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각자 목적이 되어 햇빛을 쬐러 갑시다
글 : 손화신 (작가)
햇빛이 기가 막히는 날에는 식물처럼 광합성을 하고 싶다. 건물 안에 갇혀 있는 날이면 커피가 당기듯 햇빛이 당긴다. 좀비처럼 퀭한 눈으로 컴퓨터 앞에 있다가도 밖에 나가 가르마 사이로 햇빛을 좀 쬐어주면 축축하던 기분이 보송보송해진다. 그러면 다시 건물 안에 갇히러(?) 가는 발걸음마저 가벼워지는 것이다.
회사원들의 점심시간은 햇볕이 가장 좋은 시간과 맞물린다. 마치 대학교 중간고사 기간과 벚꽃 만개일이 1일의 오차도 없이 맞물리는 것처럼. 점심시간 1시간은 만원 식당에서 빨리 먹기 대결하듯 밥을 먹고 커피를 홀짝이기에 턱없이 짧다. 햇볕 좋은 날이면 어쩐 일인지 시간은 더 쏜살같아서 오전 내내 노동으로 땀 맺힌 정수리를 다 말리지도 못한 채 응달로 돌아가야만 한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안달하던 그 많던 초등학생들이, 고등학생 혹은 대학생이 돼서 “어른 되기 싫다”고 말할 때,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에게 설문지를 돌리면 과연 최다득표는 어떤 항목에 돌아갈까. 아마 다음과 같은 항목이 아닐까 싶다.
‘얽매이는 게 점점 더 많아짐’
가기 싫어도 직장에 가야하고, 하기 싫어도 야근을 해야 하는 것. 쉬고 싶고 놀고 싶을 때도 마음대로 즐기지 못하는 것. ‘해야 할 일’에 ‘하고 싶은 일’이 늘 자리를 양보해야 하는 것. 이런 억압들을 받아들이고 익숙해진다는 게 어른이 되는 일처럼 보여서, 그래서 그들은 어른이 되기 싫은 거다.
오늘 학교에 안 가면 안 될까 하는, 엄마의 ‘등짝 스매싱’을 부르는 말을 지치지도 않고 매일 아침 하는 어린이는 그렇게 아침마다 어른이 되는 훈련을 하고 있다. 그런 아이에게 진심을 담아, 힘이 되어줄 한 마디를 하고 싶다. 아이야! 너무 힘들어하지 마렴. 지금의 고통은 아무 것도 아냐. 어른이 되면 너는 백배 더 얽매이고 백배 더 힘들어질 거야. 그러니 힘내, 파이팅! :)
“타인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라.”
- 칸트
인간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라는 말은 이 시대에 점점 무색해져간다. 그것은 타인을 종이 아닌 자유인으로서 대하라는 말이지만 산업화된 사회의 노동자는 부품화, 수단화될 수밖에 없다. 한 개인이 조직을 위한 구성원으로서의 정체성을 굳혀갈수록 그는 목적으로서의 인간에서 점점 멀어진다.
요즘 서점가에선 퇴사를 주제로 한 책들이 인기를 끌고, 직장인을 위한 퇴사 학교도 생기고 있는데 이는 수단으로서의 인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부품들의 몸부림처럼 보인다. 인간은 누구든 억압이 아닌 자유의 태양 아래서 살고 싶어 하니까.
“정신이 더 이상 주인이나 신으로 섬기려고 하지 않는 거대한 용의 이름은 무엇인가? 거대한 용은 ‘너는 해야 한다’를 뜻한다. 하지만 사자의 정신은 ‘나는 하려고 한다’라고 말한다.”
-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
‘나부터 행복해야한다’는 불변의 진리를 가장 잘 지키는 사람은 어린이들이다. 아이들은 자신의 행복을 타인에게 양도하지 않으며 내일에 양도하지도 않는다. 지금 행복할 것. 내가 먼저 행복할 것. ‘너는 무엇을 해야 한다’의 의무에 쫓기기보다는 ‘나는 무엇을 하려고 한다’는 자유를 우선으로 받들 것. 이것은 어린이 나라의 칙령이다. 아이들이 수단이 되지 않고 목적의 인간으로서 남는 비법이다.
- 손화신 작가의 에세이 <아이라는 근사한 태도로>에 담긴 글입니다.
_2016년 8월부터 길스토리 크리에이터 멤버로 활동 중이다. 6년째 문화예술 전문 기자로 일하고 있으며, <나를 지키는 말 88>의 저자이기도 하다. 2019년 9월 1일, ‘제6회 카카오 브런치북’ 대상에 빛나는 두 번째 책 <아이라는 근사한 태도로>(웨일북)를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