알맹이만 남겼을 때 그것에 담긴 진리를 아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아들이 앞으로의 인생을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 하는지, 아버지는 끊임없이 글을 요약하게 하며 가르쳤다.
간결함은 무작정 '짧은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간결함은 '추려진 핵심'이다. 그러므로 간결함이란 결코 쉽게 도달할 수 있는 만만한 산이 아니며, 복잡해지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다. 1998년 5월 <비즈니스위크>에 실렸던 스티브잡스의 인터뷰에 이런 부분이 있다.
"나의 만트라(주문) 중 하나는 집중과 단순함이다. 단순함은 복잡함보다 더 어렵다. 생각을 단순하고 명료하게 하려면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한 번 그러한 단계에 도달하면 산도 움직일 수 있다."
유머에서도 간결함은 첫 번째 조건이다. "원래 재미있는 이야기인데 내가 하면 재미없어진다"고 말하는 사람은 간결하지 못해서다. 재치의 핵심은 간결함이라고 셰익스피어는 말했다. 재치 있는 말은 절대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는다. 이야기가 길게 늘어지기 전에 날렵한 화살을 쏘듯 유머를 '날려야' 한다. 너무 긴 화살은 꼬리가 휘청거려 과녁에 닿기도 전에 방향을 잃는다.
유머뿐 아니라 모든 말이 마찬가지다. 말이 간결하다는 건 무작정 말수를 줄인다는 의미가 아니며 한 마디를 해도 군더더기 없이 진실하게 한다는 의미다. 말을 간결하게 하기 위해서는 <흐르는 강물처럼>의 어린 아들이 그러했듯 핵심을 추리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 노력 속에서 상처 주는 말, 진실을 가리는 말, 품위 없는 말들이 걸러지고 알맹이가 남는다.
간결한 말은 언제나 옳았다. 또한 간결한 말은 옳고도 따뜻했다. 말을 간결하게 한다는 건 나의 말을 줄이고 대신 당신의 말을 듣겠다는 배려기 때문이다.
* 이 글은 <나를 지키는 말 88>에도 실렸습니다.
_손화신은 에세이 <나를 지키는 말 88>의 저자다. 스피치 모임을 10년 동안 진행해오며, 진정한 말은 침묵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대로 된 한 마디’를 하기 위해 말의 뿌리인 침묵 안에서 우리가 무엇을 키워나가야 하는지를 이야기한다. 현직 음악담당 기자이며, 길스토리 프로보노이자 카카오 브런치 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글 쓰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 브런치 주소: brunch.co.kr/@ihear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