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조금 더 머물다 가겠습니다
글 : 손화신 (작가)
천국의 주인은 머무는 사람이어서 "여기서 조금만 더 머물다 가자"는 말을 달고 사는 사람은 이미 천국에 들어가 있다. 그곳에서는 아이도 어른도 머물 수밖에 없다. 집에 가야 해, 집에 갈 시간이야, 말해도 어린이는 쉽게 동물원을 떠나지 못한다. 사슴의 눈을 계속 보려고 하고 고래의 다음 비상을 한 번 더 보려고 기다린다.
아이는 자기의 천국에 더 머물기 위해 울고 떼를 쓰지만 어른들의 생활양식은 그런 게 아니다. 어른은 시계의 초침과 분침과 시침을 잘 떠나지 못한다. 우린 천국을 떠나온 지 꽤 오래고 돌아보니 길도 꽤 멀어졌다. 하지만 떠나지 못해 머무는 생활방식은 세상의 모든 거짓 속에서 진실한 것들을 가려낸다.
지금 보는 하늘의 구름이 근사하다면 그렇다면 머물러서 바라볼 일이다. 그 구름은 어제의 구름과 다르고 내일과 모레, 앞으로 보게 될 어떤 구름과도 다른 것이다. 다시는 반복될 수 없는 장면이기에 지금 머물지 않으면 영영 놓쳐버리는 천국이다.
지금 마시는 커피가 황홀하다면 혀에 조금 더 머물게 하고, 그럴 때 나의 하루가 충만함을 얻는다. 많은 것을 눈에 담는 여행보다 하나의 풍경을 마음속에 오래 머물게 담아두는 여행을 하고 싶다. 파리를 떠올렸을 때 그곳의 갖가지 모습들보단 노천카페에 앉아서 가만히 응시했던 길바닥의 울퉁불퉁한 회색 돌이 떠오른다면, 그것도 참 괜찮겠다.
내장사 가는 벚꽃길 어쩌다 한순간
나타나는, 딴 세상 보이는 날은
우리, 여기서 쬐금만 더 머물다 가자
(황지우, '여기서 더 머물다 가고 싶다' 중)
_2016년 8월부터 길스토리 크리에이터 멤버로 활동 중이다. 6년째 문화예술 전문 기자로 일하고 있으며, <나를 지키는 말 88>의 저자이기도 하다. 2019년 9월 1일, ‘제6회 카카오 브런치북’ 대상에 빛나는 두 번째 책 <아이라는 근사한 태도로>(웨일북)를 출간했다.