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그것을 모름으로써 알고 싶습니다
글 : 손화신 (작가)
아는 것은, 그것을 모르게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멸치가 몸에 좋다는 정보를 ‘알면’ 그때부터 내가 멸치를 좋아하는지 안 좋아하는 ‘모르게’ 된다. 멸치가 몸에 좋다는 걸 알기 때문에 챙겨먹는 건지 아니면 내가 진짜 멸치를 좋아하기 때문에 즐겨 먹는 건지 헷갈리는 것이다. 차라리 멸치가 몸에 좋은 음식이란 걸 몰랐다면 나의 멸치에 대한 취향을 알기 쉬웠을 텐데.
“관념을 갖는 것은 잔인한 일이다. 만일 당신이 어떤 관념, 신념, 원칙들을 갖고 있다면 당신은 자신을 똑바로 볼 수 없다.”
-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 중
누구도 관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태어나자마자 우린 사회로부터 이것저것 주입받기 때문이다. 취향도 주입된 하나의 관념일 수 있다. 자라오면서 접촉해온 외부의 것들, 타인의 평균적 취향들이 내 안에 얼마나 많이 스며들었는지 생각해본 적 있는지? 내가 블랙 앤 화이트의 모던한 색상을 좋아한다고 알고 있지만 실은 무채색이 세련된 색이라고 사회로부터 인식‘당했기’ 때문에 그 취향을 내 것으로 선택한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순수하게 끌리는 색은 녹색일수도 있지만 그러나 내가 녹색을 가장 좋아한다는 사실을 평생 모르고 죽을 수도 있는 일이다.
몰라야지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한 사람을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편견 없이 볼 수 있다면 우리 사이는 꽤 달라졌을 거다.
지두 크리슈나무르티는 “마음이 기억에 의해 불구가 되지 않아야만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했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선입견이란 것도 ‘마음이 기억에 의해 불구가 되는’ 일이다. 어떤 대상을 내가 직접 마주하기 전에 특정한 외부의 관점을 미리 취해버리면, 곧장 시선의 밸런스를 잃게 된다.
외부의 간섭 없이 나만의 시선으로 고유하게 인식하고 느낀다는 것은 정녕 불가능한 일일까. 뭉크의 ‘절규’를 보고서 불안 말고 다른 인상을 받는다면 그 사람은 일자무식자인 걸까. 잘 모르겠다. 아니, 웬만하면 뭐든지 모르고 싶다.
_2016년 8월부터 길스토리 크리에이터 멤버로 활동 중이다. 6년째 문화예술 전문 기자로 일하고 있으며, <나를 지키는 말 88>의 저자이기도 하다. 2019년 9월 1일, ‘제6회 카카오 브런치북’ 대상에 빛나는 두 번째 책 <아이라는 근사한 태도로>(웨일북)를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