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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화신의 조용한 수다방
    당신의 따뜻한 말 한 마디에 세상은 흐드러지게 피어나고
    Hwashin Son
    Writer
    손화신 / 상세보기
    편견 없는 경청
    추천수 170
    조회수   1,831
    편견 없는 경청
    글 : 손화신 (작가)

    경청이란 누군가에게 내 마음의 도화지 한 장 내어주는 일. 정갈하고 순수한 하얀 도화지 한 장 그의 손에 쥐어주는 일.
    경청의 사전적 의미는 ‘귀를 기울여 들음’이다. 사전은 언제나 2% 부족해서 귀를 기울여 들어도 제대로 들을 수 없었던 우리의 경험을 설명해주지 못한다. 진정한 경청은 귀 기울여 '편견 없이' 듣는 것이다.
    제대로 그림을 그리려면 도화지의 바탕이 하얗고 깨끗해야 하듯, 상대방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기 위해서는 내 마음이 편견 없이 하얘야 한다. 편견 없이 듣고 나서 그 후에 비판을 하는 건 좋지만, 이미 자신의 잣대와 틀을 부여잡은 채 상대의 말이 끝나길 기다렸다는 듯 던지는 비판은 비겁하다. 상대가 빨강, 노랑, 파랑물감을 써가며 형형색색 그림을 그리도록 가만히 기다려주고 지켜봐주는 게 '듣는 일'이다.
    사기 이사열전에 이런 구절이 등장한다.
    태산불양토양泰山不讓土壤 하해불택세류河海不擇細流.
    (태산은 한 줌의 흙도 마다하지 않고, 강과 바다는 작은 물줄기도 가리지 않는다)
    경청의 자세도 이와 같아야 한다. 귀를 기울이고 있지만 내가 듣기 싫은 말이 들려오면 마음의 셔터를 내려 버리는 것은 제대로 들어주는 게 아니다. 이미 완성된 내 그림으로 가득 찬 도화지를 상대에게 내놓으면서 그 위에 그림을 그리라고 하는 건 예의가 아니지 않나. 비록 상대의 생각이 내 생각과 반대되더라도 한 줌의 흙도 마다하지 않는 태산의 자세로 듣는 일은, 어렵지만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가.
    이런 사람의 마음은 명화로 가득한 미술관처럼 귀한 그림들로 차곡차곡 채워져 있다. 그림 위에 또 다른 그림이 그려진 그런 뒤죽박죽 삼류 그림과는 비교할 수 없는 온전한 명작들이 각각의 품격을 간직한 채 축적돼 있다.
    남에게 들어서 얻은 재산은 후에 내가 말할 때의 밑천이다.
    - 손화신 에세이 <나를 지키는 말 88>에 실린 글입니다.

    _손화신은 에세이 <나를 지키는 말 88>의 저자다. 스피치 모임을 10년 동안 진행해오며, 진정한 말은 침묵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대로 된 한 마디’를 하기 위해 말의 뿌리인 침묵 안에서 우리가 무엇을 키워나가야 하는지를 이야기한다. 현직 음악담당 기자이며, 길스토리 프로보노이자 카카오 브런치 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글 쓰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 브런치 주소: brunch.co.kr/@ihearyo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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