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만큼 존재한다
글 : 손화신 (작가)
글쓰기는 언제고 내가 연기처럼 사라져버릴 것만 같은 순간이 올 때,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다. 이것을 20대 중반에 어떤 계기로 깨닫게 됐다. 살면서 그런 순간이 몇 번이고 더 찾아왔고, 나는 예고편도 없는 공포와 위기감 속에서 계속 글을 썼다.
글을 쓰거나 음악을 만들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춤을 추거나, 그 무엇으로든 자기를 표현할 때만큼은 누구나 자신으로 존재한다. 존재할 뿐 아니라 좀 더 적극적으로 자신을 지킬 수 있다. 내가 글을 쓸 줄 아는 사람이라는 사실은, 나의 언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이 세상이 내게 말도 안 되게 덤벼들 때조차 조금도 기죽지 않게끔 나를 북돋웠다. 읽고 쓰면서 나는 점점 세상이 두렵지 않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펜은 세상을 바꾸기 전에 그 펜을 든 사람을 먼저 바꾼다. 쓰는 내가 내 글을 짓는 줄만 알았는데, 쓰는 만큼 글도 나를 창조했다. 씀으로써 나는 세상에서 오직 유일한 ‘나’가 됐다.
글을 쓰는 데 다른 이유가 필요하다면 그건 세속적이고 허영에 찬 목적을 위한 것이리라. 돈과 명예를 위해 글을 쓸 때 그럼 나는 사라진 것인가, 사라지지 않은 것인가.
나는 언제까지나 씀으로써 나를 존재하게 할 것이다.
- 손화신 에세이 <쓸수록 나는 내가 된다>(다산초당) 중
_2016년 8월부터 길스토리 크리에이터 멤버로 활동 중이다. 6년째 문화예술 전문 기자로 일하고 있으며, <나를 지키는 말 88>의 저자이기도 하다. 2019년 9월 1일, ‘제6회 카카오 브런치북’ 대상에 빛나는 두 번째 책 <아이라는 근사한 태도로>(웨일북)를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